3/26-27남해 鷹峰山,雪屹山,錦山 산행기록 | |
번호 : 333
글쓴이 : 배슈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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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참가자)이주형 회장,이병호 전임, 김일상 대장,정종화 원장 정종훈 사장, 이유상 주필, 배기호 필자(7명)
(산행 일정) 3/26 07:00 수서역 집결-07:30분당톨게이트-대진고속도로-진주-하동- 12:20남해읍-점심식사-13:20 사촌리 등산시작-14:00낙뢰산-14:20 첨봉- 15:20응봉산-16:20설흘산-16:40가천마을
3/27 09:00 아침식사-10:30금산 1주차장-11:00금산 2주차장-11:30주봉- 보리암-11:50하산-12:30상주해수욕장-해수탕-13:30미조항-점심식사- 15:30창선교-16:30 삼천포대교-고속도로-20:00서울양재 도착 (느티나무 아래-찍은 사람 이병호)
(3/26,07:00)전날 포천 쪽에서 봄맞이 눈밭을 헤매고 새벽의 축구경기(사우디전) 를 시청하고 나니 새벽4:00, 2시간 정도 눈을 붙인다는 것이 새벽 6:20에야 눈을 떴다. 다행히 미리 챙겨둔 배낭을 들고 나서니 고맙게도 물푸레가 시동을 걸고 있다. 南島여행에 함께하지 못함이 아쉽지만 차량등 사정상 다음으로 미룬다. 서둘러 경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에 도착하여 수서에서 출발한 스타렉스에 올라타니 春興에 설레는 산케들의 얼굴이 수학여행 떠나는 초등학생 마냥 즐거움으로 가득하다. 하룻밤을 떠나보내는 물푸레는 다정히 손은 흔들지만.. "술은 조금만......" 눈길 당부.
분당 톨게이트에 이르니 정원장은 고속도로 공사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집에서 30분 정도는 가볍게 걸어다니는 모범의사님, 이번 남해 여행을 위해 토요 세미나를 벌인다. 기흥에서 떡라면으로 아침해장을 마치고 지도를 펼치니 남해 南面 설흘산 등산로 입구 沙村 마을이 왠지 눈에 익고 20년전 아이들을 데리고 찾았던 삼남면 삼남국민학교, 내 유년의 발자취와 일치한다. 다소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여행이 될듯하다.....
(12:30)남으로 향하는 승합차 안에서 이주필은 30여명의 연락두절 동기 찾기에 몰두하고 이회장은 산케들과 함께 산하를 휘젓고 다닐 버스 마련에 열을 올린다...새로 마련한SUV 차량을 자랑스럽게 산케들에게 소개하고 잦은 애용을 약속한다.완연한 봄 기운으로 가득한 창밖을 향하는 시선들은 몽롱하니 졸리웁고, 매주 즐기던 산행과는 달리 하룻밤 바닷가에서의 회사랑에 대한 기대감으로 지그시 눈을 감고 침을 넘긴다.
진주를 거쳐 광주 쪽 남해안 고속도로를 잠시 접어들어 하동을 지나 김대장의 고향마을 남해를 들어가는 남해대교(국내 최초 사장교)를 건너니 아직 피우지 못한 꽃망울을 머금은 벚꽃나무가 하늘을 가린다. 남해대교는 나정우 동기가 토목에 일조했다는 이주필의 설명이다 . 남해 읍내를 바라보는 언덕에서 ,일찍 고향을 떠났던 정사장이 옛날 집 작은 동산을 가리키며 읍내시가지와의 거리가 매우 가까움에 감탄한다. 어린시절의 신발크기로 잰 거리일테니 오죽 많은 걸음이 필요했으랴......
고향을 지키며 착실히 살고 있는 김대장의 동생이 미리 예약해 놓은, 읍내 새로 지은 시장 안 한식당에서 처음 맛보는 남도 멸치찌게에 벌써 서울을 잊는다. 산행인지 맛기행인지..부른 배를 걱정하며 일정대로 첫 출발지인 남면 사촌마을로 향한다. 흔한 바닷가 모래 일텐데, 하필 사촌(沙村)이라 특별히 부르는 까닭은?
그렇다. 내 유년(4-5세)의 기억으로는 바닷가 작은 학교 운동장 앞에 까만 몽돌밭 포구에서 맞은 편 여수로 장보러 간 엄마를 기다리며 누나의 등에 매달려 칭얼거리던 해안에는 모래가 별로 없었다. 해수욕장을 개설할 만큼 모래 해안을 이룬 이 동네의 이름과 몽돌 밭의 작은 포구는 선구리 언덕마을로 갈라져 있었다. 30대 젊은 초등학교 교장 선생 사모님은 그렇게 김해 고향과 잦은 전근으로 옮겨 다니는 아버님의 부임지를 오가며 고단한 기러기 생활에 지쳐가고 있었으리라...
(삼남초등학교 터-응봉산 입구에서)
(13:20) 사촌리와 삼남 마을을 가르는 언덕배기 선구마을 느티나무 아래서 ,지금은 팬션 사업을 위해 개조된 사라진 초등학교 마당을 내려다 보며 한 컷 디카로 맘을 달래고 배낭끈을 조이며 등산로 입구를 찾는다. 350년생 팽나무 7그루로 이루어진 웅장한 이 나무 아래서 50년대 어느 젊은 선생부부도 등에 업은 별난 막내 아들을 어루만지며 잦은 이별을 나누었겠지...
20 여분간 북쪽 사면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을 더듬으니 넓다란 제단 바위가 나오고 비석까지 갖춘 모습이 예전엔 아랫 마을 포구들이 제법 성시를 이루었고, 이 산성을 이룬 첨봉들을 향해 무사 뱃길을 빌었음이 짐작된다. 잘 살펴 보아도 비석엔 별로 알아 볼만한 글귀는 없다. 남사면이 보이는 능선에 올라서니 산수유 노란 꽃술들이 갈색 잎 떨군 이른 봄 나뭇가지에서 홀로 멋을 낸다.
짧은 워밍 업이 끝나고 오른 편에 보이는 남해 바다와 여수 오동도를 조망하며 잠시 감탄후 고개를 드니 날카로운 암릉이 100 여m 계속된다. 이름하여 낙뢰산(落雷山). 이리 저리 흩어진 각진 바위들이 마치 낙뢰를 맞은 듯이 뒤엉킨 채 이어진다. 약간 긴장되는 발걸음으로 짧은 슬랩들을 옮겨가니 급경사 능선길이 흥미를 더한다. 정원장과 김대장은 빠른 걸음으로 오가며 남해안 경치를 조망하는 암릉길을 택하며 감탄스레 앞길을 탐사하고, 대원들을 이끌어 준다. 다소 위험한 요소도 있으나, 칼날같은 암릉을 밟아가니 저멀리 목표지점 설흘산 봉수대는 까마득하다.
(14:20)1시간 여의 긴장 속에서 간간히 돌아다보는 남해안의 절경은 짧은 내 필설로는 할말이 없다. "그냥..한 번 꼭 가보세요..." 첨봉(尖峰) 꼭대기에 위험스레 걸터 앉은 정원장은 안전을 강조하며 직벽 오르기를 권한다. 눈길은 오른쪽 우회길로 자꾸만 가는데, 칼날 성벽같은 암릉에서 한려해상을 맛보는 짜릿함에 이끌려 직벽 크랙을 조심조심 기어 오른다. 잠시후 내리막 암릉 끝에 이르러 5-6m 밧줄 hanging을 경험하고 다시 이어지는 슬랩의 끝에서 끊어지는가 싶은 벼랑에 이른다.
로프도 없는 직벽 아랫쪽에 내려선 정원장과 김대장은 우회를 권한다 .잠시 망설이다 뒷조는 우회를 권하고 조심스레 잡아내려 오는 모난 바위 돌출이 참 고맙다. 가능하면 호기 부리는 위험요소는 피하는게 좋겠지...이후에는 편한 흙길로 바뀌어 발아래 스폰지 같은 감촉을 느끼며 1시간여의 긴장에서 벗어나고 여유로운 트래킹이 이어진다. 멀리 힌 물살을 가르며 광양만을 드나드는 화물선과 작은 어선들을 지켜보며..
(15:00)1차 목표지점인 응봉산(鷹峰山) 매봉(413m)에 이르니 준비한 물병들이 웬만큼 비워지고, 건너편 설흘산(雪屹山) (485m) 봉우리가 유난히 가파르게 다가선다. 잠시 휴식 후 짧은 직벽 능선을 내려서니 가천마을과 홍현마을을 잇는 네거리 능선에 이르고, 별로 쓸모 없어 보이는 헬기장이 무성한 가지 속에 방치되어 있다.
이후 설흘산 오름길은 매봉에서 걱정스레 보이던 것과는 달리 옛날 봉수대 터 답게 북사면으로 나사형 오름길이 잘 이루어져 약간의 지루함을 느끼며 깔딱고개를 이룬다. 30여분 만에 서쪽 홍현2리로 향하는 망산이 왼쪽으로 보이고, 봉수대 정상은 오른쪽 100m지점 팻말이 보인다. 정상에 올라서니 수많은 돌더미로 쌓은 봉수대 터에서 남해 금산과 여수 돌산도를 잇는 정보 통신 라인을 감상한다. (15:50)설흘산 봉수대에서 100여m 남쪽으로 전망대 바위가 앵강만 한가운데로 불거져 있다. 금산과 설흘산 사이의 깊은 앵강만 입구에는 작은 섬 하나 가로막고 있으니 이름하여 노도(櫓島-방패 섬). 김만중이 숙종때 유배와서 이곳에 머물며 지었다는 구운몽, 사씨남정기...오늘 밤에는 뱃삭동이(김만중은 모친이 배에서 낳았다는얘기) 西浦 아니라도 남해안 어느 시골 단란주점에서 8선녀 아닌 도우미 2명 데리고 7명이 잘 놀면 구름같은 아홉(9)꿈 꿀 수 있을까...서울만 떠나면 이리 다들 될텐데.....
전망대 끝에서 산행객들은 다시 되돌아 내려 하산길을 택한다. 산케들은 지도에 나온 남쪽 너덜바위 쪽 빠른 길을 더듬어 개척 산행에 나선다. 다소 험한 내리막길이긴 하지만 이길 초입에 숨겨진 또 다른 전망대가 가지사이에 이었으니, 정원장의 빠른 수색에 걸려들어 평생 후회할 뻔한 비경을 맛보고 노도를 배경으로 차례로 한 컷 담는다. (16:20)짧은 직벽 하산길을 더듬어 다랭이마을에 하산하니 100층 다락밭(삿갓배미,하늘배미) 이 장관을 이룬다. 삿갓 하나로 숨겨질 작은 밭때기를 이루고, 하늘과 맞다을 산꼭대기 까지 곡식 심을 천수답 일구며 살아온 우리네 갯가 슬픈 조상님들께 경치 좋은 동네라고 치켜주면 작대기 부러지도록 매 맞을겨....마늘 농사 푸른 이곳 농심에 관광 버스들이 심어주는 팬션의 꿈은 또 다른 아홉 꿈 중에 하나 일런지....
빱구디기(밥무덤) 지나 신작로 관광 길 아랫 동네에 암수 미륵바위 거대하게 서고 누워 있으니, 구경거리로는 참 볼만하다. 보통 우리네 깊은 산골마을에는 여자를 지키는 男根바위가 동네 입구에 위치하고, 남자를 달래는 女深샘물이 골짝 높은 자리에 자릴 잡는데, 이곳 해안 마을은 참 민주적으로 함께 서고 누워 다정스럽다.
용현2리 황토방 팬션에 자릴 잡고, 해안을 따라 오가며 목욕과 회사랑을 번갈으니 그렇게 꿈같은 南海의 밤은 깊어가는데......다음날 새벽까지 남명면 하늘 집에서 부르는 노래가 막힘없이 흐르니 꿈인가 ....생시인가....
(3/27 06:00) 새벽 꿈 속에서 마신 횟집 양념장이 갈증을 더하여 밖으로 나서니 봄비가 촉촉히 내리고 있다. 건너편 금산(錦山) 이 뿌연 안개 속에서 산케들의 방문을 염려한다. 후드자켓을 걸친채 노도가 마주보이는 새벽의 앵강만을 바라보며 바다에서도 고요함을 느낄 수 있다. 구름같은 안개 속에서 바라보는 남쪽 바다의 쪽빛은 그냥 바다가 아니다. 딛고살면서 우왕 좌왕 헛꿈 꾸는 사람들의 수많은 부질없음을 다 삼키는 세월이다.
예약된 아침 식사를 기다리는 산케들의 뱃 속에서 갈증은 더해가고 09:00가 되어서야 졸복 해장국을 맛보니, 금산 산행이 우천으로 인하여 다소 약해짐이 다행스럽다. 상주 쪽 해안 도로는 훨씬 넓게 잘 닦여 있고, 한려해상의 유일한 산악공원인 금산으로 오르는 길은 거의 정상까지 차도가 이루어져 이런 날 다행이다.
(10:00) 소금강 38경을 자랑한다는 금산입구에서 보이는 것이라곤 뿌연 안개 뿐이니 어쩌면 맑은 날 다시 왕림하시라는 큰 뜻이겠지요...아랫쪽 넓은 1차주차장에서 잠시 머뭇거린 후 승합차로 계속해서 정상 부근의 2차 주차장까지 차를 몰아 오르니 시멘트 포장길이 그리 가파르지는 않게 잘 닦여 있으나, 왠지 깊은 심장부까지 파고드는 칼날처럼 비경을 간직한 산은 아프다. 주차후 30여분 봄비를 맞으며 걸어 오르니 주봉(701m) 망대에 도달하여 안개 구름 속에서도 혹시하며 동서남북을 휘젓지만 바로곁의 대장봉 외에는 보이질 않는다. 신라 원효대사가 거했다는 보리암(보광사)의 효험을 마신 후 전날 밤의 기억을 되찾고, 하산길의 섭섭함을 차안에서 노래로나마 달래본다.
상주해수욕장 부근 해수탕에서 땀을 씻고 , 상주 해수욕장의 아름다운 경치를 조망한 후, 미조항으로 향한다.
(13:00)아무런 예약없이 가장 운치 있으나 수수한 멋에서 고른 횟집이 산케들을 사로 잡는다. 59년 돼지띠 주인 아주머니의 고운 자태에도 반하고, 그 손으로 만든 볼락 젓갈 김치에 반하고, 서울서 9년 살다 내려와 낚시로 잡아 공급하는 새끼 볼락 세꼬시와 감성돔 쫄깃한 맛에 체중 한도를 2kg은 늘린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남해 산케들은 유자주(시론)와 흰술에 어울리며 그렇게 南島를 벗어나지 못하고 봄비를 지켜보고 있었다.
3/28 배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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