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시간표)
3/27 22:00 사당역 출발
3/28 03:40 오기리 광석마을 출발
04:00 덕재 (2km)
04:40 휴양림 갈림길 2.1km
05:30 검마산 들머리 임도
06:00 검마산
06;40 검마산 주봉(1017.2) 3.5km
07:00 918봉(매봉산 표시)
07:30 임도(차단기)
08;30 (아침식사 후 출발)
09:40 백암산 갈림길 5.7km
10:00 백암산
10:30 (백암산 갈림길 복귀 후 출발) (1.5km)
12:30 921봉(매봉산 표시)-20분 휴식
13:20 윗 삼승령 4.7km
13:55 굴바위봉
14;30 아랫 삼승령 2.8km
14:50 저시마을 (1.0km)
11시간 10분 23.3km
(검마산 오름길 여명)
2010년 3월 26일 21:15 백령도 앞바다의 비극은 훗날 이 땅의 긴 슬픈 이야기 중에서 또 어떤 秘史를 이룰까..
해답없는 T.V.를 지켜보며 꼬박 밤을 지새우고, 독한 술 잔을 앞에 놓고 온갖 상상력으로 24시간을 넘겼건만,
칠흑의 바다에 갖힌 영혼들을 뒤로한 채 산마루금 오랜 영혼들을 맞이하러 떠나는 눈길이 감길줄을 모른다.
부디 기적같은 생환이 이루어져 어줍짢은 예감들이 틀려지길 바랄뿐이다. 한 점 감춤 없이 빠른 발표를 바란다.
덜 여문 정치세력을 싫어하듯, 합리적인 경제세력으로 거듭날려면,정부의 부디 정직하고 기민한 조처를 기대한다.
한티재 넘고 수비면 高原지대를 平野처럼 돌아 들어 너븐들(廣石) 덕재(장파령,죽파재) 들머리를 더듬는다.
달빛 잃은 보름밤의 하늘에서 눈비마저 뿌리기 시작하니, 답답한 발길이 추를 달고 먼 길 떠나는 기분이다..
(백암산 안부)
장파 고개 마루금에서 사그락대는 눈길을 좇아 예닐곱 봉우리를 무심으로 오르 내리며 내 발길은 좌우로 흔들린다.
한티 아래 발리 산촌의 불빛은 새벽이 깊어도 꺼질줄을 모르는데..민주사회 연습 60여년에 참 많이 달라졌는데..
변하질 않는 것은 자본화 하질 못한 내 고향, 내 농촌의 무계급, 무존재적 삶이로고..행여 낭만이나 싻틀려나..
이 땅의 근대화 역사 속에서, 온통 다 뺏기고 해체 당했던 내 고향길을 다시 찾아 내리며 난 무엇을 건졌는가..
농토와 바꾼 돈으로 늘린 책 가방 끈 속에 수입된 민주주의를 한가득 꾸겨 놓고 '위에서 부터의 혁명'을 배웠는가..
빠른 걸음으로 닿은 검마산 휴양림 임도에 서서, 밀려 오르는 작은 변화를 온 몸으로라도 느끼고 싶건만, 아직 어둡다.
(백암산 임도 아침)
갈미봉(918.2) 된오름이 싫어 행여 달밤에 보부상 흉내나 낼까 하고 장파 마을 반짝이는 불빛 벗삼는다.
검마산 들머리까지 긴 임도를 돌아 오르는 하얀 눈길에, 구름을 뚫은 희미한 희망이 간간히 새어 나온다.
장파천을 안고 사는 죽파리(대두들,大山谷) 오십봉은 검은 밤을 솟구치며 온 새벽을 호령하며 홀로 왕성하건만..
젊은이여, 부디 그 어둡고 찬 물 밑에서라도 그 기개로 버티고 버텨, 부디 좋은 세상 구경 할 수 있기를..
소위 언론이라 떠드는 잘난 지식인들이여 지금 이 땅에 벌어지는 웃지 못할 비극을 제대로 보고 있느냐,
서양에서 배운 선거가 ,땅 파며 고향지키고 내 자식 걱정하는 백성들에겐 생소할 뿐, 무슨 지역주의라나..
내 손으로 뽑았던 그 原罪를 지고 평생을 시달려야 하면서도 결국 버리지는 못할 代議 민주주의여..
부디 제대로 배운 가방끈도 많이 길러내어, 똑똑한 공무원도 만들고 감시하는 정치꾼도 키워내야 할텐데..
근대화 100년에 아직도 그놈이나 저놈이나.. 미숙한 도둑질에 눈 어두운 創世記에 머물고 있으니, 아서라..
(적송)
劍磨山 찾아 오르는 길이 쌓인 눈으로 미끄럽다. 영양 땅 산골 오지에 石骨 산나물 캐기도 이리 힘들겠지.
頂上은 어떠하고 主峰(1017.2)은 또 어떠하드뇨..발길 자주 닿아 눈 아래 내 땅 살필 수 있으면 그게 맞지..
두루 발품을 쉬어 가며 뿌연 새벽을 맞이하고, 구슬령(九珠嶺) 지나 望洋으로 향하는 金藏支脈을 가른다.
조금씩 밝아 오는 여명 속에서 이 땅의 정치 현실은 아직도 캄캄한 어둠 속을 헤매고 있음이 안타깝구나.
스스로 중산층으로 자부하며 경제민주의 꿈을 키웠더니만..끝없이 추락하는 삶이 하도 어지럽기만하여..
배운자들은 결국 이중적 성향으로 흘러가, 민중을 부르짖으며 또 한 발은 현실소외의 증오로 변하는구나.
아직도 빈곤과 불평등과 不正이 顯在하는 한에는 당파도 필요 없는 반정치를 향해 욕구불만만 늘어 가겠지..
918봉 지나 편한 내림길 밟고 선시골(신선골) 넘어가는 임도에 닿아 백암산 바라보며 아침상을 차린다.
(백암산 정상)
1시간 여의 긴 오름으로 여남은개의 작은 봉우리들을 오르내린 후에야 白巖山(白嶺山) 정상에 선다.
悉直國 이래로 王의 피난처가 되고, 逆鄕으로 등진 삶을 살아야 했던 울진 땅을 내려다 본다.
산 아래 남대천을 따라 내리면 월송정 가기 전 평해 땅이 반가울테고..전쟁을 피하던 K노인도 아직 젊다.
배운자의 낭만적 농촌운동이나 염세적 글쓰기가 때로는 농민이나 대중에게 정치적인 嬌態로 변하고,
그들의 反社會性이 미신적 전통주의로 돌변하여 가슴 속 가득한 특권 의식의 왜곡된 표현이기도 했던 시절..
그렇게 그들의 野黨 성향은 비민주적이라는 誹謗의 구실만을 찾아 정치경제적 소외감을 달래야 했으리라.
모든 것이 숨겨지고 왜곡되어 온 이 땅의 현대사에서 저기 저렇게 동해를 향하며 서울을 등진 심정이야..
(888봉-백암산)
南으로 栢樹山 가는 길에 할매산성(古母山城)을 이루고, 밝말(靈岩, 밝은 마을)을 밝히는 흰바위길을 이룬다.
백암/백수 이름을 두고 암수를 상상할 리야 없겠지만, 굳이 편들자면 백암산이 남성적이고, 백수산이 여성적이다.
무릎까지 빠지는 백암산 눈길을 되돌아 내려 맥길 갈림길에 주저 앉아 잠시 목을 추기며 고된 발길을 추스린다.
전쟁이 끝나고 서울로 향하는 K노인의 발길도 이 쯤에서 쉼다리를 거쳤을까..증오가 혼입된 정치적 반항성이 결국
無力의 諦念으로 흘러가, 조국의 파탄을 외면하고 시대와 세상을 외면한 채 안전세계로 도망치듯 침묵을 배웠다.
그리하여 비판과 항의를 포기한 그들의 침묵이 권력층에겐 더할 나위 없이 착한 우군으로 뒤바뀌는 결과를 가져왔다.
888봉을 지나 발딱재를 감아 오르는 山中 임도를 만나고, 내 영혼은 깨끗하고 넓은 未踏의 눈길을 걸어 본다.
(칠보산 지맥)
942봉(복암산) 오름길이 꽤 힘겹다. 작은 봉우리 묘소 위에 赤松 한 그루 垓子林(도래솔)으로 우뚝하건만,
찾는 이 없는 후손을 그리다가 삭풍에 정수리 다 깎아 먹고 잔설에 덮힌 옛 이야기가 전설로 남을래나..
다가 올 지방 선거를 두고 난무하는 정당들의 이합 집산을 보며 이 땅의 정치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일제에 대한 배타 감정에서 비롯된 배운자들의 政治化 동기가 4.19를 거쳐 현실참여의 정당정치를 향했고,
결국 정치적 지식인의 책임의식이 총체적 불신감과 맞물리니 착한 백성들과는 먼 거리의 정치꾼으로 남는다.
행여 또 <리바이어던>의 힘을 가진 군대가 튀어 나올까 두렵기도 하건만, 언론은 지배층에게 끌려다닐 뿐..
921봉(매봉산) 헬기장을 찾아 오르는 길이 또 한번 된호흡을 몰아치며 지친 발길이 자꾸만 늦어진다.
(임도)
매봉산 헬기장 그늘에서 마지막 휴식을 취하며 다시 넘어야 할 굴아우봉 칠보지맥을 바라본다.
칠보산 아래 조금리 수곡 계곡은 아직도 겨울 잠을 자고 있고, 동해 바다는 운무 속에 낯을 가린다.
이 땅에 의회제도는 60여년의 연습에도, 국가와는 무관한 정치행동으로 행정과는 따로 놀고 있으니,
나랏님 한 사람을 國父로 모시던 옛날로 돌아가고 싶은 퇴행의 불신감만 난무할 만큼 대책없이 노는구나..
오늘 저 바닷 속에서 생사를 가르고 있는 젊은이들이 무엇을 지키기 위한 고난인지 너희가 아는가...
부디 오래지 않아 새로운 지식인과 토속의 백성들이 참여할 새로운 민주주의의 장이 열리길 바란다.
정치적 자본주의에서도 벗어나 경제 독점의 어긋난 관행도 씻고 합리적인 富의 세계를 열어야 한다.
이제 일본식 법조체계에 젖은 전통 아닌 수구에서도 벗어나 환히 열린 정보의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윗삼승령 고개로 내려서는 길에 유난히 많은 아름드리 赤松 행렬이 그나마 내 땅의 무궁한 힘을 보여준다.
(매봉산 능선)
굴아우봉(굴바위봉)을 마주하며 오르는 길이 파도처럼 잔등성이가 길게 이어진다.
오른쪽 기산리 외딴 마을들은 주황색 지붕으로 드문 드문 산 속 그림 같은 삶을 지탱하고 있는데..
아직도 지방도 정비가 늦어져 찻길이 열린듯 아니 열린듯 곡예를 해야 된다고 하니 오지 탓만 할 것인가.
이 곳도 사람 사는 곳이라면 이제 고루고루 투자하여 작은 발전을 도모해야 할 터인데..
제 밥그릇 싸움에만 기를 올리고, 경제적 지방 분산의 필요성을 깊이 생각지도 않은 채,
단순한 인구이동과 전통적 기득권의 해체로 보고 있으니.. 언제 진정한 새로운 통합의 길이 열릴까..
자칫 조직화 된 집단 이기주의가 반전통의 현대화는 커녕 새로운 관료독점을 불러 올까 저어스럽다.
삼승바위 위에 앉은 세 정승의 유유자적이라면 모를까 바쁘게 사는 오늘날 어디 가당치나 한 법인가..
(굴아우봉 삼승바위)
창수면 독경산 아래 저수지를 내려다 보며 아랫삼승령 고갯길을 급히 서두르지만, 맥길 날머리는
언제나 마지막 시련을 나누어야 또 한 구간을 매듭 짓는 법, 두세 고개 빡세게 넘고서야 끝을 맺는다.
작은 공원으로 꾸며진 보림고개에서 저시마을을 찾아 피곤한 발길을 터벅거린다.
울진군을 벗어나 영덕군으로 접어드니 경북 땅이 참 크기도 하구나..강원도 만큼 산중 오지를 간직한
한반도 등허리에 언제나 쉬운 손길로 가려움을 긁어낼까..좋은 세상 찾아 오는 날 편한 걸음 다시 걸어가리라..
우리의 현대화는 특정한 계급 세력의 발전과정이 아니라, 무엇에서 부터 출발해야 하는가를 다시 생각할 때다.
(아랫삼승령)
4/1 道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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