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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정맥(2007-10)·完了/금남호남(07)·完了

3/31-4/1마이산(신광치-활인동치)구간종주-호남금남 3차

by 道然 배슈맑 2007. 3. 21.

 

 

 

(산행 시간표)

 

3/31   22:00     신도림 출발

 4/1    03:30     중리 출발                   

         04:10     신광재                                   2.5km

         05:20     성수산                                   2.1km

         07:05     709.8봉 헬기장-아침식사          3.4km    

         07:50     식사후 출발

         08:15     옥산동 임도                            0.8km

         08:45     가름내고개

         09:25     벌목재(30번국도)                     2.5km  

         10:05     수마이산

         10:15-10:50  은수사                              2.0km

         11:00      탑사

         11:20     봉두봉

         12;00     532봉 

         12:40     강정골재                                4km

                         

                        9시간10분                     17.3km 

 

 (가름내 고갯길에서 이제 봄을 피우는 진달래꽃)

 

(3/31 22:00) 한달 만에 휴가를 나온 배중위와 따뜻한 저녁 한끼를 함께 못한채 배낭을 꾸려 정맥길을 나

서는 발길이 좀 무겁다. 이번 구간은 다음주의 경주 행사 관계로 한 구간 더 연장하여, 금남호남정맥을

마무리하고 귀가해야 될 것이니 아무래도 월요일까지 얼굴 보긴 힘들겠구나..다음 달에 면회 한번 가지..

다행히 토요일 오전을 함께 칫과 치료를 받으러 오가며 막히는 길 위에서나마 몇 시간 대화를 나누었으

니 그나마 정다운 부자지간이다. 아직도 1년 넘게 남은 제대 후의 진로 문제로 여러가지로 복잡한 모양이

다.

 

젊음이란 때로는 무한한 가능성으로 활짝 열린 선택의 시간들일 수도 있겠지만, 한편 스스로의 삶에 대

한 책임있는 선택을 강요받는, 결코 만만치 않은 직업 선택의 기로에 선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겐 힘든 결

단을 요구하고 있음을 느낀다. 항상 스스로의 결정을 위해 지켜 본다는 핑계로 별로 도움을 주진 못했으

나, 부디 자기 한 몸의 영달을 위해 안간힘 쓰는 졸부의 길을 택하기 보다는 길지 않은 한 생애의 후반에

스스로의 발자취를 뒤돌아 보며 후회 않는 명예로운 길을 택해 나가기를..부모 마음으로 당부할 뿐이다.

 

(4/1 03:30) 계속되는 황사 주의보 속에서 장수읍 와룡리 중리마을의 보름달 마저도 점점 짙어지는 운무

속에서 흐린 실루엣으로, 새벽 산길을 걸어가려는 나그네들에게 쉽게 다가서질 못하는구나..몇 가구 되

질 않는  무진장의 고원 마을은 보름 전 이상스레 쳐다보던 개 한마리 마저도 잠이 들어 고요한 적막강

산의 새벽 잠에 빠져든 채이다. 조용히 몸을 푼 자유인 정맥팀들은 이제 또 북으로 뻗어 있는 兩江 상류

의 마루금을 밟아 오르기 위해 금강으로 흘러드는 개울 물 소리 요란한 비탈길을 터벅거리며 신광재 들

머리까지 달밤 보행을 즐긴다.

 

 (성수산 정상에 올라..)

 

(04:10)표지 리본 하나 달아 맬 나무도 없이 풀섶으로 버려진 고산지 밭 한구석을 랜턴으로 더듬어, 겨우

찾아낸 들머리를 오르기 위해 급경사에 미끄럼을 지치며 잡목지대에 이르기까지 출발이 까다롭다. 마주

보이는 작은 잡목능선을 올라 30여분만에 924봉을 지나고 오른쪽 넓은 초원지대 내림을 거쳐 바쁜 걸음

으로 헬기장에 다다른다. 뒤따라 내려오는 랜턴 불빛이 그나마 장관을 이룬다. 아직은 황사가 덜한 모양

이다. 잠시 숨을 고르며 후미와 보폭을 맞추고 성수산을 향해 억새 밭을 걸어 오른다.(04:50)

 

급하지 않은 오름길을 몇개의 봉우리를 거치며 고도를 높혀 간다. 점점 짙어지는 황사와 운무 속에서 랜

턴의 불빛 마저 흐려진다. 오늘 이밤도 FTA를 향한 한미간 대표들은 밤을 새고 있겠지..우리나라의 말씀

잘 하는 정치꾼들은 한낮의 외침과는 달리 어디서 한 잔 술로 조롱섞인 비아냥거림 끝에 단잠을 이루고

있을까..분명 변해가야만 하는 우리의 미래를 향한 사회구조에 어떤 좋은 결과를 바라고 진행하는 협상

이겠지만,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꿈과 이 땅의 꿈이 일치하는 인류사회의 '자유인의 길'로 향해야만 될

것이다. 서로의 불신 속에서 죽기살기로 뺏어 내려는 협상이라면 훗날 서로에게 어떤 훌륭한 결과를 가

져다 주어 국경없는 자유로움 속에서 풍요로운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인가..복잡하고 어려운 일임엔

틀림없지만 부디 최선의 선택이 이루어지길..어차피 완전한 만족은 없는 법일터이니.

 

(05:20)그리 힘든 줄 모르고 성수산(1059.2) 좁은 산정에 올라 무전 교신으로 맞은편 동쪽 백운산을 오르

는 백두대간팀을 불러본다. 서둘러 출발한 탓인지 선두는 예상보다 일찍 정상에 다다른 모양이다.참 편

리하고 반가운 교신이다. 재작년 크리스마스 이브의 밤을 새우며 쌓인 눈길을 러셀하며 걸었던 육십령

을 향한 마루금이 새삼 가까워 보이며 무진장 고원의 양켠에 서서 즐거운 축하를 나눈다. 자유인 대간팀,

화이팅!! 진부령까지 힘찬 걸음을 이어가소서..이 땅의 모든 맥을 한줄기씩  걸어 나가면 언젠가 끊임없이

이어진 민족의 영혼들을 접할 수 있으리라.. 

 

 (1008봉 지나 암봉지대의 아침)

 

좁은 정상의 성수산을 내려와 소나무 숲을 이루는 왼쪽 내리막 능선길 헬기장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완만한 내리막 능선을 편한 걸음으로 옮기며 맞은 편 대간팀과의 교신이 즐겁다.(05:40) 편한 걸음을 즐

기다 보니 1008봉 오름길 직전 삼거리에서 우측 능선길을 놓치고 잠시 비사랑 마을 내림길을 더듬고 다

시 되돌아 올라 어슴푸레 동이 트는 암봉을 넘나든다. 산죽 터널을 지나고 서너개의 작은 봉우리들을 오

르내린 후에야 709.8봉 넓은 헬기장에서 이른 아침식사를 펼친다.(07:05) 임실 삼각점 표지에 함께하는

총대장의 반가움이 보인다. 역시 고향 땅은 이렇게 우리의 가슴에 그 이름 만으로도 포근한 것을..

 

(07:50)느긋한 시간을 휴식과 함께 아침식사를 즐기고 점점 짙어지는 황사와 운무를 느끼며, 옥산동 마을

을 왼쪽에 굽어보면서 하산길에 접어든다. 마스크까지 갖춘 호흡이 식사 후의 고단함마저 느낀다. 좌측

으로 급히 꺽어 내리는 능선길에서 잘 정비된 강씨 묘소를 지나고 가족묘를 지나 옥산동 마을에서 반월

리로 넘어가는 비포장 임도에 내려선다.(08:15) 인삼 밭을 가꾸려는지 목재들을 쌓아 놓은 손길에서 희망

을 기대하며 맞은편 숲길을 향해 오름을 시작한다. 작은 구릉같은 봉우리들을 오르내리며 밀고개재 안부

를 지나고, 벌목 지대와 소나무지대의 짧은 급경사들을 밟아 왼쪽 내리막을 내려서니, 잘 포장된 편도길

의 가름내 고개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08:45)

 

무진장(무주,진안,장수) 3읍을 다 합쳐도 국회의원 1명 내 놓질 못하여 임실까지 합쳤다는 이 고원지대

의 외길 포장도로엔 자동차 그림자도 찾을 길 없고, 멀리 오른쪽 반월저수지가 내려다 보이는 마을들에

아침 연기만 몇가닥 희미하다. 점점 줄어드는 농촌 인구의 대세야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이제 그 동

안의 자급자족을 위한 농업이 아닌 도시민들에게 판매용의 특용작물들을 개발하고, 수송을 위한 농촌 인

프라를 구축함이 시급할 것이다. FTA를 탓하는 것만이 살길은 아닐진데, 그로 인한 수지의 피해를 감수

할 수 밖에 없을 우리 농촌의 풍요로움도 계획할 줄 아는, 그러한 자유국가의 정책이 이루어지길..

 

 (30번 도로위 언덕배기 밭에서 마이산을 향해..)

 

가름내 고개 시멘트 옹벽을 올라서서 수레길을 따라 오르막 능선을 밟으니 작은 봉우리를 지나면서 왼편

벌목지대 너머로 마이산 두 귀가 짙은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날씨가 맑은 날은 매우 가깝게 다가

올 위치이지만, 황사와 뒤섞인 안개 속에서 희미한 모습으로 나마 먼길을 걸어온 정맥 길의 길손들에게

안타까운 마중을 갈음하는구나..첫 대면의 기념사진을 남겨본다. 그리 가파르진 않은 벌목지대의 능선과

잡목 숲을 헤쳐나가 작은 봉우리를 내려서니 묘지를 지나 2차선의 30번국도(진안읍/마령면)에 내려선다.

(은천이재,반월재,09;25)

 

도로 우측의 논밭 절개지를 올라서서 이름 모를 푸른 새순이 아름다운 밭 가장자리를 더듬으니, 소나무

숲 속으로 들기 전, 발 아래 묘소가 잘 정비는 되어 있는데, 2기의 묘가 서로 수미를 직각으로 앉혀져 있

다. 등돌린 부부의 형상 같아서 고개를 갸우뚱 거린다.처음 보는 형상이라 잘은 모르겠으나 앞자락은 논

으로 되어 있어 서로 다른 世代를 암시하는지도..명당은 명당인 모양이로다. 작은 오름을 이어가며 꽤 긴

오르막 능선에서 이어지는 묘터를 두어개 넘어서면서 숫마이봉의 웅장한 솟아 오름을 느낀다. 어떤 기운

이 산 자락 아래에서 부터 세찬 용솟음처럼 내 사지를 끌어 올린다. 부양된 발길이 갑자기 가벼워진다.

 

오른쪽 북부 주차장으로 떨어지는듯한 사면길을 버리고 숫마이봉 정면을 향한 능선을 치고 오르니, 묘 1

기가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잠시 쉬어가라 인사하여, 안부를 묻고 발을 멈춘다. 이미 선두는 마이산을 지

났으리라..인적없는 소나무 숲에서 지나온 남쪽을 향해 돌아 보지만 짙은 황사에 시야는 회색이다. 

 

지금쯤 영산포 어느 강어귀에서 세월을 낚고 있을 K군의 모습은 또 어떻게 변했을까..

대학에 갓 입학한 새내기 초년생인 두 젊음이 충남의 산골 저수지 곁에 자리 잡은 시골 국민학교 운동장

시멘트 계단에 앉아 첫 상면을 하는 여름 밤은, 굵지 않은 빗방울이 꽤 운치를 더해 주는 이슬이도 제격

이었다. 농촌 봉사활동을 위한 선발대의 도착에 반가워하며 마을 주민들이 직접 잡은 민물고기로 끓인

어죽을 입에 맞지 않아 많이 남긴 탓에 눈에 띄지 않게 파 묻는 작업을 방금 마쳤다. 쌀 한톨이 아쉬운

시골의 정서를 잘 알기 때문이다. 

 

서로 전공학과가 달라 첫학기 동안에는 낯이 익질 않았다.

"난 정치학과 K..라고 하는데.. 검정고시 출신이요.."

그 당시 대부분 일류 고교 출신들이 많은 집단이라, 전국의 말씨로도 출신 고교를 대충 짐작하기도 하고

각 모임이나 동아리 조직들도 그러한 연줄을 통해 이루어지던 70년대 초의 시절이었다. 또한 검정고시를

통해 입학한 경우는 매우 드물기도 하거니와 뭔가 고생 길을 겪어 왔으리라 짐작이 갈 부분이다.

그렇게 우리 두사람은 20대의 시작을 함께 하면서, 시골 학교 운동장 한 가운데서 밤새도록 비맞으며

슬이 잔을 비우는 세리머니로 출발하게 되었다 .

 

 (숫마이봉 남쪽사면)

 

(10:05) 늦은 걸음으로 숫마이봉 왼쪽 아랫도리를 감아 내리며 은수사(銀水寺)로 향한다. 대간과 정맥의

마루금 밟기에서는 드물게 암봉을 우회하니 명승지 탐방이 기다려진다. "타포니 지형"이라 했던가..

바위 내부의 풍화작용으로 풍화혈(風化穴)이 많이 생긴 형상이 마치 하늘의 큰 손이 시멘트 장난으로

놀다가 그냥 쏟아 부어 만든 큰 자갈 섞인 콘크리트 더미로 보인다. 역암 덩어리의 신비스런 형상이 이리

도 멋진 쌍봉으로 좌우를 감아도니, 그 훌륭한 태극의 한 가운데에는 또 무슨 신비를 간직하고 있을까.

점점 엄숙한 기운을 느끼며 은수사 본전 뒤에 마련된 산신제석에 술 한잔 드리우고 삼배 절을 올린다.

 

馬耳山이라....西多山(신라), 湧出山(고려),束金山(조선 태조)을 거쳐 조선 태종이 생긴대로 마이산으로

불렀다는가..돛대봉(봄),湧角峰(여름),마이봉(가을), 文筆峰(겨울)...참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 신비로운

터에서 영혼의 엄숙한 교례를 맛본다. 마치 자연 미륵의 품에 안긴 느낌이다. 숫마이산의 화엄굴에서

피어날 태극의 정점이 더욱 궁금해지기도 하지만, 암마이산으로 오른쪽을 돌아 태극 마루금을 오르지 못

하고, 섭섭하게도 은수사 마당을 거쳐 우회해야 함은 폐쇄된 등산로가 다시 복원 되는 날, 재차 걸음하라

는 뜻이로구나.

 

山太極,水太極 馬耳太極이라...

마이쌍봉을 휘감는 금남호남정맥길이 山太極이라면, 이곳 마루금에서 나누어 떨어지는 금강과 섬진강

의 물줄기가 또 다시 남북으로 휘감아 돌아드니 이는 水太極이라.. 그 신비로운 태극의 한 가운데에 서서

나는 오늘 이 땅의 회오리를 느낀다.

조선 건국의 설화 속에서 이성계를 씻긴 성수면의 또 다른 성수산 '發龍의 大夢'과는 달리, 무학대사의

설명에 따라 이곳에서 부터 개성의 李氏를 향한 金氏의 회오리를 묶었다는 束金山의 비밀을 읽고 있는

기분이다.

 

 (은수사 무량광전, 대적광전)

 

 

(10:50) 은수사 절 뒷켠의 산신당을 지나 무량광전 대웅전 뜰에서 천왕문 화엄굴을 올려다 보며, 용왕샘

에서 흘러나오는 석간수 한 모금을 들이키니 또 섬진강을 통째로 마시는구나.대적광전 앞의 큰 북을 두

드려 본 후 지체된 시간을 그제야 깨닫고 포장도로를 따라 탑사에 내려선다. 절 앞 마당에 청실배나무

한그루가 우람한 자태로 천년을 기념하고 서 있구나. 함께 한다는 줄사철나무는 바쁜 걸음에 미처 돌아

보질 못한 채 태극전을 둘러보고 태조의 금척도를 살핀다.

 

(탑사)

 

(11:00)수없이 많은 돌을 쌓아 올린 신비의 탑사에는 자연스럽지 못한 철방책들이 풍경을 그슬린다. 문화

재 보호는 꼭 필요하지만 좀 더 자연스런 경계표지로 출입을 제한해도 좋을 터인데..많이 훼손이 되긴 되

는 모양이다. 아무튼 대단한 역작임에 틀림이 없고 그 과학적인 축조법을 밝혀내진 못하는 가운데 황당

한 전설 마저도 난무하는 이 곳에 서서 미리 읽어 본 탑사(塔寺, 塔舍)의 내력을 다시 새겨 본다.

 

李甲用 處士(1860-1958)의 수행을 위한 돌탑쌓기는 25세에 은수사에 들어와 그 아래 움막을 짓고, 30년

동안 30여리 안팎의 돌을 날라왔다는 구전이다. 축지법과 기공법이 등장하고, 탑의 기단에 관해서는 팔

진도법, 음양이치법등 숱한 이론이 등장할 정도로 신비로운 축조법임엔 틀림이 없고, 또한 많은 공을 들

여 '일심의 산물'을 남겼으니 그의 구국의 뜻을 기릴만은 하다. 단지 그 후손들의 관광 목적을 위한 뜻도

있겠으나, 크고 작은 처사상을 함께 세워 놓고 주술적인 시주함이 놓여 있으니 보기에 썩 좋질 않다.

문화재는 문화재로 남아 이 땅의 공동재산으로 관리 되어야 할 것이다. 천지탑을 비롯하여 중앙탑, 오방

탑등 크고 작은 돌탑이 120여개에서 현재 80여개가 남아 있다.

 

언젠가 마이산 부근 둘레산을 종주하기로 하고, 주변의 돌탑들을 세세히 살펴 보리라 마음 먹으며 정맥

길을 찾아 나선다. 암마이산 오른편을 태극으로 돌아 오르는 길이 폐쇄되어 어쩔 수 없이 왼쪽 광장 길

을 거쳐 봉두봉 들머리로 올라선다. 뒷편의 '나도산'이 마이산에 눌려 잘 쳐다보질 않는 탓에 그 섭섭함

을 탄하며 '나도 산인데..'하는 것 같아 디카에 담아 본다. 난간 오르막을 오르면서 가까이 보이는 암마

이산이 왠지 쓸쓸히 고개를 돌리고 숫마이산과는 정답지 못한 형태로 각을 이룬다. 그래서 두아이를 숫

마이산에 뺏기고 구박을 받는다고 했던가..

 

 (532봉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마이산 북측면)

 

돌계단 오르막을 거쳐 폐쇄된 암마이산 등로와 연결되는 안부에 올라서서 왼쪽 봉두봉 정상을 향한다.
넓은 헬기장 정상을 내준 채 표지석은 길섶 헬기장 입구에 초라히 서 있다.(11:20) 이어지는 오른쪽 내리

막을 잠시 거쳐 548봉 쉼터에 다다라 후미를 기다리며 휴식을 취한다. 숲에 가려진 마이산 조망은 별로

좋질 않다. 작은 내리막 삼거리에서 나옹암,탕금봉으로 이어지는 잘 정비된 마이산 주변 등산로를 버리

고 직진하여 묘지 뒤로 이어지는 532봉 암봉을 향해 마지막 힘을 쏟는다.(12:00)

 

전망 바위에 올라 황사에 묻힌 채 희미한 마이산 도립공원 주변 등산로를 굽어보며 좋지 않은 날씨에도

봄맞이를 나선 상춘객들이 꼬물거리는 모습을 내려다 본다.버섯을 닮은 532봉을 담아보고, 마지막으로

마이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지만 끝까지 맑은 배경을 담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그곳에 오래 있을

터이니..532봉을 우회하여 완만한 능선을 오르내리며 그동안 마이산 주변에서 시간을 많이 지체한 탓에

발걸음을 서두른다. 대간팀들은 벌써 육십령에 도착하여 산신제 준비를 마친 모양이다.

 

임도를 지나고 경주 최씨 묘소를 지난 후 벌목지대와 작은 봉우리를 우회하여 익산-포항간 고속도로가

건설중인 현장을 바라보며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소나무 숲이 우거진 완만한 내리막길에서 오늘의

날머리인 강정골재(활인동치)에 내려 선다. 마주보이는 작은 봉우리가 내일의 들머리 같은데 표지리본

이 잘 보이질 않아 몇번을 확인하니 제각기 부귀산 들머리가 여러 곳으로 나뉜다. 서둘러 육십령으로

버스를 달려 대간팀의 산신제에 참석하여 함께 절한다. " 自由人의 무탈산행을 굽어 살피소서..."

 

 (532봉 우회길의 곰봉)

 

(기도) 이틀간의 금남호남정맥을 마치고 출근하여 산행기를 정리 하던중 급보를 받습니다.

항상 온화한 미소 속에서 전형적인 한국 여인의 모습으로 가정을 일으키고 자식들을 돌보시던 이촌동

외숙모님이 급성 뇌혈전증으로 중앙대 병원 중환자실에 계시다는 소식에 급히 차를 몰아 달립니다.

 

부디 깨어 나기를 빕니다..

아직 예순여섯의 삶을 접기엔 ..

3년전 먼저 가신 외삼촌을 따르기에는..

너무 이릅니다. 김해 땅에서 시집오신 후

閑良처럼 카메라를 싣고 전국 산을 유랑하시던

외삼촌의 뒷바라지와 자식들 키우며

작은 가게 꾸려 나가며 고생하시던

젊음을 뒤로하고 이제 편히 쉴 수 있는 나이에..

그리도 곱고 아름다운 젊은 숙모님을

그냥 보내드릴 순 없습니다.

빨리 깨어나십시요..

열심히 기도합니다..

 

하룻만에 연세 세브란스 중환자실로 다시 옮겨 뇌수술을 받았읍니다.

오늘 다행히 의식을 조금 찾은 듯합니다.

여러가지 후유증은 있겠지만..

그냥 손이라도 잡고 오래 살 수만 있었으면..

다행으로 여기며 빠른 회복을 기원합니다.

 

4/5 道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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