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시간표)
2/2 22:40 서울대역
2/3 04:00 무릉리 출발
05:50 게목재 2.4km
06:05 성치지맥 분기점
06:30 713.5봉(선야봉 갈림길)
07:45 질재직전 안부 아침식사(-08:00)
08:25 백암산 4.5km
08:45 독수리봉
09:00 서암산 갈림길
09:30 백령고개 (-09:45) 2.0km
11:15 622.7봉 4.0km
12:15 인대산 2.0km
13:15 495.8봉 2.3km
13:40 오항동고개(-13:50)
16:00 배티재 4.8km
12시간 22km
(산토끼 한마리가 오물오물..씹다가... 다시 뒤돌아 보니 산비둘기로...이렇게 시각에 따라 만물이 달라 지는데..)
(2/2 22:40) 산행버스를 기다리는 서울대역 네거리가 구정을 앞두고 매우 분주하다. 밤늦은 시간에 배낭을 챙겨매고 한 귀퉁이를 서성이
는 초로의 사내를 힐끔거리는 젊은이들의 눈길이, 차라리 주말의 관악산 날머리의 하산주 이슬이에 약간 허트러진 또 다른 산객이 훨씬
이해가 쉽다는 눈초리다. 이 한 밤에 어느 먼길을 밝히려 새롭게 차려입고 산 들머리를 향해 떠나고 있는가 하면서 힐끗거린다.잠시 가까
운 곳에 얼굴 본지 오래 된 배병장이 있다는 느낌으로 전화를 했으나, 이번 주말은 연구차 바빠서 겨우 부산 귀성길에나 동행할 수 있을
모양이다. 아무튼 젊은 시절을 능력 껏 학문에 몰두하여 스스로의 삶에 보람을 찾을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바랄게 뭐 있으랴..
서울에서 비교적 가까운 산행지가 되어 느긋한 마음으로 찾아든 진안군 최북단 산골 오지 마을인 무릉리 입구에서 산행 준비를 마치고
선잠 깬 멍멍이들의 안타까운 짖음에 �기며 마을 어귀를 벗어나 능선 들머리 산 아래 끝집 아래까지 재빨리 이동한다. 눈 속에 파묻힌
마루금 까지의 계곡길이 아무래도 보름전의 탈출시 기억만으로는 이 한밤중에 그리 쉬울 것 같지가 않아 다소 걱정이 된다. 배티재에서
역방향 남진을 고려해 보기도 했지만 북진의 마루금 잇기가 왠지 섭섭해 질 것 같아 그냥 밤길 어프로우치를 감행해 본다.(2/3 04:20)
(561봉-질재 내리막 칼능선을 내려오고..)
왼쪽 780고지 신선봉 내림 능선의 편백 조림지를 기억하며 그 오른쪽 계곡을 따라 오늘의 산행 기점인 게목재 안부를 찾아 오르지만 깊게
쌓인 적설이 이미 희미하던 등로를 지워버렸다. 그런대로 어둠속의 짐승의 발자국을 따라 계곡 중간 정도까지는 잘 이어지던 산길이 갑자
기 깊은 계곡을 건너 오른쪽 능성 사면으로 이어진다. 9명의 대원들이 보름 전 하산길을 되새겨 보지만 이렇게 계곡을 건넌 기억을 되살
리질 못한다. 자연에 익숙한 짐승의 발길을 거부하고 계곡 왼쪽의 비탈진 사면을 헤쳐 오르는 인간의 무모함이 결국 1시간의 힘겹고 가파
른 알바를 겪어내고 게목재 안부에서 남쪽 신선봉 마루턱의 고지까지 개척?등반을 하였음을 깨닫기에는 너무나 많은 시간과 체력을 소모
한 뒤였다.
04시30분 정도에 시작하려던 마루금 밟기 시간계획이 지난 번 내려 밟았던 급경사 내림길을 다시 찾아 게목재 안부에 내려서니 05시50분
을 지나고 있다. 지난 번 탈출 하산로에 리본을 잘 표식하질 못한 것을 뒤늦게 반성한다. 혹시 같은 탈출로를 겪을 후답자들은 게목재-무
릉리 하산길은 계곡을 중간 정도 지점에서 지도상의 남북으로 가로질러 신선봉 내림능선(남쪽)과 충남/전북 경계선인 성치지맥 능선(북
쪽) 사면을 번갈아야 됨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 아무튼 백암산 멋진 암봉을 동이 트고 난뒤 밝은 아침에 지날 수 있음을 다행스럽게 여기
며 지나 간 실수를 위로해 본다. 첫 봉우리인 760봉(성치지맥 분기봉)을 가볍게 넘어서고 북으로 뻗은 편한 내림길을 서두른다.(06:05)
(금산 남이면의 새벽이 눈을 덮어 쓴채로...)
전북 진안과 충남 금산의 고원지대를 가르며 동쪽 오두재로 뻗어나가 성치산을 솟구치고 베틀봉 거쳐 노고치 아래 금강을 찾아 내리는 성
치지맥 분기점을 지나, 왼쪽 급경사 내리막을 잠시 거친 후 편안한 봉우리 사면길들을 좌우로 번갈으며 오르내림을 반복한다. 20여분 후
작은 오름으로 암봉 오른쪽을 감아 넘어서니 분화구 처럼 패인 713.5봉 선야봉 갈림길에 올라 선다.(06:30) 왼쪽 선야봉 길이 어둠속에서
도 굵은 맥길을 이루며 유혹한다. 충남/전북의 경계를 이루며 선야봉을 거쳐 대둔산 아래 천등산으로 이어지는 산맥이 인대산 서사면에
서 흐르는 오항리 장선천 상류계곡에 맥길이 끊긴 채, 금남정맥의 영광스런 발길을 이곳에서 동북쪽 백암산을 향하는 오른쪽 내림길에 양
보한다. 금산 남이면으로 내려선 후 왼쪽으로 급히 꺾이며 긴 급경사를 지쳐 내린다. 암릉을 거쳐 두어개의 작은 봉우리를 넘어선 후에야
상피목동/두문동 내림길의 입석갈림길 안부에 내려선다. 긴 내리막이 잠시 멈추어지며 눈길의 북사면이 발길을 적신다.(07:00)
(백암산 직전 질재 안부에서 아침식사중 기대치 않았던 일출이 잠깐 구름사이로..)
안부를 지나 낮은 봉우리들을 예쁜 소나무와 암릉들의 반가운 모습을 즐기며 오르내린다. 조금씩 밝아 오는 금산 땅의 여명을 즐기며 왼
쪽 선야봉 능선의 하얀 동쪽 사면이 우람하게 동행한다.배중위가 선물한 마젤란 GPS로 함께하니 550m-560m정도의 고도를 유지하며 길
고도 지루한 대여섯번의 오르내림을 거치고 암릉길 칼능선을 거쳐, 백암산 암봉이 만만치 않게 모습을 드러내는 질재 직전 안부에서 아침
식사를 겸한 휴식을 취한다.(07:45-08:00) 생각보다 다소 쌀쌀한 아침이다. 사각거리는 밥알을 씹으며 100 여년전 장군의 길을 따라 쇠스
랑 곤두세우고 우금치로 향하던 우리네 착한 농민들의 걸음도 이쯤에서 멈추어 선 채,남이 계곡을 건너 올려다 보이는 대둔산이 아침 햇
살에 눈부시게 희망을 열어 오는 감격을 맛보았을까..
(백암산 정상 오르는 암릉)
10여분간의 식사를 서둘러 끝내고 질재를 넘어 헬기장 오르막을 넘어서니 우람한 백암산이 거친 암릉길을 드러내며 반긴다.(08:10) 조심
스레 눈길을 긁어 오르다 잠시 숨을 고르며, 오른쪽 금산 고원지대의 첩첩 산골을 뒤덮은 겨울 아침의 고요를 일깨우는 햇살 속에서 푸르
름을 간직한 채 고고한 기상을 뿜어내는 巖松들의 자태를 감상한다. 삶의 고집도 독야청청 할수도 있으련만..뒤돌아 보고 주변을 둘러 봐
야만 하는 우리네 삶의 궤적 속에서, 무시하고 잊을 수 없는 주변의 시선들이 함께하는 삶이고..人之相情에서 벗어날 수가 없길래..인간의
규범과 이념의 굴레 속에서 우리는 더욱 더 처절하게 상처를 입고 있는 현실이다.
(새벽을 걸어 지나온 능선길..그리고 선야봉 능선..)
백암산 정상 직전 암봉전망대에서 새벽을 밟아 지나온 남쪽 능선과 서쪽으로 우람차게 뻗어 나간 선야봉 능선 북사면을 마주한다.(08:20)
깊은 적설로 이 한겨울을 묻은 채, 금강을 넘어 한양으로 향하는 백성들의 외침을 골골이 간직하며 수백년을 지켜온 이 땅의 맥길이다..
이 영혼의 맥길이 오늘날 당치도 않은 돈의 허황된 논리에 흔들리며, 山自分水嶺의 영험마저 도전 받아 맥이 뚫리고 물이 새는 혼란을 자
초하고 있으니 적잖이 두렵고 하늘의 벌이 무섭다..이미 대간길, 정맥길 곳곳에 뚫린 양수발전 저수지 위의 하늘이 안개를 거두지 않고
주변을 호통치는 경고를 무수히 경험했기에, 우리는 경제적인 전기의 혜택을 받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연의 생태 변화에 따른 피해를 값
으로 지불해야 하는지를 똑똑히 보고 있다...자연을 억지로 거슬려야 할 만큼 인간의 논리가 옳은 것일까..아서라, 다칠까 무섭다..
(백암산 정상에서..)
짧은 암릉을 올라서서 백암산 정상을 지난다.(08:25) 1대간 9정맥의 산하 밟기를 시작한지도 벌써 3년째로 접어든다. 매주 지나온 길을 섭
렵하고 이 땅의 영혼들이 아픔을 딛고 지켜 온 내 조국의 산하를 누비며 나는 내가 찾고자하는 自由人의 길을 어렴풋이나마 느끼고 있는
것일까..이제 겨우 주말의 저녁에 꾸리는 배낭의 무게에서만 자유로울 수 밖에 없는 이 길을 얼마나 나아가고 얼마나 많은 시간과 발품을
투자하고 나서야 훌훌 털고 앉아 한잔 이슬이에 만족하며 내 자유로운 영혼들과 아는 체 할 수 있을 것인가..가도 가도 끝이 없는 저 길고
도 먼길을...한발 한발 내딛는 내 발자욱이 이어져가 부여 땅 낙화암 아래서 장군의 희망찬 외침을 다시 듣을 수 있다면 내게 큰 보람이다.
"이 땅의 모든 생명들이 곧 하늘이리라..."
(독수리봉(매봉) 정상)
왼쪽 선야봉 능선을 동행하며 편안한 걸음으로 작은 봉우리를 넘어서니 멀리 왼쪽으로 대둔산이 희미하고, 이어지는 암릉길을 거쳐 조심
스럽게 예쁜 소나무가 있는 독수리봉(매봉)에 올라선다.(08:45) 표지판이 외롭게 달려 있지만, 많은 지도상에는 이곳을 서암산이라 기록
하기도 한다.결국 백암산과 비교되어 금산 쪽에서 바라다 보이는 서쪽 봉우리의 위치가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혼란이 있을 수도 있겠다.
조금 더 진행하여 서암산으로 불리우는 봉우리를 확인하는 수 밖에..왼쪽의 천길 절벽에 오금이 저리는 암릉길을 엉덩이를 붙인 채 살금
거리며 내려선다. 뒤돌아 보는 매봉의 날카로운 암봉이 서쪽 절벽 위로 불거져 나와 있다. 북쪽 능선길이 훤히 마주 보이고 인대산이 사각
의 정상을 빼꼼히 내밀며 어서 오라 인사한다. 동쪽 진악산 너머 천태산 능선도 마루금을 하늘에 닿은 채 금산을 둘러 싼다.
(멀리 발 아래 백령성재 오름차도가 보인다..왼쪽 인대산이 빼꼼 하고..)
날카로운 암릉을 지그재그로 조심스레 내려서니 마주하는 암릉 구간에 매달린 짧지만 굵은 로프가 윗쪽 암반 칼날 같은 가장자리 솔기에
마모되면서 많이 닳아 있다. 언젠가 끊어지는 날에는..발 아래 낭떠러지가 오금을 저리게 한다. 빠른 시일 내에 안전조치를 강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하산 후에 금산군청에 전화를 걸어야겠다. 이어지는 암봉에 멋드러진 소나무들이 정상을 장식하고 편한 걸음으로 조금씩 고
도를 낮추며 두어번 작은 오르내림을 거쳐 이정표가 있는 서암산 갈림길에 이른다. 잠시 직진하여 서암산으로 보이는 정상에 올랐으나 별
다른 표지를 갖추지 못한 채 남이 계곡건천휴양림 방향으로 급한 내림을 이어간다.(09:00)
(백령성터)
다시 뒤돌아 내려와 진행하던 북쪽 마루금에서 오른쪽 급사면으로 90도 꺾어 내리며 백령성 고개를 향하여 고도를 낮춘다.가지사이로 백
령성 고갯길을 간간히 내려다 보며 암릉 조망대를 지나 안부에 내려선다. 헬기장을 지나 백령성터 봉우리를 올라서니 퇴메식(山頂式) 산
성의 봉수대 표지를 살핀다. 백제 말기 영동 땅의 신라를 마주하는 전초기지이며 진악산 봉수대와 연결된다는 설명이다. 부리면 芝三峙
城, 제원면 紫芝城(성재산), 금성면 下新城과 더불어 금산을 둘러 싼 내곽성을 형성한다. 조금 더 내림길로 진행하니 멋드러진 소나무 아
래에 "栢嶺城址" 표지석이 자릴 잡고 있다. 1000년의 역사터를 걷는 이 길에서 50여년전 같은 역사의 피를 물려 받은 농민의 아들들이 왜
그다지도 허망한 이념의 소용돌이 속에서 수천의 생명을 이 곳 백암산 600고지에 묻어야만 했을까...
(백령성 600고지 충혼탑)
(09:30)남이면을 가로지르는 635번 지방도가 크게 감아 오르는 백령고갯길(炭峴-대동여지도, 백자령-靑丘圖)에 내려서기 전, 이념의 굴
레가 빚은 아픈 영혼들을 위로하는 충혼탑을 지키는 弔花가 외롭다. 본시 이 땅에서 자라난 우리들의 이념도 아니거늘..이 땅의 백성들이
손에 들고 시위하던 쇠스랑도 아닌 쇠붙이와 이 땅 바깥에서 생겨 난 미움으로 이 땅의 허리를 자르고 가시줄을 쳤던... 반세기도 넘은 그
날의 아픔들이 이리도 시린 계절에 흐린 하늘을 향하는 악몽으로 남아 고갯길을 넘나드는 길손의 발길을 잡아둔다. 어떤 주의나 주장도
결코 완전할 수 없는 인간들의 작은 머리에서 나와 언제든 고쳐지고 바뀔 수 밖에 없는 시간의 흐름일 뿐일진대..오늘 이 고갯길을 지키는
우리의 기억들은 또 얼마나 많은 세월을 겪고 나서야 서로를 용서하며 함께 껴안고 승천을 염원할 것인가..
(인대산 오름길에서 맑은 하늘 아래 시루떡 같은 정상을 당겨보고..)
도로 건너 양지 바른 길섶에서 잠시 배낭을 내리고 10여분 휴식을 취한다. 본래 이곳에서 아침식사를 할 계획이었으나, 초반의 예상치 못
한 마루금 접근에서 시간을 낭비한 탓에 충분한 휴식도 취하지 못하고 일몰 전 구간 날머리인 배티재에 닿기 위해서는 발길을 서둘러야
한다. (09:45)절개지 북쪽 언덕으로 올라서니 통신시설물을 지나면서 부터는 편안하고 큰 오르내림이 없는 육산의 능선에서 빠른 걸음으
로 잔설을 밟아 나간다. 완만한 북쪽 능선길에서 서너개의 작은 봉우리를 넘어서니 중개직/가오리 마을을 잇는 안부를 지난다.(10:05)
탄력을 받은채로 마주보이는 급한 오르막을 쉬지 않고 올라서서 470봉으로 보이는 암봉을 넘어선다. 이어지는 두세개의 암릉을 낀 봉우
리들을 좌우로 번갈으며 힘겹게 오르내린 후,앞에 보이는 능선 사면을 향해 10여분 길게 된오름을 거쳐 능선 삼거리에 올라선다.(10:40)
왼쪽으로 급히 꺾어서 이어지는 능선길에서 멀리 보이는 인대산 시루떡 같은 정상을 타겟으로 북쪽으로 방향을 잡아 급경사 길을 지쳐
오른다. 구덩이가 파헤쳐진 495봉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조금씩 수정하며 계속되는 급경사에 숨을 헐떡이고, 암릉을 긁어 오른다.(10:50)
오늘 처음 금남길에 합류하여 뒤따르던 대원이 안스러운 걸음에 힘을 보태고자 건네주는 귤맛이 꿀맛이다. 선두를 양보하고 조금씩 뒤처
지며 인대산 급경사에 대비한다.
(멀리 동북쪽... 지난 주 올랐던 서대산도 당겨보고...)
북쪽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을 그리 큰 오르내림이 없는 봉우리를 두어번 넘어서며 고도를 높혀가니 622.7봉 삼각점이 눈 속에서 살짝 얼굴
을 보인다.(11:15) 왼쪽 일양리로 이어지는 진흥광산 내림 능선이 더욱 뚜렸하다. 그 너머로 대둔산이 어서 오라 반기고.. 동북쪽으로 이
어지는 식장지맥 너머로 지난 주에 심설 산행을 즐겼던 서대산이 우람하다. 과연 충남의 최고봉 답게 오른쪽 천태산에서 이어지는 충남북
경계의 산맥을 크게 솟구친다. 오른쪽 경사면을 따라 인대산이 마주 보이는 능선을 향해 내림길을 밟는다. 북사면의 적설이 꽤 미끄럽다.
헐거워진 체인 아이젠을 고쳐 신고 고도를 낮추며 급한 내리막을 거친 후 안부를 지난다. 내일양/건지실 마을을 잇는 듯하다.숲을 이루는
잡목과 소나무를 번갈으니 능선 오름길에 뗏목처럼 엮어 놓은 평상이 보여 잠시 배낭을 내리고 물 한모금 적신다.(11:38) 이어지는 오름
길이 오른쪽 인대산 펑퍼짐한 봉우리를 쳐다보며 만만치 않은 급경사를 이룬다.두세번의 작은 안부를 거치며 590봉 삼거리봉에 올라서니
인대산 쪽에서 선두로 간 대원의 야호가 들려 온다. 뭔가 길이 조금 혼돈스러운가...아무튼 오른쪽 인대산으로 꺾어지는 능선길이 잠시 숨
을 고를 만큼 완만하다가, 급경사 사면을 지그재그로 헐떡거리니 印大山 갈림길 정상에 올라선다. 정맥길은 왼쪽으로 급히 꺾어 내리지
만, 50여m 오른쪽의 인대산 정상을 왕복하기로 한다. 잡목에 가려진 정상이지만 예쁜 소나무 한그루가 있어 표지리본을 매단다.(12:15)
(인대산 내림길 헬기장에서 배티재 능선과 그 너머 대둔산을 바라보니..)
식장지맥(인대산-월봉산-소구니재-마달령-식장산-금강)을 따라 내려서는 인대산 동쪽 능선길을 반대로 돌아 나와 서쪽 대둔산을 마주하
는 오항동 고개를 향해 급한 내림길을 지쳐 내리다가 뭔가 심상찮은 느낌이 전해져 온다. 갑작스레 왼쪽 무릎 뒤쪽의 인대가 신호를 보낸
다. 인대산을 떠난다고..그러지는 않을텐데..아직도 3시간 이상이 남았는데..점점 불안한 마음으로 게걸음을 밟으며 봉우리 오른쪽을 감
아돌아 헬기장에서 잠시 앉아 쉬면서 에어파스를 뿌려본다.(12:40)
5분여를 휴식하며 왼쪽 장단지를 맛사지하면서 오른쪽 산 아래 월명리 계곡을 내려다 본다. 달밝골이라 했던가..어젯밤 산행 버스에서 보
았던 TV 뉴스에 신도들의 방송국 항의 난입을 보도하더니..바로 저 아랫 동네에서 자란 JMS라는 난 사람의 교파라니 아이러니다..교주로
자처하는 정명석의 영문 이니셜이든..Jesus Morning Star든 간에.. 통일교와도 뿌리가 같다고도 하고..참 인간들이란 재미있는 논리에
쉽게도 빠져드는가 보다..스스로 만든 이념과 고집 속에서 편리한 구원의 삶을 잘도 가꾸고 있으니..그러다가 서로 싸우고 지지고 볶고..
믿음이란 명분으로 非信者를 긍휼히 여기며 종교라는 울타리를 치지는 않았는가..부디 종교의 울타리는 제발 벗어나질 말고, 집단의 논리
에 빠져 개인의 자유로운 사고와 자유인의 길로 걸어 가는 인간의 삶에 상채기를 더하는 이단의 집단으로 남지는 말기를..
(오항동 고개 정자에서 양말을 갈아 신고..)
헬기장 왼쪽 급경사 내림길을 조심스레 밟으니 잠시 동안의 휴식이 큰 도움을 주어 그런대로 걸을 만하다. 마주하는 대둔산 암봉들과 배
티재로 이어지는 국기봉 능선을 향해 작은 봉우리들을 서너개 넘어서니 오른쪽 채석장으로 이어지는 오항동 고갯길에 내려선다.(13:05)
절개지 나무계단을 올라 459.8봉을 지나고 오른쪽 묘역을 거쳐 내려오니 조금 전 올랐던 고갯길 포장임도에 다시 내려선다..그냥 생략해
도 좋을 만한 마루금이다. 도로를 따르다가 오른쪽 숲속으로 난 길을 따라 작은 봉우리 오른쪽으로 사면길을 걸은 것이 결국 작은 알바를
또 경험한다. 곧장 봉우리 왼쪽 사면으로 떨어져 오항동 고개 635번 지방도에 내려서야 될 것을 한 봉우리를 더 지나 고갯길 북쪽 석막리
내림길로 향하다가 어렵게 길 아닌 가시덤불 길을 헤치고 내려서니 고갯마루 정자가 한참 멀게 보인다.(13:40-13:50)
서낭당재 정자(春耕亭) 아랫쪽에 앉아 10시간 동안 눈길에 젖은 양말을 갈아 신고 배티재까지의 남은 두시간을 걱정해 본다. 내일이면 벌
써 입춘이련가..어쩔 수 없이 오늘은 힘이 들어도 대둔산 아래에 당도해 놓아야 다음 구간이 편해진다. 다소 힘이 들겠지만 10여분 휴식
후 왼쪽 들머리 계단으로 옮겨 놓는 왼쪽 다리가 천근이다.갑자기 하늘도 흐려지고 조금씩 눈발을 뿌리기 시작한다. 날씨마저 조금씩 추
워지며 이미 후미조가 합류하기 시작하니 아무래도 빨리 서둘러야 같은 시간에 목표지점에 도달할 것 같다..
(국기봉 오름길 봉우리에 예쁜 소나무가 휘날리는 눈발을 맞으며...)
정자뒤의 편안한 능선길 끝봉우리에서 왼쪽으로 내림길을 밟는다.농장 울타리를 지나 고만고만한 작은 봉우리들을 너댓번 오르내린 후
505봉을 왼쪽으로 사면길을 더듬어 올랐으나 내림길에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왼쪽 장단지에 파고든다. 다시 배낭을 내리고 휴식
을 갖는다. 이미 후미조가 스쳐 지나가기 시작한다.오항동 고개를 출발한지가 벌써 한시간인데... 눈발은 점점 굵어지는데...국기봉 능선
오르막길에선 어느 정도 견딜만하다. 문제는 내리막을 지치기가 힘겹다. 한동안 경험하질 못했던 통증에 저어기 겁이 난다. 다행히 새벽
의 어프로우치 구간에서의 무리 탓이길 바란다.국기봉 갈림길인 570봉에서 90도 오른쪽으로 내려서면서 배티재로 향한다. 대둔산과 천등
산이 눈발 속에서 점점 흐려진다.(14:56)
(천등산과 대둔산이 눈발 날리는 석양을 안고서...)
점점 고도를 낮추며 서너개의 작은 봉우리를 다리를 끌며 넘어섰지만 마지막 진산휴양림 임도와 만나는 급경사 내림길을 내려 서는데
10여분이 걸린다.(15:30) 결국 오른쪽 임도로 내려서서 진산휴양림 쪽으로 길게 우회하기로 한다. 마지막 남은 통신기지국과 413봉은
결국 마루금을 벗어날 수 밖에 없었다. 긴 휴양림 시설 도로를 따라 배티재(梨峴) 17번 국도 휴게소에 다다르니 마지막 봉우리를 내려서
는 후미조와 시간을 맞춘다. 임진년의 "무민공 황진장군 대첩비"가 고풍스럽다...백제의 후손들이 지켜 낸 내 땅의 지나간 숨결을 마신다.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네가 본 건, 지붕 덮은
쇠항아리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
..................
.................
..................
차마 삼가서
발걸음도 조심
마음 모아리며.
서럽게
아 엄숙한 세상을
서럽게
눈물 흘려
살아 가리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신동엽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배티재 대첩비)
2/11 道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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