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참가자) 자유인8기 백두대간팀 22명
(산행일지) 1/14 06:30 신도림 출발
10:00 원주 치악산 가리파고개
10:10 가리파 출발-자비사-명경사
10:30 윗다리실 오름길
10:50 철탑
11:30 1000고지능선 3.5km
12:00 1008봉
12:50 시명봉(1187) 3.5km
13:30 영원사 갈림길
13:40 상원사 2.5km
13:50-14:20 점심 식사 휴식
14:30 남대봉(1182) 1.0km
15:35 치악평전
15:45 향로봉(1043) 4.6km
16:05 곧은재(고둔치) 1.1km
16:50 관음사
17:10 행구동 주차장 2.5km
7시간 17.7km
(곧은재 내림길 집바위)
(06:00)일요 새벽을 깨우며 물푸레의 배웅으로 신도림으로 함께 떠나는 겨울 아침이 아직 밝지는 않았다.
아직 주말의 취한 젊음들이 밤을 붙잡고 있는 조명을 통과하는 마음이 바깥 날씨 만큼 차갑다. 무엇이
이 젊음들에게 그토록 아픈 고통을 심어줘 저리도 취한 얼굴을 추운 鋪道에 엎드린 채 한 맺힌 절규를
토하고 있을까..먼 이국 땅에서 힘들게 앞날을 위한 땀을 흘리고 있을 배병장과, 추운 병영을 지키는 배
소위의 얼굴을 떠올려 본다. 부디 함께 살아 갈 그들의 세대가 주역이 되는 날, 앞선 세대들의 못난 역사
를 탄하지 말고 웃음으로 화합하는 복된 세상이 밝아 오기를..
한달 여 만에 만나는 자유인 8기팀들의 손길이 다정스럽다. 15개월 간의 대간장정으로 맺어진 우의와
정을 간직하고자, 한달에 한번 쯤 정기산행을 약속하여 오늘 그 첫번째 원정이다. 낯 익은 기사님과
함께 떠나는 여행길 웃음으로 덜 깬 휴일의 새벽 졸음을 깨운다. 오늘 종주 코스는 대간팀 답게 치악산
남릉을 북으로 밟아 오르기로 계획세운다. 눈길이 비로봉까지의 산행을 허락치 않을 것이나,북릉 쪽
비로봉(주봉)은 수년 전 아픈 기억이 남은 채로..오늘 절반의 종주를 마치고 훗날 북릉(매화산-비로봉)
코스를 예약해 둔다.
(남릉 철탑에서 바라본 월악산 )
(10:00) 남원주 I.C를 벗어난 산행버스는 5번 국도를 타고 중앙고속도로와 나란히 달려, 제천으로 향하는
치악산 고개 정상 가리파재에서 휴게소 마당에 산우들을 부린다. 고개 아랫쪽의 금대리 입구나, 신림쪽
성남매표소의 일반 산행길을 접어둔 채 비지정 등산로인 능선길을 택함은 대간꾼들의 습성이기도 하고,
지난 해까지의 국립공원 입장료 징수가 못마땅한 산꾼들의 한갓진 길찾기의 결과이기도 하리라..휴게소
넓은 마당에서 모처럼 밝은 대낮에 스패츠를 착용하는 설산 종주 준비가 여유롭기까지하다.
휴게소 오른편 다리실 마을을 지나 자비사 옆 계곡 길이 새로운 절을 짓고 있는 명경사 절터까지 포장길
로 이어진다. 항상 좋은 환경을 위한 개발은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이 땅의 좋은 산 어귀와
심심산중으로 이어져 절터로 향하는 자동차 진입을 위한 포장도로의 개발은, 천성산 터널을 놓고 단식으
로 투쟁하던 어느 비구니의 절규를 무색케한다. 그 길에 왠지 고급 승용차에 실려 올라가는 시줏돈 상자
가 무겁게 비쳐 옴은 비신도인 나만의 지레짐작일까..어쩌면 국립공원 입장료 폐지의 기쁨을 즐기기도
전에 각목든 스님들의 절터 통행세 징수에 대한 울화통의 발로일까.. 이땅의 심심 산중이 전부 세금 한
푼 내지 않는 절터라면 국토 국유화를 하든지, 불교 국가화 하든지 무슨 수가 있어야 되리라..과연 그것
이 종교의 자유에 바탕을 두는 민주국가 종교정책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이 땅의 모든 백성들은 단군
의 후손으로 이 땅을 자유롭게 밟아 나갈, 외래 종교들의 땅차지 금 긋기 이전의,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10:30)명경사 신축터를 지나 큰다리실 갈림길에서 오른쪽 능선길로 본격적인 된오름이 시작된다.작년
11월 대간 종주를 끝으로 장거리 산행을 쉰 탓인지 산행 초기의 첫오름에 맛보는 된비알이 무척 힘겹다.
오늘부터 풀리기로 한 날씨마저 아직은 아니란듯이 북서풍은 따갑고, 다행히 남릉의 햇살에 눈길은 녹았
지만 간간히 얼어붙은 잔설에 오름길을 밟는 발길이 조심스럽다. 20여분의 빡센 오름길 끝에 잠시 철탑
아래 안부에 올라서서 남쪽 제천쪽을 조망하고 서쪽을 감싸는 백운산 북사면을 바라본다. 저산 넘어 박
달재를 넘나들던 지난 해 여름..무슨 신들린 영혼을 맞겠다고 그리도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밤길을 헤메
며 걷고 또 걸었을까..
(남릉 1000고지에 오르니 점점 깊어지는 눈길)
(11:00) 철탑을 지나 이제 조금 편한 능선길인가 했더니 오른쪽 능선길과 만나면서 200여m고도를 한꺼번
에 높이면서 이후 1008고지 안부에 올라설때 까지 30분이 훨씬 넘는 된비알에서 숨을 헐떡인다. 후미대
장의 교신에서 우리팀에 처음 참가한 대원이 왔던길로 도로 탈출을 하여 행구동에서 향로봉으로 Back
코스를 시도하겠다는 연락이다. 아직 젊고 튼튼한데..뭔가 탈이 난 모양이다. 가볍게 치유되기를..남쪽
사면의 햇살 덕분에 거의 녹았던 눈길이 고도를 높일 수록 점점 능선길을 차지하며 깊이를 더해간다.
역시 오늘의 시간계획은 눈길 산행으로 1시간 이상 더 걸리겠다.
쉬지 않고 이어지는 된비알 능선을 힘겹게 차고 올라 1000고지 능선에 올라서니(11:30), 금대리에서 올라
오는 서쪽 수리봉(810)능선길이 나란히 함께 시명봉을 향한다. 잠시 휴식 후 다소 편한 걸음의 능선길을
오르내리며 1008봉을 거치고(12:00) ,이 후 시명봉 까지 그리 힘들지 않은 두세개의 봉을 거치며 점점 깊
어지는 눈길 속에서 아이젠을 착용하고 미끄러운 내림길에 대비한다. 간간이 마주치는 기암괴석들이 거
친 표면으로 검은색의 층을 이루니 아무래도 북쪽 준령의 화강암과는 거리가 먼듯하다. 고교시절 지학시
간에 참 재미없어 하던 결과이다. 돌허사비 교수에게 기회 닿는데로 다시 좀 배워야겠다.
여전히 시명봉을 향해 조금씩 올려치는 능선에서 온 몸이 땀에 젖어들지만 간간이 마주오는 서북풍에
얼굴은 시리다. 지난 해 겨울 러셀로 넘나들던 눈 쌓인 대간 능선길을 떠올리며 다행히 잡목가지가 적고
잘 러셀해준 선답자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귀찮은 맘에 스패츠를 착용하지 않은 바지사이로 깊은 눈
이 스며들어 양말에 젖어든다. 발은 그리 시리울 정도는 아니니 그냥 상원사 휴식때 까지 참아 보기로
하고 시명봉을 향한 마지막 안간힘을 쏟는다. 이미 선두조를 비롯한 대부분의 대원들은 앞서 나간 모양
이다. 오랜만에 고요한 능선길을 홀로 걷는다. 천천히 눈길을 밟으며..
(시명봉 정상)
(12:50)치악산 남릉의 최고봉인 시명봉에 올라섰다. 멀리 원주시내가 한눈에 들어 온다.금대봉, 남대봉으
로 혼돈되어 불리우는 이 남쪽 최고봉엔 아무런 표지가 없다. 시원하게도 사방이 맑은 하늘 아래 청량하
다. 서쪽의 원주시내 북측을 바라본다. 30여년전 남쪽의 창원훈련소에서 크리스마스날 배출 받아 청량리
역을 거쳐 자리잡은 원주 보충대..배이병의 군생활은 바로 이곳 원주에서 시작되었다.태어나서 그렇게
추운 겨울은 처음이었다. 소변이 제자리에서 얼어 붙는 것을 보면서 한반도에서 가장 추운 곳으로 여겨
졌다.1월 한달을 당번병으로 근무하다가 따뜻한 곳을 찾아 나선 것이 동경사..묵호로 떠나는 삼척선 열차
에 더플빽 하나 짊어지고 이등병 홀로 자대 배치를 받아 나섰으니..저곳 아래 가리파 터널도 지났겠지.
북쪽 남대봉 오른쪽에 상원사 지붕이 가깝게 다가온다. 선두를 놓친 탓에 걸음을 서두르나, 오른쪽 내림
길이 직벽으로 이어지며 눈이 쌓인 탓에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岳山의 위용을 맛본다.30여분의 긴 내림
길을 밟아 영원사 갈림길에 내려서니 동료가 건네주는 경주산 망고떡이 꿀맛이다. 남대봉으로 직진을
망설이다가 雉岳山의 전설이 깃든 上院寺를 건너 뛸수는 없어 오른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봉정암 암자를
제외하고는 대웅전이 자릴 잡은 사찰로서는 남한 최고도를 자랑하는 만큼 가히 上院이다. 나즈막한 8부
능선을 타고 편한 걸음으로 상원사 일주문에 합장한다.(13:40)
(상원사 일주문)
상원계곡을 오른 등산객들이 드문드문 앉아 쉬고 있는 상원사 대웅전 앞 마당엔 흰눈이 쌓인 채로 범종
각 앞 마당 쌍 석탑만 다정스럽다. 보은의 피흘린 세마리 꿩의 전설이 비석으로 남아 마당 오른켠 자락을
장식으로 남았다. 무릇 자신을 위기에서 구해준 은혜를 갚기 위해 다시 생명을 불사르는, 미물의 의식에
우리 인간의 깨달음을 담고자하는 문학적 가치는 또 그렇다치고, 삶과 죽음의 의미와 가치를 다시 생각
해 본다. 예견치 못한 생명의 위협에서 그 어떤 도움이라도 갈망하는 단순한 소망, 그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진정한 애착이겠지..그 소망이 구원의 손길을 위험에 처하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할 겨를도 없
으리라..그러나, 훗날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바쳐서라도 그 은혜를 갚겠다는 생각은 과연 자신의 삶에
대한 애착이 없어서일까..삶이란 예견된 죽음으로 더욱 더 아름답게 그 화려한 마감이 가능한 것은 아닐
까..
저기 한마리 큰 새가 상원사 마당위를 휘익 돌아 멀리 앞산 넘어 응봉산으로 훌훌 날으니 오늘 벽제 납
골 공원에서 진행되고 있을 동기 조익래 산우의 1주년 추모제가 끝난 것인가.. 저 산 흰눈이 녹고 진달래
피는 날 잠자던 네 영혼도 세속의 미련을 훌훌 털고 훠어이 푸른 하늘에 날개짓 하리라..비록 남은 벗들
은 갑작스런 죽음이라 애도하지만, 부디 자네의 영혼은 예견된 삶 속에서 미련없는 외침으로 이 세상을
노래하며 진달래 능선을 사랑하다 그렇게 恨없는 인생을 접고 兜率川 내려다 보이는 하늘을 날며 영생을
맞고 있으리라..이 곳 치악산 산중에서 두 손 모운다.
(멀리 소백산 백두대간 능선을 바라보며)
(13;50) 상원사길을 도로 돌아 나와 잠시후 오른쪽 능선길로 잘 꾸며진 남대봉 오름 계단을 오르다가 눈
속에 파묻힌 산죽밭을 헤치고 둘러 앉아 허기진 배를 채운다. 예정보다 눈길에 시간이 지체되어 간식으
로 간단히 해결하려던 점심이 제법 길어진다. 오랜만에 웃음 섞인 대화를 나누며 휴식을 취한다. 지리산
벽소령 이후로 숱한 먹거리 나눔 속에서 우정이 싺트고, 무거운 배낭 속에서 하나씩 꺼내는 서로의 애정
어린 향기를 맡을 수 있었던 지난 대간 길이 이다지도 끈끈한 산우들로 이어졌구나..참 다행스럽고 산과
사람의 어울림을 또 한번 배운다.
멀리 남으로 감악산 넘어 구름위로 금을 긋는 소백산 대간 마루금이 추억으로 다가온다. 지난해 여름이
깊어갈 무렵 소백산 고치령을 끝으로 사라진 조대장의 영혼도 구중심천을 벗어나 덕항산 하늘위에서 훌
훌 날아 올라 고달픈 인생의 연을 끊고 아름다운 극락을 노닐고 있겠지..
겨울 날 짧은 해를 탓하며 갈길 먼 치악남릉을 밟아 오르기 위해 서둘러 배낭을 챙긴다.2시간 내로 목적
지인 고둔치에 닿을려면 지금부터는 본격적인 대간 행보가 필요하다. 선두 대장의 걸음이 빨라진다.(14:20)
(남대봉 치마바위 내림길..)
(14:30) 식사 후 가쁜 숨을 느끼며 짧은 오름으로 남대봉 넓은 정상에 올라선다. 이곳을 금대봉으로 표시
한 지도도 있으나 역시 이곳은 望景峰의 옛이름이 어울리듯이 훤히 트인 전망이 그런대로 어울린다. 단
지 고스락을 점하고 있는 국립공원 감시초소를 약간 아랫쪽으로 옮겨 놓든지 철거함이 좋을듯 싶다.
결코 산불 감시용도의 전망대도 아니고 실제로 감시 직원이 자주 이용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꼭 정수리
를 차지하며 흉물스런 자태를 뽐내고 있어야 하는 걸까.
왼쪽 망경대 내림길을 버리고 비로봉 북쪽 길을 택하여 내림길을 밟으니 기암 능선이 갈길을 막으며 9부
능선길을 돌아 넘나들게 괴롭힌다. 오름길에서 보았듯이 단단한 화강암이 아닌듯한 층으로 갈라진 괴석
들인지라 딛고 넘어설 만큼의 암봉길이 개척될 형상이 아니다. 지도에 표시된 추모동판은 눈속에 가려져
바쁜 걸음에 찾기가 힘들고 계단길로 꾸며진 치마바위를 넘어서니 깊은 눈 밭을 이루는 능선 길이 꽤 힘
든 너울을 일구며 발걸음을 힘들게 한다. 대간 길 후반 걸음처럼 마지막 안간힘을 다해 본다.
(향로봉 지나 비로봉으로 이어지는 북릉..저넘어 사다리병창은..)
(15:30)한시간 여의 만만치 않은 오르내림을 거의 뛰다시피 잰걸음으로 북을 향해 올라서니, 치악평전
넓은 헬기장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에 올라선다.꽤 넓은 안부를 이루며 향로봉 능선을 어깨너머로 올
려치는 평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비로봉을 향한다. 수년 전 사다리병창 오름길의 고통을 떠올리니
등산 초보자의 느린 걸음으로 따라붙던 비로봉의 추억이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다. 그동안 참 많이도
단련되고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스러울 정도로 산걸음에 익숙해졌으니 산케 친구들과 대간 친구들의 도
움이 새삼 고마울 따름이다.
4년전 운명처럼 다가온 건강에 대한 적신호가 일주일간의 입원 병상에서 많은 것을 버리게 했고, 내가
갈망하던 어쩌면 욕심에 가까운 사업에 대한 희망을 접은 채 새로운 삶의 길을 찾아 나설 때, 나는 결국
산행을 택했고 오늘 이렇게 차가운 눈길을 다정스레 밟아 나가는 즐거움을 맛보게 되었다. IMF 이후 젊
음을 바친 희망들을 다 잃은 채 한동안 죄없는 골프채를 두드리며 울분을 삭혔고, 결코 쓰러질 수 없다는
각오 하나로 버티던 내 영혼에게 인생의 보람과 삶의 후반을 여유롭게 꾸려 나가도록 일깨워준 그 순간
은 과연 어떤 힘이 있어 내게 다가온 것일까..그 나이에 일찍 가신 부모님의 얼굴이 저 비로능선 너머로
떠오른다. 그리고 오늘까지 내영혼 곁에 머무는 K노인의 마지막 고국에 대한 애절한 염원도 함께한다.
(향로봉에 서서 지나온 남릉길을 바라보니...)
(15:45)치악평전을 지나 왼쪽 가파른 향로봉 능선길을 올라서서 10여분만에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 향로
봉(1043)에 올라선다. 지나온 남릉길이 한눈에 들어 오고 멀리 시명봉이 잘가라 손짓한다. 다시금 보문사
내림길을 버리고 비로봉 능선길을 20여분 밟아 내려 고둔치(곧은재) 갈림길에 다다른다.(16:05) 오른쪽
부곡길과 반대로 교통이 편한 행구동 관음사 내림길로 발걸음을 서두른다. 20여분 급경사 내림을 거친후
계곡으로 접어들면서 어느정도 편한 걸음을 맛본다. 얼어붙은 계곡 바닥으로 졸졸 거리는 개울물이 여름
날 다시 오라는듯 알탕을 떠올린다.
오른쪽 관음사 높은 절터 맞은편에 높다란 천신암굿당이 자존심을 자랑하듯 울긋불긋 깃발을 나부낌이
이채롭다. 대부분 불교의 삼신각 형태로 사찰 속에 스며들고, 부처님 형태의 모심을 통하여 서민에게 다
가오던 민속 굿당이 의연스레 절 앞을 따로 차지한 것이다. 긴 포장길을 미끄럽게 걸어서 행구동 주차장
에 예약된 김치찌게집에 다다르니 검은콩 동동주가 오늘의 별미로구나...
1/16 道然
(고둔치 계곡길이 올 여름 알탕으로 유혹하고..)
'일반산행(2003- ) > 2007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7한라산 (성판악-관음사)등정(1) (0) | 2007.01.29 |
---|---|
1/21예봉산 산행기록 (0) | 2007.01.22 |
1/20수리산(명학-창박골)능선 종주기록 (0) | 2007.01.22 |
1/7 검단산2007단배식 (0) | 2007.01.08 |
1/6 남한산 심설산행 (0) | 2007.01.0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