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시간표)
7/25 04:00 와항리 출발
04:50 문복산 갈림봉(894.8) 2.0km
05:35 운문령 2.0km
06:10 (아침식사 후 출발)
07:10 귀바위 2.0km
07:35 상운산
08:05 쌀바위
08:30 (휴식 후 출발)
09:00 가지산 2.7km
09:30 (휴식 후 출발)
11:30 석남고개 2.7km
12:50 능동산 3.1km
13:20 배내고개 1.1km
9시간 20분 15.6km
15:00 언양 터미널
17:40 서울행 고속버스
23:00 남서울터미널
(문복산 갈림봉 여명)
낙동길 3일째..가지산을 향한 걸음을 시작하며, 어둠 속에 묻힌 와항A지구 마을 길은 빗방울이 후둑거리며 조금 걱정은 된다.
식당길을 벗어나 목장으로 이어지는 포도를 따라 와항 마을로 넘어가는 고갯길을 조심스레 더듬으며 20분 남짓 길게 오른다.
범곡천 따라 문복산 아래 억새밭을 개척하던 기와구미(瓦項)의 哀患이 어느 새 반세기를 훌쩍 넘어 이제 전설로 변해 가려나...
수목원 표지 앞 들머리를 찾아 능선 오르막을 잠시 힘겹게 지치고, 道界 마루금에 올라 새벽 시원한 바람에 청량함을 느낀다.
바위들이 어둠 속에서 불빛에 빛나는 능선을 타고 올라 가벼운 봉우리들을 두어개 넘어 서니 894.8봉 문복산 갈림길에 닿는다.
아침을 기다리는 동쪽 하늘에 고헌산이 검게 솟아 올라 어제의 고통을 사과하며, 오늘 가지산 오름길엔 편한 걸음을 약속한다.
밤새 말린 바지가 한결 뽀송하니 맑은 날씨에 즐거운 걸음으로 영남알프스를 누빌 수 있겠다. 붉어지는 동해가 발길을 잡는다.
(문복산 능선)
문복산 능선길을 작별하고, 왼쪽으로 급경사 내림길을 밟아 내린 후, 조금씩 밝아 오는 억새 풀밭길을 편한 걸음으로 즐긴다.
능선봉을 넘어 서면서 붉게 아침을 열어가는 울산 쪽의 동해 바다를 바라보며 역동의 생명력을 새삼 느낀다. 변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 이젠 변해 가면서 그동안 악착스레 우리의 주변을 감싸고 괴롭히던 이념들을 훌훌 털어내고 다시 태어나야 한다.
잘난 머리로 어진 백성들을 기만하며 농락했던 그 이념들의 實在가 아니라, 스스로 힘든 발품을 통하여 가슴으로 느끼는 實在..
그것을 위하여 먼길을 마다 않고 걸어 왔고 또 계속 걸어 가면서 내 생명을 만들어 가야 한다. 그것이 내 삶의 존재일 것이다.
지금 이 새벽의 산길이 디지털처럼 잘라진 하나의 멈춘 공간도 아니요, 내가 걸어 가는 시간에 따라 변해 가는 연속된 공간이다.
이 길은 저 먼산 먼바다 건너 피안의 그곳까지 닿아 있는 길이기에, 나의 아픈 오늘도 내일의 벅찬 미래와 같은 삶이 될 것이다.
헬기장을 넘어서고, 긴 내리막 숲 길을 편히 걸어 내리니, 빈집으로 남은 쓸만한 집 한 채가 운문령 날머리를 차지하고있다.
(고헌산의 아침)
이른 새벽의 운문령 고갯 길엔 간이 매점들이 큰 자물쇠로 굳게 잠긴 채 따뜻한 국수 해장국물을 그리던 마음이 씁쓸하다.
삼계계곡쪽 끝 매점에서 철철 흘러 넘치는 파이프 샘물에 땀을 훔치고, 된장 깻잎 반찬 하나로 먹는 아침 성찬이 즐겁다.
간간이 산길을 넘어가던 승용차 속의 연인들이 짠한 눈길을 보내며 잠시 속력을 줄이고 새벽 산손님?들의 거동을 살핀다.
길 따라 춤추며 내리는 저 계곡은 그 해 여름에, 운문호 거쳐 동창천 청도 땅을 지나면서 곰티 춘밭골을 어이 지났는고...
오늘 내가 걷는 이 길 좌우로 골골이 흐르는 요란한 외침 속에서 멈춘 영혼들의 발길을 되살릴 수 있을까.."골로 보낸다.."
이 땅에 태어나 이제 겨우 말문을 트고 동네 어귀를 돌며 시셋말을 처음 배울 때 우린 그렇게 무시무시한 계곡을 배웠다.
들어서면 돌아 올 수 없는 길..그 길이 골(谷)길이 되었고, 어느 새 우리의 아름다운 계곡 길이 죽음의 골로 변했던 시절..
그 슬픈 계곡들을 내려다 보며 걷는 마루금을 찾아서 다시 보따리를 둘러맨다. 짧은 계단을 올라 능선 임도에 닿는다.
(나아갈 능동산 배내고개를 바라보며)
가지산 아래 쌀바위 까지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오르며, 포장 비포장이 교차되는 공사 현장에서 서글픈 행정을 또 맛본다.
울산시장 나으리의 행차 준비 치고는 너무 심하다. 쌀바위 부근의 철쭉행사를 위해 이렇게 차량이 오르는 길을 만들다니..
자연 보호론자들의 반대에 눈가림식으로 띄엄 띄엄 공사를 하는 것이나..4대강 사업을 대운하 사업으로 의심하는 쪽이나..
구불거리는 임도를 버리고 급한 된오름 길을 거쳐 귀바위-상운산 마루금을 찾아 오른다. 오른쪽 문복산 능선이 반갑다.
암릉길 왼쪽 사면을 돌아 오르며 귀바위 큰 고스락에 먼저 오른 대원들의 벗은 거풍이 자연 속의 생명을 느끼게 한다.
이 맛이다..힘겹게 오른 발길이 땀의 댓가를 새롭게 느낄 수 있는 생명력, 그러한 희망이 우리가 찾는 '자유인의 길'이다.
휴식과 울산 쪽 조망을 즐긴 후 귀바위 정상을 내려와, 상운산을 향해 암릉길을 오르내리며 만만찮은 다리를 뻗쳐 올린다.
(귀바위-상운산 정상)
귀바위에서 올려다 보던 상운산 정상에서의 멋드러진 조망은 가히 일품이긴 하나, 항상 더 나은 갈길을 꿈꾸는 희망이 앞선다.
우리는 저 앞에 더 높은 가지산을 바라보며 더 큰 꿈과 마음대로 그려지는 산하의 멋진 즐거움을 맛본다..그것이 '自由'이기에..
무한한 상상력으로 그려 왔던 우리의 발길은 직접 산정을 오르기 전에 훨씬 풍요롭고 멋진 낙동을 즐긴다. 그것이 '꿈'이기에..
사방을 즐겁게 조망하고, 청도땅 여러 계곡을 살피며 훗날 한가롭고 여유로운 발걸음을 기약한다. 계살피곡, 학심이골, 운문골..
이제 영남 알프스의 광활한 상상을 마음에 담고, 높은 곳에서 당겨주는 힘에 이끌려 가벼운 걸음으로 산죽밭길을 따라 내린다.
헬기장 전망대가 있는 임도에 내려선다. 이 곳 까지 높은 사람들은 차량으로 올라 와서 쌀바위에서 행사를 치루는 모양이다.
썩어질 육신을 그리 아껴서 무엇할 것인고..어차피 더 높은 자리에 가려면 다 털리고 망신살만 뻗칠 터..그냥 사뿐거리면 될걸..
(쌀바위)
쌀바위로 향하는 1083봉을 사면으로 돌아 점점 넓혀지고 있는 임도를 따른다. 편안한 동네 어귀를 돌아드는 기분이다.
길옆 고목처럼 버티고 선 철쭉 가지들 사이로 철 지난 봄을 떠올리고 몰려드는 인파에 시달리는 붉은 봄을 떠올린다.
쌀바위 아래 대피소 매점에서 막걸리 한 잔으로 목을 추기고, 白狗의 외로움을 쓰다듬으며 남으로 사자평원을 건네다 본다.
인간의 욕심으로 막아버린 쌀구멍에서 한 여름의 타는 목을 추길 정도로 작은 물을 흘리니, 바위의 전설도 무심치 않구나..
산죽 밭을 감아 올라 가지산으로 향하는 헬기장을 지나고, 긴 로프에 의지하며 암봉 오른 쪽 사면을 힘겹게 따라 오른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로프 암릉 오르막이 마치 리듬을 타는 듯, 산오름에 익숙해지는 나의 발길이 사뭇 교감을 느낀다.
이것이 연속되는 나의 걸음과, 긴 여정에 예측되는 未踏의 길에 대한 애정으로 기억되어, 훗날 쓰디쓴 쾌감으로 남을까..
두어개의 봉우리들을 암릉길 따라 올라, 그립고 그립던 외양말랭이(외양꼭대기) 加智山 정상(1,240m)에 올라 선다.
天火山,실혜산,까치산, 石南山....숱한 명칭 과 붙여진 이름 만큼이나, 많은 사연들을 품은 채 알프스의 맏형은 고요하다.
(가지산 정상에서 응원팀 합류)
전날 소호령에서 올라 와 대피소에서 비박으로 밤을 지낸 응원 팀의 정겨운 손을 잡고, 산더덕 이슬이에 高山의 향내를 맡는다.
북쪽 청도 땅 골골들을 감싸는 운문지맥을 내려다 보며, 운문산(1188m) 지나 억산 아래 석골사 따라 내리는 동천을 떠올린다.
슬픔은 과거의 서글픈 추억일 뿐이요, 기쁨은 다가올 미래에 대한 백성들 멋대로의 상상이 지어 낸 가당치 않은 自由였던가..
내 幼年의 기억이 시작되는 가인리 마을엔 호박소에서 흐른 맑은 물이 물레방아를 지나고 초등학교 교정을 앞뒤로 감싸고 돈다..
지금은 예술촌의 이름으로 변한 폐교 터에서 수년전 회한의 기억들을 더듬으며, 戰後 僻村學校들을 돌다 가신 부모님을 기렸다.
해방 후 젊은 나이로 떠 맡은 초등교육의 마당에서 질곡의 소용돌이를 겪어내며 묵묵히 지켜 왔던 교정들도 점점 사라지는 날에..
멀리 남으로 능동산 너머로 재약산 사자평원이 지난 날 억새 속의 벅찬 젊음을 떠올리게 하며 다시 만날 가을 날을 재촉하는데..
긴 휴식과 주변 조망을 즐긴 후 멋진 운문능선을 아쉽게 이별하고, 남쪽 석남고개를 향해 거친 돌밭 길을 조심스레 내려 밟는다.
(떡바위취)
짧은 로프 암릉을 올라 1168.8봉 암봉에서 석남터널 옛길을 향해 오르는 얼음골쪽 남명리를 내려다 보고, 왼쪽 石南寺를 살핀다.
加智山의 큰 덕을 얻지 못해 비록 더해 질 지혜는 못 느끼는 바이나, 운문사와 더불어 '禁男의 蘇塗' 비구니 승의 陰氣를 느낀다.
왼쪽 급한 내리막을 로프 따라 길게 내려 선 후 편한 걸음으로 대피소에 닿아 막걸리 한 사발 놓고 오래 떠나기 싫은 맘을 달랜다.
천천히 편한 내림길을 걸어 살티마을 내림길이 있는 석남고개 돌탑 이정표에서 터널 쪽에서 올라 오는 많은 휴일 등산객을 만난다.
이어지는 능동산 방향 직진 오르막을 잠시 가쁘게 올라서고, 석남터널 이정표를 지나면서 잡목 숲을 길게 따라 오른다.
능동산 정상을 바라 보며 1시간 여의 긴 오름 길 능선이 서너개의 잡목 봉우리들을 거치며 가끔씩 만나는 소나무 들이 아름답다.
813.2봉에 올라 남명리로 시원스레 뚫린 능동터널 새길을 조망하고, 나무 계단길을 길게 밟아 올라 배냇골 삼거리에 올라선다.
(능동산 정상)
배냇골 내림길에서 잠시 능동산 정상을 둘러 보고, 얼음골에서 가마불능선을 능선을 거쳐 오천평반석으로 넘어갈 날을 꿈꾼다.
항상 우리의 꿈은 이상향을 바래듯 앞길은 죄다 무릉도원일 것을..나의 뒤를 따를 아이들을 생각하며 늘 아름답게 꾸미고 싶다.
배내골이 내려다 보이는 헬기장 조망대에서 바라다 보이는 신불산-천황산 케이블카를 상상하니 알프스 평원이 괴로워질 것 같다.
이곳에도 풍력발전기를 새워 억새평전들을 전부 말려 죽일까 걱정되기도 한다. 부디 서양의 북 알프스와는 다른 환경임을 알아라.
배내골(梨川里) 긴 계곡 단장천따라 이미 온갖 팬션시설들이 들어서서 밀양호 수질이 벌써 문제가 되고 있음을 왜 모르는가..
건너다 보이는 신불, 영축산의 가을을 기약하며 점점 가까워지는 낙동의 끝을 실감한다. 저산 너머 천성산에 잠든 벗이 그립고..
나의 자유로운 상상이 잇는 그 길을 따라 끝 간곳엔 환한 '자유인의 길'이 있으리란 꿈으로 또 한 발씩 내딛는 계단을 걸어 내린다.
배내고개 넓은 공터가 숙박시설 공사로 요란스레 치장되고..길 곁 작은 매점 여인네의 소박한 꿈도 그렇게 분칠을 하는가 보다..
(배내봉-간월산 능선))
道然
'9정맥(2007-10)·完了 > 낙동정맥(10)·完了'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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