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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정맥(2007-10)·完了/낙동정맥(10)·完了

5/22-23고라산(피나무재-가사령)구간종주-낙동정맥10차

by 道然 배슈맑 2010. 5. 17.

 

 

 

(산행 시간표)

 

5/22   22:00    사당동 출발

5/23   04:00    피나무재    출발

                    -무포산 갈림길

         05;00    611.6봉                    3.9km

         06:00    질고개                     3.3km

         06:15    산불감시초소(06:30 식사 후 출발)

         08:20    785봉                      5.7km

         09:25    간장현                     2.7km

         09:50    통점재                     1.6km

         10:50    776.1봉                    3.3km 

         11:10    744.6봉 고라산(팔공기맥 분기점)

         11:40    가사령                     1.2km

             7시간 40분                   21.7km 

 

 (평두산 아래 청송 부남면 화장리 마을)

남녘 몰운대로 향하는 그 열번째 발걸음, 드디어 주왕산 아래 포항에 닿는구나..백두대간 끝낸 그해 겨울,

물푸레와 함께 경주 남산을 거쳐,주산못을 찾아가며 낙동길을 그려 보던 통점재를 지나가는 기분은.. 

짖궂게 내리는 봄비를 걱정스레 대하고, 무더위 보단 낫다고 스스로 달래며 또 어두운 빗길을 달려 피목재를 향한다.

도회나 시골길이나 온통 선거 현수막으로 들뜬 민중의 선택이 쓸쓸히 비에 젖으며..그들만의 축제를 비웃는다.

내것이든 네것이든 백성이 주인되는 제도에 누가 마다하겠냐 마는, 60여년의 연습도 아직은 서투른가..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고, 포기해서도 아니 될 이 選擧제도가 언제나 善良을 맞을 수 있을 것인가..  

35년전 그해 5/22을 떠올리며 내 젊음의 벼랑을 기억하고, 돌아 서질 못할 큰 산을 넘는 발걸음이 무겁다. 

 

 (질고개 감시탑에서 바라 본 무장산 방향 내룡리) 

남쪽 절개지 방호벽을 돌아 내려 밤비에 젖는 서쪽 사면 묘역들을 타고 넘어 마루금을 더듬는다. 

이전리(泥田) 불빛은 습한 어둠 속에서도 새벽을 지탱하며 산 속의 살아 있음을 깜박거린다.

편한 걸음으로 잠든 영혼들의 곁을 스치며 이 땅의 매장 문화가 전래 고유의 습관인가 다시 새겨 본다.

生來生得의 타고난 고유의 문화가 가당치나 할 것인가..埋葬이란 육체의 부활을 바램이 아닐까..

언젠가 다시 돌아와 그 몸 속에서 평온을 되찾을 한 많은 영혼을 기다리고 누웠는지도 모른다.

이제 변화하는 장례 문화 속에서 우리의 영혼들도 썩어 가는 육신을 가벼이 여기고 저 먼바다를 건너야 한다. 

어느 새 발길은 도포자락 휘날리며 춤추듯 걸어가는 영혼들을 따라 舞抱山 갈림길을 넘어선다.

 

  (빗 속에 젖어드는 낙동 길)

축축히 젖어드는 발길이 어슴푸레 길 밝히는 새벽을 깨달으며 편한 발길로 坪頭山(611.6봉) 헬기장을 지난다.

문화란 무엇인가,민족문화란 개인의 자유로운 경험의 축적일텐데,어찌 나랏님이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으리요.

정치,경제,사회 모든 여건에 따라 합리적인 경험을 통해서 장기간의 취사선택으로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반공을 국시의 제일로 삼고,''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부여 안은 채,官製 국민윤리의 道德訓에 익숙한 戰後세대여..

이제 훌훌 털고 날아 갈 세상을 그리며, '自由人의 길'을 찾아서 마지막 젖고 습한 가시덤불을 헤쳐 나가야 한다.

고유의 것은 우리의 것이 될 수 없고, 우리의 것은 수많은 백성들의 숱한 경험 속에서 변화 되고 진보되어야 한다.

수구 진보의 말장난 속에서 편향된 패가름의 정치, 언론이 만들어 낸 기형의 지식인들로 자라나 기우뚱 거린다.

2시간 남짓의 빠른 걸음으로 질고개(진고개,泥峴)에 닿으니 궂은 날씨에도 여름날의 아침은 이미 밝았구나.

 

 (자유인의 길을 걷는 사람들)

질고개를 남으로 건너 산불감시탑 등고개에 올라 큰 소나무 우산 삼아 비를 피하며 아침 간식을 챙긴다.

대간 시절, 태백산으로 향하던 7월 초순의 폭우 속에서 빗물에 억지로 말아 먹던 김밥 생각에 목이 메인다.

인간의 삶이란 개개인의 특수한 사정과 개별성을 존중하는 가운데 비로소 다양한 경험이 우러나 문화를 이룬다.

남다른 개성을 가지고, 서로를 보충해 가며,부대끼며 살아가는 법이다. 똑 같은 삶이란 참 재미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삶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욕구, 세계 인류가 누구나 지녀야 할 보편적인 기본방향은 무엇인가..

바로 그것이 자유이고, 생명력의 보존은 필수이다. 적어도 기본적인 요소를 평등하게 가질 권리를 하늘에서 받았다.

얼마 후 또 한차례 선택의 길목을 지나야 할 백성들은 누가 낮은 자의 삶에 도움과 걱정을 줄건가 생각해야 한다.  

전통의 지역색, 출신을 강조하다가 냉큼 국민경제의 보편화, 민족화를 부르짖는 얼치기 정치꾼들은 배제해야 한다. 

갈미골 안부를 지나 너울 거리던 마루금이, 포항 市界 능선에 올라 남으로 하옥계곡을 따른다. 내연산이 흐리다.

 

  (785봉,하옥산 평수밭)

이번 구간 최고봉인 평수밭(785봉)을 찾아 오르는 길이 빗줄기는 잦아 들지 않고 사면을 따라 길게 오르내린다. 

이즘에서 이슬이 한 잔이라도 생각나건만..급히 먹은 아침 간식에 속만 불편하구나..급한 오르막 거쳐 헬기장에 닿는다.

동쪽 하늘이 맑아지면 八嶺之下 하옥계곡이 발 아래 일텐데..삼거리 갈래 길에서 향로봉 아랫 마을을 마음에 담는다.

저 깊고 깊은 산중에서 60여년 전  참고 견뎌야 했던, 우리의 민주주의를 위한 産苦의 苦痛을 아직도 되새겨야 한다.  

일제치하 30여년의 眞空상태 후에 갑자기 밀려든, 서구 정치사의 산물인 민주주의라는 정치제도에 당황했던 어린 백성들..

아니 서양의 것이 아니라  온 인류의 것이 되어야 하고, 우리의 것이 되어야 하는 선거와 민주주의..패가름의 충격이 더 컸던가..

겨우 일본식 서양을 배우고,미국 망명식 민주주의는 참으로 당황스러웠고, 민주주의를 가장한 독재는 또 어떠했던가..

하옥산 평수밭 넓은 봉에 '강한봉'이라 매다는 안타까움은 또 무슨 시도일고..지명 한번 불리우면 지우기도 쉽지 않을 터.. 

 

 (706고지 바가지등 아래 묘역)

간장현으로 찾아 내리는 습한 걸음이 808.5봉을 편히 넘어 서고, 전쟁의 상흔인 묵은 헬기장들을 길게 넘는다. 

천안함의 결론에 대한 의구심이 백성들을 혼란케하는데..백성들이 상식을 주장하면 전문가의 기득권이 침해되는가..

전문지식에 앞서는 상식과 본연의 양심들이, 분단의 비극으로 민족적 체험이 양극화 된 현실에서 어찌 한 입으로 모일까..

뻔한 진실도 전문가의 입을 빌려야 믿게되고, 語不成設도 전문가에 의해 꾸며지면 말이 되는 현실은 그들에겐 편하다.

그러나, 백성들의 입장에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정보를 원한다. 그동안의 전문가들에 대한 불신감의 탓이다.

어쩌다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혹시 팥으로 쑤는게 아닌가 들여다 보게 된 이 세상을 누구 탓으로 돌릴 것인고..

히말라야를 두루 섭렵한 오은선 대장의 걸음도 행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정녕 오르지 않을 수 없는 착한 걸음이기에..

오늘 이 발길,이렇게 빗속을 걸어감이 무슨 행사를 치루는 것이 아니라, 저 남녘으로 향하는 착한 영혼의 동행이기에..

 

 (통점재)

干長峴을 내려서고 다시 오를 큰 봉우리가 지나온 평수밭을 대적하며 불룩 솟는 느낌이다. 감히 키 큰 사람이라니..

아랫 동네 아니라도 이 길 넘나들며 저 산봉우리들과 대화하고 산기슭을 함께 걷게 만들 줄 아는 문학적인 백성이다.

주변에 흔한 素人輩들..삶의 중요한 결단은 정치가의 탓이요,자신은 그들의 틈바구니에서 치부나 즐기면 된다는..

그들의 횡포에서 벗어나려면 다가올 선거에 대한 깊은 숙고와 진지한 검토를 서둘러야 할 터인데도, 될데로 되라는..  

백성들의 말 없음이 무지에서가 아니다. 그들은 저 산마루 처럼 착한 벗들과 대화하며 스스로의 삶에 의미를 찾는다.

그리하여 그들이 찾아 낸 소박한 의미와 멋들을 저 산산골골에 명칭으로 전하고, 時空을 넘나들며 보편의 삶을 전한다.

치솟은 남녘 봉우리(702분기봉)에 간장리 마을길이 이어지나..누군가 고스락에 매달은 간장현 팻말 탓에 잠시 혼란스럽다. 

 

 (통점리 방향)

바가지등(706봉)을 향하는 오르 내림도 잠시, 포항 시계 마루금은 묘역들을 지나 通店재에 닿는다. 어드메에 사기점이..

조금씩 지쳐가는 걸음에 채찍질하여 통점리 임도 길에 올라,주저 앉은 채로 잠시 주춤거리는 빗줄기에 양말을 짠다. 

역사의 발전은 항상 진보를 향해 온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민주주의의 평등은 분명 지켜져야 하는 발전이다.

불과 몇 해 전 우리는 새로운 자본주의 양반들의 쾌락을 위하여 천한 일을 감수해야 하는 노동에 종사해 왔다. 

그리하여 얻은 피나는 혜택으로 작으나마 신분상승을 꽤하고, 몇은 신종 양반 놀음을 맛 볼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자신이 어느새 특권의 맛에 물들어 지난 날의 그들의 삶을 짓눌렀던 비도덕을 망각하고, 보통의 백성들이 겪는

고통 쯤이야  누구나 아낌 없는 노력을 통하여 곧 보상을 획득하리라 여기고, 더욱 더 그들은 근면 성실을 외쳐된다.  

비록 그들에게 온 사람을 형제로 여기라는 종교적 교훈 까지는 아닐지라도, 이웃들과 함께 아픔을 느낄 수 있길 바란다.

 

 (744.6봉)

안간힘으로 776.1봉을 넘어서고, 멋진 암릉과 적송들을 가슴에 담으며 긴 걸음으로 고라산(744.6봉) 안부에 닿는다. 

팔공/보현기맥 분기점이다. 헌데 보현산 지나 석심산에서 위천 남쪽 팔공산/북쪽  문봉산으로 가지치니 검토할 일이다.

훗날 대구 팔공산을 기약하며, 구암산 멋진 암릉들은 맑은 날 다시 함께 할 수 있으리라 여기며 佳士嶺을 향해 내린다.

솔안마을(松內洞) 무쇠솥은 얼마나 작고 아담하기에 가시내 솟이 되었을까..울 어머니 콩기름 바르던 밥솥 만큼 예쁠까..

흠뻑 젖은 하산 길 모습에 쯪쯪거리는 눈길이 가엾다. 뭔 정성이냐고..그냥 남들 얘기 듣고 영화 속에 다 나오는 산길을..

 

"사는 것(生) 따위야 하인 시켜서 하면 되지!" ..

말로 말을 만드는 세상을 향하여, 점점 말을 잃어 가는 걸음을 옮겨 간다.   

 

 (가사령)

5/28 道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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