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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정맥(2007-10)·完了/호남정맥(07)·完了

9/23천운산(서밧재-돗재)구간종주-호남정맥 10차보충

by 道然 배슈맑 2007. 9. 26.

 

(산행시간표)

9/23   15:00    서밧재(170)  출발

         15:23    교육원 갈림길

         16:00    천운 제2봉(568)

         16:40    천운산(601.6)        3.9km
         17:15    돗재(310)              1.7km

                      2시간 15분          5.6km

 

 

 (15번 국도 서밧재 들머리)

(9/23 07:00)  추석 귀향길..고향 떠나온 뒤로 군대시절 빼놓고는 한번도 거르지 않은 명절 귀향이지만,

늘 설레고 즐겁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큰 조카 둘과 배병장, 작은 누님 내외...7명이 함께 버스

전용선을 달린다..물푸레의 명절 귀향,귀경길은 20여년의 행사 덕분에 항상 고속도로에 익숙해 있다..

단지 올 해 들어 벌써 서너번째 전남 광주 땅을 지나 화순을 거쳐서 부산으로 향하는 긴 행로에 조금은

머리가 아프다.

 

지난 여름 휴가 때 너무나 더운 날씨에 다 채우지 못한 천운산 밟기를 오늘 추석 귀향길에 시도할 참이

다. 문제는 자꾸만 흐려지는 날씨와 호남고속도로의 귀향길 정체가 맘에 걸린다.논산 부근의 정체와 점

점 굵어지는 빗줄기 덕분에 화순읍 식당에서 비빔밥으로 점심을 때우며 망설인다.(14:00)

포기할 뻔한 산행길을 아무래도 남겨둘 수 없는 기분에 결국 늦은 시간에 결행을 하기로 맘 먹는다..동행

하려던 누님 내외는 간간히 내리는 빗줄기에 결국 포기한다. 혼자서 빨리 뛰어 넘어 오는게 상책이다..

 

 (교육원 갈림길)

(15:00) 돗재 날머리를 일러주고 남면을 돌아 서밧재에서 차를 내리고, 물푸레에게 차를 인계한다.

비내리는 산길을 홀로 오르는 지아비가 아무래도 맘에 걸리는지 인상이 별로 밝지는 못한 채 한심스런 

배웅을 하며 차창 밖으로 손을 흔든다. 속으로 "미쳐도 단단히..."하고 있겠지..배병장도 그럴까..

내가 아이들에게 보여질 수 있는 마지막 바램은 고집스럽지만 작은 계획을 실천하려는 의지일 뿐이다.

 

내 삶의 대부분을 점철했던 이해 못할 고난의 걸음들은 그렇게 별로 큰 보람의 열매도 보이질 않는 작은

고집 하나 꺽질 못해 내 딛은 엉뚱한 발길들이었지만..그것이 나를 지탱하는 유일한 힘이라면...나는 앞

으로도 마지막 그날 까지  이러한 길을 걸어 나갈 수 밖에 없겠지..긴 풀섶에 함께하는 싸리나무 잎새가

듬뿍 적신 빗물들로 내 바지를 적시며 아예 우의를 포기하게 만든다..묘지 3개가 나란히 잘 단장된 채

홀로 산객을 반긴다. 내 고향 선친의 묘소도 저처럼 형님의 손길로 잘 단장되어 있음을 알기에 자랑스럽

다.

 (천운 제2봉에서 바라본 조계산)

잡목과 가시덤불의 긴 풀숲을 헤치고 소나무 숲을 지나 큰 바위지대를 오른쪽으로 돌아 넘으니 임도를

지나 왼쪽으로 잘 정비된 자갈길을 걷는다. 오른쪽 교육원 갈림길에서 잠시 숨을 돌리며 물 한모금 마신

다.(15:20) 안내도를 보면서 오르막을 직진하며 정상표지판을 따른다. 조용한 숲길에 부슬거리며 얼굴을

적시는 초가을 빗방울이 청량스럽게 느껴진다.10여분을 치고 오르니 광업진흥공사 표지석을 지나 제1쉼

터 봉우리에 올라선다.(15:35)

 (올 가을 보성땅을 돌아 지리산쪽으로 올라갈 정맥 길을 바라보며..)

비에 젖어드는 배낭과 카메라를 억지로 추스리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정상을 향해 뛰어오르려 했지

만 금새 만나는 급경사 오르막에서 포기하고 다시 천천히 비에 젖어든다.돌탑이 쌓여 있는 능선 오르막

을 천천히 올라 천운 제2봉 직전 전망대 봉우리에서 동쪽을 조망한다. 저기 조계산도...남면 들녘이 연두

빛 탐스런 곡식을 안은 채 가을비에 더욱 푸르다.(15:55)

 

50여년전 그 해 가을에도 저렇게 익어가는 볏논가에서 메뚜기 잡던 소년들은, 갑작스런 포성과 화약연

기 속에서 그들의 낭만을 날려 버린 채 물끄러미 지켜보아야 했던, 못 난 어른들의 이해 못할 말싸움에

어떤 웃음을 지어야 했을까...오직 배고픔과 추위를 견뎌 낼 내 작은 초가집 한 채를 불태운 채 천리길

보다 멀어 보이는 그 곳을 향하여 이길을 걸어 갔을터이다..그날 밤은 보름달이라도 밝았을까..

 (구름 속으로 잠기는 무등산..)

천운제2봉을 지나 천운산 정상으로 향하는 오른쪽 내리막 길에서 바위전망대에 올라 점점 구름에 가려지

는 화순땅을 바라본다. 첩첩 산중으로 이어지는 척박했던 그 땅도 오늘은 즐거운 추석을 맞으리라..

그리 힘들지 않은 오르내림으로 작은 능선 봉우리를 두어개 넘어 오르니 600봉 전망좋은 능선길이다.

북쪽 무등산 아래 안양산이 구름으로 묻혀가며 작별을 고한다. 지난 여름의 힘들었던 기억이 벌써 추억

으로 장식되어 가는구나..(16;35)

 (빗속에 잠기는 화순땅..)

천운산 정상으로 향하는 편안하고 잘 조성된 오솔길이다. 소나무 향내를 맡으며 어느새 나는 혼자가 아

니다. 70년대 말, 동해안가에서 군생활을 즐기고? 있던 배병장은 갑작스런 면회에 혼란스러워진다.

조금 안면이 있는 K군의 누님의 면회도 뜻밖이었지만, 내게 들려준 군의 소식 또한 말년 병장의 가슴에

매우 아픈 상채기를 남겼다. 나는 이제 얼마 후엔 저 영산강 기슭의 어느 야산 밭에서 그를 만나 회포의

술잔을 나누기를 고대한다.

 

 (지나온 천운 제2봉이 구름에 가려진다..)

대학 초년을 지나자마자 서두르듯 고시공부에 매달리며 졸업전 합격을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던 K군이

졸업을 몇달 남겨두지 않은 시기에 모든 공부를 단념하고 내게 전하는 편지 한장 남겨 놓은 채 행방이

묘연하다는 누님의 설명에 나는 매우 당황스럽고 지난 날 내가 군에 입대할 상황에서 훈련소 입소 마지

막 까지 눈물을 글썽이던 모습이 더욱 가슴에 아린다. 뭔가 그에게 커다란 절망이 다가왔을터인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누님을 통해 처음 들은 그의 아버님에 대한 아픈 이야기였다.지리산 자락으로 숨어

들듯 세상을 등진 한스런 그의 가족사를 처음 알게 된 것이다.

 (천운산 정상에서)

(16:40) 어느 새 천운산 정상의 무인 산불감시 초소가 내 오른쪽 어깨 위에 나타난다. 정상 표지석곁에

비에 젖은 배낭을 내려 놓고 기념을 남긴다. 뒷편 나뭇가지에 자유인 탐사대의 연두색 리본이 반갑다.

이렇게 또 한 봉우리를 넘어가며 나는 호남정맥을 배우고 느낀다.

 (지난 구간에 밟았던 태악산,계당산이 줄줄이 밀려온다.)

남쪽으로 이미 밟아 내려간 계당산 줄기가 비구름을 이고 천천히 밀려온다. 왼쪽 한천휴양림 방향으로

내림길을 밟으며 쓸쓸히 비에 젖는 묵은 묘를 지난다. 인간의 역사가 그 생명의 끈을 이어 갈 代 잇기를

가장 큰 의미로 여길진대, 대간 정맥길에서 무수히 만나는 버려진 묘소들의 역사를 상상하며, 나는 가끔

씩 인간 삶의 허무함도 들여다 보곤 한다. 배낭을 내리고 임자없는 묘소에서 잠시 포도주 한잔을 기울인

다.(16:45)

 (돗재 내림길에 뾰족산이..)

급경사 내리막을 잠시 밟은 후에 안부에서 오른쪽 휴양림길을 버리고 팔각정 표지방향으로 직진 오르막

을 뛰어 오른다. 작은 봉우리를 지나 암릉길을 조심스레 밟으며 빗길에 젖어 미끄러움을 느낀다. 벤치도

나타나고 편안한 등로가 이어지니 거의 다 내려온 모양이다.다시 작은 봉우리를 한번 더 넘어선 후에야

팔각정 내림길을 만나고 돗재를 지나는 차소리도 가끔 들린다.(17:10)

 (암릉길도 밟아 내리고..)

(17:15)팔각정에서 잠시 땀을 �고 왼쪽 내리막 길을 밟으니 이내 돗재에 내려선다. 나를 기다리는 귀향

길 식구들이 박수를 쳐주니 고맙긴 하지만 왠지 맘속에 접어둔 혀차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비에 젖은 등

산복을 입은 채 운전대를 잡고 돗재를 지나 ,구봉산 아래로 흐르는 남면천에서 대충 땀을 씻고 옷을 갈아

입으니 또 한 숙제를 끝낸 철없는 아이의 마음이다. 추석의 보름달을 기다리며...

 (비에 젖은 돗재..)

 

9/26 道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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