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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2005-06)·完了/백두대간 후기

05 9/10-11 지리산 종주(1)-백두1회

by 道然 배슈맑 2005. 9. 6.
9/10-11지리산종주(1)-백두대간 첫날

 

 

(산행일정표)2005.9.11   03:45  중산리 매표소

                                 04:00  매표소 출발-

                                 04:40  칼바위 갈림길-

                                 05:15  망바위-

                                 05:45  로터리 산장(법계사) -휴식 10분   도상거리 3.4km(2시간)-

                                 06:50  개천문-

                                 07:20  천왕봉-아침식사, 행사 40분         도상거리 2.0km(1시간30분)-

                                 08:00  천왕봉 출발-

                                 08:25  제석봉-

                                 08:30  장터목 산장       -휴식  10분        도상거리 1.7km(30분)-

                                 09:00  연하봉- 삼신봉-

                                 09:50  촛대봉               -휴식  10분       도상거리 3.0km(1시간 30분)-

                                 10:10  세석평전 -

                                 10:30  영신봉-

                                 11:05  칠선봉-덕평봉-

                                 12:50  벽소령               -휴식  10분       도상거리 6.7km(3시간)-

                                 13:00  벽소령 출발- 

                                 14:00  점심 (10분)-

                                 15:00  삼정리(음정)                             도상거리 6.7km(2시간)  

                                                     총 도상거리        23.5 km (11시간) 

 

(9/10,토,19:00) 백두대간의 첫 걸음을 위해 금주하며 마지막 각오를 다지며 한 주를 보내고,물푸레의 격려를

받으며 집을 나선다. 토요회사랑겸 주말 산행을 마친 26산케들의 모임장소인 이어도에 도착하니, 아아 가을

전어의 구수한 냄새에 어찌 맥주 한 잔을....산케 동료들의 격려에 부끄러워지는 맘으로 대간 출발의 발걸음이

왠지 의무감으로 젖어온다. 10년을 자랑하는 우리 26산케의 명예를 걸고 15개월의 장정을 부디 잘 견뎌내야

할텐데...

 

당분간 한달에 2번은 산케들과의 주말 산행 대신에 격주 토요 무박산행을 나서야 하므로 가장 염려되는 것은

건강이다. 사실 개별적인 교통수단과 시간을 할애하면 1박2일 정도의 여유로운 산행계획이 가능하나, 여러가

지 교통편의를 산악회 단체 버스를 이용함이 경제적이기에 어쩔 수없이 힘들지만 타이트한 스케쥴에 이끌리게

되었다. 아무튼 더 이상 미루고 싶지 않고 소문에 법적으로 대간길을 막겠다는 환경론자들이 떠들고 있다니 ,

노파심에서 지난 여름 마지막즈음에 속초 바닷가를 거닐며 물푸레를 꼬시다가 결국 홀로 나서게 되었다.

 

아무튼 이회장을 비롯한 여러 산케들의 뜨거운 격려에 감사드리며, 부디 무탈 산행의 작은 바램과, 또 한번 내

삶의 보람으로 15개월을 살아 간다면 남은 생애의 첫날들이 늘 즐거우리라..비록 낯설은 여러 산악회 멤버들과

동승해야하는 처지이지만 ,대부분의 일정들을 함께 하면서 각 팀들의 또다른 대간 산행의 목표와 기록들을 존중

해가며, 좋은 동행길이 만들어 지리라...

 

*** 비록 산케들과 동행치 못하지만  이번 대간 종주 기간 내내 홀연히 어느 능선길에

바람처럼 나타나서 내 영혼을 일깨우고 이 땅의 역사에 증인으로 나서줄 K 노인을

여러분께 소개하고저 하니, 결코 홀로 걷는 외로운 산행이 아님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부디 영원한 생명으로 건강을 유지하시기를...첫날 산행을 떠나며 인사드리고자 합니다****

 

 

 

(9/11 04:00)대간 첫날의 깊은 새벽은 산중 특유의 날씨 변덕마냥 안개 구름이 제법 빗방울처럼

얼굴을 적시며, 여름의 끝자락에 느끼는 더위를 촉촉하게 식혀준다.

전날 설레임과 비좁은 이동 버스 좌석에서 꼬박 새운 파리한 얼굴들을 프랑스제 성능좋은 헤드랜턴

불빛으로 가리며 안개길을 더듬어 중산리 계곡을 오르기 시작한다. 사방천지가 깜깜한 어둠속에서도

지리산의 포근함을 느끼며 그렇게 많은 산꾼들은 더 깊이 더 높이 빠져들고 있었다.

 

백두대간을 꿈꾸면서 지리산에 대한 여러 글들을 읽어 봤으나, 역시 전후 격랑속에서, 50년을 살아온

나에게 자연의 순수함이라던지, 더 멀리 떨어진 역사 속의 아름답고 해학적인 이야기들은  곤두박질

사라지고, 뇌리에 새겨진 단어들은 빨치산, 공비토벌,이헌상,산손님......

이제 그 상채기의 아물음에 속절없는 긴 시간을 보내며 아픈 발걸음과 함께 이땅을 밟아 나아가는

우리세대의 끝날에는 이 지리산의 기억이 赤拘山이 아니라 頭流, 方丈山으로 살아나리라...

 

아직은 잠깨지 않은 미물들과 중생들 마저도 깊은 잠에 빠져 있을 시간에,얼마후의 여명을 기대하며

천천히, 그러나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 산손님 아닌 산님들은 분명 깨어있는 영혼으로 오늘을 살아

가는 무한의 自由人이리라....보이든 보이지 않든 인간이 만든 어떤 굴레도 그들을 엮을 수 없을 것이

어쩌면 자연을 움직이며 인간에게 다스림의 형태로 다가서는 神의 굴레도 거부하는 것은 아닐까..

 

40여분간의 워밍업으로 칼바위 갈림길에 도착하니, 땀으로 젖어드는 긴 소매 옷을 벗고 얇은 티 셔츠

바람으로 2시간여의 직벽 된오름을 채비한다. 이후 1시간 여의 무념 무상 오름길의 사투를 벌이며

땀과 안개비에 젖으드는 나른함을 즐긴다. 지난날 젊은 이데올로기의 영혼들이 다니던 밤길을 ,

이 땅의 아픔을 함께 하려는 오늘의 산꾼들이 밝히는 작은 불빛으로 줄을 이루어 로터리 산장을

지나 법계사 입구 계단 밑에까지 이어진다.  

 





(07:20)간간이 뿌리는 가랑비 속에서 법계사를 지나 능선위 길다란 암반에서 밝아오는 대원사 계곡을

내려다 보며 잠시 휴식을 취하며 헤드랜턴 모자를 벗고 시원함을 느낀 후, 마지막 천왕봉 정상을 향한

급경사 된오름을 맛본지 1시간 여 만에 개선문(개천문)을 지나 정상에 올라서니 제법 서늘한 바람에

추위를 느낀다.긴팔 옷을 꺼내 입고 약간 허기지는 뱃속을 채우며 후미조를 기다린다.

 

지난해 여름, 백무동에서 올라와 중산리로 하산할 시간에는  맑은 날씨였으나 대낮이라, 3대 덕을

운운하지 않더라도 천왕일출(지리10경)을 기대하지도 않았으나 ,오늘은 첫 출정의 기념일을 핑계

삼아 안개가 걷히길 기대해 보지만 30여분이 지나도 변덕을 부리질 않는다. 계속 음산한  안개비가

사위를 맴돌며, 칠선폭포(지리10경)를 내려다보는 북사면 바위너럭에서 간단한 아침식사를 때운다.

 

선두조와 후미조의 정상 도착 시간차가 40여분이 나서 점점 몸이 식어가니 ,남은 길이 염려되어

앞길을 약간 서둘러 느린 행보로 장터목까지 가기로하고 먼저 출발하기로한다. 통천문을 지나니

벌써 세석에서 출발한 역코스의 젊은이들이 천왕봉을 향해 힘찬 걸음으로 스쳐간다.

항상 느끼는 싱싱함과 곧아 보이는 심성들..이 땅의 젊은 청년들이 저리도 순수한데, 누가 그들을

탓하며 세대를 논하고, 다음을 걱정하랴...이쁜 내 아들 딸들.....그네들은 기억 속에 아름다운

강산만을 간직하고 부디 선녀 계곡의 너울거리는 휘장 속에서 포근한 삶을 누리라......

 

 


(08:30) 08:00에 정상을 출발하여 약 30여분간 장터목 산장까지 홀로 느린 행보로 걸어 내려오는

중에 제석봉 고사목 지대에서 안개가 걷히길 기다리며 3일째 주위를 맴돈다는 동년배의 사진작가를

만나 잠시 환담하며 걸음을 멈춘다. 아직 인터넷 디지털 카메라 작업을 해 본적이 없다는 고집으로

필름카메라를 3-4개씩 꺼내며 몇날이고 기다려야하는 생활이 한라산과 지리산만 30년이라..

지리산의 아름다움은 맑은 날씨가 아니라 이렇게 깜깜한 안개가 잠시만에 걷히는 짧은 순간에

산허리에 걸리는 맑고 짙은 구름 띠가 제격이니, 어쩌면 우리의 삶도 적당한 고통의 시간들이

추억의 한허리를 장식해야 남겨놓을 역사라 이를 것인가....

 

도벌꾼이 저질렀다는 벌목 방화가 남겨 놓은 고사목의 정취가, 되려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이 산자락의 정상둘레를 어울리는 장식처럼 또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들이 불태우려 한것은 벌목의 흔적만이었을까..아니면 전쟁으로 피폐해진 이땅의 설움을

깊은 이 곳 산중에서 흔적을 지우고 싶었을까...아니면 저 천왕봉이 내려다 보는 이 제석단에서

훨훨 타오르는 불꽃을 지피며 큰 祭라도 올리고 싶었는지도...

 

장터목 산장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생리문제를 해결하고 나오니 , 낯 익은 얼굴이 보인다.

고교 1년 선배인 정호성(?)씨를 다른 일행 속에서 발견하니 참 반갑다. 평소에도 산을 즐긴다고

들었지만, 앞니 쪽에 심한 공사를 한 것으로 보아 아직도 릿지를 즐기는가 보다....

바쁜 일정으로 서로의 갈길로 발걸음을 옮긴다.

 

 

(10:00)장터목을 출발하여 서쪽으로 평탄한 지리 주능을 맛보며 홀로 걷는 오솔길에는

정적마저 감돈다. 연하봉 오름길에서  만난 하늘이, 청운이 어린 형제들과 10여분간 동행을 즐긴다.

50년대 김해 읍내 어느 오막사리에서 초등학교도 들어가기전, 멀리 남해에서 교편을 잡으며 가끔씩

들리는 아버지를 기다리던 착한 아이는 간밤에 오줌으로 이불을 적신죄로 이웃집에 소금 얻으러

다니면서  생애 첫 부끄러움을 배우고 있었다.

 

계속 이어지는 삼신봉, 촛대봉 오름길 까지는 인적도 드물 만큼 조용한 지리능선의 별미다.

세석으로 이어지는 1시간 여의 이 짧은 구간은 긴 행보 속에서 걸어면서 휴식과 컨디션을 조절

하기에 제격이다.  간간이 눈에 들어 오는 흰색, 보라색 들국화 만이 외로운 산행객을 반기고,

화려하다기 보다는 청아한 자태의 매발톱(며느리발톱) 청보라 꽃잎이 삭막한 능선길을 밝힌다.

 

내가 K노인을 만난 것은, 서울 근교 도봉 자락에서 한가로이 흥얼거리는 80노인으로 두세번

스친 후, 우즈벡으로 향하는 비행기 속에서 긴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면 이건 우연치고는 참

흥미로운 일이다.

금년초, 우즈벡에 2만여평 농지를 임대 받아 선진 농업 기반을 구축한다는 가나안 농군학교

임원진들 속에서 건강하긴하나 연세가 만만치 않은 노인이 주축이 되어 뭔가를 진행하고 있다고

느껴지니 자연히 관심이 기울여지고, 이후 어디선가 만난적이 있다는 예감 같은 걸 확인하고

싶었다. 

 

세석철쭉(지리 10경)으로 화려한 봄을 지냈을 평전을 지나는 발걸음에 간간이 뿌려지는 가랑비가

시원스레 느껴진다. 늦여름을 장식하는 습원의 축축함이 풍성한 평원을 적시고 있는 가운데,

초지를 장식하는 갖가지 들꽃들과 짧은 갈잎의 어울림들이 산죽능선을 잘 꾸미며 펼쳐진다.

 

 


(11:00)영신봉을 지나  긴 계단길을 내려오니 칠선봉으로 넘어가는 산죽대밭이 길고 어둡게

펼쳐진다. 보라색 매발톱 야생화가 참 곱다고 여겨질 고개에서 이어지는 자작나무 숲과, 야광

나무 숲이 아름 다운 칠선봉을 잠시 가리다가 보여준다.

 1시간 여만에 칠선봉에 도달하니 , 제법 피로를 느끼기 시작하며 허기를 느낀다.

남은 바나나 1개를 먹고 물로 채우니 위가 편안하다.

 

영등포 쪽에서 함께온 일행 두분은 개구장이 시절로 돌아가 소년같은 어감으로 장난치며

티격태격 재미를 만든다. 잠시 산케들이 그리워진다. 이전임의 넉넉한 배낭 속도 그립고,

김대장의 컵 딸린 시원소주도.. 이 회장의 토속 젓갈도....점심시간이 다가오는 모양이다.

3년전 건강의 적신호를 경고 받고  매우 조심스레 지켜온 건강을 ,지난 1년 반 동안

산케들의 정을 느끼며 열심히 따라 붙은 산행이 오늘 이렇게 용기 내어 긴 여행을 저지를(?)

수 있게 되어 참 고맙고 언젠가 같은 여유를 만들 수 있길 바라며 한걸음 걸음마다 함께하는

벗들을 떠 올린다.

 



(12:00)벽소령까지의 긴 트래킹 속에서 덕평봉을 지날때 까지 이젠 여유로운 발길로 속도를 늦춘다.

빠른 걸음이면 1시간 여만에 도달할 벽소령 1차 목표지점이 아쉬운 듯이 점점 앞질러 가는 일행들에

길을 내주며, 운해 속에 펼쳐지는 지리 남녘, 대성골 선유동계곡을 간간이 즐기려하나, 짧은 햇살

기운에 고개 들라치면 후두둑 거리는 빗방울로 칠선봉 선비샘에선 비옷을 꺼내다 말기도 한다.

비에 젖으나, 땀에 젖으나....

 

K노인과 우즈벡의 타슈겐트 호텔에서 긴 얘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그곳 경제 사정상 하나뿐인

골프장을 경영하는 내 친구 일행과 농장 사업을 위해 방문한 가나안 팀들이 묵을 수 있는 범위가

한정되어 있다보니 ,별 바쁜 일 없이 방문한 나의 궁금함을 풀 수 있는 저녁 시간이 가져다 준 행운

이었다.

 

"자네는 神을 믿어 본 적이 있는가?"

첫 질문이 벌써 심상치 않다고 여겨 지지만 아무튼 교회 재단과 함께 온 일행이니 있음직한

질문으로 여겨 지긴 했으나, 대답이 그리 쉽질 않다.

보통 그러한 종교적인 질문엔 빠져 나갈 궁리를 해가며 대답을 하던 버릇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노인의 뭔가 숨겨진 듯한 , 아니 있음직한 흥미로운 과거가 궁금하여

계속 얘기를 나누고 싶었기에 대답을 적당히 하고 싶진 않았다.

 

 

 

(12:50)산행 초보자의 실력으로 일행들에게 폐끼치지 않으려고 휴식을 줄여가면서 내 페이스를

유지한 결과 오늘의 첫 구간 목적지인 벽소령 대피소에 무사히 도착하여 간식을 즐긴다.

이제 첫고비를 넘긴 일행들이 미소 짓는 여유를 보이며 눈인사를 나눈다. 앞으로 더욱

친해질 예감과 서로 도와가며 나아갈 먼 길에서 꼭 필요한 인사들을 아직은 수줍게 작은

먹거리 한 점 가만히 건네며 대신한다.

 

아무튼 26산케들의 실력도 결코 만만치 않음을 새삼 느끼며 , 자유인 산악회 리더들께

감사를 느끼고, 앞으로 계속 신세를 져야 하니 만큼 잘 따르겠다고 속으로 다짐한다.

9시간을 걸어본게 작년 설악 무박 이후로 처음이다. 그런데로 체력은 유지되었다고

느껴진다. 다만 등산화를 좀 더 무겁고 두꺼운 것으로 바꿔야겠다.

조금씩 발바닥이 따가워 옴을 느끼니, 30년전 행군시 평발의 서러움이 다시 새삼스레

떠오른다.

 

39사 창원 훈련소에 머리깍고 입소한 다음날 신체 검사에서 선배 군의관이 귀향조처를 

권한다. "형님, 법무부 밥 먹다가 3일 만에 국방부 밥얻어 먹으러 왔으니 제발..."

억지로 사정해서 남은 군대 생활이 그렇게 즐거웠는데...그놈의 행군만 아니라면...   

 




(15:00)벽소명월(지리10경)의 아름다움을 즐기고 벗들과 얼큰한 산장에서의 하룻밤을 훗날로

기약하며,하산길로 나선다.10여분의 너덜바위 지대를 급히 내려오니 임도 인지, 군사용 도로인지

아무튼 지겨운 하산길이 6.7km..두시간 동안의 삼정리 하산길은 참 길었다.

다음 2차 산행에도 어김없이 걸어야 할 이 길을...

 

광대골 큰 계곡을 그렇게 터벅거리며 따가와 오는 발바닥을 살금살금 디뎌 음정리 마을 어귀에

들어서니 새콤한 깍두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9/12  배 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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