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시간표)
12/24 04:00 개금역 출발
05:10 엄광산 2.4km
05:40 구덕령 1.6km
06:20 (식사 후 출발)
07;10 구덕산 1.0km
08:10 대치고개 2.1km
09:00 괴정고개 3.2km
09:40 장림고개 2.0km
11:00 도원정형외과(20분 휴식)
11:50 아미산 3.5km
13:00 몰운대 4.0km
9시간 19.8km
(고교동기/몰운대)
인간은 오래전 부터 모임을 갖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운명을 위하여 숙명적인 충성과,
바깥 세계와의 투쟁을 위한 희생을 강요한다.
도덕이란 명제하에 좀처럼 벗어날 수 없는 지성의 굴레 속에서,
때로는 객관적인 동질의 공간 속에서 주어진 법칙에 따른 삶을 산다.
어린 시절, 나는 학교의 교문이 아닌 담장을 넘나들기 좋아했고,
동질을 강요하는 교복 속에 갖힌 나를 싫어 했고,시험공부가 싫었다.
조금씩 철들어 가면서 살아 있는 나를 찾아 헤매는 길이 점점 깊은 숲속의 길로 빠져 들고,
애매한 회색의 길 속에서 많이도 헤매었다.
내 안과 바깥의 공통을 찾는 길이 왜 그리 멀고 고달픈 것인지..
걸으면 걸을 수록 멀어지는 '자유'를 찾아 내 삶과 행동은 거칠어 간다.
어떤 때는 내 행동이 자유로워 보였다면,
그것은 우리가 배우고 강요 당하는 어떤 도덕과 규칙으로 단지 설명할 수 없다는 것 뿐이다.
그것은 내가 찾는 '자유'의 정의도 아니요, 필연적인 도착점도 아니다.
내 바깥의 지배와 상반되는 어제의 또다른 그림자일 뿐이었다.
(엄광산)
호텔을 빠져나오는 새벽, 가을비 치곤 제법 굵은 빗줄기로 오늘의 행로가 착잡해진다.
개금역 백병원 오르는 包道가 물에 젖어 어둡다.
5년 여 동안 수없이 걸어 온 밤중 들머리 찾기가 오늘도 그리 만만치 않다.
이미 마루금 중턱까지 치달은 인간의 삶이 어지러운 탓이다.
아파트 옆 공터를 지나 어디 가야금 소리 들리기엔 너무 삭막한 개금(溪琴) 고개를 벗어나며,
주례(두레,변두리,냉정) 어귀를 내려다 본다.
김해-부산을 오가며 산 중턱 학장구치소 담장만으로 내 기억을 차지했던 그곳에도,
이젠 도시의 세월이 꾸며 놓은 야경이 꽤 화려하다.
오래 전 부산의 대표적 정경을 연상시키는 산중턱 좁은 바라크 골목을 지나고,
샘터 왼쪽 오르막을 올라 임도옆 정자에서 우의를 벗는다.
더위에 젖는 것 보다는 비에 젖고,귀찮지만 작은 우산을 바쳐든채로
오늘은 여유로운 걸음으로 부산 땅 하늘 길을 걸어 몰운대에 닿으리라.
엄광산 전위봉인 503.9봉 공터에 올라서니, 비내리는 급경사 암릉길을 1시간 남짓 힘들게 지나왔다.
날씨만 좋았으면 보름달이 밝으련만..
범일동 안창 마을을 거쳐 오르던 수정봉 능선길을 만나고,
임도처럼 넓은 오르막을 걸어 嚴光山(504,高遠見山) 정상 팔각정에 닿는다.
(구덕산)
오래도록 해가 비친다는 이름 탓에 엄광산정을 두리번거려 보지만,
칠흑의 젖은 밤은 아직도 여명을 준비하기엔 너무 이른 모양이다.
계단길을 걸어 내리고 편백 숲길을 따르며 오른쪽 구덕령 내림길을 조심스레 살핀다.
대청동에서 구봉산을 거쳐 오는 갈림길을 만나고,
내원정사 철조망을 따라 내려 구덕령 고갯마루 내원정사 입구 포도에 닿는다.
이른 새벽이라 아직은 식당문을 열지 않은 채 어둡다.
단 한곳의 젊고 유쾌한 젊은이 탓에 명물 시락국을 맛본다.
멸치 한마리를 가늘게 찢어서라도 여러 그릇의 국물을 우려내던 시락국..
피난길 쓰레기(시래기) 같은 우거지에 그렇게도 맛난 생선 내음을 풍겨 낼 줄 알았던
그 국물 속에는 눈물의 조미료가 섞였을게다..
날이 밝아 오며 꽃마을 잘 단장된 공원길을 지나면서 도로를 버리고,
구덕산정 시설물을 향해 숲 속 비탈진 능선길을 직접 찾아 오른다.
세찬 비바람에 작은 우산이 날려 다니지만, 얼굴 하나 가리며 카메라 보호용으로 버릴 수도 없으니..
시설물 철조망 길이 미끄럽고 힘들다.
(사하구 하단)
몇해전 가을날 석양에 올랐던 승학산 너른 억새 밭은 가을비에 젖은 채
축축한 오늘이 원망스러워 구름으로 낯을 가리는구나..
왼쪽 능선을 타고 내려 시설물에 정상을 뺏긴 구덕산 정상석에서 기념을 남긴다.
발 아래 대신동 전차길이 충무동으로 이어지는데..
흐린 빗속에서도 부평동 흑교(검정다리) 파출소도 보이고,
영남극장 다리 밑에 개도 짖고,
보수천 따라 이어지는 넝마도 보인다.
영주동 터널도 보이고,
영선고개 넘어가는 40계단도 보이고,
보수동 책골목도 보이고,
공원 아래 아파트 뒷길에 꿀꿀이죽도 보인다.
시약산을 향한 포장길을 거쳐 시약정자를 지나고 남쪽 대티고개 내림길을 찾는다.
오른쪽 전망바위에 올라 사하쪽을 내려다 본다.
사하학교에서 마라톤을 시작하고, 에덴공원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을숙도에서 조갯배를 타고 재첩을 건지는 자유인 소년이 보인다.
하단 끝 분뇨처리장으로 가는 똥차들의 냄새가 밀려 오고,
새벽 아침 해장국 장수 여인네의 목소리도 들린다.
"재첩국 사이소...."
(대티고개)
사하구가 내려다 보이는 당리동 뒷산 전망바위를 뒤돌아 내려와 긴 사면을 거쳐
넓게 꾸며진 괴정/수도사 하산길 안부에 내려선다.
마치 제주도 돌담 묘소를 연상시키듯 넓게 마루금을 차지한 호화 묘소가
뭐 그리 오래 된 시조묘는 아닌 것 같고 지나친 느낌이 든다.
편한 오르막으로 218.3봉을 올라선 후 급경사 내리막을 지그재그로
잘 정비해 놓은 길을 편히 걸어 내려 마을 뒷길 초소에 닿는다.
달동네..
양반스럽게 月谷洞이라 부르지요..달빛 아래 책을 읽고, 달에 가까운 山頂 동네..
달래꽃 벗 삼다가 달구질 소리에 떠나는 동네..
참새도 오장육부는 있다는데..
바라크를 벗어나 공동 화장실과 공동 취사를 해야 했던 슬픈 동네가
이젠 어엿한 시멘트 담장을 둘렀다.
좁은 시멘트 골목길을 걸어 내려 대티고개(大峙) 포장도로를 건넌다.
70년대초 대티터널이 생기기 전에는 숨가쁘고 붐비는 도로였다.
아마도 그 이전 부터 이 마루금을 지켰을 법한 골목안 이발소 뒷칸에서
40년 묵은 체증을 쏟아 붇고 나니 아미산으로 날아 오를 것 같다.
(247.2봉/우정탑)
大峙(한티)고개 왼쪽 부민동 산복도로를 걸어갈 요령이었으나,
대원들을 일부러 둘러가게 할 수는 없고..도청 뒷길 골목은 어떨까.
가게 옆 골목길을 지나 텃밭 고개를 넘고 꽤 넓혀진 까치고개(小峙)에 내린다.
토성동 전차길로 이어지는 좁은 아미동 시장길이...
산복도로 하늘길 따라 결코 부자를 꿈꾸지 못하는 백성들의 슬픈 한숨의 계단이 이어 지던 곳,
富民山(아미산) 아랫동네가 그립다.
주차장으로 변한 화장터 위 텃밭길을 지나고 급경사를 잠시 올라
옥녀봉 공동묘지터를 지나며 천마산 아래 감천동을 내려다 본다.
발 아래 태극도(대순진리회) 마을의 푸른 지붕이 바다보다 더 푸르지만,
파스텔색의 마츄픽츄 속에 감춰진 피난의 역사가 장엄하다.
아미동과 초장동을 거쳐 걸어 넘던 감천고개가 어느새 사하구를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가 되고
감천만 서쪽 개발에 큰 공을 이루었다.
246.8봉 우정탑이라 쌓아 올린 돌탑에서 하늘을 향한 소박한 바램을 읽고
서쪽(오른쪽)으로 90도 꺾어 내린 후 극락암 도로를 건넌다.
(봉화산-감천만)
오른쪽 극락암을 내려다 보며 작은 봉우리를 넘어서고 산복 마을에 내려선다.
아파트와 학교부지로 사라진 마루금을 눈길로 더듬는다.
오른쪽 삼경맨션을 휘돌아 槐亭고개 큰도로를 건너고,
해동고교 뒷산으로 넘어가는 텃밭 골목길을 지나 가까스로 마루금을 잇는다.
옛날 (절)영도에 자릴 잡고 불교 사립의 정신으로 저항의 선두에 섰던 전통을 자랑 할 만한 학교다.
사하구가 부산의 강남땅인가..
"잠깐만" 다시 생각하라며 빠져 죽는 설움을 달래던 영도 다리도
이젠 들었다 놓았다 할일도 없어지고, "굳센 금순이"만 남았던가..
갈길은 아직 먼데 어디 고픈배를 채워 줄 중국식당이라도 문 열었나 두리번거려 보지만,
비내리는 이른 휴일 아침에 다들 늦잠이구나.
메밀은 커녕 구호밀 밀면 한 그릇에 매운 고추장 비벼 먹고 한사발 물이라도 들이키면
만사 배부른 행복이 찾아 오던 시절이 그립다.
학교 뒷산 사면을 걸어 예비군 훈련장 고갯길을 지나고,
헬기장 봉우리 아래 넓은 길을 따라 부대 정문에 가로 막힌 마루금을 잇는다.
(다대포항)
장림고개로 향하는 구평동 삼박골짜기를 왼쪽으로,
부대 철조망을 이어 가는 발걸음이 무거워지며 마지막 '영혼의 길'을 멈춘다.
그해 여름의 비극은 이 땅의 최남단 동매산 독지고개 골짜기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비내리고 한낮이 어두워지며 恨 맺힌 울음운다.
아직도 못 거둔 영혼들의 넋을 깨우는 진혼가 한자락 제대로 불러 보지 못한 채,
산산골골을 돌아 나온 영혼들의 힘으로 함께 일으킨다.
군부대와 학교 마당으로 사라진 마루금을 오른쪽에 두고 아파트 옆을 돌아 내리고,
도로를 따라 걸어 장림(구평)고개 건널목을 건넌다.
渴馬飮水의 감천만이 화력발전소와 더불어 에너지 유조선들의 전문항으로 개발된지도 오랜 모양인데..
수산물 냉동창고들이 낯설구나..
구평동 부두쪽 신작로를 걷다가 오른쪽 봉화산길 들머리를 더듬어 오르고,
급경사길에서 감천항을 내려다 보며 봉화산 공터에 닿는다.
지친 배낭을 잠시 내리고 빗 속에서나마 한 잔 이슬이로 답답한 걸음을 달랜다.
이제 한 두시간이면 끝날 여정이 아쉬운지도 모른다.
아파트와 골목 사이에 숨은 채 끊어질듯한 맥길을 찾아 걷는 수고가
저 대륙의 끝에서 어떤 의미로 남아 5년여의 여정을 달랠것인가..
(다대고개/도원정형외과)
봉화산 남쪽 공동묘지 봉우리를 넘고, 용화사 임도를 건너 삼각점봉에서 두송반도능선길을 헤어지고
오른쪽 가구단지로 향해 내린다.
비에젖은 이방인을 향해 짖어대는 멍멍이의 절규가 이해도 간다마는,
산 마루 어디하나 남김없이 파헤쳐진 남새 밭이 아프게 다가온다.
머지 않은 옛날엔 문둥이란 이름으로 '天刑의 벌'을 감내해야 했던 아픈 사람들의 소도였다는데..
아픈 손으로 일구어낸 삶의 일터였던 곳..
얼굴 색 다른 外人들의 일터로 바뀐지 오래고..
비에 젖으며 산길을 내려오는 낯선 방문객이 되려 이방인이 되어 그들의 눈길을 살핀다.
결코 작지 않은 규모의 단지를 돌아 넘으며(가구단지 포장도로-상가도로-동서식당-국제그린 아파트 방향)
미로찾기 게임을 즐긴다.
휴일 아침에 승용차에서 내린 예쁜 처녀가 자신의 거처를 숨기고 싶은듯,
지난 밤의 사랑을 감추며 이방인과 같은 길을 꼬불거린다.
맥길을 벗어난 차도에 내려서 ,동창 벗의 병원이 자리한 마루금길을 등대로 삼고,
휴일날 응원차 대기하며 끓여주는 라면에 힘을 돋운다.
(아미산/응봉봉수대)
오랜 벗의 따뜻한 반김과 응원에 힘입어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이자 맥혈의 정점인
峨嵋山(응봉/예막) 정상을 향한 걸음을 서두른다.
서림사 입구에서 봉화대 방향 오른쪽 능선을 찾아 오르고,
전위봉과 돌탑 안부를 거쳐 봉수대로 잘 단장된 정상에서 조망을 즐긴다.
이제 산길을 벗어나 저 넓은 바다를 향한다.
산을 알려고 걸었던 산길이건만 내 눈에 보인 건 산이 아니라 품어 살아 있는 영혼이었다.
그것은 등산후의 신체적 허탈감과는 분명 다른 느낌으로 나를 감싸 주었고,
허망할 수 없는 걸음이었기에 긴 시간을 함께 했나 보다.
뱃길도 사라진 실향민의 땅, 가덕도의 연태봉도 보이고,
녹산 명지를 부산시에 내어 주고 바다에 접하지도 못하는 金海 땅이 멀고나.
이제 다시 찬 바람 불고 겨울이 다가오면 을숙도 갈대 숲에도
옛 시절의 귀향처럼 변함없이 많은 새떼들이 무리지어 날라들 수 있을까..
일찌기 철이 들어 산 아래에 내려와 '낮은 산이 낫다'고 말할 수 있는 山女人 처럼,
나는 언제나 저 산 아래서 먼 산을 관조할 수 있을까..
오른쪽 하산길을 더듬으며 편한 걸음으로 홍티고개를 향하면서
陽穴터 박영효의 무덤터를 두리번 거리지만 흔적을 찾기 어렵다.
(다대포/몰운대)
낙동강 하구 아름다운 홍티(虹峙)마을(무지개마을)도 공단으로 변한지 오래고,
낙동강 하구의 숭어 잡이도 이젠 옛 이야기가 되었나 보다.
거대한 아파트 단지로 조성된 마루금의 흔적을 따라 불안한 걸음을 비틀거린다.
(롯데2단지-4단지-몰운대초교-성원상떼빌-다대포 백사장)
이젠 저 바닷가에서 모든 짐을 내려 놓고 긴 시간 멀고도 먼 길에서 만나
함께 걸어 온 모든 영혼들과 작별을 고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구나..
왠지 눈가에 이슬이 맺히지만 다행히도 빗물에 섞여 별로 표시는 나질 않겠다.
나의 억척스러운 투쟁의 발길도 점점 아픔을 더해 가는데..
한가로운 갈매기 날으는 맑은 날의 백사장은 아니지만 축축한 비안개 속에서도
넓은 모래톱은 긴 시간 쌓고 쌓여 온 전설을 철썩거린다.
내가 보고자 했던 능선의 끝이 보이는데..
다시 시작되는 바다를 향해서 무엇을 실어 보내고 또 무슨 꿈으로 헤쳐 나갈 조각배를 띄우려나.
바닷가 제방길을 차지한 횟집들의 비린내 속에서 빗길에 마중나온 벗들의 손을 잡지만,
차마 마주하질 못하는 시선을 돌려 빗물에 가린다.
'沒雲臺'..
앙징맞은 표석이 반겨 주는 陸繼島를 향해 걸으며 맥길 아닌 맥길을 이어간다.
고즈넉한 솔숲 길을 걷는 발걸음이 빨라진다.
이제 이별의 순간이 길어지질 않고 진정한 나를 느끼며 내 안에서 맴돌던
아픈 기억의 영혼들을 저 바닷가 자갈마당에서 띄워 보내야 한다.
옮겨와 자릴 잡은 鄭雲 장군의 다대포객사를 지나고,
화손대 길을 벗어나, 쥐섬이 마주 보이는 돈대곶에서 마지막 걸음을 멈춘다.
아무것도 잡히질 않는 그 무엇을 위해 걸어 왔던가..
아무런 바램도 없었던 그 길을 어떻게 이어 왔는지 스스로도 잘 믿기질 않구나..
내 주위를 맴돌며 밝은 빛을 발하던 수많은 세속의 바램들..
결국 그들이 비추며 만들어낸 내 그림자들은 그들의 반대편일 수 밖에..
오늘 이리도 비내리고 내 그림자마저도 사라진 바닷가 언덕에 꿇어 앉아
영혼들과 함께 나를 띄워 보낸다. 영원히 사라질 그림자와 함께..
낙동정맥 ‘자유인의 길’을 함께 걸어 내리고 잠들지 못한 채 떠돌던
산산 골골을 역사의 한 공간에 담은 채 고향 땅 어귀를 눈물로 돌아서며
이 곳 몰운대 바다에 닿은 자유인의 영혼들이여
백두대간 태백산의 어둠 속에서 찾아 나선 낙동의 먼길을 달려
고향 땅을 향한 걸음을 멈추지 않고, 겨울의 눈길과 한여름의
빗길을 걸어 주왕산 넘고 영취산 넘어 억새밭 너울의 자유를
찾아 온 이곳에서 이제 이별을 고하려 합니다.
백두대간 지리산 천왕봉의 그날 처럼, 반쪽의 걸음으로 멈추었던
진부령의 그날 처럼, 속리산 천왕봉, 칠장산의 새벽, 영취산의 새벽은
늘 그렇게 변함 없이 또 이 땅의 태양을 날마다 솟구칠 터인데,
천년한의 낙동 하구 어귀엔 아직도 밝은 태양이 그리울 뿐입니다.
이제 긴 걸음의 끝자락에서 아직도 못이룬 ‘자유인의 길’을 찾아
또 다시 찾아 나설 그 길을 향하며 저 먼 바다 건너 피안으로 모시며
아픈 마음으로 눈물의 술잔을 바치오니 부디 훠어이 날으소서
2010년 10월24일
(자갈마당)
***회식 후, 함께 걸었던 후배들과, 오랜만에 부산을 방문한 경암과 함께
자갈치를 들러 용두산공원-중앙동을 거쳐 부산역까지 천천히 걸어 가면서
40년간의 긴 추억 여행을 마무리 한다.*****
(용두산공원)
송도 고개를 지나고 흐린 저녁 娥眉翫月을 맘속에 그리워 하며
샛디고개(억새,띠풀) 충무동을 지나 자갈치로..
용두산 공원을 둘러보고 러시아어가 더 많은 초량 상해거리를 거쳐
부산역까지 밤길을 걸어 갑니다...
(부산역)
그동안 여러가지로 많은 도움과 정을 쏟아 준 님들께 감사합니다..
(서울역)
긴 여로를 지켜 봐준 우리 가족들의 마중을 받으며
언제나 처럼 하루 날짜를 또 넘긴 서울역에서 마지막을 장식합니다..
오랫동안 지켜봐준 여러분들께 다시한번 감사드리며..
작은 영광이나마 물푸레 당신께 바칩니다..
함께 걸어 갈 그 길을 약속하며..
11/5 道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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