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시간표)
11/3 22:00 신도림 출발
11/4 03:30 석거리재 출발
04:25 백이산 (584.3) 1.8km
05:10 빈계재 (310) 1.4km
06:30 510.5봉 2.8km
07:20 고동재 (584) 1.5km
07;55 (식사후 출발)
08:20 고동산(709.4) 1.0km
09:25 705.7봉 3.1km
(20분 휴식)
10:10 선암굴목재(615) 1.0km
11;00 조계산(884.3) 1.8km
(30분 휴식)
13:00 접치(270) 3.4km
9시간 30분 17.8km
(장밭곡계곡 단풍)
(11/3 22:00) 을씨년스런 가을바람이 한차례 包道위의 낙엽들을 휩쓸고 간, 주말의 신도림역 뒷길은 여전히 어둡다.
단풍관광을 다녀오는 대형버스에서 실려 내리는 내장산 단풍도 이미 술에 취한채로 더욱 붉게 흐드러 지는구나. 많은
산객들이 골라 다니는 멋진 풍광을 미룬채로, 아니 피하는듯한 일정을 따라 밟아가는 호남정맥 탐사의 길에도 때로는
화려한 낭만과 화사한 멋스러움도 있을 법한데..어차피 잊기로 한 정치꾼들의 욕심 일듯이,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권력
에의 욕심이 오늘 또 정쟁의 한가운데를 소용돌이 치는 황량한 밤길을 달리며 잠 못드는 밤을 지샌다.
보수든 혁신이든 간에 정말 이 땅의 백성들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정부를 세울 정치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도덕과 양심
을 중요시하는 모범을 실현하여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역사를 전해주기 위해서는 기존의 정치꾼들을 싹슬이 하는
개혁이 절실히 기다려진다. 오죽하면 혁명을 꿈꿀까..한심한 정치꾼들이 결코 일부도 아니고 대부분으로 느껴지는 이
땅의 선진 민주화는 요원한 것인가..해방 후 피를 흘리며 쌓아 온 민주정치의 학습이 반세기를 훨씬 지난 오늘까지도..
잠들어라, 묻혀라 저 어둠 속으로..이 땅의 잡스런 정치꾼들이여..부패한 고위 공무원이여..그놈이 그놈 같은 반혁명의
세월이여..
옥녀산을 감아 도는 주암호 호반 도로가 그믐으로 접어드는 새벽 달빛을 담은 채, 잎 떨군 가로수로 깊은 밤을 밝힌다.
송광사 앞을 지나고 외서면 작은 마을들을 거친 뒤 낙안읍성으로 넘어가는 빈계재 갈림길을 지나 석거리재 주유소에
닻을 내린다. 지난 구간 날머리에서 꼬리치던 진돗개가 오늘 밤은 얼굴을 확인치 못하고 경계의 울부짖음을 백이산 위
그믐달 쟁반위로 실어 올린다. 약간 쌀쌀한 날씨에 방풍 점퍼를 걸쳐 입고 10명의 자유인 탐사대는 또 한구간의 호남
정맥 '자유인의 길'을 걷기 위한 채비를 차린다. 결코 순조롭지 못한 고난의 걸음을 각오하면서..(11/4 03:15)
(백이산 정상)
(03:30)쟁반같은 새벽달을 바라보며 달 아래 백이산을 향해 동쪽으로 이어지는 석거리재 들머리를 가파르게 올라선다.
왼쪽 발아래 장산리 마을들의 불빛을 마주하며 천천히 방향을 잡아 오른다. 가끔 들리는 개짖는 소리가 지친 사람들의
고단한 새벽잠을 깨울까봐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외서면의 밤은 이미 무디어진 신경으로 그리 날카롭지 않은 오늘을 숨
쉬며 역사를 잠재운다. 10여분 만에 첫 봉우리를 넘어서고 임도를 건너서 편안한 능선을 밟아 오른다.(03:50)
조금씩 가파르게 고도를 높혀가는 등로를 따라 쉬지 않고 걸어가는 탐사대의 숨결이 조금씩 거칠어진다. 오늘은 후미에
서 천천히 따르면서 여유있는 행보를 즐기기로 한다. 고사목지대의 조망처에서 남서쪽 존제산 불빛과 주랫재를 넘는 불
빛을 감상하며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다. 달빛 아래 화전리 대전 마을을 감싸는 지난 구간의 마지막 능선이 검게 드러누
운 채로 발 아래 석거리재를 밝히면서, 떠나가는 산객을 배웅하는 아쉬움을 전한다. 또 언제 이 길을 되돌아 올거나..
60년전 존제산으로 ?겨갔던 배고픈 영혼들이 해방의 땅 율어로 숨어들기 위해 내려 밟던 그 길을 ..고사목이 외롭다.
(금전산 일출)
(04:10) 백이산 뾰족봉이 바로 마주보이는 전위봉 편한 길을 넘어서면서 길섶의 하얀 구절초가 밤잠을 설치며 산객을
환영한다. 유난히 커 보이는 꽃잎에 잠시 아는체를 하며 미소를 보낸다. 긴 추위를 이겨 내고도 산 아래 고향 땅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이 곳 고향 땅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서 쓸쓸히 숨을 거두어야 했던 젊은 영혼들의 넋처럼 하얗다.
오른쪽 내림길도 잠시 곳곳에 발길을 늦추는 암릉을 밟아 급경사 된오름을 거치며 가쁜 숨으로 伯夷山 정상에 올라서
니 伯夷淸風(낙안8경) 맑은 바람이 땀을 씻어 주더니 오래 머물지 못할 만큼 냉기를 실어 온다.(04:30)
남쪽 추동저수지의 대립된 영혼들도 어울려 잠들고, 화려한 벌교 시가지와 낙안읍성의 불빛들이 그날의 아픔들은 잊은
채 고운 별빛 아래 풍요를 꿈꾸며 깜박거린다. 오랜만에 별자리를 헤며 걸어 내리는 억새 내리막이 비탈진 걸음을 조심
스럽게 만들기도 하지만 청량한 가을 하늘의 맑은 별자리들은 오늘 산행의 좋은 날씨를 예고해 주는듯하다.이제 보성군
경계를 지나 순천시 구간으로 진입하게 된다. 북으로 방향을 잡아 유치산 까지 길게 솟구치는 정맥 길이 섬진강 상류를
왼쪽으로 흘러내리며 지리산을 닿을듯이 마주한다.
(외서면의 새벽-서쪽 향일봉 능선이 감싸고 있다.)
억새 군락을 급경사로 밟아 내리며 벌목지 작은 봉우리를 넘어서니 성긴 철쭉 길들을 가지치기 하면서 등로를 확보한
흔적이 돋보인다. 그러나 결국 심한 비탈길에서 작은 바위를 피하려다 잘라 놓은 철쭉 밑둥에 걸려 넘어지며 가시덤불
이 얼굴을 할퀴고 지나간다. 밤길 내리막에서 헤드랜턴 외에 손전등의 필요성을 새삼 느낀다. 30여분의 철쭉가지와의
사투 끝에 오른쪽 낙안읍성으로 넘어가는 빈계재 포장도로에 내려선다.(05:10) 고개 이름이 특이하나 그 뜻이 궁금하다.
(글을 쓰면서 순천시청의 친절한 도움으로 자세한 설명을 듣게 된다.)
낙안 하송마을/외서면을 잇는 길..빈기재/분계재(奔界峙-1760년 여지도)/(奔溪峙,分鷄峙)로 표기의 흔적이 보인다.
빈계재(牝溪峙)로 쓰인 기록은 조선조 말 金南波의 시집 風月集에 보인다. 한편, 백이산 아래에서 태어나 흙으로 낙안성
을 쌓은 김빈길 장군의 이름을 따서 '빈길재'로 부르던 것이 오랜 세월 동안에 빈계재로 불리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빈계재의 '닭'과 오금재(낙안/승주;蜈蚣峙)의 '지네'를 대비시키는 설도 있으니 흥미롭다. 아무튼 고개 오른쪽으로 철철
흐르는 계곡물이 솟아 오르고 있으니 ,마루금 맥길에서 흔치 않은 모습으로 계곡의 의미는 짐작이 간다.
(금전산 아래 낙안읍성의 아침)
빈계재 포장도로의 좌우를 잠시 살피고 오는 동안 이미 대원들의 행렬이 절개지를 올라 능선을 넘어가고 있다. 서둘러
오른쪽 샘터에서 물 한모금 맛보고 통신 시설이 있는 잡목 숲을 바삐 올라서니, 왼쪽 마을의 불빛이 보이는 작은 봉우리
를 넘고 편백나무 숲을 따라 오르는 길이 왼쪽 목장 철조망과 함께 진행한다.(05:30) 벌써 2시간의 행군인데도 오랫만에
호남정맥 길에 합류한 총대장은 신이 났는지 휴식할 줄도 모르고 계속 나아가고, 무전기 배터리가 다 된 모양이다.
길게 이어지는 철조망을 따라 점점 고도를 높혀가는 등로가 잡목과 철쭉 군락지대를 지나면서 잎 떨군 가지가 눈을 찌를
까봐 조심스럽다. 2-3개의 봉우리를 넘어면서 계속 왼쪽 방향의 오르막을 따르다가 철조망과 헤어지는 벌목지대 봉우리
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06:05) 잘라진 잡목 그루터기 사이로 밤나무 묘목이 띄엄띄엄 모습을 보인다. 서쪽 외서면의
새벽은 주암호에서 밀려드는 운무에 깊게 덮힌 채 아직도 아침을 맞기엔 이른 모양이다. 주랫재에서 정맥길과 헤어진 후
모후산으로 이어지는 향일봉 능선이 외서면을 감싸고 누워 있다.
(고동산 억새)
짧은 휴식을 끝내고 조금씩 밝아 오는 새벽을 즐기며 헤드랜턴을 접어 넣는다. 계속되는 잡목지대를 거치고 철쭉 군락이
무성한 등로를 오르내린 후 편백나무 숲을 거치면서 510봉 삼각점에 닿는다. 정맥 길 내내 반갑게 마주하는 '준,희'님의
사랑표지가 새벽을 하얗게 새운 채 산객을 반긴다. 부디 오래 오래 기억될 두분의 사랑이 다시 먼곳에서나마 만나게 되면
정맥길의 숱한 사연들을 다 잊고 행복한 영생을 누리소서..(06:30)
고동재를 향한 내림길은 오히려 편안한 능선으로 이어져, 오른쪽 낙안읍을 감싸는 금전산 일출을 살피면서 조금씩 고도를
높혀간다.별 특징 없는 두어개의 작은 봉우리를 넘어 서면서 암릉지대에서 맑은 일출을 담고, 마주하는 고동산을 바라보며
철쭉길을 내려서니 풀잎으로 뒤덮힌 수레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10여분 산허리를 감아 내리니 고동재 임도에 내려선다.
언제나 즐거운 휴식과 식사를 할 수 있는 이 시간이 가장 기다려진다. 긴여름을 지나면서 가시덤불을 헤치고 함께 걸어온
정맥길의 종착역도 이젠 4구간이 남았다. 배낭에 가득한 동지애를 쏟아낸다. 따뜻한 라면국물이 일품이다.(07:20)
(고동산 정상석 앞에선 호남정맥 탐사대원들)
(07:55) 넓게 조성된 고동산 오름길 임도는 용도와는 달리 오프로드 차량으로 산오름을 즐기려는 엉뚱한 매니아들을
막기 위해 깊은 웅덩이를 파 놓았다. 그러나, 매우 위험해 보이는 발상이다. 밤길에 무심코 지나는 산객이나 오토바이
들에겐 치명적인 사고를 유발할 수도 있겠다. 부디 좋은 머리들을 좀 더 굴려서 사람다운 계획과 설계를 이루었으면..
임도를 따라 오르는 민둥산 억새길에서 좌우 넓은 조망을 즐긴다. 지난 여름을 걸어 남으로 내려가던 계당산 마루금은
왼쪽으로, 올해가 끝날 때 까지 아직도 더 걸어가야 할 순천쪽 마루금을 오른쪽으로 번갈으며 첩첩 산그리매로 다가오
는 호남 정맥 1000리길이 감개무량이다. 이 길이 나아가서 맞닿을 백운산 정상에서 마주하는 지리산의 모습이 그립다.
오른쪽 철쭉군락을 돌아 올라 고동산 꼭대기에 올라서니 산불감시초소와 통신 시설이 거대하다. 사방을 훤히 조망하
며 맑은 가을 하늘 아래 펼쳐진 순천 땅이 눈부시게 푸르다. 멀리 서쪽 모후산이 주암호 운무를 발 아래에 덮고 백운산
으로 향하는 산객들을 지켜보고 있다. 고동산 화강석 산정 표지석이 차갑게 우뚝 솟아 조계산을 떠 받치는 큰 기둥처
럼 힘을 쓴다. 오랜만에 식사 후 아침나절을 함께하며 단체 출석을 불러보는 탐사대의 얼굴에 햇살만큼 밝은 웃음이
번지며 정맥 탐사의 마무리길이 가까워지는 기쁨과 아쉬움이 교차한다.(08:25)
(주암호 건너 모후산)
(08:30)조계산 장군봉-연화봉 긴 산정 마루금이 북쪽으로 펼쳐진 채로 산객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임도 곁의 돌탑을
돌아 헬기장을 지나고 10분 남짓 내려서니 통신 기지국 건물 앞에서 도로를 벗어난다. 오른쪽 숲길로 올라서서 작은 봉
우리들을 두어번 오르내리며 벌목지를 지루하게 벗어난다. 이어지는 솔잎 향내와 낙엽길이 부드러운 봉우리 왼쪽 사면
길을 지난 후, 풀섶으로 덮힌 헬기장을 지나고 또 한 봉우리를 올라 서니 갓 공사를 끝낸 송전탑 주변이 마무리가 덜 된
상태로 벌거 벗었다. 봉우리 오른쪽 어깨를 10여분 넘어서면서 장안치 고개를 지난다.(09:15) 지루한 잡목 숲 길을 다시
10여분 걸어 올라 705.7봉 내림길에서 후미를 기다리며 긴 휴식을 취한다.(20분)
백두대간과 호남정맥길을 함께 걷는 동료의 힘든 걸음이 잠시 잃어버렸던 카메라를 다시 찾아 오는데 20여분이 소요된
모양이다.오른쪽 암릉 내림길을 조심스레 내려간 후 봉우리 왼쪽 사면으로 길게 넘으며 장밭골 계곡을 내려다 본다. 지
친 걸음으로 쉬지도 못하고 밀목치(큰 굴맥이재)로 향하는 진행이 안타깝고, 장밭골 계곡의 많지 않은 단풍을 즐기기 위
해 천천히 주변을 두리번 거린다. 띄엄띄엄 보이는 키 큰 나무의 단풍이 마루금으로 올라서면서 계곡 아래로 유혹하듯
매우 깨끗하게 물들었다. (09:50)
(장군봉 직전 배바위)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봉우리를 넘어서고 5분여 편안한 능선을 걸어 내려 꽤 큰 임도를 건너 오르니 깃대봉 왼쪽 사면의
산죽 길을 길게 내려가 선암 굴맥이재에 내려선다.(10:10) 옛날 밀목재라는 명칭이 골목재/굴목재/굴맥이재로 편하게 변
해가는 발음들에서 우리는 자연스런 이름을 들먹이며 숱한 전설을 엮어가는 민초들의 대화를 느껴본다. 그들은 어느 누
구나 잘 알고 있는 고갯길의 명칭엔 그리 크게 따질 일도 없다. 그냥 저 산 위에 어느 고개인 줄은 다 알면서 행여 다른 이
름으로 전해져도 따질 일이 없다. 그곳은 오직 배경일 뿐이요 인간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주요한 내용이 아니기에..
오른쪽 仙巖寺와 왼쪽 松廣寺의 자연스런 통로가 되어 曹溪山 같은 이름 아래 그 본산을 꾸리고 있는 태고종(대처승)과
조계종(비구승)의 다툼없는 명칭사용이 한결 돋보인다. 작은 미물들의 작은 다툼이 깃들지 못한 도량들이다. 그리하여 절
이름 앞에 큰 산의 이름을 꼭 붙여서 부를 줄 아는 겸손함도 간직한 모양이다. 오늘날 정치꾼들이여, 이 고개를 수십번이
라도 걸어 오가며 부처님의 큰 뜻을 만분의 일이라도 느낄 수만 있다면..높은 산정 올라치며 꾼들을 몰고 다니는 시위 보다
백번 훌륭할 걸..큰 권력은 온 백성을 보살피기 위한 큰 뜻을 도모함에 사용되어야 하기에 그것을 원하는 자의 인품은 무엇
보다도 인간답고 대범해야 할 것이다.
(장군봉에서 바라본 남쪽 백이산에서 지나온 능선)
훗날 내 나이든 발걸음으로 이 땅의 명산 순례에 나서는 날엔 꼭 양쪽 송광사, 선암사를 거치는 조계산 일주를 먼저
하겠다고 다짐하며, 아쉬운 발길을 장군봉을 향한 정맥길로 옮겨 오른다.(10:15) 명승지 답게 잘 정비된 등로를 산죽
군락마저 넓게 정비하여 호남정맥 탐사중 가장 여유로운 걸음을 걸어 본다. 그냥 눈감고 명상의 걸음을 해도 되겠다.
선암사로 통하는 작은 굴맥이재를 지나면서 장군봉으로 향하는 된오름이 시작되며 다시 긴장의 걸음이다. 장군봉 고
스락 앞에 우뚝 솟은 배바위를 바라보며 잡목 숲이 가려져 그 우람한 모습을 먼 곳에서 카메라에 담지 못함이 아쉽다.
암릉지대가 이어지는 장군봉 오름길을 30여분 지쳐 오르니 배바위 큰 자락에 늘어선 로프줄이 힘겹게 다가온다.(10:50)
노아의 방주 같은 전설이 전해오는 배(맨) 바위 오름길에 태고적 물난리 처럼 밝은 햇살이 일렁인다. 신선들의 바위로
'仙岩'寺를 잉태할 만큼 영험스럽고, 장군의 도장으로 '인장바위'라 부를 만큼 크고 우람하다. 숱한 전설이 감고 도는
암반 길을 이어 오르며 남쪽 사면의 멋진 조망을 천천히 담고서 장군봉 꼭대기에 올라선다. 맑은 가을 날씨에 관광객
의 발길이 분주하다.(11:00) 아쉬운 것은 요요한 목탁소리를 기대하던 귓가에 스피커 굉음이 산 아래에서 들려 오니
문명 이전에 조화롭지 못한 엉터리 문맹이다.
(동쪽 상사호를 바라보며)
장군봉 정상에서 후미조를 기다리며 사방으로 훤하게 조망되는 정맥 길과 순천 앞 바다를 바라본다. 남쪽 존재산에서
부터 시작되는 산그리매가 백이산을 앞세우며 새벽을 걸어온 고동산과 함께 반갑게 따라 온다. 동쪽 상사호를 감싸는
옥녀봉이 유난히 파랗다. 서쪽 연산봉(효령봉,옥녀봉)으로 이어져 송광사로 흘러 내리는 능선이 매우 부드럽고 멀리
모후산, 백아산 넘어 무등산이 아는체를 한다. 누가 조계산을 일러 호남정맥 마지막 봉우리 백운산 전의 인자한 어머니
산이라 했던가..
부디 내 올 한해 발걸음이 백운산을 넘어 가는 날, 송광사 '해우소' 만큼이나 깊고, 화엄사 '가마솥' 만큼이나 넓은 도량
을 배워, 선암사 '뒷간' 만큼 깨끗한 마음으로 이 땅의 순진무구한 백성들을 위해 봉사할 대통령이란 이름의 머슴 하나
뽑기가 잘 이루어지기를..무릇 권력이란 마약과 같아서 쉽게 정한 기간을 지키고 민초를 향한 좋은 방향으로 쓰이기는
애시당초 어렵긴 하겠으나, 이젠 뭉친 풀들의 힘으로 바람불어 우리에게 필요한 만큼의 권한만 주고 감시해야 될텐데..
(장군봉에서)
장군봉 정상에서 오른쪽 선암사 내림길을 버리고,왼쪽 연산봉 능선길을 따라 서쪽으로 내림길을 밟는다. 산죽길과
잡목이 어우러진 넓은 등로를 따라 내려 오른쪽 봉우리를 이루는 능선을 외면하고 왼쪽 사면으로 잘 가꾸어진 연산
봉 주능선길을 밟아 오른다. 10여분 넘게 진행하여 '장박골몬당' 갈림길에 올라선다. 전라도 사투리로 '몰랑,몰랭이'
라고 불리우는 이름없는 무명봉이다. 경상도 사투리에 익숙한 내게도 '산만댕이, 산만딩이'가 떠오르며, 몬당이란
말이 친숙해진다.(11:30) 송광사로 넘어가는 연산봉 길을 버리고 오른쪽으로 90도 꺾어 내리는 접치로 향하는 내림
길이 산죽밭길로 편안하게 이어진다.
산죽길 급경사가 시작 되기전 큰 바위 안부에서 선두조와 만나 마지막 휴식을 취하며 한 잔 이슬이를 간단히 벗삼
고, 곳곳에 설치된 해학과 전설의 이야기 안내판을 읽으면서 간간히 송전 철탑이 서있는 급경사 내림길을 밟아 내
린다. 어린 남매를 데리고 조계산을 오르던 할아버지는 중도에 포기하고 오던 길을 내려서면서, 철모르는 손녀 딸
의 투정을 감싸느라 여념이 없다. 느린 걸음의 여유를 외면한 채 바쁜 걸음으로 호남고속도로 차량 소음을 좇아 내
리는 내 모습이 왠지 한심스럽다.(12:30)
(장군봉 돌탑)
마주보이는 오성산 된오름이 다음 구간의 힘든 들머리를 보여주는 산죽내림길을 터벅거리고 호남고속도로 위를 지나는
접치 두월면 육교에 내려선다. 도로공사의 무계획성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비슷한 시기에 건설되었을 것 같은 고속도로
와 지방도의 확장이 무심한 절개지만 깊게 패어 놓고 터널로 덮어야할 마루금이 수백길 낭떠러지를 만들고 있으니..(13:00)
승주방향으로 차를 몰아 유치에서 흘러내려 상사호(승평호)로 향하는 이사천 하천제방에서 올해 마지막인듯한 알탕을
즐기니 온몸이 시리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딱아주고
새들이 가슴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정승호 '선암사'-
(다음구간의 오성산)
11/6 道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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