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정)
3/2 07:45 지티고개 출발
08:50 금지사 임도
09:50 월명산 4,4km
11:27 큰낫고개
11:43 작은 천덕산
12:06 천덕산
12:58 비득재 5.2km
13:22 병목산
15:30 옥녀봉 5.4km
16:00 부시치 고개
16:30 부시치 도로(대덕1리) 2.3km
8시간 45분 17.3km
(성주지맥)
성공뒤에 오는 파멸에 대한 불안, 나이 먹어가며 밀려 나는 불안,
열심히 일해도 줄어드는 먹거리에 대한 불안...
늙어가는 육체와 병에 대한 불안, 신뢰 없는 주변에 대한 소외감..
삶의 불안이 그림자 처럼 따른다.
새로운 조직 속으로 파고 들어야 하고, 의사를 찾기도 한다.
점점 깊어지는 불안과 오늘의 질서는 인간을 더욱 무력하게 만들 뿐이다.
결국 종교의 이름 아래, 천당(극락)과 지옥이라는 더 큰 불안으로 이승의 불안을 달랜다.
약한 백성들은 교회와 절로 통하는 길에 힘든 노동의 댓가를 깔기 시작한다.
금지사 임도를 따르는 맥길이 확 트인 조망으로 맑은 아침을 선사한다.
(아미산/장군봉)
의사,교사들의 집단적 대중화.. 합리적인 계량사회에서 어찌 피할 수야 있겠냐 마는..
의사는 환자를 대량으로 소화해야하고, 치료벨트를 운용해야 합리적인 성과를 나눈다.
교사는 노동에 대한 즐거움을 스스로 배제하고, 계량화 하는 산업집단으로 파고든다.
인간의 개성, 또는 정신과 결부된 인술은 산업사회와 조금은 달리 존중되어 왔다.
환자는 의사를 잃었고, 의사는 환자의 건강해질 행복을 병원 밖에서만 외친다. 정치꾼과 똑 같다.
학생은 교사를 잃었고, 교사는 학생의 배울 권리를 길거리에서만 외친다. 정치꾼을 앞선다.
과도한 목적이나, 본래의 목적을 벗어난 집단적 수단은 창조사회를 꿈꾸는 자발성에 역행한다.
우리 모두는 집단 경영이라는 황폐한 이론으로 부터 좀더 자유롭고 개성적인 인간으로 나아가야 한다.
반교리를 감싸는 아미산을 즐기며, 저 아랫 동네 돌 담장 아래서 소쇄원을 꿈꾸는 착한 문화 선비를 그려 본다.
(월명산)
운동경기는 훈련과 기능적 숙련을 통해,원초적인 인간영역의 힘과 용기를 얻는다.
오늘날 많은 프로경기들도 대중의 한가로움을 달래주며 위안을 가져다 준다.
기록을 위한 투쟁욕은 우월감과 갈채로 보상된다. 또한 계량화 되어 돈으로 보상된다.
대중들은 자신이 이룰수 없는 꿈을 스포츠 영웅으로 대체한다.
등산도 마찬가지다. 프로는 프로다워야 한다. 생명을 내걸기도 하는 까닭이다.
고대 검투사의 경기를 보듯 타인의 위험과 죽음을 향락의 대상으로 삼던 그런 시대는 아니다.
이젠 스포츠도 대중화 되어, 보고 즐기던 시대에서 스스로 아마추어적인 몸짓으로 행하는 시대다.
승부나 기록이 아니더라도 내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겉치레를 벗고 창조적 충동에 몸을 맡긴다.
그리하여 질식시키는 현대사회에 대한 유일한 탈출구요, 숨통을 늘리는 일이 되기도 한다.
올림픽이 끝난 후의 허탈함은 무의미한 정치권력들의 메달 논쟁과 뒤풀이 구경으로 대체된다.
월명산 오름길에 한껏 지친 발걸음이 평발의 고통으로 느껴진다.
긴장감이 더해 오지만, 도흥리 자명골을 감싸도는 맥길이 부드러운 파도 능선으로 다가온다.
(천덕산)
내 땅 가꾼다고 온통 파헤치다 보니, 자연은 찾기 힘들고, 세상 천지가 공장으로 변했더라..
일은 조금하고, 온 종일 한가로운 유토피아를 생산해 보겠다고..인간의 욕심은 욕심일 뿐..
우리가 꿈꾸는 완벽한 세상은 결코 오질 않는다.
걸어 나가면서 또 다시 생겨나는 어려움들 속에서 고뇌는 늘고, 지쳐 쓰러질지도 모른다.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정신-그것이 창조이다.. 미답의 땅을 향한 걸음, 그것이 진보다.
세상 질서도 대립과 투쟁 속에서 이율배반의 생산과 파괴를 반복하며 인간 삶을 영위한다.
천덕산을 찾아 오르는 길이 지루하고 길다. 힘들기도 하다.
나의 맥길 밟기가 쉽고 가볍다면 벌써 흥미를 잃었을거다.
내 걸음의 한계를 느낄 때 비로소 나를 깨닫고, 내가 가야 할 길이 얼마나 길고 영원한지 알 수 있다.
(비득재)
기계의힘과 경제적인 힘이 신앙이 된 세상이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위하여..
모든 문화와 정신적인 논리도 기술과 경제의 절대적 힘을 찬양하고 있다..
인류 전체의 복지라는 막연한 기대 속에서 그 한계를 깨닫지 못한 채 헤매고 있지는 않은가.
민중의 세상은 결코 절대적인 우상에 의해 지배될 수는 없는 것이다.
절대 다수라는 커다란 집단이, 형체도 없는 집단이 요구하는 그러한 논리,
그것에 지배당하는 개개인은 그러한 집단 논리에서 탈출하는 자유인이 되어야 한다.
公益의 이름으로 은폐한 갖가지 사이비 개발논리들에서 벗어나야 한다.
민족, 민의, 국민의 이름으로 개개인을 억누르는 허구에서 벗어나야 한다.
부여/보령 땅을 잇는 고갯길 비득재에서 어김없이 크게 파헤쳐진 암석 절개지를 본다.
많이도 파 먹었다..귀한 암석들은 경제적이니까.
이제 또 다시 동물이동 통로의 미명으로 작은 터널 흉내를 내겠지..
(병목산-서당골/보령호 상류)
보수는 현상유지를 위해 正義라는 이름으로 타협해 나가며,平和라는 이름으로 결단을 억제한다.
자기를 포기하고, 투쟁이 아니라 양보를 미덕으로 가르치며 전체를 조정해 나가는 논리에 익숙하다.
그들은 우월함으로 폭력을 휘두르고, 위험한 결단은 회피하며, 개혁의 극단성을 피해 중용을 들먹인다.
조용히 산 속 마을에 파묻혀 농사짓고 자연을 가꾸는 선비를 수구 또는 보수라 할 수 없다.
그들이 찾고 헤매는 인간의 참 모습이, 바로 궤변으로 전도된 공익을 위한 개발 논리에 앞서간다.
인간은 산업의 수단이 아니라, 스스로 창조하고 생산하는 의미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병목산 아랫동네, 옥현 서당골에서 작은 소울음을 실어 오는 봄 바람을 느끼며
기계톱 소음이 뒤흔드는 소용돌이를 잠시 잊는다.
(옥녀봉)
세상은 더 나은 곳을 향한 과도기가 아니라 위기라는 걸 안지도 오래 되었다.
정치위기, 문화위기, 인간 삶 자체의 위기..모든 것이 신뢰를 잃은 지금,
골수배양등 인간 생명 과학에서의 위기마저도 무감각해지는 현실이다.
어디에서나 비슷한 모습들..문화의 해체가 가져온 본질의 상실을 경험한다.
평균화된 인간의 무지는 집단 속에서 보편적이고 통일화 되어 간다.
그속에서도 재능있는 자들은 말을 위한 말로써도 출세의 길을 걷기도 한다.
옥녀봉 시멘트로 꾸며 놓은 팔각정을 바라보며 사물의 실체는 사라지고 비판만 남는다.
그냥 햇빛 가리고 그늘 지우는 본질은 잊어 버리고, 냉소를 흘리는 현대인이 되고 만다.
아무리 뒤돌아 봐도 산정 정자는 목재로 이루어져야 진정한 권위를 찾을 것 같다.
(옥산면/원진지맥)
다시 이어 갈 새로운 맥길을 향한 바램을 담아내 본다.
어느 길이 진정한 바른 삶으로 이어질 것인가..이제 잠시 접어야 할 오늘 발길을 터덕거린다.
내 나라 내 땅이라는 국가이념에 사로 잡힌 채 젊음을 불태워 왔다.
이제 정신적 창조의 길도 기웃거리며 자유로운 나의 삶을 마무리 할 수 있어야 한다.
내 삶에 대한 가치, 내가 나아갈 길은 내가 결정해야 한다.
그냥 주어진 삶과 익숙한 길을 걸어 간다면 타락한 인생이다.
나의 의지로 꾸려 간 삶이 한계에 이르는 그 날,
나는 후회 없는 나의 존재를 바라보며 영혼을 분리하리라..
주산 너머로 모습을 숨기는 일몰 속에서 주홍빛 무창포 서해 바다를 그려본다
(부시치 고개)
3/5 道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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