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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정맥(2007-10)·完了/호남정맥(07)·完了

4/28-29 경각산(슬치-염암마을)구간종주-호남정맥2차

by 道然 배슈맑 2007. 4. 16.

 

 

 

(산행  시간표)

 

4/28(토)  22:00    신도림  출발

4/29(일)  03:45    슬치(17번도로)  출발

              04;15    실치재  

              05;15    장치                                       4.3km

              05:35    갈미봉                                    1.5km

              06:15    쑥재                                       2.0km

              07:00    옥녀봉

              07:15    519봉(고덕산 갈림길)-아침식사

              08:00    식사후 출발

              08:45    효간치

              09:35    경각산                                    4.9km

              10:30    불재-활공장                             1.7km

              11:55    치마산 갈림길

              12:50    작은 불재

              14:00    염암도로(49번 도로)                 6.8km

 

                        10시간 15분                   21.2km  

 

 (분꽃나무)

 

(4/28 22:00) 오랜만에 외박나온 배중위와 토요일 이른 저녁 만찬을 즐긴다. 호남정맥길 준비로 부산한

가운데 양장피 한그릇 시켜 이슬이도 곁들이니, 식구래야 네명 밖에 안되지만 함께 모인것도 오랜만이

다. 이번엔 자유인 대간팀이 두팀 모두 출정하고 중요한 일정들이 잡혀, 호남정맥은 어쩔 수 없이 임시

대장을 맡아 진행할 수 밖에 없다. 그런대로 선답자들의 기록을 숙지하여 야간 첫구간은 어느정도 학습

을 해 놓았지만 항상 그렇듯이 초행길의 한밤중 들머리 잡기가 그리 만만치 않을 것 같아 걱정이다.

 

경부 호남고속도로를 달려 전주톨게이트를 벗어난다. 보름이 가까워지는 맑은 하늘에 밝은 달빛이 드리

우는 전주천을 거슬러 남원으로 향하는 17번 국도의 한가로움을 느끼며 슬치고개 안마을 입구에 다다라

한시간 정도 새벽잠을 맛보며 대기시킨다.(02;30) 아직은 전신주 위로 달이 걸려 마을길 건너 올라야 할

실치재 뒷산이 밝아 보인다.문득 관촌수필(이문구)의 空山吐月이 떠오름은 바로 임실 관촌면이란 지명

때문이겠지..물론 원작은 충남 보령의 관촌마을이겠으나, 오늘 내 느낌은 마찬가지다. 石工 申氏의 한맺

힌 숨소리와 옹점이의 가슴 팔딱임이 들려오는 달밤의 마을 길을 잠시 둘러 보기도 한다. 개짖는 소리에

미안하여 걸음을 거둔다.

 

남쪽 임실로 향하는 언덕배기에 오수 義犬 문화재를 알리는 휘장이 나부낀다. 유난히 개짖는 소리가 더

욱 우렁차게 느껴지고, 갑오 동학의 깃발이 넘어 오던 17번 관촌 고갯길과, 해방후 수많은 군인 경찰들의

희생을 치루어야 했던 회문산의 아프고 슬픈 기억들이 되살아 나는 27번 순창고갯길을 오늘 이어가는

구간이다. 이제 봄이 깊어지면 이 곳에도 FTA의 장래를 궁금해 하면서도 논매기를 시작하겠지..

 

"지구허 어허이 아헤이에 얼씨고 말이요

-오늘도 하 하 심심하여 헤 노래 한 곡 불러보세

-건곤이 불노 월장장하여 헤 적막강산 근백년이요

-질산 골산 높은봉에 홀로 우는 가련조야

-오동동추야 달 밝은데 임의 생각 절로나네.  "( 문열가/이슬털이)

 

 (백운산 쪽에서 일출이..)

 

(4/29 03:30) 새벽을 털고 일어나 산행을 위한 기지개를 편다. 이미 밝은 달은 서산으로 기울고 다시 칠흑

의 새벽이다.마을 입구에서 소란스럽지 않게 조용히 몸풀기를 마치고 마을회관을 지나 오른쪽 포장된 마

을길을 재빨리 벗어난다.온동네 개들이 모두 비상 걸린듯 짖어대니 매우 죄송스럽다. 노곤한 단잠을 깨

울까 겁난다. 이동통신탑 뒤에서 좌우 선택의 길에서 잠시 머뭇거린다. 일단 기록을 믿고 좌측으로 택해

오른다. 부디 선답자들은 잘못된 표지기를 꼭 회수해야될 일이다. 정확하지 않은 리본은 여러사람들의

쌓이는 실수를 유발한다.

 

포장 비포장의 임도를 지나 잡목 숲과 인삼밭 가장자리를 더듬어 간신히 숲 속으로 이어지는 소로에 올

라선다. 첫 봉우리에 올라서서 오른쪽으로 급하게 꺾어 내린다. 왼쪽 길에는 군부대 표지를 금방 만나게

된다. 왼쪽에 묘지를 지나면서 벌목과 임도 개설이 이루어지면서 공사용 파이프가 어떤 용도 인지는 몰

라도 길 한가운데를 따라 박혀있다. 조심스럽게 피해나간다. 실치재 동물이동 통로를 짐작하며 내림길을

더듬기 위해 앞쪽을 살피다가 결국 왼쪽 발목이 파이프를 걷어찬다. 매우 아프다..부디 큰 상처는 아니길

바라며 간신히 실치재 이동통로에 내려서서 한숨을 돌린다.(04:15)

 

이어지는 북쪽 능선길은 완만한 임도를 따라 오르니 한결 수월하다. 단지 가끔 만나는 삼거리에서 지도

를 기억하며 서서히 왼쪽으로 택해 나아가니 사면을 따라 간간히 리본이 보이며 잡목 숲을 헤쳐 나간다.

낙엽이 많이 쌓여 발자욱을 지우니 키 높이 나뭇가지들의 성김을 관찰하며 조심스레 방향을 이어간다.

함께 걷는 운해님의 심심찮은 콧노래가 긴장을 녹인다. "너무나도 그님을 사랑했기에..." 60년대 말 영등

포 방직공장의 슬픈 동숙의 노래가 장재 직전 합장묘가 있는 봉우리에 다다를때 까지 이어진다.(04:55)

잠시 휴식을 취하며 목을 추긴다. 왼쪽 오궁리 저수지 쪽이 반짝 거린다. 

 

 (멀리 지난 구간의 만덕산이 아침을 맞는다)

 

묘지 우측으로 내림길을 밟으며 작은 봉우리를 넘어서고 나니 장재에 내려선다.(05:15) 서서히 느껴지는

여명 속에서 "폭발물 처리장"이라는 경고 표지가 섬뜩하게 느껴지는 능선길을 헤쳐 오른다. 잡목 숲을 헤

쳐나가는 가운데 결국 콧잔등을 후려치는 나뭇가지가 원망스럽다. 산불감시초소와 또 한번의 경고판을

거쳐 작은 오르내림으로 두어개의 봉우리를 지나고 갈미봉 헬기장에서 아침의 밝음을 맛본다.(05:40)

이미 여명은 매우 붉게 동쪽 하늘을 물들이고 서서히 백운산, 장안산 너울 위로 일출을 솟구칠 태세다.

밤길을 헤쳐온 안도의 얼굴에 비치는 아침을 담으며 기념사진을 남기고 서둘러 옥녀봉을 향한다.

 

북쪽으로 꺾어 내리는 능선 길에서 외곽초소와 철조망으로 시야가 확보된 동쪽 사면에 서서 일출의 장관

을 담는다. 오랜만에 깨끗한 해오름을 맞이하니 대원들의 발걸음은 한동안 움직일줄을 모른다. 높고 낮

은 고도에 상관 없이 이렇게 새벽을 깨고 산 너울 뒷자락을 헤치고 붉게 솟아 오르는 희망을 담기 위해

우리는 그렇게 숲을 헤치고 가시덤불의 밤길을 걸어 왔을 것이다. 험한 발걸음과 땀의 결실은 이렇게

찬란한 것을..한 구간의 삶 속에서 얼마나 많은 영광을 우리는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참고 견디며 어딘

가에 가려진 채로 기다리고 있을  행복한 순간을 위하여 이렇게 삶이라는 걸음을 이어가는 것이다. 

 

밝아오는 아침의 왼쪽 마을은 신덕면 지장리..시루봉 아래 자릴 잡았던 지장초교는 예술인촌으로 바뀌었

다는데..갈미봉 아래 저수지 주변은 지도에도 아직 나오질 않는 전주 샹그릴라 골프장이 화려하다.부디

신석기의 마제석기 유물들, 석문묘 등은 잘 보존 되며 개발되기를..서너개의 작은 봉우리들을 넘어서서

쑥재(월성리/용암리)에 내려선다. 이미 고갯길은 낙엽만이 쌓인 채 인적은 오래전이다.(06:15) 남쪽 멀

리 월성지 아래로 수천리 雲湖八景이 펼쳐진다 .商巖暮烟의 정경은 아침 안개에 가려졌구나..

 

 (효간치 가는길의 편백숲)

 

쑥재를 지나 텃골 고개까지의 완만한 오르내림 길에서 가시덤불과 잡목 숲을 헤치기가 곤혹스럽다. 서너

고개를 넘어서서야 큰 묘지터를 오른쪽으로 크게 휘감아 텃골 고개를 지나면서(06:30) 옥녀봉을 향한 된

오름을 맛본다. 쉬운 산이 없다는 소리가 결국 터져 나온다. 급경사의 낙엽 쌓인 오르막을 미끄럼질 치며

오르자니 차라리 바위지대의 오르막이 훨씬 편하게 느껴진다. 암릉 오르막을 올라 오른쪽 정맥길과 갈라

지는 옥녀봉 갈림길에 올라선다.(07:00) 아침식사를 계획했으나, 선두가 이미 맞은 편 봉우리를 오르고

있는 모양이다. 어차피 후미는 다소 뒤처질 것을 예상하고 잠시 옥녀봉에 올랐으나, 빨치산 참호로 보이

는 구덩이 외에는 그리 볼 것도 없고 조망도 시원찮다.

 

10여분을 더 진행하여 519봉(고덕산 갈림길) 정상을 왼쪽으로 감아 오른다. 좋은 전망을 감상하며 잡목

아래 식탁을 펼친다. 후미를 기달며 느긋한 식사를 즐긴다. 무거운 막걸리를 세병씩이나 짊어지고 올라

정상에 땀 흘리며 오르는 선배들께 일일이 한 잔씩 권하며 시원함을 선사하는 젊은 후배가 너무 대견스

럽고 감사함을 느낀다.10기 대간팀에도 병행하는 멋진 친구다.(07;20) 주위에 인간적인 배려를 할 수 있

다는 것..결코 높은 위치에서 어렵고 낮은 지위로의 배려가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자존심을 해칠 수도

있고 간혹 베품의 의미를 자선과 같은 일방적인 우월함을 자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

은 작은 정성과 아낌없는 나눔일 뿐이다. 우리의 배려는 결코 도움을 위한 도움이 아니라 이웃과 함께 누

리고자하는 행복인 것이다.  

 

후미조와 함께 긴 휴식과 식사를 즐긴 후에야 왼쪽 효간치로의 경사진 내림길을 조심스레 밟아 내린다.

(08:00) 편백나무 숲을 지나며 아침 나절의 따가운 햇볕을 가림이 매우 편안하다. 오르내림과 편백숲을

또 한번 지나면서 좌측 사면들을 거친다. 이어지는 암봉들도 우회한 후에야 520봉에 올라 멀리 전주 시

가지를 내려다 보고 다시 암릉길과 완만한 내리막을 밟아 효간치(조월리/광곡리)에 내려선다.(08:44)

전나무가 조림되어 있고 양지바른 남사면에 노란색 福壽草 몇송이가 예쁘다. 

 

 (경각산 넘어 갈길은 멀고..)

 

효간치를 건너 오르자 마자 이어지는 된오름이 오늘의 가장 힘든 구간임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갑자기

올려치는 고도를 느끼며 워밍업 정도의 육산 오름을 거친 후 본격적인 급경사 바위지대를 기어 오른다.

잠시 쉬어가며  돌아 보니 지나 온 갈미봉과 옥녀봉이 초록의 풍성함 속에서 잘가라 손짓한다. 좌우측을

번갈아 우회하며 간신히 올라 선 561봉 바위 전망대에서 예쁜 소나무와 함께 잠시 휴식을 취한다. 발 아

래 조월리를 지나 멀리 옥정호(운암호) 북단이 보이기 시작한다. 저 처럼 평화롭고 풍성한 마을들에 부디

근심없는 수확만이 오직 바램이거늘..FTA의 그늘 아래서도 좋은 방책으로 이 땅의 농촌이 살아 나 내 고

향들이 함께 자리할 수 있기를..

 

다시 짧은 내리막을 거쳐 경각산 정상을 향하는 북동 사면은 정말 힘겹고 숨차는 암릉을 기어 오른다.

비나 눈이 오는 젖은 날에는 매우 위험한 오름이다. 꼭 단체를 이루어 안전 로프를 사용해야 될만하다.

선두로 먼저 나선 베테랑 대원들은 벌써 정상을 넘어선다는 무전이다. 후미는 30분 이상 뒤처질 것 같아

걱정이나, 긴 구간을 고려하여 좋은 날씨에 비록 간격이 늘어지더라도 천천히 진행해야겠다. 오른쪽 구

이저수지가 보이는 정각사  내림길을 지나 넓은 헬기장의 鯨角山 정상에 올라선다. 고래등뿔이 어떤 모

양인지 상상을 해보지만 아무튼 북동사면 오름길은 분명 험한 남성의 기질이다. 멀리 母岳山 부드러운

북쪽 능선이 구이저수지에 담긴다.(09:30)

 

산불감시초소가 가두어버린 정상 표지대를 찾아 아쉬움을 토로하고 억새와 진달래가 함께하는 북쪽 사

면에 서서 한참 동안을 모악산과 전주시내로 이어지는 坪村 구이저수지에 빠져 본다.계실(鷄谷) 마을

터널을 거쳐정읍으로 연결되는 신도로가 뚜렷하다. 전주,완주,김제를 아우르는 모악산의 위용은 가히

견훤이 그 요새로 삼을만하다. 김일성 조부 김태서의 묘자리도 있다하니 누가 돌보고 있을까..궁금하다.

 

 (경각산 정상에서)

 

정상 옆 삼각점이 있는 암봉 아래에서 후미를 기다리며 10여분 휴식을 취한다. 아랫쪽 암릉을 힘겹게 오

르는 대원을 격려하고 완만한 능선 내림길을 거쳐 감시초소가 있는 봉우리를 거쳐 내림길을 10여분 밟아

내리니 정상에 소나무가 있는 능선들을 지난다. 오른쪽 전망바위에 이르는 길에 멋진 소나무 한그루가

산객들의 발걸음을 잡아둔다. 맞은편 오름길에서 칠순은 넘어 보이는 어르신이 그 자제분과 함께 천천히

정상을 향해 걸어 오고 있다. 참 복 많은 생의 뒤안길이다..내 20년 후에 저런 모습이 가능하기를..더도

덜도 아닌 내게 작은 산이라도 오를 수 있는 다리 힘과, 내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의 손잡고 지난 날을

얘기할 수 있는 복된 시간의 여유를 가질 수 있기를...(10:05)

 

 (예쁜 소나무 옆을 지나며..)

 

전망바위에 앉아 한동안 오른쪽의 모악산 아랫마을 구이저수지를 조망하며 여유로운 시간도 가져 본다.

발 아래 불재에는 도예원과 참숯 공장이 자리하여 꽤 큰 마을을 이루기 시작했다. 점점 도회를 떠나 이

곳 깊숙한 산마을까지 어김없이 개발이 진행되겠지만 부디 살릴 수 있는 정맥 마루금을 지켜가며, 이 땅

의 영혼들의 교통로인 산경표 분수령이 훼손되지 않기를 바래본다. 그것은 비록 환경보존의 차원만이 아

닌 민족의 맥을 살려가는 교육의 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10:15)

 

1975년 봄..긴 시간의 겨울방학을 보내고도 새 학기 개강을 이루지 못한 채 긴급조치 상

황은 계속되고 강의실은 텅빈 채 캠퍼스만 이전되어 관악산 아래로 드나들기 시작한다.

돈암동 고개를 넘어 한강다리를 건너고도 한참을 돌아들어야 도착되는 신림동 어귀의 버스

종점에서 지친 몸으로 버스를 내리면, 버스 안에서 피워 댄 질 나쁜 가치담배의 매캐함으로

캑캑거리며 무료함을 뱉어내기 시작한다.


무소불위의 정권 아래서 국립대학의 이전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지만, 서둘러 일정을

마친 대학 이전의 결과 마치 방직 공장처럼 늘어선 대학 캠퍼스 건물에 을씨년스런 굴뚝들

만이 드높아 보인다. 그나마 골프장의 잔해로 넓은 잔디밭은 곳곳에 남아 있어 수업도 없는

교정에서 뒹굴며 막걸리 마시기엔 좋다. 단지, 먼 곳 건물 안의 화장실 가기가 불편하여 막

대기 소변처를 자주 개설하곤 했다.


15년 장기적인 집권이 가져다 준 권력의 부패와 독단을 경험하며, 참담한 현실을 외면할 수

없는 대학생활 속에서 과연 어떠한 길이 나와 이 땅의 젊은이에게 주어진 현명한 선택일

까.,.푸념과 비겁함에 대한 갈등을 달래고자 애꿎은 담배 연기와 막걸리에 취한 채 비틀거리

는 나날이 지속되었다. 결국은 마지막 선택의 길은 한 건 저지르고 군대로 쫓겨 가서 3년을

기다려 보는 길이 누구에게나 최상의 결론이었다.

그 해 봄, 결국은 군대까지 갖다 온 김상진 선배의 참담한 할복을 지켜보는 잔인한 4월을

맞이할 수 밖에 없었다.  

 

 

 (불재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바위에 앉아)

 

바위 전망대를 벗어나 오른쪽 소나무 숲 내림길을 꽤 급하게 내려오니 가족묘지로 통하는 길섶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불재를 바라본다.(749번 신덕면/상관면) 봄날의 따스함이 더웁도록 밀려오고 화창한 날씨

속에서 "뫔 도예원"의 예쁜 소조상들이 다정스럽다.(뫔-몸과 마음) 단지, 한가롭고 정겨웁던 고갯길에

거대한 숯공장이 둘러처지니, 이젠 조각공원 처럼 아기자기한 정원을 가꾸기는 힘들겠다. 얼마전 까지도

학생들의 수련원으로 사용될 만큼 좋은 환경이었다는데..참 어울리지 않는 공장과 철탑이 조폭처럼 두렵

다.(10:50)

 

      (배병장과 배중위..)                                                              (물푸레..)

 

숯공장 옆 나무계단을 올라 송전 철탑이 있는 숲속으로 들어서니, 왼쪽 숯공장에서 오름길에 아랑곳 하

지 않고 숯먼지를 불어댄다. 참 안타까운 영혼이로고..서둘러 나무계간을 올라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에 올라서서 주위를 조망한다.(11:05) 모악산과 구이저수지가 바로 발밑에 함께 비추인다. 멋진 활강이

기대된다. 단지 돌아서 오르는 길에 버려진 음식찌꺼기와 과자봉지들..패러글라이딩 팀들에게 도덕을

일러주고 싶다. 멋진 날개에 멋진 책임을 실어 날을 수 있는 그러한 배려를..정맥 길 군데 군데 활공장에

서 보아 온 폐해를 정말 꼬집어 주고 싶다.

 

남으로 향하는 직진 능선을 편히 밟아 완만하고 편한 걸음이지만 지루한 오르내림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단지 오른쪽 구이저수지를 내려다 보는 즐거움이 다행이다. 정상들에 소나무 몇그루가 그런대로 멋을 더

하긴 하지만 많은 활엽수 낙엽 쌓인 길이 미끄럽고 먼지가 날 정도로 날이 가물고 더위를 느낀다. 이제

마실 물도 점점 떨어져 가는데 아직도 갈길은 멀고..선두와 무전교신도 잘 안되고 전화도 불통인것으로

보아 고갯 길이 꽤 가파른 모양이다.

 

(11:55)짧은 암릉과 소나무 숲을 지나고 새터마을 안부를 지난 후에야 급경사 오르막에 서서히 지쳐간다.

석축으로 꾸며진 584봉을 지난 후 오른쪽 오름을 거쳐 馳馬山 갈림길의 헬기장에 도착한다.(12:15)

왼쪽 치마산 능선길은 완만하여 말 달릴만도 하다. 이후 이어지는 벌목지대의 헝클어진 벌목들이 발길을

조심스럽게 내림길로 인도한다. 발 아래 작은 불재의 비포장 임도가 꾸불거리며 치마산 중턱까지 기어

오른다. 벌목된 급사면을 따가운 햇볕 속에 미끌어져 내려 서며 작은불재(삼길리/항가리)를 건넌다.

(12:50)

 

 (오리나무? 새 순)

 

이미 선두는 고개 넘어 염암도로에 닿을 시간이다. 10여분 휴식을 취하며 후미조를 기다린 후 다시 마지

막 거미산(454봉)을 향해 작은 봉우리들을 넘어간다. 방길마을 안부를 지나 묘 4기가 자릴 잡은 봉우리를

넘고 편백나무숲을 올라선 후 급경사의 마지막 오름에 매우 지쳐간다. 거미산 정상의 소나무와 바위를

지나 암릉지대의 위험한 내림길에서 시간을 지체한다. 이런 곳에는 안전로프라도 몇개 설치하고 싶다.

 

겨울철에는 필히 보조 로프가 필요한 구간이다. 드디어 염암도로가 보이는 시원한 전망대에 올라서니,

내림길이 보이질 않는다. 간신히 왼쪽 크랙을 찾아 급경사의 절개지 안부에 다다른다. 마주보이는 오봉

산 다음 구간이 답답하게 높아 보이고, 오른쪽 鹽岩山(소금산,앞산,속금산)이 함께 마주한다.

염암도로(49번 신덕면/구이면) 절개지에 내려서니 간간이 지나가는 승용차에서 혀차는 소리가 들려온

다.(14:00)

 

30여분 후에 후미조의 도착을 기다려 전주 생막걸리 한잔으로 피로를 풀며 오늘 하루의 또 한구간을

무사히 마친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산행 들머리에서 발목에 입은 상처가 그제야 아파온다..

 

 (염암고갯길을 내려가자니..)

 

5/1 道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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