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시간표)
2/17 06:40 서울대 역
09:40 배티재 출발
10;15 640능선갈림길
-731
11:10 낙조대 갈림능선
-칠성봉
11:45 마천대 2.5km
12:20 서각봉(828) 1.0km
13:00 점심식사 후 출발
13:55 깔딱재 1.0km
14:07 575봉(새리봉) 0.4km
-397봉
14:30 수락재 1.5km
-533봉-흔들바위
15:30 월성봉 1.4km
-547봉-소서암
16:20 바랑산(555) 1.5km
-421봉- 작은물한이재-426봉
17:50 물한이재 2.0km
19:00 (덕곡리 덕곡교회) (3.5km)
8시간 10분 11.3km(1시간,3.5km 접근구간 제외)
(배티재에서 바라본 대둔산 정상 암봉)
(2/17 06:00) 주말 토요일 밤마다 백두대간 길 무박산행을 위하여 나서던 3년여의 장거리 산행 이후, 처음으로 지리적으로 가깝게 여겨지
는 대둔산 종주를 당일산행으로 계획을 잡고 새벽 잠을 설친 채 전철을 타고 서울대역으로 향한다. 이제 금남정맥 구간도 오늘로서 반쯤
지나는가 보다..2년전 초등학교 벗들과 함께 잠시 둘러 본 대둔산을 당일로 종주하기가 그리 만만치는 않을 것 같은데..미리 랜턴을 챙겨
혹시나 늦을지도 모를 밤길에 대비해 본다. 내일 동남아 출장을 앞두고 여러가지로 일정이 바쁘기도 한데..휴일의 고속도로를 3시간 남짓
달려 지난 구간의 날머리인 배티재에 당도한다. 8명의 단촐한 대원들 앞으로 꽤 많은 휴일 산행객들의 발걸음이 밀리기 시작한다.(09:30)
우람한 대둔산 정상 암봉을 올려다 보며, 금남정맥 길에서 계룡산과 더불어 긴 역사의 숨결을 느끼며 걸어가야 할 암릉길이 무겁게 다가
온다. 쇠주먹의 계룡산에 비하여 창검의 기세를 올리는 대둔산이라 했던가..큰두메(한듬산)라 했던가..백제의 숨결을 간직한 채 갑오년의
슬픔과 현대사의 비극적 영혼들이 깊숙한 골골이 잠들어 있는 靈山을 향해 잠시 고개를 숙인다. 배티재 절개지 도로를 건너 '옛 조상들이
다니던 대둔산길 등산로'를 더듬어 오르기 시작한다.(09:40) 많은 일반 등산객들에 섞인 채 급경사 오름길에서 부터 지체가 심하다. 밤길
한가로운 들머리에 익숙했던 걸음들이 시작부터 리듬을 잃을까봐 걱정이다. 하산 예정시간이 오후 6:00로 잡혀 있는데..
(칠성봉 서사면)
동쪽 오대산으로 이어지는 주능선까지의 된비알이 만만치 않게 지그재그로 이어지며 숨이 가빠오는 오름길에서 자주 지체를 이룬다.잡목
숲 사이로 간간이 보이는 전북 완주 쪽 대둔산의 기암절벽들을 감상하며 얼마전 케이블카 회사에 납품한 기기가 잘 작동되는지 궁금하다.
30여분의 급경사를 거쳐 암릉으로 이루어진 640봉 삼거리에 올라선다. 왼쪽 마천대 방향 서쪽 내림능선에 눈이 미끄럽게 얼어 붙은 것 같
아 아이젠을 착용한다. (10:15) 서쪽으로 길게 오르는 능선길을 잠시 내려 밟은 후 작은 봉우리들을 두어번 오르내리니 오른쪽 장군 약수
터 삼거리를 지난다. 왼쪽 완주 쪽 대둔산의 우람하고 멋드러진 암봉들을 담으며 고도를 높혀 또 한 고개를 지나니 두번째 장군약수터 갈
림길을 만나 잠시 약수터를 둘러 오고 싶기도 하다.
금남정맥 북사면의 유등천을 발원하여 금강으로 이어지는 곳일 수도 있는데..남사면의 괴목동천-장선천은 결국 금강하구에서 함께 만나
군산 앞바다로 흘러들겠지..731봉 "태고사 경내' 안내문을 읽으며 왼쪽 사면의 병풍바위를 돌아 오르니 계단길과 철계단을 지나 광장갈
림길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11:00) 눈이 소복하게 쌓인 바위들이 북사면을 장식하고, 발 아래 태고사의 정적을 간직한 채 천하의 명승지
를 둘러 보길 권하지만...그 입구 행정다리 너머에는 찬란한? 골프장이 산자락을 파먹으며 올라오고 있겠지..철계단 난간을 잡고 올라 낙
조대 갈림길 능선에 다다른다.(11:10) 재작년 초등학교 벗들을 40년만에 재회하던 곳..부디 건강하게 오래 살아 먼 길 돌아 안착할 내 고
향 땅에서 재회할 수 있기를....
(칠성봉을 넘어 서는 전망대에서)
잠시 북쪽 능선의 낙조대에 들러 수락계곡과 월성봉 능선을 미리 조망하고 싶기도 하지만 서둘러 발길을 왼쪽으로 꺾어 남쪽 마천대로
향한다. 마주하는 암봉 오르막에서 오른쪽 사면을 돌아 들며 산죽길을 내려 밟고, 멋진 칠성봉을 마주하는 전망대에서 잠시 포즈를 취하
며 지난 구간의 금산 땅 백암산을 건너 보기도 한다. 가히 호남의 소금강이라 했던가..줄을 잇는 암봉들과 멋진 기암괴석의 도열을 맞으며
지난 역사의 험한 칼날 능선을 잠시 잊은 채 오른쪽 충남 땅의 깊고 넓은 숲과 계곡을 감상하고 좌우를 번갈은다. 마왕문, 신선바위,남근
바위, 금강봉....숲 속의 낙조 산장이 오히려 초라하구나...
(마천대를 올려 보고..)
칠성봉 오른쪽 산죽길 사면을 돌아 넘어 용문굴 갈림길을 지난다. 수락계곡의 깊고 넓은 숲과 계곡의 장관을 왼쪽 충남으로 펼치며 멋진
암봉을 오른쪽으로 감아 오르고, 철계단, 로프들로 안전시설을 해 놓은 미끄러운 암반을 지나고 나니, 북쪽 낙조대와 산장을 마주하며 잠
시 발품을 쉴 수 있는 산죽길 계단 난간에서 뒤를 돌아보며 숨을 고른다. 멀리 월성봉 거친 산맥들이 웅장한 기세로 북서쪽 논산벌을 가르
고 누워 있다.남쪽 금강 구름다리에서 올라오는 철계단을 만나는 삼거리에서 화려한 막걸리 상에 군침도 흐르지만 잠시 후에 마련 될 점
심상을 기대하며 잠시 남쪽 구름다리를 담은 후 왼쪽 분재같은 소나무 봉우리를 돌아 넘어 마천대로 향한다.(11;40)
(마천대 직전 암봉 분재 같은 소나무 아래에서..)
100여년전 동학의 지친 발걸음을 달래던 분재 소나무 아래에 점심상을 펼친 채 마주보이는 남쪽 천등산을 바라보며 시간을 잊은 젊은 연
인들의 가슴 속에도, 석달열흘 항쟁의 끝에 고향을 지척에 두고 혼이 되어 벼랑 아래로 날라서 떠나야 했던.. 이 땅의 전설같은 민중의 역
사가 용솟음 치기를...그날 남겨 둔 손때 묻은 쇠스랑이, 그 괭이 자루가 저리도 고운 한그루 민주의 소나무로 자랐음을 기억하는가..
연인들의 모습에서 장군의 사랑도 떠올리며 .....
(봉준은 아내의 죽음을 두고 /몇날 며칠 /식음을 전폐했다.
황토현 남쪽 /양지바른 기슭 /가루 고운 흙 속에 /자기 손으로 묻고 /잔디를 입혔다. /밟으면서 울었다.
봄이면 꽃/여름이면 하늘/가을이면 귀뚜라미 /겨울이면 추위
전봉준은 자주 /아들의 손을 이끌고 /아내의 무덤 앞 찾아와 /말없이 /몇 시간씩 /서 있다 가곤 했다.) --'금강'(신동엽)
(마천대서 바라본 나아갈 암릉들..)
개척탑이라 명명된 우주선 같은 은빛 정상탑이 왠지 달나라에서나 어울릴 것 같아 애써 외면하고도 싶다. 그 앞에서 발디딜 틈도 없이 기
념을 담는 휴일의 관광객들을 피해 나아갈 서쪽 능선을 잠시 조망한 후 미끄러운 정상 북사면을 조심스레 밟아 내려 안심사 방향 산죽길
오른쪽 사면을 향한다.(11;50) 입석 암봉들 사이로 남쪽 호남벌을 기웃거리며 지난 해 호남정맥 길과 지나온 전북 땅을 다시 뒤돌아 본다.
내게 호남 땅이란 과연 어떻게 다가왔던 것일까...오직 역사 속의 공간으로 ..그냥 내 땅의 한 부분으로 여겨졌던 전라도 땅.. 지난 한 해
동안 맨발로 가시덤불을 헤치며 느낀 그 땅은 그냥 내 땅이 아니었더라...숱한 울음과 땀방울이 뒤범벅 되면서 잠시나마 그 가시밭길 속에
서 나를 붙잡는 영혼들과.. 나를 반기는 삶을 느낄 수 있었기에 감히 이젠 친할 수 있는 내 땅이라고...
(마천대 아래 전망터에서..)
산죽 길의 828봉(서각봉) 오른쪽 사면을 돌아 오르니 안심사/수락계곡 갈림 능선 3거리에 닿는다.(12;25) 여기서는 길찾기에 매우 조심스
럽다. 자칫하면 수락계곡으로 떨어지는 능선으로 계속 무심코 걸어가기 십상이다. 안심사길 사면에서 배낭을 내리고 점심과 휴식을 취한
다.늘 단촐한 식구들이고 연륜들이 무거운 산객들이지만 힘들지 않게 사뿐거리는 팀웍이 참 아름다운 중년이다..부디 더 이상 늙지 말고
건강한 몸과 자신있는 용기로 내 땅 구석구석을 밟으며 보람 찬 땀흘림의 길을 열어 가기를..그 곳엔 진정 모든 세월로 부터의 자유도 있
으리라..한 잔 막걸리로 목을 추기고 구정의 흔적을 담은 전부치가 혀 끝에 어울린다. 다시 갈 길을 추스리니 새로운 몸이다.(13:00)
(허둥봉에서 월성봉, 바랑산 넘어 계룡산을 쳐다 보니..)
식사를 마치고 지나온 서각봉(828봉) 오른쪽 사면 길을 더듬어 안심사 방향으로 남쪽 능선을 찾아 산죽길을 돌아 든다. 사면 오른쪽을 계
곡 쪽으로 내려간 후 왼쪽 능선을 바라보고 오르니 우회한 능선길에서 내려 오는 대원들을 만나고, 오른쪽 능선길의 봉우리를 향해 걸음
을 이어간다. 왼쪽 천등산이 계속 아쉬운 듯 동행한다. 봉우리 오른쪽 산죽 길을 감아 오르니 허둥봉(834봉) 암봉에 환한 시야를 맞으며
올라선다. 안심사 내림능선의 멋진 남쪽 길을 한동안 조망하고 돌아서는 내모습이 행복해 보인다나..별 것도 아닌 것에 이리도 만족할 줄
을 언제 배웠던가..이제 망육의 내 인생에서 무엘 그리 아쉬운 것이 많지는 않으리니.. 부디 꿈꾸는 내 땅들 걸음 걸음 마다 아프지 않게
디딜 힘을 간직한 채 세상 끝나는 날 까지 늘 새로운 영혼들을 즐겁게 맞을 수만 있다면..오르던 길 오른쪽 동쪽 능선을 더듬어 수락계곡
방향을 찾아 내린다.(13:25)
(깔딱재 내림길 암릉에서..)
편안한 능선길이 이어지는 가 싶더니만 암봉 전망대를 지나 산죽 길을 돌아드니 암릉과 암봉이 깎아 지르며 잠시 얼어 붙은 눈길 암릉에
당황스럽다. 마주 오는 산객이 우회 길을 권하지만 너무 많이 돌아 내리는 것 같아 그냥 칼날 능선을 조심스레 로프에 의지한 채 오르내린
다. 30여분의 긴장되는 암봉을 지나 마지막 깔딱재에 내려서니 오른쪽 수락계곡 220계단 안내 표지가 정겹다. 귤 한조각씩 나누면서 무사
히 넘긴 한고비를 안도하지만 이미 예정된 시간을 훨씬 지체하고 있다.(13:55) 남은 월성봉 구간이 만만치 않고, 겨울날의 산중에 해가 일
찍 저물면 아직 완전히 차도가 형성되질 않아 마루금을 찾지 못하는 산행 버스와의 접속도 걱정되는 상황이다. 발길을 서둘러 길어 보이
는 새리봉 오름길 능선으로 향한다.
(세리봉에서 바라본 월성봉, 바랑산 능선...)
10분 남짓의 새리봉 오름길이 그리 힘들진 않으나 귀찮아서 벗지 않은 아이젠이 다소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작은 봉우리와 패묘를 지나
이장한 묘터인지 방어호인지 분간이 되질 않는 590봉 새리봉에 올라선다. 양촌,벌곡,운주 마을의 세리를 가르는 짜개봉이라 불렀던가..
왼쪽으로 잘 형성된 양촌 쪽 능선길을 버리고, 오른쪽 수락재를 향해 길게 내려선다. 다소 혼돈되는 리본들과 잘 다져진 사면길에 자칫
알바를 경험할만한 지점이다. 오른쪽 긴 내림능선 끝에 헬기장을 지나면서 시야가 트이고 수락재 내림능선이 외길로 편안한 오르내림을
반복한다. 오른쪽 수락계곡의 반가운 표지가 있는 수락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올려다 보는 월성봉 오름길에 기가 질린다.(14:20)
(흔들바위 뒤로 논산벌이...)
수락계곡 내림길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급경사 월성봉 오름길을 재촉한다. 20여분의 급경사 오르막이지만 철계단도 설치되어 있고 발
아래로 펼쳐지는 수락계곡의 깊은 장관과 남쪽 오산리 방향의 시원스런 경치를 벗삼으며 벤치가 있는 전망대까지 쉬지 않고 올라 선다.
예쁜 소나무들이 벼랑 끝을 장식하며 잔설로 희게 뒤덮힌 대둔산 북사면을 배경 삼아 잠시 포즈도 취해 본다.(15:00) 10여분의 긴 휴식을
취하며 편안한 벤취에서 잠시 졸음마저 느낀다. 월성봉을 향하는 길은 바위 오름길을 철계단을 따르기도 하고 작은 봉우리를 편한 걸음
으로 넘어 멋진 소나무들의 사열을 받은 후에 흔들바위에서 또 잠시 머문다.(15:30) 발 아래 팔각형의 법계사 지붕도 가깝게 내려다 본다.
(월성봉에서 바랑산을 향하고..)
월성봉 외로운 정상 표지석을 담고 숱한 현대사의 비극을 간직한 채, 달이성(달뜨는 성,다리성봉)의 멋드러진 이름을 간직할 수 있어 다
행이다. 좌우로 철모봉, 깃대봉, 매봉의 고원을 이루며 치열한 민족간의 비극적인 전쟁을 겪어야 했던 자리에 쓸모 없어 버려진 헬기장만
고요하고..왼쪽 바랑산 능선을 향해 90도 꺾어 내린다.법계사 갈림길 이정표를 지나 작은 봉우리를 넘어 서면서 소서암 바위 전망대를 지
난다. 금남정맥 이 길을 불과 작년 초순에 걸어 갔던 대충산사의 어느 산객이 불귀의 몸이 된가 보다..추모의 넋을 기리는 산벗의 슬픈 정
성이 산마루를 외롭게 지키고 있다..누가 있어 내 걸어가던 마지막 걸음에 자취를 담고 김해 땅 내 무덤을 바라보는 낙남 정맥길에 서서
먼곳을 향할까..
(고인이 되신 대충산사 산님의 추모비가 있는 소서암 봉우리 전망대)
암릉길을 오르내리며 작은 봉우리를 넘어서니 삼각점 하나 외로운 바랑산을 넘는다.(16:20) 어느 스님의 큰 바랑 속에 깃든 무위의 섭리
가 이 땅 중생들의 걸음걸음에도 깃들어 아픈 기억의 역사들을 훌훌 털고, 모두를 보듬어 안고 저 부여 땅 부소산 아래 금강 어귀에서 훠
어이 춤 출 날이 올수 있을 것인가..발 아래로 낮아진 봉우리를 오른쪽으로 감아내린 후 긴 내리막을 거쳐 작은 봉 오른쪽 사면에서 로프
가 설치된 급경사 길을 힘겹게 훑어 내리니 영주사 갈림길 작은 물한이재를 지난다. 백제 5천 결사대의 영혼이 깃든 영은사지가 저 계곡
으로 이어지나 보다.. 오른쪽으로 높게 올려다 보이는 426봉이 이미 지친 발걸음에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90도 오른쪽 봉우리 사면을 돌
아 마지막 암벽을 8mm 가느다란 로프에 매달리며 가까스로 올라선다.(17:20)
(마지막 427봉 오름길 가늘은 외줄에 몸을 매달고..)
물한이재가 가까워 왔는가..가끔 자동차 소리도 들리는데..마지막 428봉을 넘어 서서 처음 만나는 능선삼거리에서 90도 왼쪽으로 꺾어 내
린 후 마른 계곡을 건너는 듯한 능선 길에서 갑자기 오른쪽 능선으로 급히 꺾어 내린다. 결국 깊이 파헤친 공사장 절개지에 내려 와서야
그 연유를 깨닫는다. 이건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는 공사현장이다. 지도상으로 그리 중요한 공사도 아닌 것 같은데..내 짐작이 맞는다면 어
느 건설업체의 로비로 암봉 한 허리를 잘라서 석골재 채취의 잔머리임에 틀림이 없다. 꼭 필요하다면 작은 터널이 훨씬 경제적으로 보이
는 공사 현장이다. 다시 작은 동물 이동통로를 만들겠다고 세워 놓은 아취가 석양에 초라하다..(17:50)
포장길이 다시 끊어지는 영주사 갈림길을 거쳐 대곡리 큰 길까지 1시간여 걸어 나오는 석양의 시골길이 금새 어두워진다. 마침 휴대폰도
없이 나섰던 산행 마무리가 엉뚱하게도 반대편 접근로를 거쳐 우여곡절 끝에 일행들과 조우하니 밤이 깊어가는 수락계곡 어귀에서 한 잔
이슬이로 피로를 달랜다..(19:00)
(물한이재의 낙조)
그 사람에게
아름다운
하늘 밑
너도야 왔다 가는구나
쓸쓸한 세상세월
너도야 왔다 가는구나
다시는
못 만날지라도 먼 훗날
무덤 속 누워 追憶하자,
호젓한 산골길서 마주친
그날, 우리 왜
인사도 없이
지나쳤던가, 하고 (신동엽)
2/18 道然
'9정맥(2007-10)·完了 > 금남정맥(08)·完了'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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