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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정맥(2007-10)·完了/호남정맥(07)·完了

9/1-2 계당산(개기재-큰덕골재)구간종주-호남정맥12차

by 道然 배슈맑 2007. 8. 21.

 

 

(산행 시간표)

 

9/1     23;00          양재역 출발

9/2     03:50          개기재(290)     출발

          05;45          계당산(580.2)             2.8km

          08:10          예재터널 헬기장(아침식사 08;50출발)

          09:10          예재(290)                  5.9km

          09:45          봉화산(465.3)             1.3km

                           -추동재

          11:10           가위재(20분 휴식)

          11:45          고비산(397.4)             4.3km     

          12:50          큰덕골재(290)            2.1km

          13:15          큰덕골                      2.5km

  

                               9시간 25분          18.9km

 (?버섯)

(9/1 23:00)35년전 대학 초년의 벗들을 만나 이어도에서 긴 회포의 잔을 기울이다 보니 호남길로 떠날 시

간이 다가올 즈음엔 꽤 취기가 오른다. 다행히 오늘 구간은 혹서기의 막바지로 조금 짧게 계획해 놓았고,

가을을 재촉하는 촉촉한 비도 내리고 있으니 조금 수월하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산행길 떠나는 시간까지

벗들과 오랜 시간의 공백을 메꾸어 본다. 인생의 변화와 스스로의 삶에 대한 가치를 돌이켜 볼 기회를

얻은 것 같다.

 

꿈 많은 시절의 미래에 대한 기대감과 설계가, 이제 긴 시간이 흐르고 생의 끝자락을 걷게 된 지금에 와

서 돌이켜 보건데 참 많이도 굴절되고 뜻한 바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곳에 흘러와 있음을 느낀다.

그 길이 옳든 그르든, 세상의 탓이 아니라 스스로의 순간 순간의 선택과 결론으로 이루어진 탓에 벗어날

수 없었던 역사의 아픈 소용돌이를 헤엄쳐 나와야 했던 지난 날들에 후회는 없을 것이다. 물론 이 즈음에

무슨 회한이 있겠냐마는 단지 좀더 깊이 있는 학문의 세계에서 오래 머물 수 없었던 젊음이 아쉬울 뿐이

겠지..그리하여 내 자식들에겐 더 많은 공부시간을 강요하는지도..

 

9월의 첫날 주말을 세차게 적시든 빗줄기도 잦아들고, 화순 땅 발용산을 감아드는 산행버스는 어느새 보

성 복내면으로 이어지는 58번 지방도 고갯길 마루금 개기재에 닿아 무성한 여름 밤을 헤쳐나갈 산꾼들을

부린다. 2주 전 한여름을 달구던 더위는 사라지고, 방금전까지 퍼부은듯한 빗물이 엉킨 잡목가지를 축축

하게 적신 채, 아예 한바탕 목욕을 각오하며 우의를 벗어 버리고 녹음에 젖어들기로 한다.(9/2 03:30)

 

 (계당산 정상)

(03:50) 우의를 입을까 벗을까 망설이던 대원들은 전부 우의를 벗고 배낭커버만 씌운 채 개기재 절개지

남쪽 오른쪽 들머리 젖은 풀섶으로 걸음을 옮긴다. '宜寧南氏世葬山' 비석 곁으로 긴 풀섶 길을 걸어 나

가니 이내 신발이 젖어온다. 어둠속에서 잘 꾸며진 묘역을 지나고 잡목 숲 속에 난 길을 따라 묘지 뒤를

올라서니 왼쪽 복내면 불빛이 잠시 스친다. 이제 장흥을 지나 긴 구간의 보성땅 밟기가 이어 지겠지..

오른쪽 화순땅의 1950년대 처절한 좌우 토벌의 역사를 북면 백아산에서 부터 장흥 유치에 이르기까지

그슬러 내리는 발길이 이제 얼마 후면 비교적 풍요로운 보성땅 깊은 산줄기를 따라 동으로 향하게 될 것

이다.

 

그리 가파르지 않은 능선길을 헤치며 어둠 속에서 잡목과 긴 풀섶에 가려진 등로를 찾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점점 지체의 시간이 늘어날 정도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작은 봉우리들을 대여섯 차례 오르내리

며, 가시 잡목과 철쭉 가지의 성긴 얼굴 스침을 헤쳐나간다. 좌우의 이념이 뭔지도 모른 채 미처 피난 길

에 나서질 못했던 이양면 어느 산골 소년은 배고픔과 총부리의 무서움을 느끼고, 저 멀리 백아산 공산낙

원을 꿈꾸며 이 길을 거슬러 산딸기로 배를 채우며 걸어 올랐을까.. 토벌을 위해 온통 불타버린 마을의

어귀에 서서, 피어오르는 오두막 집 연기 속의 따뜻한 가족들 얼굴을 그리워 했겠지..  

 

1시간을  훨씬 넘겨서야 작은 임도를 지나 왼쪽 숲 속의 잡목을 헤쳐 오르니 헬기장에 다다른다.(05:20)

잠시 숨을 고르며 목을 추긴다. 온통 물에 빠진 사람꼴이 되어 서로의 랜턴으로 얼굴을 비추는 8명의

대원들이 한층 강인해 보인다. 6개월 여 긴 호남정맥 길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헤쳐온 자유인 탐사대의

발길이 외망포구에 다다르면 어떤 느낌으로 남해에 발을 담글 것인가..

 

 (증리마을 雙山義所 기념비-8/3 쌍봉사 선답시)

철쭉 가지와 잡목으로 뒤엉킨 오르막 길을 20여분 된오름으로 힘겹게 헤치고 오르니 桂棠山 삼각점이 있

는 정상에 올라선다. 왼쪽 복내면 마을들의 불빛이 축축한 나뭇가지 사이를 비집고 어슴푸레 비추인다.

'生居福內 死居蘆洞'이라 했던가.. 주암호 자락을 따라 비교적 풍부한 밭자락을 일구는 복내면을 벗어나

면 노동면 갈대 산길은 또 얼마나 가파를 것인가..아가위 나뭇가지가 산정을 이룬다.(05:45)

 

계당산 아래 왼쪽 증리마을은 지난 여름 돗재 휴양림에서 하룻밤을 묵을때 雙峰寺를 들러 '雙山義所' 기

념宅舍를 방문한 곳이다. 천혜의 은둔지로 가려진 증조산(甑洞) 작은 마을에서 한일 합방전 의병을 모의

하던 쌍봉리 杏史 梁會一 선생의 후손인 양동복씨가 전남대에서 건축학을 전공하는 아들의 도움으로 작

년에 복원한 한옥집이 네가구 작은 마을의 맨 안쪽에 자릴잡고 있다. 마을 윗쪽 큰 샘물에서 발원한 천리

난골의 맑은 물은 지석천을 타고 춘양면 예성산성을 돌아 이 땅의 한을 담은 채 영산강 하구를 거쳐 서해

에 울음을 토하리라..  

 

망견봉 아래 쌍봉사엔 철감선사의 승탑(부도탑)을 비롯한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숙곡치 고갯길을 유서 깊

게 꾸미고 자릴 잡았다. 단지 신라시대 이후로 긴 역사의 향기를 간직한 대웅전을 비롯한 크고 작은 堂舍

들이 전란과 근년의 화재로 인하여 20여년전 복원되었다는 점이 아쉽긴 하다. 아무튼 獅子山이라고도 불

리운 잡목 무성한 계당산 자락을 오르 내리던 이 땅의 영혼들이 복된 곳에 안식처를 마련할 수 있는 정성

을 간직한 도량으로 오래 오래 보존되기를...

 

 (봉화산 정상)

 계당산 내림길도 역시 잡목이 무성하다. 고만고만한 높이의 작은 봉우리들을 수없이 오르내리며, 조금

씩 여명은 밝아 오는 것 같으나, 짙은 운무와 안개비 속에서 아직은 랜턴을 끄기엔 이르다. 마루금을 따

르는 등로는 점차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가며 남서쪽을 향한다. 점점 급경사 내리막이 자주 나타나며

오른쪽 이양면의 차량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편안한 오르내림을 거쳐 복내면 학동고개 안부를 지나고

편백나무 숲을 짧게 지난 후에 경전선 예재터널을 지나 철탑 아래 헬기장에서 늦은 아침을 펼친다. 다행

히 비가 멎어  땀과 빗물이 흥건한 옷들을 벗어 물기를 짜내고 잠시 말려둔다.(08;15-08:50)

 

빗물에 젖은 아침식사와 긴 휴식을 취하는 동안 어느새 식은 몸이 한기를 느낀다. 이제 가을이 왔는가..

다시 안개비가 젖기 시작하는 아침을 싸고 예재를 향해 내림길을 천천히 밟는다. 밀림 같은 잡목 숲을

헤치다 보니 계획된 시간보다 너무 늦은 식사를 하여 이미 식욕을 잃은 듯하다. 통신탑이 있는 임도 삼거

리(고치)를 거쳐 왼쪽 숲 속을 넘어 내리니 화순/보성을 잇는 예재 고갯길에 내려선다. 이미 29번 국도

터널이 개통된 이후로 차량 통행이 거의 없는 포장된 고갯 길에 젖어드는 빗물이 쓸쓸하고, 안개 빗속에

길가에 쌓여진 돌더미만 산객을 반긴다.(09:10)

 

절개지 오른쪽 잡목 숲을 천천히 30여분 오르내리며 그리 힘들지 않은 봉우리를 넘어 산죽밭이 길게 자

란 숲 속을 헤쳐 오르니 봉화산 정상에 올라선다.(09:45) (465.3m) 삼각점이 있고 오른쪽으로 작은 능선

을 가지친다. 얼마전까지 '봉화산'과'시리산' 명칭을 두고 두개의 표지판이 있었으나 '시리산'만 남았

다. 결론적으로 크게 잘못된 일이다. 오늘날, 언론의 횡포를 탓하는 높은 어른의 고집을 상기하자는 뜻은

아니지만, 출판사('사람과 산'-2004년) 한 번의 잘못이 빚어낸 어처구니 없는 논란과 혼돈을 이제 바로

잡고자 한다. 

 

분명 고도 465.3m, N34도50',E127도 02'의 현 위치는 '봉화산'으로 되돌려짐이 맞다. 단지 '시리산'이란

명칭의 유래는 봉화산 북쪽방향 구례리 터골 마을 뒷산인 '다리산'을 잡지사 '사람과 산'에서 정맥지도

를 출판할때 '시리산'으로 잘못 표기된 후로 정맥 산꾼들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고도계를 즐기는

정맥탐사팀의 일부가 봉화산 지나서 고도 470m봉우리를 上峰으로 보아 차례로 '시리산', '봉화산' 표지

판을 임의로 내건데서 비롯되었다. 무릇 山名과 그 主峰은 단순한 높이로 결정될 일도 아니며 주변 주민

들과 오랜 삶터에서 생겨 난 자연스런 銘名이어야만 한다.(참고로 봉화산은 '월산'으로도 불리었으며,

쌍봉리 뒷산의 '월산'과도 구별된다.- 고증; 이양면 산업과 안정섭님-구례리 거주)

 (가위재 직전 -운무 걷히는 고비산)

엉뚱한 이름의 표지판을 달고 있는 봉화산 정상을 지나 산죽밭이 계속 이어지는 오르내림을 거쳐 473m

봉우리에 올라서니 또다른 봉화산 표지판이 깨어진채 뒹굴고 있다. 잘못된 산명이 이 글을 읽는 후답자

에 의해서 바로 잡히길 바래본다. 계속되는 가시잡목과 산죽내리막 길을 그리 급하지 않게 내려서니 추

동재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꺾는다. 이제 남쪽 장흥면/보성면을 가르는 왼쪽 벽옥산 능선길을

반대로 돌아 화순/장흥을 가르는 정맥길을 이어가며 서쪽으로 향한다.(10:15)

 

비교적 편한 잡목길을 걸으며 두세개의 작은 봉우리를 넘어 90도 왼쪽으로 돌아 내리는 긴 풀섶 내림길

을 조심스레 꾸불거리며 찾아 내리니, 등로는 수레길 같은 안부를 지나고 다시 작은 봉우리를 서너개 지

루하게 넘어선 후에야 운무가 걷히면서 남쪽 장흥 장평면 들판을 드러낸다. 고비산을 마주하며 정상을

맴돌며 벗기어 지는 구름을 조망한다. 이제 긴 시간의 습한 행군을 마무리하는가 보다. 갑자기 시장기가

돈다.왼쪽 진산리 마을의 계단식 논이 푸르게 보이는가 싶더니, 비교적 잘 닦여진 비포장 임도가 마루금

끝자락에서 북쪽 화순 연화리 고갯길이 막힌채 가위재 안부에서 그 오름을 멈추었다.(11;15-11:30)

남은 간식거리를 풀어놓고 고갯마루에서 휴식을 즐긴다. 선두는 고비산을 넘는가보다.

 

(방화선 시작전-보성 벌판 넘어 일림산을 바라보며)

긴 휴식 후, 가위재 임도 건너 오름길에 잠시 올라선 후, 산마루에서 90도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편한 등

로를 따라 오르니 마지막 짧은 된오름을 거쳐 잡목 무성한 고비산 정상에 올라선다.(11:45) 넓은 정상터

는 잡풀과 나무들로 가려진채 조망도 가질 수 없을 만큼 마지막 여름을 가꾸고 있다. 왼쪽 방향으로 돌아

내리는 등로를 가까스로 찾아 큰 나무 숲 속으로 내려서니 다행히 관목 숲이 깊어 잠시 풀섶 길에서 벗어

난다. 작은 봉우리를 두어번 넘어서니 왼쪽 산아래로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잘 단장된 가족묘지를 지난

다. 잠시 두리번 거리다 왼쪽 언덕으로 이어지는 잡목 숲 등로에 나부끼는 리본이 반갑다.

 

오름길에서 풀섶에 가려진 채 덮지 않고 버려진 이장한 묘터에서 자칫 발목이 빠질뻔하여 당황스럽다.

묘터를 이장했으면 다시 흙을 어느정도 채우며 고를 수도 있을텐데...꼭 봉분의 흔적을 남겨둘 필요가

있는걸까..오른쪽 봉우리를 돌아 넘어니 내리막 방화선이 시작되면서 좌우를 교대하며 비틀거리는 방화

선이 어지러운 잡목과 긴 풀섶으로 뒤덮힌 채 오르내림을 반복한다. 밤송이 넘어로 가을 하늘이 점점 맑

아진다. 아 ,어느새..문득 짧은 바람이 선듯하게 이마를 지난다.(12:10)

 

긴 방화선을 오르내리며 잡목 숲을 지난 후 활공장 안부를 넘어서니 좌우로 마을이 내려다 보일 만큼 벌

초되고 아예 맨땅을 드러낸 마사토 황토 방화선이 이어진다. 처음 느껴보는 편한 걸음거리다. 길섶에

솟아오른 잘 익은 영지버섯 한그루를 캐어 배낭에 담는다. 긴 여름의 뜨거움을 받아들이며 나를 기다린

모양이다. 서너개의 작은 오르내림을 지루하게 밟은 후에 왼쪽 내림길 방화선 마지막 자락을 미끄러져

내리니, 지방도로 표시된 큰덕골재가 비포장으로 풀섶만 무성하다. 다음 구간의 들머리에 죽산안씨 묘비

가 반긴다. (12:50) 갑자기 발바닥이 뜨거워진다.  어느 새 9시간이 지났구나.. 

 (방화선 능선에 밤송이가..)

마루금 큰덕골재 고스락에서 오른쪽 대덕마을로 이어지는 비포장 도로는 꽤 넓은 길이지만 빗물에 패인

채 긴 바퀴자국만 남겨 놓고 차량이 다닌지는 꽤 오래된듯 싶다. 20여분을 걸어 내리며 또 오늘 한 구간

을 마무리하는 내 발걸음은 점점 뜨거워지는데..

 

오른쪽 산허리에 심겨진 돌배나무와 배롱나무 꽃들이 잠시 아픈 발을 멈추게하고 , 지난 날의 영욕을 까

마득히 잊은 듯, 산아래 큰덕골 마을을 향해 평화로운 개울물 소리를 흘러 내리며 부질없는 걸음으로 먼

길을 터벅거리는 산객의 젖은 신발을 또 한번 적신다. 큰덕골 마을 정자에 다리쉼을 하며 담장을 넘어 온

대추 한톨 따서 씹어 본다. 상큼한 고향 맛이다.

 

 (다음구간의 가지산 방향)

 

9/3 道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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