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시간표)
6/26 22:00 사당역 출발
6/27 04:00 중도일 출발
04:20 블랫재 (2.5km)
05:55 운주산 3.9km
07:25 이리재 4.4km
08:10 (식사 후 출발)
08:50 614.9봉(봉좌산 삼거리) 1.3km
09:10 (봉좌산 왕복) (1.5km)
10:30 배티재 임도
11:00 도덕산 갈림길 4.0km
11:30 오룡재 2.0km
13:00 521.5봉(삼성산 삼거리) 2.0km
14:00 시티재 3.8km
10시간 25.4km
(짙은 운무 속의 운주산 정상)
6/26 한 여름 밤의 열기를 더해 주던 축구 열기도, 쏟아지는 빗 속에서 세계 16강의 작지 않은 꿈을 이루고 잠시 접는다.
30 여년 전의 내 젊은 靑年 시절이 더더욱 아쉽게 다가오는 축제의 장을 뒤로 하고 또 정맥길을 맞으러 포항으로 향한다.
역사는 그때나 지금이나 어디서나 늘 우리들에게 질문하고 대답을 요구한다. "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것이냐.." 고..
그것이 철학이든, 가방 끈 긴 사람들의 正體意識이든 간에 중년을 넘어 가는 고갯 마루에 서서 뒤돌아 보는 지나온 길이다.
온갖 사회 갈등 속에서 비록 갈기 갈기 찢겨진 삶이더라도, 내 한 몸은 내것이기에 죽는 날 까지 '내가 무엇'인지는 알아야겠다.
나는 내 젊은 날에 꿈꾸었던 것을 위하여 얼마나 한 길을 걸어 왔고, 지금 이 땅의 그 복잡한 길 한가운데 어디 쯤에 서 있는가..
어두운 밤길을 달려 중도일 블랫재에 닿아 인연의 굴레 盆城 宗氏 묘역을 뒤로하고, 젖은 숲으로 걸음을 옮겨 雲住山을 향한다.
상도일 갈림길을 지나 421.2봉을 넘어서니 포항 쪽 남계리 불빛들이 새벽녘 흐린 안개 속에서 드문거리며 산길을 배웅한다.
그해 여름의 한밤 중에도, 화령고개에서 매복하며 삶과 죽음의 길을 기다려야 했던 이름없는 영혼들이 산길을 따라 오른다.
바윗길 지나 분성(김해) 김씨 묘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춤추듯 가지 휘어진 소나무를 지나 잔뜩 흐린 새벽도 날은 밝아 온다.
전후 세대들의 젊음은 세대의 문화를 주장하기엔 너무나 각박한 자본주의의 연습을 배워 나가야 했으니, 민주주의 또한 그러했다.
孝의 가르침 아래 가족을 떠난 정체의식이 있을리 만무하고, 자신이 처한 숙명에 익숙해야만 했던 가난한 젊음들이여..
가족을 떠나 학교와 직장이라는 사회를 경험하는 동안 흔들리는 정체 속에서 우리는 정신적 불안과 인격의 분열을 맛보았다.
체제 지향의 순응과 체제 저항의 갈등 속에서 두개의 異心圓을 그리며 흔들리는 걸음으로 살아 온 세월이 꾸불거리며 뒤따른다.
박쥐구멍 피난처를 살피려 했으나, 짙은 안개가 앞 길을 가린다. 雲住山 정상에 올랐으나 머무는 비구름 속에서 영천호 마저 잿빛이다.
이 어둠이 걷히는 날..오늘과 다른 내일은 밝은 젊음의 세대가 뒤따르리라..영천호-포항 송수관으로 말랐던 샘물도 다시 솟으리라...
(봉좌산 암봉)
이리재를 찾아 내리는 돌탑봉 사면길에서 鄭時諶 折衝將軍의 묘역을 지난다. 영천사는 '文余'님의 11대조라 이른다.
편안한 사면길을 좌우로 길게 내려선 후 杞溪面 인비 마을로 넘는 고갯 길을 지난다.구기자 나무 숲은 또 어드멘가..
수백년 걸쳐 이룬 서양의 근대화를, 불과 수십년에 따라야만 했던 후진국의 운명은 계획된 대로 변화해야만 했었다.
그것은 역사의 비약이고 단축이었다. 때로는 차례도 경험도, 반성도 되새김도 없이 그냥 한꺼번에 결과만을 뒤쫓아서..
좁고 척박한 산골을 일구던 손으로, 기계라는 산업의 현장에서 또 다른 자리바꿈만 있을 뿐..도시빈민이라는 이름으로..
근대화의 열매를 기다리며 전후 개발 계획을 믿고 5년씩 몇번을 견뎌야 했던가..어느 새 백발이 비치는 21세기가 되었구나..
배고픔은 참을 수 있었으나, 우리가 좇아야 하는 가치가 옳고 그른지를 알지 못하는 삶은 혼돈의 세태로 흘러 왔다.
돈인지, 명예인지..아니면 문화인지 예술인지도 모른 채..서양의 대중 문화 마저도 돈과 어울려 이 땅을 주도했기에..
621.4봉을 지나 빗속에서 짧지만 조심스러운 암릉길들을 밟으며 운무 속의 고속도로 찻소리를 들으며 이리재에 내린다.
(봉좌산 정상)
伊里재...파평 尹氏 마을을 어찌하여 伊洞 마을이라 이름 붙인 걸까..'同伊'가 떠오른다. 길섶 아침 상이 산행의 행복이다.
긴 휴식을 겸한 식사를 마치고 봉좌산 오름길을 급경사로 휘감아 오른다. 무척 힘든 호흡으로 614.9봉 삼면산에 닿는다.
영천,경주,포항을 접하는 맥길에서 조금 벗어나 어래산으로 이어지는 봉좌산길을 10여분 동안 더듬어 올라 간다.
포항쪽 기계면은 아직도 비구름 속에서 희미하지만, 대구-포항 고속도로만 소음과 함께 뚜렷한 금을 잇는다.
경주쪽 옥산리는 봉좌산,도덕산, 어래산에 잘 감싸인 채로 옥산서원 李彦迪의 고고한 기풍을 뿜어 올린다.
無極太極의 논쟁을 주도하고, 임금의 修身을 강조하던 강직한 모습이 오늘날에 그립다. 비내리는 옥산천변 獨樂堂도...
스스로의 면모를 잃어 버린 채, 남과 사회의 요청에는 빠르게 부응하는 영리함이 득세하는 오늘날에도 선비는 그리운 법이다.
긴 내리막 숲길을 능선과 사면길을 번갈으며 도덕산이 빤히 바라 보이는, 영천 배티재와 경주 도토골로 이어지는 임도에 내려선다.
(천장산)
60년전 최고 격전지였으며 서로의 생사를 걸어야 했던 비극의 낙동강지역..낙남길과 포항-영천 땅을 걷는 오늘은..
도덕산 아래에서, 그토록 우리가 옳다고 여기며 이 땅에 꽃 피우려 했던 진솔한 삶에 대하여 반성해 본다.
배티재 안골 계곡을 피로 물들이며 우린 무엇을 얻으려 했고, 무엇을 지키려 했던가..
우리의 오늘날 도덕은 神이 내리는 原罪를 벗어 낫는가, 이웃과 더불며 한치 부끄러움 없는 양심에 따르는가..
온통 파헤치고 뒤흔드는 세상 속에서, 그날의 포화가 아직도 불붙고 있는듯한 긴장 속에서 우리는 도덕을 잃었다.
온갖 부정을 저지르면서도 양심이나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 무감각, 법망에 걸려도 무시하고 태연할 수 있는 탈도덕성,
이러한 도덕에 대한 무시함을 통하여 양심과 수치심의 압박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키고, 기회주의를 합리화 시킨다.
天掌山 아래 삼포리 수흥마을이 비에 씻긴 채 맑은 천수답을 자락 펴고, 산정으로 걷혀가는 먹구름에 부끄러움을 싣는다.
(삼포리 -배티재)
오룡고갯길을 찾아 들며 도덕산과 자옥산을 멀리서 조망하고, 산딸기 뽕오디를 원없이 맛보며 한가로운 산행을 맛본다.
이제 얼마전 선거에서 엿본 우리 젊은 세대들의 또 다른 문화에 수긍하며 앞날에 대한 기대를 담는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젊은 아들들아, 부디 소위 전후세대의 旣成人으로 불리우는 우리들과는 모든 생각에서 충분히 거리를 두길 바란다.
모순과 역사의 단절 속에서 애매하고, 相克的인 생활이 이어질 수 밖에 없었던 지난 50여년간에서 이제 벗어나야 한다.
前近代的인 전통과 지역적 분립이나, 계층적 대립의 굴레에서 훨훨 벗어나, 세대의 모순을 뛰어 넘는 열정과 자유를 누려라.
그리하여 너희들을 억누르고 제약하는 모든 사회적 조건과 모순적인 제도에 반항하고 항거할 줄 알아야 한다.
이 땅은 그렇게 밝고 도덕적인 세상을 위해, 예나 지금이나 젊은이들의 희생을 강요했고 이 길을 피로 물들여 온 것이다.
오룡리 골말 천수답 텃밭을 가꾸는 村老 여인의 손길이 홀로 외롭고, 객꾼의 어줍짢은 물음에 대답마저 귀찮은 듯하다.
(오룡고개-도덕산)
한 잔 이슬이로 달랜 발길이 삼성산 오름길 잡목 숲에서 복분자술로 거듭 태어나더니, 골말/삼포리 고갯길에서 된오름을 맛본다.
40여분의 긴 오르막을 만나 비탈진 사면길을 헉헉거리며 왼쪽 바위굴을 지난다. 지난 날 꽤 많은 은둔처로 활용되었을 만하다.
젊은이들아, 이제 다가올 세상은 이렇게 素朴하고 겸손하며, 모든 것을 드러내 놓고도 편안한 庶民의 삶이 主가 되어야 한다.
자유인의 길은, 不正과 不自由를 고발할 줄 아는 강인함을 지니고,삶에서 우러 나오는 지혜를 바탕으로 희노애락을 즐겨야 한다.
부디,지난 날 물질적 가난을 刻苦로 견뎌 낸 백성들의 삶을 기억하고, 귀족적인 잉여적 가치에 물들지 않는 바른 삶을 펼쳐라.
비겁하게 눌림을 당하면서도 안정을 찾고, 지배 밑에서 평온을 찾는, 보수라는 이름의 식민지적, 노예적 집단을 경계해야 한다.
지난 날 비굴한 양반들의 눈치로 살아가는 양식에서 벗어나, 열등의식을 버리고 자신의 주체를 믿고 이웃과의 교류에 겸허해라.
521.5봉 三聖山 갈림길에서 단내나는 숨을 고르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멀리 다음 구간에 올라야 할 관산이 아스라하다..
(삼성산오름길- 안강)
잘 단장된 묘역들을 스치며 시티재(柴嶺,礪峴)를 향해 내리는 하산길이 줄지은 봉우리들로 이어지며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한다.
멀리 동쪽으로 안강읍을 내려다 보며, 서두르는 내림 발길이 천천히 땀과 함께 축축히 절은 등산화 속에서 열이 오르기 시작한다.
영천에서 포항으로 넘나들던 시티재 국도길이 고속도로 덕분에 한가롭고 여유롭다. 맞은편 무학산이 오뚝하니 반긴다.
이제 오늘 또 한 밤의 무덤을 지배하던 괴괴한 정적을 뚫고, 60년 전의 비극을 되뇌이며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시티재에 닿는다.
-具常 焦土의 詩-
오호, 여기 줄지어 누웠는 넋들은
눈도 감지 못하였겠구나.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썩어 문드러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바른 두메를 골라
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도 사랑보다도
더욱 신비스러운 것이로다.
이곳서 나와 너희의 넋들이
돌아가야 할 고향땅은 30리
가로막히고
무주공산(無主空山)의 적막만이
천만 근 나의 가슴을 억누르는데
살아서는 너희가 나와
미움으로 맺혔건만
이제는 오히려 너희의
풀지 못한 원한이
나의 바람 속에 깃들여 있도다.
손에 닿을 듯한 봄 하늘에
구름은 무심히도
북으로 흘러가고
어디서 울려오는 포성(砲聲) 몇 발
나는 그만 이 은원(恩怨)의 무덤 앞에
목놓아버린다.
(시티재-무학산)
6/30 道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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