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시간표)
3/16 04:30 부산 출발
09:00 엄사초교
10:15 향적산 갈림길 4.0km
11:35 용천령
12:40 천왕봉 5.5km
13:00 식사후 출발
14:15 관음봉
15:30 삼불봉 갈림길
15:45 금잔디고개 3.3km
17:00 동학사 주차장 3.5km
7시간 30분 16.3km
(계룡산 자연성능의 멋진 소나무)
(3/16 04:00) 전날 조부님 제사를 늦게 모신 후 잠시 눈을 부치고 새벽에 잠을 깨어 대전으로 향할 준비를 서두른다.
애당초 계획은 부산 친구들과 금정산을 올라 보려 했었는데, 천황봉 쪽이 막힐지도 몰라 금남정맥 길의 중요한
구간을 진행하기로 맘을 바꾼다.
몰려 온다는 황사도 걱정이 되고, 하산 후에 피곤한 몸으로 서울까지 자가 운전을 해야하는 부담감도 있지만,
일정 계획들이 밀리지 않게 진행하기로 한다.
경부-호남고속도로를 지나고, 계룡 I.C를 빠져 나와 엄사 초교 옆에 차를 주차 시킨다.
서울 팀에 연락을 취해 보니 1시간 정도 늦을 것 같아 홀로 산행을 하기로 하고 먼저 채비를 갖춘다.(08:30)
황사에 대비하여 준비한 마스크를 찾았으나 어디에 숨은 모양이다.
날씨는 지난 주와 마찬가지로 따뜻한 봄날이 이어지니 아예 얇은 셔츠 한장으로 가벼운 복장을 차린다.
새로 산 배낭을 짊어지니 컨디션은 괜찮은 편이다.
엄사초교 운동장엔 인조잔디를 깔아 어디 흙 묻을 놀이터가 없다..
과연 아이들의 정서와 부상 위험은 어느쪽이 옳은 것일까..
(향적산 갈림봉에서 바라본 천황봉)
(09:00)학교 옆 담장을 따라 정맥 탐사의 길을 나선다.아무래도 아파트와 학교가 차지한 마루금이 아쉽다.
어떤 형태의 표지라도 몇 군데 설치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오른쪽 큰 도로를 건너 산기슭 쪽으로 진행하니 왼쪽 방향 절개지 높은 곳에
들머리 표지기가 나부끼고 있지만 '금남정맥'표지판은 보이질 않는다.
오른쪽 음절 마을의 옛집들이 헐리어 가는 모습에서 밀려 오는 아파트 군들의
무서운 개발 압박을 느낀다..저 높은 감나무들에 올 가을에도 노란 감들이 달려 있을까..
별로 가꿀 만한 밭떼기도 없는데 쇠스랑을 들고 물끄러미 집 앞을 서성이는 촌로의 눈길이
아랫 쪽 큰 도로를 달리는 차량들의 질주 속으로 빨려들고 있다.
절개지 오른쪽 급경사 들머리를 힘겹게 올라 선다.
바로 위 능선길은 편안한 오르막으로 이어지고 향내를 풍기는 솔잎이 깔린 포근함을 맛본다.
일반 등산로는 아닌듯 휴일의 등산객이 전혀 없다.
(상월면 일대)
편안한 능선 오름길 끝 봉우리에서 90도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꿔 국사봉 오름길을 향하고 편안한 오솔길을 걷는다.
작은 공터 삼거리에서 왼쪽 국사봉 방향으로 잘 이루어진 등로를 따르니 한 두명의 등산객들이 가벼운 차림으로
보이기 시작한다.(09:15)
오른쪽 남선면은 대부분 계룡대에 흡수되어 거대한 군사지역을 이루고 있다.
이조 태조도 탐을 내던 新都內 터에 정씨도 아닌 어느 누가 터를 잡았을까..
편안한 오솔길을 걸으며 송전탑을 지나고, 왼쪽 엄사중학교 갈림길 안부를 지난 후 조금씩 오름길을 시작한다.
계속 국사봉 표지를 따르며 의자들이 놓여 있는 군데 군데의 쉼터들을 지나는 동안 왼쪽 만안사 부근에서
북소리와 이상한 주문들이 쏟아지는데, 평소의 청아한 독경 소리와는 판이하게 소음처럼 느껴진다.
오른쪽 사면길의 넓고 잘 이루어진 등로를 따라 내리니 만안사 갈림길 안부를 지나고 오른쪽 군부대
출입제한구역 표지가 자주나온다.(09:33)
(천황봉 오름길 남쪽 능선..그 너머로 문필봉,연천봉의 서쪽능선이 보인다..)
국사봉 표지를 따라 로프가 이어지는 경사를 잠시 숨가쁘게 10분 남짓 올라선 후,
운동기구가 설치된 헬기장 삼거리봉에서 물 한모금을 마시며 숨을 고른다.
왼쪽 내림능선은 만안사 표지길이다.
넓은 계룡대 쪽을 조망하며 나아갈 천황봉을 바라보니 아직은 멀게 느껴진다.
오른쪽 국사봉을 향해 이어지는 내림 능선을 밟은 후 두어번 오르 내리니
두번째 헬기장이 있는 봉우리를 넘어서고(10:00), 또 한 고개를 넘어선 후, 무상사 갈림길 안부를 지난다.
국사봉 방향 직진 오름길에서 통나무 계단으로 이어지고, 왼쪽으로 잘 이루어진 국사봉길을 버리고
오른쪽 희미한 급경사길을 치고 오른다.
갑자기 100m정도의 고도를 높이며 향적봉 갈림길 암봉(450m)에 올라서서
이제 본격적인 계룡산 남릉을 타고 북쪽으로 향할 채비를 한다. (10:20-10:25)
남쪽 향적봉과 북쪽 천황봉을 조망하며 긴 휴식을 취한다.
(천황봉 오름길의 암릉에서 천황봉과 머리봉을 올려다 보고..)
향적산 갈림봉에서 서울에서 출발한 본대에 전화를 하니 1시간 정도 차이가 난다.
더 이상 지체하며 합류하기가 힘들 것 같아 홀로 산행을 진행하기로 하고,
어차피 출입이 제한되어 있는 지역이라 선두에서 상황을 파악하여 알려 주기로 한다.
봉우리 왼쪽 출입금지구역 안내판과 목책을 넘어서면서 맘이 착잡하지만 오늘 운세에 맡기기로 한다.(10:25)
국립공원 곳곳을 막아 놓고 언제까지 이런 억지를 부릴것인지..
지도상의 논산과 계룡시 경계선을 이루는 계룡산 남릉을 북으로 향해 편한 걸음으로 내려서면서 맨재(먼재)를 지난다.
왼쪽 상월면 넓은 들판을 내려다 보며 이곳이 전설의 상월마을(잠뱅이마을) 배넘이고개(무네미고개)인가 생각도 해본다. 고개길 아랫 쪽에는 금강대학(천태종)이 자릴 잡고 있다.
언젠가 다시 금강이 넘쳐 흘러 이곳으로 물길이 이어질 것인가..대운하의 섬뜩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천황문)
맨재를 지나 곳곳에 군사보호구역 표지석을 만나며, 그리 힘들지 않은 오르내림으로 430-450정도의 봉우리들을
예닐곱번 끊임없이 넘실거린다. 가끔 암릉을 타기도 하고 암봉 사면을 우회하기도 하면서,
향적봉 갈림봉을 출발하여 30분만에 507봉 직전 암봉 전망대에 올라서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멀리 서북쪽 공주 계룡저수지 앞에 살고 있는 사촌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본다.(10:55)
얼굴 본지도 참 오래 되었지만 늘 내 기억속에서 이 세상 누구보다도 착하고 외로운 소녀로 살아 있다.
이제 어느새 그 아들이 얼마전 학교를 졸업하고 제 엄마의 뒤를 이어 사회봉사의 길로 들어섰다는 소식을 듣는다.
다음 구간 갑사를 지나 동생 집이 있는 문화마을 뒷산, 널티고개를 지날 땐 꼭 한번 만나서
매제와 함께 이슬이 한잔 기울이리라..
30여년 전 영등포 외딴 곳에서 지내던 6개월 동안 잠이나 청하려고,여동생이 선물한 두꺼운 성경책을
수십번을 반복해서 읽어도 세월은 변하질 않았고 내 마음 속에 믿음은 깊어지질 않았으니..
(중계소봉에서 동쪽 천왕봉,황적봉 능선과 동학사 학봉천 계곡을 내려다 본다..)
무너진 산성터 같은 석축을 지나 507봉에 올랐으나 소나무 가지로 조망은 썩 좋질 않다.
벙커 시설들로 파헤쳐진 능선길을 내려서서 10여분을 지나 헬기장에 올라서니
천황봉과 형제봉이 눈 앞에 우람하게 다가오고 머리봉 아래 오른쪽 숯용추 계곡이 깊게 느껴진다.
다시 벙커로 파 헤쳐진 봉우리를 내려선 후, 삼거리에서 서낭당터 처럼 돌무더미가 있는 왼쪽 길을 올라서니,
출입금지 표지만 반긴다. 길이 있으니 출입금지를 시켰으리라..
정맥꾼들이 붙여 놓았을 법한 표지기들은 깔끔하게 제거 되었지만,
출입금지 표지들이 오히려 안내판 구실을 하고 있으니..
봉우리 왼쪽 사면을 올라 암릉을 밟고 두어개의 봉우리를 지나면서 또 다시 출입금지표지판의 안내를 받으며
마지막 암릉지대와 큰 암봉(448봉)을 거쳐 용천령 고갯길 폐 무덤가에서 배낭을 벗는다.(11:35-11:45)
지도상에는 '큰서문다리재'로 표기되어 있다.
(쌀개봉 아래 통천문)
용천령 안부에서 출입금지 표지판 뒤로 나 있는 직진 오름길을 밟아 묘지들이 있는 능선 위로 향해 올라간다.
암릉지대 능선을 만나면서 오른쪽으로 꺾어진다.
아마도 공주시와의 경계선길을 따르는 능선에서 오른쪽 천황봉으로 방향을 잡아가는 모양이다.
편하게 내려서면서 신원사 갈림길 안부를 지나고 왼쪽 약수터를 지나친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천황봉 주능선 오름길인가 싶더니 왼쪽 사면으로 길이 잘 이루어져 있는 부분에
또 다시 출입금지 현수막이 있다. 자세히 살펴보니 현수막 뒤로 오른쪽 능선 오름길이 희미하다. 고마운 현수막..
주능선 길을 찾아 희미한 급경사 암릉을 가파르게 치고 오르니 철쭉가지들이 성긴 암릉 위로 올라선다.(12;10)
잠시 휴식을 취하며 커피 한 잔을 마신다.
새벽길에 등산을 나서는 동생에게 형님께서 직접 뽑아주신 원두커피 맛이 구수하다..
뒤에 오는 본대에 전화를 통하니 용천령 직전 어디쯤에서 식사를 할 모양이나 전화 감이 좋질 못하다.
(쌀개봉 넘어 이어지는 바위봉)
이어지는 암릉과 철쭉 길을 매우 힘겹게 사투를 벌이고, 왼쪽 연천봉을 조망하면서 간간이 숨을 고른다.
10여분을 올라 갈림길에서 다시 왼쪽 사면으로 이어지는 우회길을 버리고 직진 능선으로 급히 오르니
큰 바위가 앞을 가로 막는다.
오른쪽으로 우회하여 천황문 바위 틈에 올라 배낭을 내리고 도시락을 펼친다.(12:40-13:00)
홀로 먹는 밥맛은 아무래도 별로다. 이럴 땐 막걸리라도 한 잔 있었으면..
남쪽 사면은 따사로운 햇살에 더운데 바위 벽문 너머로 북쪽 그늘진 곳에는 잔설이 얼어붙은 채로
찬바람이 불고 있다. 거대한 암벽이 가로 막아 온종일 햇볕 구경하기가 힘들겠다.
머리봉 아래로 남선면 계룡대로 이어지는 계곡이 봄을 밀어 올린다.
잠시 졸음에 겨워 누워도 보았으나, 편칠 않구나..
3/22부터 4/13까지 집중 단속기간이라는 친절한? 현수막이 걸려 있다.
그럼 그외 기간은?...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서쪽 문필봉,연천봉 능선)
식사 후 천황문을 넘어 오른쪽 천황봉 아랫쪽 사면을 우회하지만 바위지대 사면에 녹아 내린 빙판길이
매우 위험하여 더 아랫쪽으로 내려가서 크게 돌아 오른다.
길이 잘 보이지 않는 사면의 무성한 낙엽과 너덜지대를 조심스레 밟고 오르며 오른쪽 능선을 가까스로 치고
오르니 천황봉 갈림길 능선에 올라선다. 마음은 천황봉 군 부대에라도 들어 가 보고 싶지만,
괜히 시비를 걸고 싶지않아 선답자의 사진으로 위로 삼는게 좋겠다. 얼마전에 '天壇' 표지석도 만들었다는데..
출입금지 구역에 기념비를 만들어 놓고 누가 즐길 것인가..별 이상한 나라다..
오래 살아 금지구역 해제 되는 날 천황봉 제단 구경하러 또 올라 올 수 있기를..
뒤돌아 잠시 편한 능선 길을 걸은 후 암봉으로 이루어진 중계소 봉 옆을 지나
오른쪽 너덜지대를 조심스럽게 통과한다. (13:25)
(관음봉 정상에서)
바위 너덜을 지나 숲 속 내리막길에서 황적산 밀목재로 이어지는 능선길에 또 출입금지 현수막을 보고,
왼쪽 갈림길을 거꾸로 찾아 오르니 크고 길다란 암봉이 구멍을 이룬 통천문을 통과한다.
마주하는 쌀개봉과 암봉 너머로 鷄龍山 닭벼슬과 용트림의 자연성릉이 모습을 드러낸다.
서둘러 암벽 틈새를 긁어 올라 쌀개봉 암릉을 지나고 암봉에 올라선다.(13;35)
암릉 오르기 직전 왼쪽 우회길 표시가 있었으나 내림길의 거리가 만만치 않을 것 같아 그냥 직접 밟아 내리기로 한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계룡산 전체를 조망 해 본다.
일제가 만든 차령산맥 개념에서는 금강 줄기에 의해 맥이 끊어졌다는 계룡산이
이렇게 백두대간에서 거꾸로 금강 남쪽을 이어오는 금남정맥을 타고 올라 천황봉 주봉을 우뚝 세우고,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곳 쌀개봉에서 동쪽으로 천왕봉,황적봉, 치개봉 줄기를 갈라치고 다시 북쪽 관음봉을 향한다.
(지나온 남쪽 천황봉,쌀개봉 능선)
쌀개봉 북쪽 직벽 내림길은 매우 조심스럽다.코 앞에 마주하는 큰 암봉이 주눅을 들게 하는데,
가늘은 보조자일을 잡고 간신히 내려서니 이어지는 굵은 로프마저 발 아래 땅에 닿질 못하고
침니 좁은 계단을 가까스로 밟고 살짝 뒤로 뛰어 내려야 한다. 바로 이어지는 직벽 암봉에 올라섰으나
아무래도 위험을 느껴 도로 내려와 왼쪽 우회 길을 거쳐 암봉 에서 내려오는 능선길로 다시 오른다.
그러나, 너무 크게 우회하는 것 같아 후회스럽다.
왼쪽 능선길을 찾아 이어지는 암봉에 올라 다시금 관음봉 좌우로 이어지는 계룡능선을 감탄스레 조망한다.
암봉 왼쪽 우회길을 거쳐 마른 계곡으로 이어지는 편한길을 오른쪽으로 올라서니
철책과 목책으로 이루어진 금지 구역 철책을 통과한다.
자주 지나다니던 관음봉 고개에서 잠시 배낭을 내린다.
오랫만에 만나는 많은 등산객들이 왠지 당황스럽다.(14:05)
왼쪽 신원사로 이어지는 길과 오른쪽 동학사로 이어지는 계곡 길이 매우 분주하고,
휴일 등산객으로 붐비는 관음봉 오름길 계단을 거쳐 팔각정에 올라 긴 휴식을 취한다.(14:10-14:20)
(관음봉에서 내려오는 능선길을 뒤돌아 보고..)
계룡8경(天皇日出,聯天落照,東鶴新綠,三佛雪花,甲寺丹楓,隱仙雲霧,男妹明月,觀音閑雲)중에 오늘 오직 한가지를
볼 수 있을 관음봉에 한가로운 구름 마저 그리 많질 않으니, 아무래도 경치 구경과는 거리가 먼 산행길이다.
서쪽 연천봉 아래 압정사(壓鄭寺)가 있어 아직은 한양의 기운이 쇠하질 않고,
鄭氏가 나타나 도읍을 옮기질 못하고 있는가.(鄭鑑錄.참위설)
아니면 지난 어느 대통령이 正道令으로 자부하며 도읍지를 옮기려 했을까..
아무튼 山太極 水太極의 길을 이어 이 곳 계룡산 아래 훗날 신털이봉 片氏의 恨이라도 풀릴 수 있기를..
긴 휴식을 마치고 관음봉 정상석에서 기념을 담고 동쪽 자연성릉을 바라보며 긴 계단길을 내려 밟는다.(14:20)
만학골재까지의 시간은 자꾸만 지체되는데..마주오는 등산객들과 교차하며 걸음이 자꾸만 멈춰지니..
마음은 급하지만 닭벼슬 아래 용트림을 찾는 눈길은 한가롭다.
그냥 천천히 진행하다가 갑사 아니면 동학사로 하산할까도 생각한다.
(삼불봉으로 이어지는 자연성능)
이어지는 암봉을 타고 내리며 예쁜 소나무들을 담고, 난간들이 길게 설치된 칼날 암릉길에서
아찔한 동학사 계곡을 내려다 보기도 한다.
서너개의 높은 암봉들을 타고 오르 내리며 비교적 안전시설을 잘 해 놓아 한눈을 팔지 않으면
크게 위험하지는 않겠지만, 멋드러진 암봉들의 소나무를 배경에 담고자 뒷걸음질 치는 카메라가 불안스럽다.
북서쪽 갑사 계곡의 멋진 풍광을 담고, 태극의 방향을 바꾸어 내릴 수정봉쪽 금잔디고개 능선도 담아 본다.
내가 힘들게 이어 가는 이 맥길이 부소산 넘어 백마강 나루에 닿는 날...
나는 그 조룡대 바위에서 어떤 모습의 용을 건져 올릴 수 있을까..
높은 바위봉을 우회하며 내려서고, 관음봉과 삼불봉의 중간 안부에 닿아 잠시 휴식을 취한다.(15:00)
(갑사계곡)
이어지는 닭벼슬의 성릉을 왼쪽으로 로프를 타고 철계단을 오른다.
새벽을 알리는 닭의 상징이 뭔가 시작을 알려 줄 것인가..
아니면 신도안 계룡대를 감싸고 金鷄抱卵을 이루는 암탉을 상징하는 걸까..
저 아래 용동천에서 시작되어 갑천을 거쳐 금강으로 흐르는 水太極의 氣를 따라
하늘로 치솟을 용이라도(飛龍昇天) 기다릴까..
은선 운무는 아닐지라도 황사가 심하질 않음을 다행으로 여기며 봉우리 왼쪽 사면들을 오르고
철계단이 계속된다.
마주하는 두어개의 멋진 암봉을 넘어 내리니, 갈림길 오른쪽 삼불봉이 유혹한다.
삼거리에서 카메라에 담고 왼쪽 금잔디고개 내림길을 밟아 가니 갑자기 길이 희미해지며
일반 등산로가 아님을 느낀다.계속 지루한 숲길 내림을 조심스레 찾아 내려 금잔디고개에 도착한다.(15:35)
뒤에 오던 본대에서 동학사로 하산하자는 전화가 연결된다. 맘속으로 바라던 바다.
미련없이 오른쪽 삼불봉 고개로 향해 내려선다.
갑사에서 올라와 동학사로 넘어가는 이 고갯길은 완전히 고속도로다. 생각보다 등산객은 많질 않다.
(삼불봉)
삼불봉 고갯길에서 또 다시 삼불봉 북벽을 감상하고 오르고 싶은 맘을 돌려
훗날 눈 쌓인 겨울 날에三佛雪花를 감상하기로 한다.
계룡산 주봉인 천황봉 보다도 풍수상의 주봉으로 자처하는 삼불봉을 오른쪽으로 바라보며
남매탑 내림길로 내려서서 오랜만에 탑돌이를 즐긴다.
백제 왕족과 상주 여인의 슬픈 얘기를 되뇌이며 내게 남은 사랑의 전설도 고이 간직되기를 빌어 본다.
돌로 만든 빈 의자를 찾아 앉아 편안한 마음으로 한시간 남짓의 하산길을 준비한다.(16:00)
4-5년전 고교동기들과 함께 부부동반으로 힘겹게 넘어섰던 자연성릉이 오늘은 짧아진 느낌이다.
동학사까지 1.7km라고는 하나 30여분이면 될 것 같아 천천히 돌 계단으로 이어지는 하산길을 터덜거린다.
갑자기 다리가 피곤해진다. 긴장이 풀린 탓인가 보다.
신선봉-장군봉으로 이어지는 동북능선 갈림길을 지나 긴 계곡을 따라 걸어 내리는 발은 무겁지만
조금씩 소리를 높혀 가는 계곡물 소리와 함께 하는 하산길이 시원하기만하다.
동학사 입구 갈림길에서 망설이다 그냥 주차장으로 향한다.(16:40)
긴 포장길을 걸으며 봄날이 깊으면 피어 오를 벚꽃나무들이 곧 봉우리를 터뜨릴 만큼 한창 물오름을 느낀다.
(남매탑)
동학사 일주문 쪽 길상암 계단길에 서서 삼불봉을 향하는 외국인 청년들의 눈길이 계룡능선의 멋지고
청아한 소나무처럼 싱싱하고 너무나 아름답다.
젊고 순수한 열정에서 우러나오는 저런 시선들이 이 땅에 넘쳐날 땐 온 세계의 평화로운 축복도 함께 하리라..
그리하여 먼훗날 정맥길을 쳐다보는 내 무덤가에도 통일된 조국의 밝은 햇살 비추오시라...
序 詩
아담한 산들 드믓 드믓 맥을 끊지 않고 오간 서해안 들녘에 봄이 온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그대로 가슴 울렁여 오는 일이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오면 또 가을 가을이 가면 겨울을 맞아 오고 겨울이 풀리면 다시 또 봄. 농삿군의 아들로 태어나
말썽 없는 꾀벽동이로 고웁게 자라서 씨 뿌릴 때 씨 뿌리고 걷워� 때 걷워� 듯 어여쁜 아가씨와 짤랑 짤랑 꽃가마 타 보고
환갑 잔치엔 아들딸 큰절이나 받으면서 한 평생 살다가 조용히 묻혀가도록 내버려나 주었던들 또, 가욋말일찌나,
그러한 세월 복 많은 가인(歌人)이 있어 봉접풍월(蜂蝶風月)을 노래하고 장미에 찔린 애타는 연심을 읊조리며
수사학이 어떠니 표현주의가 어떠니 한단들 나 역시 모르는 분수대로 그 장단에 맞추어 어깨춤이라도 추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원자탄에 맞은 사람태백줄기 고을 고을마다 강남 제비 돌아와 흙 묻어 나르면 솟아오는 슬픔이란
묘지에 가 있는 누나의 생각일까.....? 산이랑 들이랑 강이랑 이뤄 그 푸담한 젖을 키우는울렁이는 내 산천인데
머지 않아 나는 아주 죽히우러 가야만 할 사람이라는 것이라.
잘 있으라. 해가 뜨나 해가 지나 구름이 끼던 두번 다시 상기하기 싫은 인종(人種)의 늦장마철이여
이러한 노래 나로 하여 처음이며 마즈막이게 하라 진창을 노래하여 그 진창과 함께 멸망해 버려야 할 사람이
앞과 뒤를 헤쳐 세상에 꼭 하나뿐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면..... 두고 두고, 착한 인간의 후손들이여
이 자리에 가는 길 서낭당 돌을 던져 구데기. 그런 역사와 함께 멸망한 나의 무덤, 침 한번 더 뱉고 다시 보지 말아져라.
-신동엽-
(동학사 입구 길상암에서..)
3/21 道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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