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시간표)
10/20 22:00 신도림 출발
10/21 03;30 오도재(170)
03:56 335.5봉 0.8km
04:30 파청재
05:05 방장산(535.9) 3.0km
06:00 주월산(558) 2.8km
06:50 무남이재(335) 1.8km
07:15 광대코재(초암산 갈림길)
07:30-08:00 아침식사
08:25 571.1봉 2.0km
08:50 모암재 0.8km
09;30 존제산 1.4km
10:40 주랫재 (11:00 출발) 4.2km
11:52 485.5봉 1.2km
12:24 광일농장
13:45 석거리재 3.2km
10시간 15분 21.2km
(용담)
(10/20 22:00) 신도림 출발지에 자유인 등산대가 붐빈다. 긴 백두대간의 마지막 진부령길을 한 주 남겨 놓은 채 아쉬움을
달래며 구룡령에서 갈전곡봉을 넘어 조침령 계곡 찬물에 발 담그려는 자유인 9기 대원, 대간길 중간점을 거쳐 황장산 암
릉을 걸어갈 자유인 10기, 적은 인원으로 힘겹게 걸어 온 정맥길이 이제 올 한해가 끝나는 날, 발 담글 외망포구가 점점
가까워 지고 있는 자유인 호남정맥 탐사대.. 모두 각각의 산길을 설레이는 맘으로 밤차를 기다리며 악수를 나눈다. 정겹고
순수한 사람들..이 한 밤을 걸어서 무엇을 느끼고 가슴 한가운데를 비울까..채울까..
(10/21 03:30) 광주, 화순을 거치는 마지막 호남길을 달려 깊게 잠든 보성읍을 지나 어둠이 짙은 오도재 가로수 길에 닿는다.
별빛만 요란한 상현의 달은 이미 사라진 가을 밤하늘이 청량하고, 보석처럼 쏟아져 내리는 별빛을 향해 올려다 본다. 싸늘히
느껴지는 첫 추위를 실은 바람이 꽤 세차게 산객들을 맴돌면서 오도재 겸백고개를 넘어간다.
"언제 떠올랐는지 모를 그믐달이 동녘 하늘에 비스듬히 걸려 있었다. 밤마다 스스로의 몸을 조금씩 조금씩 깎아내고
있는 그믐 달빛은 스산하게 흐렸다. 달빛은 어둠을 제대로 사르지 못했고, 어둠은 달빛을 마음대로 물리치지 못하고
있었다.달빛과 어둠은 서로를 반반씩 섞어 묽은 안개가 자욱히 퍼진 것 같은 미명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소설 '태백산맥' 첫장)
(주월산에서 고흥을 바라보며)
오늘 구간 중간 지점 모암재에서 오르기로 한 두명의 대원을 남기고 7명의 자유인 호남정맥 탐사대가 편백나무 숲길의 급경
사를 치고 오르며 첫 걸음을 시작한다. 무전기의 교신을 테스트하는 맘이 꽤 무겁다. 오늘 존제산 구간의 거친 잡목이 무척
힘겨워 선두, 후미의 진행을 매우 좁혀 나가야 별탈없이 목표지점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첫 목표인 355.5봉까지 작은 봉
우리를 두어개 넘으면서 20여분 힘겹게 된오름을 거치는 워밍업에 쌀쌀한 날씨에도 땀이 배인다. 계획시간에 정확히 맞추어
진행됨에 놀랍다. 남으로 향하며 득량면 마을 불빛들이 조금씩 따라붙는 능선길이 동쪽으로 90도 방향을 바꾸며 왼쪽 파청치
를 향해 비탈을 이루며 내려간다.(03:56) 득량면 저수지에 밤별이 쏟아져 내린다. 긴 벌목지대 오르막을 철망을 따라 걷는다.
1948년 10월19일 여순사건의 기억을 되살리고 영혼들을 위로하는 매년의 행사가 바로 엊그제 끝난 벌교땅을 향하면서 소설
태백산맥을 다시 떠올리며 오늘 밤을 걷는다. 아직도 이 땅의 잠들지 못한 영혼들이 춤추고 있는 이 밤에, 우리는 한 작가의
시각에서 바라 본, 그야말로 상상하고 느껴볼 수 있는 한 부분의 소설을 두고도 사상적 다툼과 형사고발을 거침없이 병행하
는 무지의 세상에서 또 얼마나 걷고 걸어 간 뒤에야 자유인의 진정한 참뜻을 느낄 수 있을 것인가..
모든 사건과 사상의 진행에는 대립되는 원인과 반목이 있겠으나, 어린 시절 학교에서의 가르침 조차도 中庸이란 흘러간 공자
의 한갖 외침으로 공책 속에서 잠들고, 오직 '도 아니면 모'식의 명쾌한 선택만을 강조하는 이 땅의 현대사가 어쩔 수 없이 대
립된 살육의 현장에서 빨간 총알,파란 총알에 쓰러져간 회색의 양민들이 이 밤중의 정맥 길에서 함께 어울려 춤추고 있는데..
날 밝으면 헤어나지 못한 무지의 정치꾼들은 또 한 번 소리 높여 외치겠지...보수니 진보니, 자유니 평등이니, 수구꼴통이니
좌빨이니..손등과 손바닥 같은 허무한 인간들의 다툼이여 이 칠흑의 밤처럼 부디 깊이 잠들어 깨어나질 말았으면..
(대곡리 저수지와 장군봉 일출)
(04:20)철망을 따라 오르던 정맥 길이 오른쪽으로 편백나무 숲을 지나 작은 봉우리 왼쪽으로 내려가니 작은 고갯길인 본래의
파청치에 내려선다.다시 이어지는 작은 봉우리를 편하게 10분 남짓 넘어서니 오른쪽 임도를 따라 내려서고, 겸백과 득량을 잇
는 신작로 파청고개에 닿는다.(04:30) 건너편 체육시설에 배낭을 내리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득량 예당 마을이 고향인 대원이
밤길 선친의 산소를 향해 술 한 잔 따르고 절을 올린다. 이제 자유인의 걸음으로 고향 뒷산을 이어가는 중년의 대원이, 고흥과
벌교를 거쳐 소풍 다니던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지난 세월의 어떤 변화와 자유를 느끼고 있을까..문득 내 고향 뒷산의 부모님이
그리워지는 밤이다.
주월산 방향 표지를 따라 긴 임도길을 걸어 오른다. 방장산 중계소 공사용 도로인듯 하지만, 깊게 패인 경사길에 흘러 내린듯
한 빗물이 깊은 골을 만들며 점점 산허리를 황폐화 시키고 있는데, 헬기장을 이용하고 빨리 도로는 폐쇄하여 복구를 해야겠다.
긴 임도를 따라 작은 봉우리를 넘어서고 오른쪽으로 잠시 방향을 바꾸면서 숲속 사면을 따르다가 다시 임도를 따르니 호동재
안내 표지를 지난다.(04;50) 오른쪽 급경사를 올라 조망처에서 고흥쪽 밤 바다를 조망하고 방장산 정상에 올라선다.(05;05)
KBS 중계소엔 인기척이 없다.정상표지석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조성면 들판을 내려다 본다. 점점 바람이 일며 쌀쌀해진다.
(고흥 반도의 새벽)
(05:10)다시 주월산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내리막을 길게 내려 밟은 후 조금씩 성가시게 앞을 가로막기 시작하는 잡목들과
억새, 명감나무들이 차례로 나타나기 시작하는 능선길을 그리 험하지 않게 오르내린다. 암릉길도 간간이 나타나고,헤드랜
턴 불빛에 곱게 나타나는 하얀 구절초가 한밤의 산객들에게 유일한 벗이다. 30여분 후에 작은 안부 고갯길을 넘어 오른다.
이드리재라고 했던가..도무지 그 뜻이 뭔지 감이 오질 않는다. 다시 편안한 봉우리를 넘어서니 오른쪽 조성면으로 내려서
는 배거리재 표지를 지난다. 배가 넘다가 걸린 고개인가..바로 보이는 주월산(舟越山)은 배넘이산인데..10여분의 오름길에
서 스테인리스로 만든 철봉과 평행봉이 빛난다. 과연 어느 동네 활기 찬 젊은이들이 있어 이곳까지 올라와 운동을 할꺼나..
활공장 민머리를 지나 주월산 정상 쉼터에서 잠시 머문다.(06:00) 세찬 바람이 불고 이내 추위가 밀려든다. 고흥쪽을 바라
보니 汝子灣은 아직도 어둠 속에 잠겨있다.
주월산 정상을 넘어서서 잡목에 가려진 내림길이 어둠속에서 쉽게 찾아지질 않는다. 겨우 숲속에 가려진 하얀색 로프로 이
어지는 유도선을 따라 활공장 비닐하우스가 있는 임도에 내려선다. 다시 오른쪽 숲속으로 이어지는 능선 마루금에 올라서
서 철쭉 덩쿨들과의 전쟁이 시작된다. 등로 유도선 로우프가 없으면 도무지 길을 찾을 수 없을 만큼 밀집된 철쭉 가지들을
헤치고 작은 봉우리들을 서너개 지쳐 내리는 도중 무남이재 직전 봉우리에서 일출을 맞는다.발아래 대곡리 저수지가 햇살
을 담으며 장군봉 너머 벌교 순천의 바다에서 떠오른 태양이 맑은 하늘에 붉게 떠오른다. 다시 급경사 내리막을 철쭉가지
를 헤치며 내려서니 무남이재(겸백/조성) 잘 정비된 도로에 내려선다. 물이 넘어 간것 처럼 말끔하다.(06:50)
(초암산 갈림길 광대코 삼거리에서 지나온 방장산,주월산을 바라본다.)
무남이재를 건너 급경사 오름길을 식사전에 마치기로 한다.곳곳에 암릉길이 있는 된오름을 20여분 지쳐 초암산 갈림길의
광대코 삼거리에 올라선다.(07:15) 뒤돌아 본 방장산,주월산 능선이 새벽을 벗고 득량만 바다위에 우뚝하다. 왼쪽 초암산
아래 겸백천 계곡에도 아침 햇살이 스며든다. 오른쪽 존제산을 향하는 암릉지대를 오르니 고도가 600을 넘어선다. 철쭉가
지가 바위에 걸리는 칼날 암릉길이 매우 조심스럽다. 아침식사와 휴식을 위해 적당한 장소를 만날 것을 기대하며 철쭉과
억새로 가득한 봉우리 능선을 두어번 더 오르내린 후에야 길섶 소나무 아래에서 비집고 자리를 잡는다.(07:30-08:00)
이른 새벽을 달려 온 탐사대의 길섶 식사와 휴식은 늘 그렇듯이, 올 한 해 동안의 힘든 발걸음을 함께하며 느낄 수 있는
정나눔의 시간이다. 배낭 가득 짊어지고 높은 산을 오른 서로의 정을 아낌없이 나눈다.60년 전 배고픔의 시대에도 이렇
게 서로의 고구마 한 쪽을 정나누며 오손도손 살아가는 갯가의 이웃들이었건만..무엇이 우리에게 극복의 대상으로 남아
인간의 정을 거둔 채 멀리 산 속을 헤매며 빈배를 움켜쥐고 긴 밤을 걸어야 했을까..그 몫은 누구의 배를 채웠던가..
(고흥지맥 분기점 571봉 전에 있는 암릉에서..)
다시 존제산을 향해 걸음을 이어간다.철쭉 군락이 잎을 떨군 채 성긴 가지로 바지를 잡아 당기고, 억새 밭의 눈부신 춤에
실려 온 깊은 가을의 아침 바람이 몸을 떨게 한다.큰 암봉의 왼쪽 사면을 돌아 넘어 명감나무 오르막 길을 헤쳐나가니 소
나무 초록빛이 유난히 푸른 작은 봉우리에 드물게 낙엽진 단풍 잎 하나 파르르 떨고 있다. "고향 떠나온 자의 한숨 빛"(조
정래)이라 했던가..동녘을 넘어 오는 아침 햇살에 눈이 부시는 억새 암릉을 올라서니 571.1봉 삼각점을 지난다. 편안한 능
선길을 좀더 나아가니 동남쪽 장군봉으로 이어지는 고흥지맥 분기점을 만나 왼쪽으로 존제산을 마주하며 모암재 내리막
을 밟아 내린다.(08:25)
(571봉에서 바라본 존제산 능선)
모암재(천치재)로 내려서는 30여분간의 억새 밭길은 존제산 오름의 철쭉 밭길 전쟁의 워밍업인듯, 앵감 나무의 도움을 받는
가시덤불을 헤치다 보니 손수건에서 부터 몸에 걸친 하나 하나씩을 강탈 당하며 급경사 길을 훑어 내린다. 오른쪽 벌교땅 천
치저수지가 내려다 보이는 안부에서 잠시 다리 쉼을 하고 임도 건너 억새 밭길을 넘어서니 모암재(율재) 자갈길에 내려 선다.
(율어면 선암리/벌교읍 옥전리) 중간에서 오르기로 한 두명의 대원은 추위를 참지 못해 이미 존제산을 넘었다는 연락이다.
부디 무사히 주릿재에 도달하기를..(08:50)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은 天峙 고개가 오늘은 얕게 보인다.
빈틈 없이 들어 찬 철쭉 관목 사이로 지뢰 경고판이 나타나는 숲길을 10여분 올라서니 짓밟힌 철조망이 지난 날의 흉한 잔재
처럼 드러누워 있다. 다시 20여분간의 철쭉관목 숲을 헤쳐 나가며 군 시설물의 잔재인 철조망과 뚫어진 철망문을 통과하고
파헤쳐진 교통호를 철판다리로 넘어선다. 존제산 정상을 시끄럽게 하는 지뢰조심 경고 스피커가 울려대기 시작한다. 도대체
어떤 심보로 부대를 철수하면서 경계를 풀어놓고 남은 지뢰가 있을 수 있다고 이렇게 온 산을 시끄럽게 외칠 수 있는 걸까..
텅빈 건물과 작은 운동장을 지나 왼쪽 존제산 정상을 확인하고 시끄러운 경계방송을 피해 재빨리 잠겨진 정문을 왼쪽 하수구
구멍으로 빠져 나온다.(09:40)
(존제산에서 바라본 고흥지맥)
주릿재로 내려서는 긴 능선길은 또 다른 부대의 경계와 임도를 따른다. 율어면 상도들판이 왼쪽으로 보이기 시작하고, 오
른쪽 벌교읍을 잠시 조망한다. 고흥 앞바다의 여자만이 멀리 보이며 문득 벌교 꼬막 이야기에 '무당 월녀'의 쫄깃한 맛을
연상하고 잠시 몰래 웃음을 지어 본다. 긴 임도 길에서 한국통신 중계소가 마루금 위를 차지하고 있는 삼거리를 지나고
(10:00), 계속되는 임도를 20여분 지루하게 걸으니 마루금을 만나는 지점에서 왼쪽 숲으로 내려가는 능선길을 만나 백림
농장 쪽으로 이어지는 임도와 헤어진다. 10여분을 숲길 내림을 밟으며 주릿재를 향해 급하게 내려선다. 다시 임도와 만나
고 잘 정비된 주릿재(주랫재)에 내려선다.(10:40) 작은 공원을 꾸미고 있는 모양이다. 길 건너 양지 바른 곳에서 배낭을
내리고 긴 휴식을 취한다.(-11:00)
(주릿재 너머 율어 상도들판)
동쪽 추동저수지의 물은 가을 하늘을 담은 채 푸르고, 벌교 제석산 아래 어드메에서 정하섭과 소화의 사랑이 한낮의 연기
되어 피어 오른다. 현부자댁인가..횡갯다리, 소화다리 밑에서 영문도 모른 채 쓰러져야 했던 슬픈 민초들이 이제 억새처럼
질긴 생명으로 다시 일어나, 그해 10월의 갈대 포구처럼 늦가을 시린 바람을 담아낸다. 서쪽 율어면으로 내려서는 고갯길에
산골 다랑논이 꾸불거린다. 다랭이 논밭의 층층진 주름살을 오늘날 관광의 대상으로 개발되고 있지만, 지리산 골짜기 아니
라도 "층층이 다랭이 논은 수탈자에 대한 분노"로 느껴진 그날의 가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과연 저 산으로 둘러쳐진 상도
들판에서 어떤 해방의 기쁨을 노래할 수 있었을까..
(망일봉 갈림길에서 바라본 존제산)
(11:00)주릿재 고갯길 확장포장공사 표지석에 기대어 따뜻한 해바라기를 잠시 즐기며 마지막 안간힘을 쏟아 낼 이슬이를
한모금 마시니 졸음이 밀려 온다.오른쪽 편백나무 숲길을 올라서고 벌목지대 오름길을 넘어서니 지나온 존제산이 아득해
지고, 숲속을 들어 서니 망일봉 삼거리에 닿는다. 서쪽으로 구기봉-망일봉 지나 모후산, 백아산 능선이 이어져 가면, 화순
땅 지나 무등,덕유로 이어지겠지..오른쪽 정맥길은 조계산,백운산 지나 지리산으로...그해 가을의 �고 �기는 슬픈 이념들
이 이 갈림길에서 아직도 함께 서성거리고 있다. 염상진의 묘소에서 하직한 하대치 일행은 어느 길로 갔을까..(11:35)
(호남정맥 길의 애틋한 사랑)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급히 꺾어 내리니 묘소를 지나 벌교/반용리를 잇는 도로공사가 진행중인 절개지 계단을 내려선다.
도로를 건너 공사중인 절개지를 힘겹게 차고 올라 편백나무 된오른 길을 거쳐 485.5봉에 올라선다. 호남정맥길 내내 자주
보아 온, 대구의 '준' 산객이 키 큰 나무에 정성스레 붙여 놓은 새하얀 표지판이 가을 하늘 높은 배경으로 더욱 아프게 다가
온다. 수없이 걸었던 호남정맥 길에서 먼저 떠나간 사랑하는 아내 '희'를 기리며 멀고 먼 이 정맥 길 내내 아름다운 사랑을
매달며 끝없이 이어 가고 있다.(11:50) "산 만큼이나 높은 사랑들....골 만큼이나 깊은 아픔들..."(영화 '태백산맥'태그)
(백이산 아래 석거리재)
철쭉 밭길을 걸어 내려 작은 봉우리를 넘어서니 억새 밭이 넓게 펼쳐진다. 안부를 올라서니 왼쪽 대전 마을 산허리를 차지한
광일 농장이 넓게 내려다 보이는 봉우리에 올라선다.(12;10)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지도상에서 급히 오른쪽으로 꺾어 내려
오른쪽 추동저수지를 바라보며 석거리재까지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야 한다. 그러나 농장측에서 임도를 만들며 리본들과 등로
를 어지럽게 만들어 많은 정맥 탐사대들이 왼쪽 임도를 따라 화전리 쪽 방향으로 알바를 겪는다. 잠시 잘못 달린 표지기들을
회수하고 선두조에 무전 연락하니 이미 왼쪽 임도를 따라 많이 내려간 모양이다.
10여분의 알바를 수정하고 다시 광일농장 농기구 창고를 지나 오른쪽 임도를 따라 벌목으로 어지러운 내림길 능선을 겨우 찾아
내린다. 별 특색없이 지루한 오르내림을 대여섯번 반복하며 맞은 편 백이산 아래 석거리재 고갯길이 보이는 마지막 봉우리를
넘어서니 잘못 길들은 선두조가 역방향으로 지쳐 올라온다. 끈질긴 탐사대의 성실함을 느끼며 지친 다리에 힘이 오른다.
벌목 조림지 마을 뒤산을 지나 석거리재 휴게소 고개에 내려서니, 고개 넘어 친정 집으로 한을 담고 넘어가는 외서댁의 걸진
욕설이 선뜻한 바람을 타고 백이산 기슭을 돌아 넘는다.
"정의와 진실은 현실 속에서 끝없이 패배한다. 다만 긴 역사 속에서 승리할 뿐이다."(소설'한강'-조정래)
(가을은 이렇게 잘 익어가는데...)
10/23 道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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