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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2012- )·진행중/수도지맥·完了

3/16-17수도지맥(큰재-말정 합수점)5구간

by 道然 배슈맑 2013. 3. 22.

 

 

(산행일정)

3/16(토)    22;45     사당역 출발

3/17(일)    04:50     큰재    산행시작

                05:05     산불초소

                05:20     시리봉

                05:50     장등재                              2.3km

                06:30     좌랑봉 갈림길

                06:55-07:10  묘역(식사겸 휴식)

                07:33     기미재                              4.5km

                08;00     솜등산                              1.6km

                09:00     율원고개                           2.8km

                09:37     236봉(산불초소)                 2.2km

                10;30     절골봉                              2.2km

                11;00     필봉                                 1.8km

                12:30     성산                                 3.8km

                13:10     청덕교  (산행 완료)             1.9km

                         8시간20분                      23.1km

                14:00-15:30   우포늪 트래킹   

 

 

 (합천 야경)

이 땅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마음이 있듯이 합천 땅 북쪽 시리봉 산 기슭에도 마음이 살아 넘친다.

그것이 바로 생명이라는 것이며, 그 생명은 저 밤 하늘을 지키는 나무 한 그루에도 살아 있어..

그저 우리가 바라보며 즐기는 한 그루가 아니라, 스스로 산 아래 삶을 느끼며 이 밤을 지킨다.

그리하여 빛을 향하는 낮과 땅을 향하는 밤을 구별할 줄 알면서, 숨고르기 마저 분별하는 영혼이다.

잘리고 밟히는 고통을 기억하여 훗날을 도모할 줄도 모르고, 역사를 챙기는 기억은 없을지라도..

저 한 포기 풀과 나무의 숨결에서도 가지를 뻗어 번식하고 생장하려는 생명의 의지는 살아 있다.   

 

 (너릿골산 일출)

저 나무는 제 먹을 것을 찾아 헤맬 생각도 없다. 그냥 내 뿌리가 닿는 곳에 남겨진 그것들로 충분하다.

저 꽃들은 제 짝을 골라 찾아 억지로 수정하고 번식할 생각도 없다. 그냥 벌 나비가 맺어 준대로 열매 맺는다.

저들은 우리와 달리 고통을 모른다. 아니 고통을 간직할 줄을 모른다. 그리하여 무의식의 생명으로 남는다.

스스로 감각을 외면하고, 오직 주어진 땅 속의 적은 물과 적은 영양으로 만족할 줄을 안다.

저 나무는 누구를 닮으라 하질 않고, 누구를 닮지도 않는다. 저들은 時空을 초월한다.

그러나, 저들은 철이 되면 풍성한 모습으로 낭만의 즐거움도 누릴 줄 알고, 아름다운 모습을 꿈꿀 줄도 안다.

더구나..저 풀들은 본디 동물의 먹이를 위해 자라지도 않았고, 인간의 먹이로 태어나지도 않았다.

 

 (고령군 쌍림면 새벽)

좌랑봉 갈림길 사면에 햇살을 느낄 때 새벽을 알리는 새소리와 멧돼지 울음 소리에 생명을 느낀다.

저들은 머무는 나무들과 달리 운동하며,자신의 외모를 구별하고, 본능적으로 습관을 배우고, 미래를 설계한다.

그러나, 저 움직이는 영혼들은 개별적인 경험에 따른 행동이 아니라, 그들 종족의 특별한 관습에 따라 살아 간다.

저들은 인간의 본능과는 달리, 그들의 움직임에 의미있는 것만을 보고 들으며 기억이란 본능 보다 훨씬 깊이 묻힌다.

또한 저들의 본능은 훈련이나 습관으로 바꿀 수도 없으며, 아침에 우는 새는 변화 할 수 없는 종족 본능의 표현이며,

새나 멧돼지들은 그들의 머리가 앞서 나갈 만큼만 알고 있다.즉 아는 것과 행동이 동시에 일어나는 본능적인 생명이다.

 

(일출)

너릿골산 사면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어제의 해를 맞는 것이 아니다. 어제의 그것과 비슷할지라도..

자고나면 늘 새로운 해를 마주하듯이, 삶이란 반복이 아닌 항상 새로운 길을 찾아 새로운 역사를 쌓는 것이다.

하지만..우리는 늙어 갈수록 점점 습관의 노예가 되어가며, 어제의 해를 기억하는 연상에 사로 잡힌채,

어린 아이들의 공상이나 소망 같은 순수함을 잊은채, 종말을 향하고 스스로 멸망해 간다.. 

인간 특유의 의미와 지식이라는 고도의 진화를 겪은 후 동물과 차별되는 생체리듬을 갖게 된 것이다.

한치 발 앞, 늘 새로운 대상을 향해 돌진하는 저 맹렬한 멧돼지의 걸음에서 솟는 생명감은 잃은 채...

 

 (진달래)

기미재 남쪽 기슭에 피어 난, 진달래 화사한 꽃잎 속에서 다시금 성장을 느끼고 時空을 되찾는다.

이제 새로운 길과 새로운 아침 속에서, 우리가 기억할 수 밖에 없는 어제의 인습들이 해체되어 진보를 꿈꾼다.

우리는 理性이라는 또 새로운 哲學으로, 습관들을 과거의 역사로 돌려 보내며 동물적 본능에서 해방을 꿈꾼다.

저 꽃들의 아름다움도 종족의 본성에서 벗어나 더욱 새로운 모습으로 인간의 눈 속으로 비춰 질 것이다.

본능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충동으로 快를 느낌은, 동물의 세계에서도 이미 많이 진화해 있다.

번식의 쾌락을 넘어, 충동에서 벗어난 인간의 쾌락은 분명 다르다. 동물 이상인지, 이하인지는 모르겠지만.. 

 

(기미재/접골)

기미재 이책골을 따라 내리면 내 아버님의 생애 마지막 밤을 간직한 하신리 영병정 마당을 만난다.

그날 새벽 아버님은, 지난 밤의 산길 영혼이 두려웠다고 기억하셨다. 그리고 넓은 운동장에 빗질을 남겼다.

인간의 지능이 충동적인 동물적 지능과 다름은, 교활함과 책략을 넘어 또 다른 정신적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性愛의 충동을 넘어, 인간은 최선이라 여기는 결과를 향해 선택의 과정을 거쳐 행동한다. 사랑(Eros)이라는..

47년전 그 봄날, 읍내에서 한 잔 이슬이에 취한 걸음으로, 용덕산 넘고 내천 다리 건너 이책으로 향하던 밤길에서..

당신은 어떤 사랑으로 고달픈 인생을 견디려 했었나요..혼돈의 시대에 동물같은 교활함에 지친 몸이 못내 힘드셨나요..

밤무지고개 큰골 따라 다리 건너면 창녕 땅도 지척인데..고향길과 멀어지던 당신의 걸음도 무거웠겠지요..

 

 (율원고개)

인간이 동식물과 특별나게 달리 가진 것은 교활한 지능도 아니요, 최선을 선택할줄 아는 지혜도 아니다.

時空이 습득케 한 진화의 결과는 더더욱 아닐 것이다..생물학적 생명과는 또 다른 영혼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영혼은 바로 自由와 理性을 간직하였으며, 時空에서 해방된 精神이란 것으로 구별될 것이다.

정신이란 충동에서 벗어나고,인격으로 억제할줄 알고, 모든 것에서 해방될 줄 아는 자유인의 길이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스스로를 자각하고 스스로의 삶을 경영할 수 있는 존재다. 자살마저도 가능한...

고랑큰달음산 갈림길에서 청덕면 包道와 작별하고 쌍책면 경계를 따라  자유로운 영혼의 길을 더듬는다.

 

  (236봉/만대산)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직접적인 상처를 통하지 않더라도, 타인의 고통을 함께 아파할 줄 아는 점이다.

부처가 아니라도, 가난한자, 병든자, 죽은 자를 보고  인간 삶의 고통을 느낄 수 있기에 우리는 이념을 떠올린다.

내가 서낭당 고개를 넘고 파산등 자갈밭을 따라 걷는 것은 선험자들의 인간탐구 돌탑에 작은 돌 하나 얹으려는 시도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눈 앞에 보여지는 자연들을 否定하고 거부 할 줄 알며, 현실에 반대하며 항거할 줄 아는 존재다.

산길을 걸으며 생각하는 현실 부정의 생각들이 저 산 아래서 다시 육체의 속물로 돌아 갈때, 욕심의 동물이 될수도..

그래서 우리의 발길은 최고의 정신이라고 일컫는 하나님,또는 神을 찾아 聖殿의 문을 두드리기도 하고,

인간 스스로의 능력을 인정하여 예술과 창작, 도덕과 철학등의 이념 속으로 스스로를 몰아 정신세계에 몰입하려 한다.  

 

 (파산등)

모든 현실이 고뇌임을 부처 아니라도 깨닫기가 어렵지 않은 우리네 삶에서,내게 찾아 올 해탈의 날은 언제인가..

점점 가빠져 오는 숨소리와 노곤한 내 발길에서 멀리 있음직한 涅槃은 아니더라도, 텅빈 空虛함은 느끼는데..

비록 철학적인 고통의 수행은 아니더라도, 가끔씩 찾아드는 긴 산길의 사색 속에서 해탈을 위한 否定을 行해 본다. 

꽃 처럼 예쁘지도 않고 나무 처럼 강하지도 않고, 동물처럼 날쌔고 건강한 몸둥아리도 없으니 말로만 살아가는 인간..

그러데..그런데도 연약한 육체와 죽음을 안고 태어난 인간은 어느 동물 처럼 멸종하지 않음은 어떤 까닭인가..

인간은 충동을 억제하고 부정하는 삶을 살아 가지만, 어떤 목표, 저 산너머의 기다림을 좇으며 살아 가는게다.  

 

 (생강나무)

저 꽃의 아름다움도 부드럽고 연약함 때문에 그 존재는 무척이나 짧다. 善한 인간의 義로움도 짧고 귀하다.

저돌적인 멧돼지의 맹목적인 충동들이 더욱 힘이 있지만, 말로만 떠도는 정신세계는 힘이 없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저 꽃의 아름다움과 멧돼지의 용맹성을 인간의 정신적 상상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착각한다.

그들 본래의 영혼을 간과할 이유가 없듯이, 우리의 약한 정신을 인간 본래의 특질로 이해하고 단련해야 한다.

이 땅에서 부자로 남기 위한 욕망이 양심을 잊고 악을 향하지만, 그저 부정만 한다고 극복되지는 않는 법이다.

神의 가치를 빌리지 않고도, 스스로 氣를 쌓는 걸음으로 내 양심과 약한 정신에 견뎌 낼 영혼의 힘을 쌓아야 한다.  

그것은 단순한 머리 속에서 나오는 지능 또는 사고, 이성과는 분명 다르다.영혼은 말로서 설명하기 힘든 감성이다.

 

   (함박산)

필봉을 넘어서며 함박산 남쪽길을 버리고, 바람재 성산이 바라다 보이는 맥길의 끝을 향한다.

분수령 맥길도 물길의 강과 헤어질 수 없듯이,인간의 정신은 결코 육체와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시공을 초월할 수 있는 정신을 통하여 우리의 육체는 영생을 꿈꾸고 실현해 가는 것이다.

물길이 산을 만들고, 산길이 물을 만들듯이, 인간이 역사를 만들고 역사가 인간을 만들기도 한다.

결코 대립하지 않는 인간들의 영혼 속에는  때로는 상상 속에서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영혼이 있다.

산길이 물길이요, 강이 산이다. 저 아래 낙동강과 황강이 만나는 곳에서,또 한 줄기 산은 강을 만난다.

 

 (성산)

성산 내림길에서 바라 보는 강줄기의 두물머리가, 초봄의 햇살 아래 파헤쳐진  모습을 흐리게 감춘다.

끊임 없는 인간의 욕심이  재앙으로 다가와 강 유역 파헤쳐진 물길이 맑은 모습을 잃고 고름처럼 병들어간다.

이제 얼마나 더 많은 실수와 경험들이 지나간 후에야,인간들은 다시 돌아갈 그 땅을 찾아 먼 길을 헤매야 하나..

인간이 욕망하는 부와 명예와 건강, 이 모든 것들을 골고루 갖추고도 또 다른 고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까닭은,

스스로 행복을 향한 정신과 영혼의 의지가 모자란 탓이다.행복은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쌀쌀한 날씨에도, 눈녹고 진달래 피는 어느 산기슭을 향한 내 맘속에서 나의 봄도 만들어져 가고 있다.

 

   (황강)

탐춘(探春)

                                    대익( 戴益/宋)

盡日尋春不見春(진일심춘불견춘) : 종일토록 봄 경치 찾아도 봄기운 보지 못해

*芒鞋踏遍隴頭雲(망혜답편롱두운) : 짚신 신고 산마루 구름 낀데 까지 갔었지 

*歸來適過梅花下(귀래적과매화화) : 돌아오다 마침 매화나무 밑 지나는데

春在枝頭已十分(춘재지두이십분) : 봄은 가지 끝에 어느새 와 있는 걸

 

*(杖藜踏破幾重雲 (장려답파기중운):지팡이 짚고 멀리 구름싸인 곳을 얼마나 헤매었던가.
*歸來試把梅梢看 (귀래시파매초간): 돌아오는 길 혹시하는 마음에 매화가지 끝을 잡아보니)

  (우포늪 파노라마)

3/19  道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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