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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정맥(2007-10)·完了/금남정맥(08)·完了

4/19수정봉(금잔디재-복용재)구간종주-금남7차

by 道然 배슈맑 2008. 4. 5.

 

 

 

 

(산행  시간표)

 

4/19 

     05:00   서울출발

     08:30   갑사

     09:30   금잔디재                  2.5km

               수정봉(662)

     11:00   만학골재                  3.5km

     12:00   중장리고개

     12:30   팔재산(364) 

     13:10   널재                        4.2km

     14:00   식사후 출발  

     15:20   안골산 (321.8)    

     17:00   은골 벌문이재           6.0km

     17:30   성항산(237.1)

     19:00   복용재                     4.5km

                     10시간 30분      20.2km

 

  (갑사)

(4/19 05:00) 전날 저녁 어려운 주말 외출을 나온 배중위와 앞날의 진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슬이의 양이 과했나..아무튼 계획

된 금남정맥 마무리길에 나서기 위해 무거운 몸을 깨운다. 배중위는 밤새 또 친구들을 만나고 금방 잠이 들었나 보다..제대 후 취직을 하

느냐, 계속 공부를 더 하느냐하는 갈등이 짓누르는 모양이다. 중학시절 그림 공부를 하고 싶다는 뜻을 쉽게 승낙하질 못한게 아직도 미안

하다. 그눔의 IMF시절이 앞날에 대한 경제적 여건을 예측하질 못할 상황이었으니..어떤 삶이 좋고 나쁠 수가 없는 것이니, 평생 후회하질

않는 직업으로 스스로의 하는 일에 즐거움만 있다면..단지, 힘이 들더라도 내가 못 다한 공부를 계속하여 두 형제가 함께 좀 더 높은 지식

을 쌓아 영혼이 자유로울 수 있는 명예를 택하기를.. 

 

(05:30)구로역에서 올라 탄 천안행 첫 전철에서는 항상 그렇듯이, 주말의 즐거움을 잊은 채 일당을 벌러 나가는 민초들의 피곤함이 배낭

을 짊어진 나를 이방인으로 쫓아낸다. 안양역에 닿아 미안함으로 얼른 내려 고향에 벌초 떠나는 옛 직원의 승용차에 오른다. 20년 남짓 고

락을 함께 누려 오다가 지난 달 부터 홀로서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는 부안  최씨댁 선비 가문의 셋째 아들이다. 새만금 방조제 안쪽에 자

릴 잡은 고향엔 노모 홀로 오늘도 자랑스런 셋째 아들이 막걸리 통을 들고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으리라..23번 국도 널재 직전 간이 휴게소

에서  라면 한그릇 시켜 날계란을 풀어 먹으니 요즘같은 세상에 겁이 없다고 아주머니가 혀를 찬다. 공주 계룡면을 지나 갑사 입구에 도착

하여 서너명의 등산객이 준비를 하고 있는 주차장에서 차량과 헤어지며 부여에서의 내일을 기약한다.(08:30)

 

  (용문폭포)

갑사 입구 매표소에서 젊은 등산객들이 돈을 내고 나는 출입증으로 무료 통과하니 무슨 노인증인줄 알겠지.고구려 阿道和尙의 천진보탑

을 간직한 마곡사의 首末寺이다.앞선 걸음으로 으뜸 절 갑사정문을 지나 왼쪽 골짜기로 올라서 10여분만에 용문폭포에 다다른다.(08:43)

대간 맥길에서 좀처럼 구경할 수 없는 계곡의 아름다움을 누리는 아침에 상쾌하고도 또 다른 즐거움을 맛보지만, 지난 구간에 동학사를

포기하고 같은 시간에 계속 만학골재로 내려 갔다면 마지막 두구간이 훨씬 편했으리란 생각은 어쩔 수 없다..점점 가팔라 지는 금잔디 고

갯길에서 벌써 땀이 쏟아지는 탓에 더욱..철계단과 계곡을 건너 신흥암을 지나고(09:00) 새롭게 잘 정비된 급경사 계단 오름길을 길게 헉

헉거리며 올라 지난 구간에 동쪽 남매탑으로 내려 갔던  금잔디 고갯길에 올라선다.(09:20) 능선 날머리 벤치에 앉아 잠시 숨을 돌린다.

토요일 주말인데도 등산객은 거의 눈에 띄질 않는다. 아직 이른 시간인가 보다. 

  (금잔디고개-수정봉)

(09:30) 10여분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이제 금남정맥의 마지막 부여를 향해 이틀간의 발길을 들머리에 옮겨 놓는다. 반기는 것은 샛길 출

입금지 팻말과 로프로 그어진 울타리일 뿐, 이미 따가운 햇살이 중천이다. 4-5분 걸어 수정봉에 올라 삼불봉을 쳐다보지만 울창한 소나무

가 시야를 가린다. 낙엽이 쌓여 군데군데 희미해지는 산길에 리본마저 깨끗하게도 청소를 하여 바짝 정신차리질 않으면 갑사 내림길 계곡

능선이나 설희계곡 북쪽 능선으로 빠지기 십상이다.청소를 좋아하는? 국립공원 관리공단 직원들..작은 리본 하나가 생명의 표지가 될 수

도 있음을..부디 어떤 길이 옳은 길인지 깊이 반성할진저..다시 한번 외친다! 밥벌레 공단을 패쇄하고 산림청으로 업무를 이양하라!! 

 

  (천황봉을 바라보며)

암릉길을 우회하며 두어개의 큰 봉우리(617봉)를 넘어선다. 묘1기가 거의 파묘되어지는 봉우리를 지나(10;05) 암봉을 오른쪽으로 돌아 내

려 급경사 내림길을 거쳐 고도를 급격히 낮춰야 한다. 왼쪽 선명한 길은 갑사게곡으로 떨어지고 리본마저 다 제거되어 알바를 유도한다.

480봉을 넘어 드문 드문 암릉길을 거쳐 468봉을 지나 바위전망대에서 서쪽 계룡면을 지나 나아갈 정맥길을 둘러 보고, 남쪽 지나온 천황

봉 능선까지도 훤히 바라다 보인다.(10:25) 물 한모금 마시며 사위를 담고 오른쪽 내림길을 돌자마자 삼거리에서 왼쪽 90도 급경사 내리

막을 택한다. 직진하면 설희계곡 능선으로 빠져 말재고개로 내려선다 . 매우 주의 깊게 방향을 잘 잡은 안도감에 편안한 마음으로 만학골

군도를 향해 흥얼거린다.

 

   (관음봉-연천봉 능선)

왼쪽 능선을 잘 택한 후 359봉 희미한 삼거리에서 결국 국공단에 당했다..오른쪽 만학골 내림길을 놓치고, 무덤들을 지나 너무도 뚜렷하

고 편한 길을 걸어 백운교 삼거리 바로 위 옹기골 마을 앞으로 내려 섰으니(10:40)...깨끗하게 리본은 치워지고 금남정맥 만학골 능선길은

낙엽으로 숨겨지고..얄밉게도 입산 금지 현수막 마저 걸어 놓았다..본시 이길은 정맥길도 아닌데.. 포장도로를 지나 만학골재 까지 20여분

을 터벅거려 마루금 들머리를 찾는다.(11:00) 묘역들을 지나 작은 봉우리를 왼쪽으로 돌며 본격적인 서진을 시작하며 324.8봉을 향해 오

른다. 잡목 낮은 산마루에 햇볕이 따갑고 숨이 찬다. 작은 소나무 아래 배낭을 벗고 물 한통을 다 비운다.(11:20) 거의 잡목 수준의 능선길

을 희미한 족적을 따라 넘어 내리니 잘못 내려 왔던 옹기골 뒷산 능선을 지난다..그냥 이리로 올라 올 걸..마주하는 작은 봉우리를 힘겹게

쉬어 넘으며 영지버섯으로 담근 비장의 보약 한모금을 마신 후 260봉을 한차례 치고 넘어 중장리 윗장고개  절개지를 내려선다.(691번도)

제법 많은 차량들이 주말을 싣고 바삐 지나 다닌다.(12:00) 대전 유성으로 넘어가는 말재 고개 지름길이다.

  (계룡면 넘어 나아갈 금남정맥 길..)

(12:00)이어지는 팔재산 오름길 절개지에서 부터 급경사의 연속이 시작되어 20분 남짓 너덜지대에 닿을때 까지 매우 힘이든다..이럴 땐

함께 하는 동료가 매우 그립다. 몇 마디 주고 받으며 쉬엄쉬엄 오르면 훨씬 힘이 덜한데..이곳 어드메에 八字 모양의 돌이 있다는데..

배낭을 내리고 5분여 다리쉼을 하며 또 이슬이 원기 회복제를 보충한다. 계속 이어지는 급한 된오름으로 팔재산 정상에 올라 오른쪽 평재

말을 내려다 보고 계룡 문화마을 사촌 여동생에게 전화를 건다.(12:30)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내가 아는 주변의 친지들 중에서 으뜸으

로 꼽는 천사 같은 여동생이다. 어릴적 부터 아버지라는 단어와 얼굴을 배우지 못했으나 늘 잔잔한 미소 속에서 변하지 않는 한국 여인의

상을 간직한 요즘 세상의 천연기념물이다. 빨리 내려가서 반가운 동생도 만나고 막걸리도 한 잔 마시고 싶다.내림길 역시 급경사를 이루

며 너덜지대를 이룬다. 

  (팔재산 정상에서..)

팔재산 내림길에서 밤나무 단지 왼쪽 능선을 따라 작은 봉우리를 넘어 선 후 �지를 지나고 임도를 따라 가구공장이 있는 널티(板峙)에

내려선다.(13:00) 아침에 지나갔던 23번 국도가 매우 넓고 빠른 차량 통행에 길 건너기가 쉽질 않겠다. 다행히 동생이 차를 가져와 기다린

탓에 차를 타고 바로 옆 동생 집으로 가서 땀을 씻고 준비한 막걸리 한잔을  편히 들이킨다. 30여분 앉아 있다가 더 이상 지체하면 스케쥴

이 엉망이 될 것 같아 아쉬운 작별을 하고 잘 꾸며진 꽃마당에서 진도개와 함께 사진 한 장 남긴다. 같은 서울에 살아도 자주 못보는데..

고대 조치원 캠퍼스에 근무하는 김교수도 많이 늙어 뵈고 둘 다 머리가 제법 희게 보이니 세월의 흐름이 점점 무겁게 느껴진다. 역시 장남

도 제 어미를 닮아 사회복지사업의 길로 들어 섰다고 하니 참 아름다운 영혼들이다. 안골산을 향하는 들머리에서 차를 세운 채 바라보고

서 있는 동생의 시선을 등뒤로 느끼며 애써 오름길 걸음을 서두른다.(13:55) 

 (은희네 집 정원에서..)

 널티,정감록에 때가 되면 금강물이 이곳 무네미고개를 넘어서 신도안으로 흘러들리니..묘역을 지나 올라서는 무덤가에 할미꽃 군락이 햇

살에 고개 숙이고..벌컥거리며 마신 낮술에 오른 취기 속에서, 먼 옛날이 되어 버린 내 고향의 봄동산을 거닐고 포근한 내 어머님의  치맛

자락을 만난다. 오른쪽 숲 속에 올라서니 빨간 금남정맥 표지판이 오늘 처음으로 이정표로 보인다. 동행자 처럼 반갑다. 오른쪽 중무덤이

(僧墳)마을을 내려다 보며 200m 남짓한 고도의 봉우리들을 서너개 편한 걸음으로 오르내린다.(14:35) 밤나무 단지에 들어서서 수레길을

걷다가 상리마을 고갯길을 지난다.저 아래 남쪽 거북바위산길을 따라 동생네 문화마을로 내려가는 포장도로도 보인다. 주말을 가꾸는 동

생의 쉬지 않는 손길이 분주하게 보인다. 그리고 희끗한 머리칼 아래 곱게 가꾼 얼굴이 초상화 속의 내 어머님을 닮았구나..그러고 보니

당신 보다 더 많이 늙어버린 우리들이 되었으니...(14:55)

 

 (성항산 오름길 아래 벌문이 마을)

상리마을 고개를 지나 묘역 왼쪽의 숲으로 들어가 된비알을 마주한다.고향 무덤을 가꾸는 젊은이를 만나니 평소 사람 구경 못하던 사람처

럼 반갑다. 안골산 이름을 확인하고 홀로 베드민튼 채를 들고 외로움을 달래는 젊은이와 몇 마디 나누면서 산소까지 오름길을 동행한다.

펜스를 넘어서고 오른쪽 벌목지대를 힘겹게 올라 안골산(321.8)에 올라선다.(15;20) 배낭을 내리고 10여분 긴 휴식을 취하며 안말(內垈)

을 내려다 보려하나 녹음이 가려져 조망은 좋질 않다. 긴 휴식후 계속되는 서너개의 봉우리들을 조금씩 고도를 낮추며 끊임없이 오르내린

다. 말미고개를 지나며 왼쪽으로 90도 방향을 틀어 사면길을 밟는다.(16;10) 파헤쳐진 묘터를 지나고 잡목이 우거진 작은 봉우리를 넘어

윙윙거리는 날파리와 동행하며 닭머리고개 수레길을 왼쪽으로 따라 걷는다.(16:20)

 (성항산에 올라)

닭머리 고갯길을 따라 걷다가 오른쪽 숲속으로 올라가 편안한 능선길을 좌우로 번갈으며 나즈막한 봉우리들을 두어번 넘고 이동통신 시

설이 있는 봉우리에서 점점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으며 두어번 오르내리니 큰 묘역을 지나 벌문이고갯길에 내려선다.(16:55) 맞은 편 언덕

의 묘역에 앉아 휴식을 취하며 이슬이 한잔을 마신다. 아직도 해가 기울려면 두시간 정도는 여유가 있겠는데..여기서 마치면 내일 부여까

지는 도저히 힘들겠고..그동안 함께 금남정맥을 걸어 오던 동료들은 내일 여기까지 올텐데..힘이들다 보니 갈등이 생긴다..아무래도 5월

초 보길도 여행도 겹치고..그래 성항산을 넘어보자..헤드랜턴을 미리 점검해 놓고 무거운 발길을 다시 성항산 오름길로 재촉하며 옮긴다.

(17:05) 선답자의 기록상으론 복룡재까지 3시간이 걸렸지만 2시간내로 단축해야 일몰전에 하산이 가능한데..마음과 달리 발끝이 아프다.

 

  (반송고개를 넘으며..)

오른쪽 벌문이 마을을 내려다 보며 안산들 들판으로 펼쳐지는 실계곡을 담아본다.곳곳의 소류지를 거치고 용성천을 따라 금강으로 흘러

들겠지..저 작은 논밭떼기들에서 우리는 일용할 양식을 만들고 아껴서 주린배를 채우며 수천년 이 땅을 지켜왔구나..48년전 오늘도 4월하

고도 19일이란다. 성항산(237.1) 오름길에 아픈 발을 잊으려 노래를 불러 본다. (17:30)

 

우리들은 하늘을 봤다

1960년 4월

역사를 짓눌던, 검은 구름장을 찢고

영원의 얼굴을 보았다.

잠깐 빛났던,

당신의 얼굴은

우리들의 깊은

가슴이었다.

.................

알맹이는 여기

언제나 말없이 흐르는 금강처럼

도시와 농촌 깊숙한 그늘에서

우리의 노래 우리끼리 부르며

누워 있었니라.

 

누구였던가, 무엇에 당선만 되면

다음날 당장 미국에건너가

더 많은 동냥, 얻어올 수 있다고 장담했던

정치거지는,

 

내 진실로 묻노니 그대들이 구걸해 온

동냥돈이, 단 한 번만이라도 농민들의

밥사발에, 쌀밥으로 담겨져본 적이 있었는가....             -'금강' 신동엽- 

 (해는 기울어가고..)

왼쪽 사면을 타고 성항산 정상에 올라 내려다 보이는 논산-천안 고속도로가 반갑다.오늘의 종착지도 얼마 남지 않았나 보다. 다시 방향을

180도 바꾸어 남쪽 과수원 단지 수레길을 따른다. 논산벌이 왼쪽으로 더 넓게 펼쳐진다. 길게 이어지는 왼쪽 밤나무단지를 를 지나 두어

번의 봉우리를 넘어서니 가족묘치고는 너무 방대한 사설 공원묘지 아래 철책대문을 타고 넘는다.(18:10) 어느 부잣집 묘역을 조성하고 있

는지 바로 아래 마을 주민들의 반대 푯말이 함께 서 있다. 영혼들도 대단지 아파트를 좋아하고 그곳에도 재테크가 필요할까..

 

반송고개 포장길을 지나 절개지를 올라서니 숲이 우거진 봉우리들을 밤나무 단지 펜스를 따라 대여섯 봉우리를 넘실댄다. 나뭇가지 사이

로 청양 칠갑산을 넘어가는 햇님이 옅은 구름으로 얼굴을 덮고 홀로 석양의 산길을 걸어가는 산객에게 부드러운 시선을 보낸다. 고속도로

와 이인휴게소가 보이는 마지막 봉우리에 올라서니(18:40) 발아래 축사가 있는 마을로 내려 가는 마루금이 헷갈린다. 밤나무 단지 왼쪽

이동통신 시설을 보면서 수레길을 따라 내리니 길섶의 화려한 꽃다발이 오늘의 종착을 환영한다.(19:00)

 

 (구수리 고개에 도착하니..)

고속도로 아래로 나 있는 지방도를 따라 시내버스가 있는 이인면 소재지까지 터덜거리며 걷는다. 지친 발걸음에 어디 주막이라도 한곳쯤

있었으면 좋으련만..요즘 시골이 그리 한가하질 않으니..이인면 삼거리 부근에서 고마운 트럭에 올라타고 공주시내로 향한다. 새로 뚫린

40번 4차선도로를 신나게 달려 강남 공설운동장 쪽에 내렸으나 단체손님으로 여관도 만원이고 식당에 밥도 없단다..(20:00) 또 고마운 승

합 반트럭을 얻어타고 내일을 생각하여 터미널로 가자고 하니 강북 터미널 옆에 내려준다. 모텔 옆 식당에서 오늘 채취한 산두릅과 게두

릅(엄나무순)을 데쳐 삼겹살과 함께 즐기니 식당 주인 부부가 더욱 즐겁다. 밥값은 공짜라고..그렇게 금강변 공주 시내에서 금남정맥 마

지막 구간을 위한 피로를 씻으며 4.19 혁명기념의 밤을 지샌다.

 

 (공주시내를 흐르는 금강..)

........

어제

발버둥치는

수천 수백만의 아우성을 싣고

강물은

슬프게도 흘러갔고야.

 

세상에 항거함이 없이,

오히려 세상이

너의 위엄 앞에 항거하려 하도록

빛나는 눈동자,

너는 세상을 밟아디디며

포도알 씹듯 세상을 씹으며

뚜벅뚜벅 혼자서

걸어가고 있었다                 -'금강' 신동엽-

 ........

4/22 道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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