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시간표)
5/12 22:00 신도림 출발
5/13 03:15 염암재 출발
03;45 520봉
04:23 365봉
04:44 2봉(1봉갈림길)
-3봉(518)-4봉(국사봉)갈림길
05:20 오봉산(5봉) (513.2) 20분 휴식 3.7km
-749도로
06:50 293.4봉 2.6km
-341봉
07:30 초당골 (운암삼거리) 1.6km
08:00 식사후 출발
08:25 350봉(만경/동진 수분점)-모악지맥 갈림길
09:05 묵방산(538) 갈림길 -10분 휴식 2.3km
09:42 여우치
10:05 가는정이 -10분 휴식 2.2km
11:30 성옥산 (388.5) 3.0km
12:00 소리개재 -10분 휴식 1.2km
13;15 왕자산(444.4) 3.0km
13:40 잠시고개 안부-10분 휴식
-광산김씨묘
14:35 460봉 -5분 휴식
15:30 439봉
16:00 구절재 4.2km
12시간 45분 23.8km
(새발노랑매미(피나물)꽃)
(5/12 22:00) 산행 출발 전 토요일은 항상 바쁘다. 아침 일찍 사무실에 들러 구간 정보를 챙기고 산행물을
정리해 두고 상계동 쪽으로 향한다. 새벽에 비가 내려 26산케들은 일정이 취소 됐고..부산서 올라 오시는
청산 선배님은 북한산을 오르고 있다는 전화를 받는다. 우이동 날머리로 가기 전에 상계동 친구도 만나
보고 병환에서 회복된 친구의 아내도 얼굴 보니 참 반갑다. 35년전 대학 초년 시절 청량리를 거쳐 한독약
품 앞길에서 돌아서 꺾어 오르던 중량천 상계동 먼길을 내부순환도로로 금새 넘어가니 바로 옛날 학교
앞 개천가 당구장 있던 밭 한가운데 쯤이구나. 점심을 함께하며 삶을 나누어 본다. 봄비가 내린다.
도봉산 시루봉 아래 연산군 묘소를 넘어 우이동 진달래 능선 하산길에서 기다리다 길을 잘 못 들은 것
같아 수유리 백련사 앞에서 비를 맞으며 하산하는 일행을 만나 동동주 한잔으로 회포를 푼다. 좋은 산객
들의 정 나눔이다. 저녁 정맥 길을 위해 먼저 자리를 일어난다. 휴가기간 중인 배중위는 이틀을 공사관계
로 부대에서 까먹고 마지막 하루를 강남 어디에서 벗들과 보내는 모양인데 그나마 다음 날 근무관계로
바로 귀대해야 된다고..좀 섭섭하긴 하지만 맡은 일에 충실하며 바쁘게 살아가는 모습이 대견하다.
작은 25인승 버스에 다소 불편하지만 적은 인원으로 꾸려가는 경제적인 부담을 다소 들 수만 있다면 다
행이다. 부디 호남 땅 먼 길 탐사에 힘든 여정을 엮어가는 자유인들의 발걸음이 안전한 걸음으로 이어지
기를 빌 뿐이다. 약간의 취기에 잠이 깊이 들었나..어느 새 구이저수지를 지나고 있구나..보름전 지나왔
던 49번 염암 고갯 길을 힘들게 꾸불거린다. 인적 끊긴 고갯길에서 시간을 지체하며 조금 더 잠을 청한
뒤 오봉산 일출 시간에 맞추기로 계획을 잡는다. 늦은 그믐달이 아직도 중천이고 흐리던 하늘에 별만 총
총하다.(02:20)
(옥정호 넘어 멀리 장안산 쪽에서 해가 떠오르고..)
(03:15)간단한 몸 풀기로 산행준비를 마치고 긴 구간의 이어가기를 시작한다. 지난 구간 급경사 절개지를
힘겹게 내려 온 만큼 첫 걸음 절개지 상부 마루금까지 땀을 좀 뺄 것은 당연하다. 약간 차가움을 느끼는
날씨지만 금방 열이 날 것을 예상하고 자켓을 벗고 옷을 얇게 입는다. 들머리 입구 사슴목장이라 일컫는
폐 움막이 자리한 등산로 길이 작은 물길을 스친다는 염려에 닦아진 길을 버리고, 오른쪽 직벽 경사면으
로 붙어 직접 절개지 마루금으로 코를 박는다. 20여분 급경사의 사면과 마루금을 거쳐 첫 고지 486봉에
올라선다. 산행 첫 들머리의 워밍업이 오늘의 힘겨움을 예고하며 적은 인원이지만 길 찾기에 주의하며
간격을 좁혀 진행한다. 선행자들의 기록상으로 이번 구간의 혼돈되는 갈림길이 많은 알바를 예고한다.
잠시 내림길을 거쳐 또 한번의 급경사가 이어진 후에야 520봉 넓은 공터에 올라선다.(03;45) 이어지는
편한 길도 잠시 경사가 급한 내림 길에서 랜턴 불빛은 갑자기 흐려지고, 앞 뒤 동료들의 불빛을 도움 받
으며 엄청난 직벽 내림을 맛본다. 사실 이 구간은 왼쪽 다소 편한 길이 있지만 마루금을 벗어난다는 지적
에 따라 오른쪽을 고집한 탓에 암벽 내림과 경사진 잡목 숲의 고통을 초반 부터 맛본 뒤에야 염암고갯길
안부의 박씨 묘소에서 물 한 모금으로 숨을 돌린다.(04;10) 물론 대간과 정맥 길에서 마루금의 의미는 매
우 중요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위험한 사정들을 고려하여 필요한 상황에선 함께 맥을 인지하며 우회할
수 있는 여유로움도 필요할 것이다. 또한 선답자들의 보다 확실한 기록이 많이 아쉽다. 스스로 확인하지
않은 애매한 설명은 오히려 후답자에게 위험을 초래할 것이다.
다시 다소 누그러진 경사면을 오르며 오름길 한가운데를 차지한 365봉 삼각점을 지나고, 오른쪽으로 방
향을 꺾어 고도를 높혀 나간 후에 마지막 짧은 된오름으로 2봉(500m) 넓은 공터에 올라선다. 선두는 이
미 지나갔는가 했더니 오른쪽 1봉(소금바위) 길로 잠시 잘못 잡았던 길을 되돌아 나온다.(04:45)이후 왼
쪽 내림을 밟은 후 남쪽으로 이어지는 편한 마루금을 오르 내린다.바위 전망대에서 오른쪽 소모마을의
맑고 아름다운 새벽을 잠시 바라보며 계곡을 타고 오르는 신비하고 상큼한 정기를 느낀다. 새벽잠을 깬
검은등뻐꾸기의 "홀딱벗고" 타령에 미안한 마음으로 휘파람으로 박자 맞추니 계속 함께 따라 오른다.
(옥정호(운암호) 새벽 운무)
계속 이어지는 완만한 능선을 지나며 3봉과 4봉 우측 사면을 진행하여 오른쪽으로 급히 꺾어 진행한 후
에야 오봉산 정상 전망대에 올라 선다.(05:20) 왼쪽 운암호(옥정호)의 새벽 운무가 예상했던 만큼 아름답
다. 물론 전날의 촉촉한 봄비 탓도 있겠지만 전형적인 호수지대의 물안개가 연출하는 이 아침의 화려한
장관에 감탄이 연발한다. 늘 그렇듯이 점점 빠져드는 새벽 걸음의 묘미를 또 한번 느낀다. 운해님이 지칭
한 Golden Road(황금색 솔잎이 쌓인 길)와 더불어 촉촉한 물기를 머금은 새벽의 고요를 조용히 걸어 나
가 해뜰 무렵 이렇게 아름다운 화폭을 감상할 수 있는 보람은 무박산행의 큰 기쁨과 보람으로 다가온다.
멀리 팔공산,장안산을 넘어 백두대간 위로 맑은 아침해가 솟아 오를때 까지 좋은 추억을 담기에 바쁘고
대원들의 얼굴에 밝은 해가 비치니 건강하고 맑은 구리빛 웃음이 번진다. 긴 휴식과 촬영을 끝내고 운암
삼거리로 향한 아쉬운 하산 걸음을 옮긴다.(05;40) 삼거리에서 왼쪽 하산길을 밟은 후 다시 오른쪽 내리
막을 택해 나가니 벌목 개량작업이 크게 벌어져 잡목 숲들이 온통 잘려나간 급경사 개활지를 조심스레
미끄러져 내린다. 작은 마을 임도를 끼고 봉우리 우측을 돌아 내리니 749번 운암호 일주 도로에 닿는다.
다시한번 도로 건너편 작은 야산의 봉우리를 넘어서서 749번 도로에 한번 더 내려서고 난 후에야 360봉
을 향한 된오름을 맛본다.(06:20)
360봉을 향한 급경사 잡목 숲에서 다소 지치고 배고픔을 느끼며 진한 더덕 향내에 취하여 걸음을 지체한
다. 피나물 노란 꽃밭 군락도 지나고 두어번의 오름을 지치니 360봉 삼거리에 올라 선다.오른쪽 백여리
대로마을 길에 누군가 리본을 매어 놓고 진행한 흔적이 있다. 아무래도 후미조의 혼돈이 걱정되어 10여
미터를 진행하며 리본을 제거한다. 잘못 밟아 나간 선행자들의 리본이 선두를 계속 알바시킨다. 왼쪽으
로 90도 꺾어 완만한 오르내림으로 293.4봉 삼각점과 341봉 삼각점으로 방향을 잡아 천천히 잡목 내림길
을 헤쳐 나간다. 수원 백씨묘를 거쳐 749번 도로가 27번 국도에 접하는 운암 삼거리가 보이는 묘역에서
호수 건너 맞은 편에 아름다운 나래산이 반긴다. 천년학 촬영지로 근래에 소개된 곳이다.(07:20)
(운암호 건너 나래산이 보이고..)
749번 도로에 내려서 10여분 도로를 따라사거리 방향으로 진행하며 산촌의 바쁜 개발을 함께한다.
운암삼거리 직전 호숫가 옥정호 산장 야외 벤취에 앉아 아침 도시락으로 허기를 달랜다. 막걸리 한잔과
고구마 요기가 꿀맛이다. 산장 할머니가 권하는 따뜻한 물 한 잔에 살아 있는 정을 느낀다.(07:30)
"워데까정.." "관촌고개서 구절재까정.."
"구절재가 워뎅기라..소래개 못가선기라?..그라먼 무신 돈 나온댕기라.."
멀쩡한 여남은 젊지도 않은 중년들이 땀에 절어 이른 아침부터 마당 한곁에서 마른 도시락과 라면을 끓
이는 모습이 참 한심스럽기도 한지라.."하먼요..이 짓하면 돈 나오능기라요..ㅎㅎㅎ" 아침이 즐겁다.
(08:00) 후미조가 아직 도착되질 않아 걱정되지만 식사 후 먼길을 서둘러 나선다. 원조 어부집 왼쪽 언덕
을 올라서서 소나무 숲으로 들어서니 다소 시원하다. 편안한 오름으로 작은 봉우리를 지나 350봉 모악산
분기점에 올라선다.(08:25) 만경강/동진강의 수분점을 이룬다. 잠시 휴식 후 왼쪽 묵방산을 향해 90도 방
향을 바꾼다. 벌목지대를 지나고 급경사 오르내림을 거치면서 간간이 보이는 왼쪽 옥정호의 정경도 잡목
숲에 가려 지루한 아침 볕이 따갑고 점점 열기를 느낀다. 묵방산 갈림길에서 오른쪽 묵방산을 다녀올 동
안 잠시 휴식을 취한다.(09:05)
왼쪽으로 90도 방향을 틀어 천천히 내려가며 남으로 멀리 회문산과 강천산을 바라본다. 매우 맑은 날씨
다.호숫가 치고는 안개도 걷히고 꽤 시원한 바람이 한차례 지나간다.소나무 숲의 양호한 내리막이 참 그
리운 정맥 길이다. 잡목 가지를 헤치는 낮은 산이 너무 괴롭다. 이불처럼 포근히 감쌌던 새벽 안개는 어
느새 말끔히 걷히고 오른쪽 정읍 산외 종산리 마을이 고단한 삶을 졸고 있다. 푸른색 지붕의 여우치 마을
이 발아래 보인다.
김용택 시인의 마암분교(능선 왼쪽 옥정호도로변)에 다니던 초등학생 인수도 많이 자랐
겠지..그가 꿈꾸던 경찰이 되기 위해 어느 도회로 나갔는지.. 원래 가진게 없어 가난하다
고 아무런 원망도 없던 인수네 아버지의 폐결핵은 다 나았을까..(김훈-섬진강 여행)
발 길은 어느새 여우치 마을의 폐가를 지나 고목나무 아래에 서서 고단하고 조용한 아침을 바라보며, 멀
리 메마른 밭을 서성이는 할머니의 작은 바램을 향한다.(09:40)
(여우치 마을 폐가 한 가운데를 지나고..)
여우치 고개 포장도로를 건너 은행나무 넓은 길을 따라 오른다. 왕릉 처럼 화려하게 꾸민 가족 납골당을
지나 283.5봉 삼각점을 지나고, 다시 완만한 오르내림으로 작은 봉우리를 넘어서니 749번 도로가 지나는
가는정이 마을 언덕이 옥정호를 배경으로 아름답게 오른쪽에 자릴 잡았다. 상지골 삼거리 정자나무 밑에
서 등산화를 벗고 7시간을 고생한 발에게 찬 바람을 선사한다. 모악산 갈림길에서 뒤따르던 후미 한명이
아직 소식이 없다.(10:05) 10분 정도 휴식을 취하며 산장 식당에서 막걸리를 구하려 하나 시골에는 대부
분 막걸리 재고는 없다.
대장에게 후미를 맡기고 옥정호 산장 왼쪽 언덕으로 올라서서 성옥산을 향한다. 잡목 숲을 헤치고 올라
작은 봉우리를 넘으니 오른쪽 사면을 따라 흰 줄을 쳐서 장뇌삼을 재배하는 모양이다.20여분을 오르내리
며 재배지역을 벗어나니 잡목 숲 속에 긴 시멘트 전봇대가 부러진채로 방치되어 있다. 계속 이어지는 잡
목 숲 내리막에서 10여분 오른쪽 가시밭 길 알바를 거쳐 정맥길을 겨우 다시 찾아 오른다. 힘겹게 삼거리
능선에 올라 붙어 선두 대원들과 합류하여 잠시 휴식을 취한다.(320봉,11:00)
지도를 펼쳐보니 왼쪽 굴등 마을 위를 지나고 있다. 굴등마을 취수구를 통해 옥정호 물길을 마루금 아래
로 흘려 오른쪽 저읍의 팽나무정 마을에 넘겨 멀리 만경강 하구까지 농업용수를 공급한다. 1926년 섬진
강댐이 건설 되면서 운암호와 섬진호를 합한 거대한 옥정호가 생긴 이후로 이렇게 마루금 발아래 까지
물 구경을 할 수 있는 큰 변화가 생겼다. 자연히 마루금 왼쪽의 마을들은 호수와 마루금 사이의 외딴 마
을로 남아 오랜 세월을 가난한 산중 어부 생활을 거쳐야 했다. 자연의 개발과 그로 인한 인간 삶의 변화
는 역사의 진행 속에서 어쩔 수 없는 과정으로 남겠으나, 항상 개발의 뒤안 길에서 큰 변화를 겪으면서
도 어찌할 수 없는 피해와 고립을 경험해야 하는 아픈 민초들의 상처는 긴 세월의 고통 속에서도 쉽게
아물지를 않는 법이다. 아니 나중에는 그냥 잊혀진 채로 사라질 뿐이겠지..
(가는정이 마을..오른쪽 상지골 돌아드는 길을 따라 굴등마을까지..)
성옥산으로 향하는 잡목 길에는 가꾸지 않은 묘지들이 즐비하고, 거의 사람의 왕래가 없는 잡목 숲이 우
거져 한낮으로 접어드는 뜨거운 발길에 자꾸만 앞을 가로 막는 성긴 가지들로 힘겹다. 특히 잡목들과 뒤
섞인찔레꽃 가시는 얼굴에 매우 위험하다. 선글라스와 모자로 얼굴을 가리며 조심스레 고도를 높힌다.
두어개의 작은 봉우리를 심한 잡목을 헤치며 진행한 후 소나무 숲을 만나 조금 허리를 편다. 마주하는 봉
우리 왼쪽 사면을 돌아 벌목지대에서 다시 시작되는 잡목 숲을 올라서니 문득 눈앞에 성옥산 표지판이
나타나고 무성한 잡목에 가려진 채로 아무런 조망도 없이 발 밑 삼각점을 확인하면서 정상을 통과한다.
(11:30)
이후 소나무 내림길이 시작되며 조금씩 사람의 발길을 느끼고, 잘 정비된 묘지들도 만난다. 20여분 후
큰 묘터와 밭 아래 715번 포장도로의 소리개재에 내려서고 다시 절개지 고추밭을 힘겹게 올라서니, 노란
색 예쁜 산행버스가 기다리며 소식 없던 후미조가 막걸리를 들고 올라 온다. 모악산 분기점에서 오른쪽
으로 방향을 잘 못 잡아 북쪽 국사봉 아래 엄재까지 진행하여 버스를 타고 탈출을 한 모양이다.다행이다.
항상 지도와 나침반을 확인하는 습관이 더욱 절실하다. 어쩌면 우리네 삶도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지도 모른 채 내달음질 치고 있지는 않을까..(12:00)
후미조의 배려로 시원한 막걸리로 점심을 보충하고 고추와 고구마를 심어 놓은 밭길과 오른쪽 농로를 지
나 여산송씨 묘터를 지난다. 사과(司果;오위도총부 정6품무관) 벼슬을 자랑하며 후손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 작은 봉우리를 넘어서니 소나무 숲길이 아담하고 방성골 마을 뒷편의 묘지 언덕에 내려 선다. 한가
롭고 비교적 넓은 경작지를 가꾸며 안정된 모습이다. 마을 왼쪽 포장 도로를 건너 물길을 피하며 크게 남
쪽으로 마루금을 이어가는 고추밭을 가로 지른다.(12:30) 동네 큰 물탱크를 지나 소나무 숲으로 들어서
니 한결 시원하다.
(왕자산 정상에서..이젠 다 왔는가..)
묘역과 작은 바위지대를 지나 능선 봉우리에 올라서서 물길을 피한 마루금을 북쪽으로 수정하니 왕자산
이 정면으로 보인다. 문제는 기뻐야할 마지막 봉우리 왕자산 왼쪽 능선에 더욱 높아 보이는 봉우리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간이 고도표를 믿은게 잘못이다. 벌써 10시간..아직도 2시간으론 힘들겠다. 점점 더
워지는 발걸음을 묘지 안부에 서서 왕자봉 20분 오름을 화이팅 한다.(13:00) 쉼없이 급경사 된오름을 재
촉하니 10여분 만에 바위전망대에 올라 지나온 방성골 평화로운 마을과 옥정호 자락을 내려다 보고 다시
5분여 지쳐 오르니 왕자산 정상의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서 잠시 땀을 식힌다.(13:15)
이후 내림길 심한 잡목 숲에서 또다시 오른쪽 90도 꺾이는 잡목길을 의심하다 잠시 알바를 경험하고 가
까스로 소나무 길의 다소 안정된 내리막을 찾고, 봉우리 왼쪽 사면을 내려와 예덕리 잠시고개 고목나무
아래에서 막걸리로 목을 추긴다. 대원들 모두 지친 표정이다. 10여분 휴식을 취하며 서로 격려를 나눈다.
대간 길과는 달리 무성한 잡목과 뚜렷하지 않은 길 찾기에 많이 지치고 반복되는 낙차 큰 오르내림이 잘
단련된 대원들 마저도 그리 만만치가 않다.(13:50) 무슨 보람의 결실을 찾고 있을까..스스로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을 때까지 힘들고 아픈 길을 이어 갈 뿐이겠지..이것은 구도자의 마음이 필요하다.
이제 마지막 안간 힘을 쏟으며 다시 2시간으로 늘어난 계획을 세우며 묘지 곁으로 난 큰 농로를 올라 작
은 능선길로 올라 붙는다.광산 김씨묘를 지나고 소나무 숲을 지나니 커다란 고목이 무래실골 고개에 서
서 멋진 자태를 뽐낸다. 이어지는 묘터와 뽕나무 밭을 지난 후 급경사 된 오름으로 능선 사면을 20여분
긁어 오른다. 삼거리에서 정신없이 왼쪽으로 크게 방향을 잡아 연이어 460봉을 향해 사력을 다한다. 모
두 다 지쳐 아무 말이 없다. 정상 안부에서 잠깐 방향을 잃을 정도로 힘겨운 사투 끝에 능선에 올라 숨을
돌린다. 이슬이 한 잔으로 고통을 잊어 본다.(14;40) 잠깐 스치는 바람에도 행복을 느낀다.
(예덕리 잠시고개 고목나무)
이제 멀리 바라다 보이는 439봉 오른쪽으로 살며시 고개를 내미는 저 구절재 까지 1시간..앞으로 펼쳐지
는 포근한 마루금을 사랑해야 한다. 잡목 길만 제발 끝이 났으면..작은 봉우리를 또다시 두어개 넘어서고
힘겹게 마지막 439봉에 올라 또다시 다리 쉼을 한다(15;30) 선두의 하산 완료 무전을 들으면서 급경사 내
리막을 좌우로 꾸불거리고 문득 인적없는 농로를 만나니 으슥하다. 문득 오래전 기사가 떠오른다. 어느
종교 단체의 신도 암매장 발굴처가 아무래도 구절재 이 부근 같기도 하다.
30번 국도 구절재에 내려서니 지친 대원들이 풀섶에 누워 있다. 참으로 길고 힘든 여정이다. 남쪽 방향의
안내판에 회문산 25km...조선조 이래로 '저항의 산'으로 매김한 그 산이 지척이구나..어떤 지형의 모습이
그토록 아픈 역사의 저항세력들을 숨기고 가린채로 한반도 남쪽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무릇 큰 영혼의 기가 자리한 곳에는 수 많은 작은 영혼들의 응집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가 지나다니며 한
번씩 절하는 서낭당의 기운도 그러할 것이고 작은 돌무덤이 쌓여 뭉친 정령들의 기운도 그런 것이 아닐
까..
(마지막 439봉을 바라보며..)
내 발걸음 한 발 한 발 나아가며 이 땅에 영혼을 뿌리 내리고..내 이 땅의 기운들을 조금씩 받아나가 훗날
여수 앞 바다에서 힘차게 느껴 볼 그 자유의 기쁨으로 눈가를 적시겠지..
태인으로 향하는 길목 칠보면 식당에서 늦은 점심으로 허기를 때운다. 점점 남으로 남으로 향하는 발걸
음이 호남 벌판에 익숙해진다.
5/15 道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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