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시간표)
10/10 09:20 산성고개 출발
10:00 남문
10;30 (휴식 후 출발)
11:00 만덕고개 3.4km
12:00 만남의 광장
12:45 불웅령
13:15 백양산 5.4km
14:13 삼각봉
14:40 서향봉
15:00 개금 초교 4.5km
5시간 40분 13.3km
(노송)
전날 첫 조카 며느리를 맞는 들떤 기분에 과음을 한탓에 조금 어지러운 머리로 식물원행 버스에 오른다. 마을버스로 산성고개에 닿는다.
아직은 계명봉 넘어 산성길을 거쳐 오는 낙동 팀들이 도착하질 않았다.남문 쪽 들머리를 챙긴 후 초소에서 커피 한 잔 얻어 마시니 좀 낫다.
잠시 후 선두조들을 만나 반가운 손을 나누고 맥주 한 잔으로 부산 고향 턱을 대신한다. 새벽 길을 달려 온 장한 걸음들에 경의를 표한다.
들머리 입구에 계단 조성공사가 한창이라, 화장실 옆 계단길을 올라 대륙봉이라 일컫는 넓은 편평바위에 올라선다. 해운대가 지척이다.
요즘은 수영강을 따라 물고기도 제법 오른다고 들었다.어느 봄날 春川歸魚라도 즐길 수 있을까..발밑 서면의 휴일이 답답하게 펼쳐진다.
40여년전 교통부 자리에서 전차를 타고 부산 시내를 한바퀴 돌아야 도착했던 구덕산 기슭을 이젠 터널로 내달리는 세상이 되었으니..
아스라한 수영만 끝자락이 추억과 함께 고층의 신기루를 쌓아 올리고, 아직도 광안리 모래틉에 묻어 둔 소년의 꿈은 유효한 것인가..
(대륙봉-장산)
대륙봉을 지나 억새 밭 편한 길을 길레 내려 걸으며 오른쪽 상계봉으로 이어지는 서문 길 산성 능선을 담아보고, 암릉길을 따른다.
내가 걷는 이 길이 무슨 큰 의미를 가질 것인가 하는 것은 나도 잘 모른다. 단지 보잘 것 없는 일들도 내 생애에 나름의 중요함을 느낄 뿐..
이것이 별로 중요치 않은 맥길 잇기라 하더라도 마지막 몰운대에서 뒤돌아 볼 때엔 무의미한 것이 아니리라..내 삶의 중단이 없듯이.
우리의 삶은 앞날을 예견하고 소설이나 연극 속의 주인공을 지켜보는 관객의 삶이 아니다. 직접 자유를 실천하는 배우의 삶을 살고 있기에.
나는 나의 과거 처럼 지나 온 발길에 의해 조종되는 그러한 삶이 아니라, 내 앞에 펼처지는 저 멋진 미래를 향한 길에서 자유를 찾는다.
그리하여 나는 물질의 과학으로 중무장 되고 예견되는 미래를 믿지 않는다. 자유로운 의식이 빚어 내는 내 의지의 발걸음만 믿을 뿐이다.
(제2망루)
임도에 올라 서서 잠시 왼쪽 제2망루를 돌아 보고 금강케이블카 표지를 따라 남문쪽 시멘트 포도를 걸으며 공터 삼거리에 닿는다.
아직은 이른 계절이라 金剛晩楓도 익지 않았을 것이고, 추억의 산성 막걸리와 동래파전 생각에 잠시 마루금을 벗어나기로 모의한다.
성곽을 따라 남문에 이르고 남쪽 만덕촌 식당가에서 휴식을 취하며 간단한 조찬을 즐긴다. 젊은 시절의 추억과 회한을 함께 마신다.
어린 시절의 화려한 경험이 늘 지속되어, 과학 처럼 우리의 미래 또한 채에 걸러진 예견으로 남아 앞날을 보장 받을 수 있을줄 알았다.
나의 혼동과 의지의 행동과는 아무런 닮음도 없는 것을.., 결국 나의 자유로운 발길이 나아가는 것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것을..
다시 만덕고개로 향하는 마루금을 찾아 케이블카 방향 사면을 따라 오르고, 철학로 방향 조림지를 거쳐 낙동정맥 안내판을 만난다.
임도 처럼 넓은 등로를 따르고, 큰 묘역을 지나 만덕고개에 닿는다. 60년대 김현옥 시장의 불도저가 지어낸 동래/구포의 첫 소통이다.
(금정산/상학산(상계봉))
차량은 2개의 터널에 맡긴 채 한적한 등로로 변해가는 포장 고갯길을 건너 통나무 계단길을 숨가쁘게 걸어 돌탑 안부에 올라 선다.
왼쪽 송전탑 봉우리를 올라 사직동 운동장을 내려다 보니, 아직도 메아리치는 부산 갈매기의 함성이 크게 사직 야구장 위를 맴돈다.
유난히도 야구를 좋아하는 부산 사람들..중고교 시절의 추억이란 거의 야구장 응원으로 가득 찼을 정도다. 비를 맞으며 고함치던..
통신 중계소가 있는 365.9봉 암봉을 넘고, 긴 소나무 숲을 걸으며 철학로 갈림길에서 삼림욕을 즐기는 동래구민들의 휴일을 엿본다.
왼쪽 금용산 갈림길 오르막 길에서 황해도민의 望鄕碑를 살피고, 전쟁이 가져다 준 피난민 생활을 떠올리며 부산 땅의 애환을 담는다.
각지의 전쟁 피난민이 몰려 들었던 이 척박한 도시.. 전후에 태어 난 세대들에게 고향의 의미보다는 각박한 생존을 일깨워 준 도시..
살기 위한 몸부림 속에서 자연적인 법칙의 동일한 결과를 거부하면서, 흘러 버린 시간의 흔적을 지우고 혁명만이 살길이라 배운 땅..
오른쪽 넓은 길을 따라 '만남의 광장'에서 숨을 고르며 백양산을 향한 된오름을 준비한다.왼쪽 성지곡 수원지 대공원 길이 분주하다.
(불웅령/백양산 오름길)
백양산을 향한 급한 경사길에서 몇번씩을 쉬어가며 지나온 금정산의 고당봉과 상계봉을 뒤돌아 본다. 만덕터널을 지난 구포다리도..
6개로 불어난 낙동대교들..김해 대저 땅을 부산으로 편입시켜서라도 좁은 주택지를 해결해야 했던 이 나라 제1의 항구도시 부산 땅..
기름 종이 천막 가옥이 지붕을 잇던 산골짜기 마다 번듯한 아파트가 참 많이도 들어섰구나..이제 이 남녘의 항구에 고향을 차리겠지..
긴 된오름으로 암릉의 연속을 힘겹게 긁어 오르고 나서야, 돌탑이 쌓아진 611봉에 올라선다. 부서진 정상석에 '불웅령'이라고...
지도 제작사의 실수가 빚어 낸 웃지 못할 지명들..본래 이곳은 구포 모라쪽 蛛蜘峰으로 이어지는 낙타봉이었는데..부처님을 연상하여
'佛態嶺'이라 불렀건만, '態'와 '熊'의 글씨가 혼돈되고, 고갯길과 고스락이 혼동되어 설왕설래 하는 곳이다. 정상석 명칭은 틀렸으나,
그 위치는 고개 넘어 안부를 고집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초읍과 모라를 넘나드는 고갯길이 고스락을 지나고 있으니 '불태령'이 맞다.
(낙동강/동신어산)
자꾸만 시선이 고향 김해 벌판과 낙동강으로 쏠림은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두해 전 겨울 날 신어산을 넘던 낙남길이 그립다.
숱한 사연을 읽고 사건을 만들며 걸었던 낙남 길..고향 선산을 향해 절하고 낙원묘지에서 약초술 한잔에 곧장 병원으로 실려 갔던 일..
마주하는 백양산을 향해 억새밭 긴 방화선을 따라 내려서고, 많은 행락객의 음식 냄새에 시장끼를 느끼며 편하게 전위봉을 향한다.
당감동의 화장터 이야기, 성지곡의 아름다운 추억들을 되새기며 쉬엄쉬엄 내딛는 걸음이 반짝이는 억새 숲을 지나 백양산에 닿는다.
초읍 쪽 선암사 등로도 뚜렷하게 정비되어 있고, 모라 쪽 운수사 등로도 뚜렸하다. 白楊山이 선암산, 운수산으로 각기 불린 이유다.
광복동 거리를 생각하며 석빙고 아닌 팥얼음 케키 하나를 사먹는다. 헬기장을 이루는 愛津峰 광장에 내려서서 이슬이 한잔을 기울인다.
(애진봉)
운수사 갈림길을 지나 암릉 오르막을 거치고 돌탑 508봉에 올라 서니 남으로 구덕산이 마주한다. 밑으로 백양산 터널이 지나고 있다 .
대구-마산 고속도로를 거쳐 부산항으로 이어지는 화물 컨테이너들의 주요 수송로이며, 사실상 부산의 한가운데를 지난다고 볼 수 있다.
다시금 이어지는 맥길이 암릉으로 제법 까다롭게 오르내린다. 억새 밭길 옆에 구절초 하얀 흔들림이 하얀 교복의 소녀를 떠올리게 하고..
긴 암릉 오르막을 다시 밟고 삼각봉(조개바위) 큰 바위를 넘어선다. 개금동과 엄궁을 지나 낙동강 하구언까지 이 길의 끝이 보인다.
참 길고도 어려운 여정이었나 보다. 내가 돌아 보아도 사람의 발길이 무섭게 여겨진다. 이것이 한 인생의 전부는 아닐지라도 보람은 있다.
내가 찾아 나섰던 '自由人의 길'이기에 더욱 그러한지도..그러나 지금도 그 자유는 지나온 저 뒤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앞서 가는 것을..
그렇다. 자유란 흘러간 과거의 영화로움도 아니고, 더구나 허망한 한 묶음의 추억으로 남는 것은 더 더욱 아님을 나는 이 길에서 배웠다.
'自由'란 적어도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 위에서, 그리고 흐르고 있는 시간 속에서 찾거나, 아니면 내게 남겨진 미래 속에서 찾을 일이다.
(개금동/구덕산)
암봉들을 거치고 405.6봉(갓봉)을 지나면서 오른쪽 괘법동 길을 버리고, 당감동 쪽 급경사 길을 밟아내려 헬기장 공터에 닿는다.
편한 걸음으로 敍香峯을 지나고 임도길에서 길게 훈련장을 왼쪽으로 감아 돌고, 텃밭을 거쳐 개화초교 정문 앞 개금동 길에 내린다.
거문고를 켜던 냇가(溪琴)는 복개되어 사라진지 오래고, 맥길 고층 아파트를 비켜 돌아 개금고개 큰 길에 나서니 감회가 새롭다.
김해-부산의 유일한 소통의 도로였던 이 곳 주례/범천 고갯길..황량했던 텃밭들엔 이미 빽빽한 건물들이 들어서고 번화가를 이룬다.
開琴峙 마루턱을 지하로 건너겠지..마루금을 찾는 내 걸음이나, 표지 하나 갖추고 정맥을 새기지 못하는 지하철이나 둘다 한심하구나..
오랜 벗이 있어..이 곳 주례 땅을 기억하는 나눔이 있어..산성 길 더듬어 실어 온 '산성 막걸리' 한 잔으로 또 한 구간 맥길을 마무리 한다.
구덕산을 넘어 승학산 억새밭을 물들이는 저녁 노을을 그리워 하며,보름 후 터덜 거릴 산마루 길이 부디 눈물 고이지 않기만 바랜다.
(서향봉)
10/15 道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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