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9정맥(2007-10)·完了/호남정맥(07)·完了

6/30-7/1 국수봉(방아재-유둔재)구간종주-호남정맥8차

by 道然 배슈맑 2007. 6. 26.

 

 

(산행 시간표)

6/30     22:00     신도림 출발

7/1      04:05     방아재  출발

           05:20     만덕산(575)                1.8km

           06:20     호남정맥 중간기점(231km)

           07:00     입석리                       3.9km

           07:40     아침식사(40분)후 출발

           08:10     국수봉(557.6)              1.2km

           10:00     노가리재                     3.6km

           11:00     까치봉(469)                 2.4km

           12:05    456.5봉                        3.9km

           12:45     유둔재                        2.2km

                           8시간 40분                19km     

  

 (비에 젖은 복분자 밭에서..젖은 꽃잎이...)

(6/30  22:00) 올 해도 절반이 지나는구나..나의 호남정맥길도 절반을 지나겠지..내 인생도 아직은 반은

남아 있는가..반(半)이라는 어감이 참 소중하고도 가치있게 다가온다.우리에게 다가오고 지나가는 모든

삶의 행적들이 그 전반의 의미로도 끝을 맺을 수 있는가 하면, 그 후반의 시작으로 또 새로운 희망을 가

져다 줄 수도 있는 시작점이라 여겨지니, 오늘 내 발걸음의 시작이 한결 가볍고 새로운 희망에 들뜬다.

비록 하늘엔 잔뜩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지만...갈길은 멀고 갈 곳도 하도 많아 쉴 수가 없고나...

 

"어데 산이 이사라도 가는가..100mm 폭우가 예상되는데..ㅉㅉㅉ" 물푸레의 한심스런 표정이 엿보인다.

산은 늘 그곳에 있겠지만..오늘 만나기로 한 그 곳의 잠못드는 영혼들이 빗 속에서도 기다릴까봐..오늘의

산은 내일이면 없어지더라..산도 변하고 그 속에 깃들어 있는 온갖 생명과 영혼들도 역사의 시간 속에서

많이도 변해 가고, 그들을 만나는 오늘의 나도 내일의 나와는 다르겠지..우리의 만남은 이렇게 정해져

있는 까닭에 내 발걸음을 멈출 수가 없구나..신도림을 벗어난 버스 창에 빗방울이 뿌리기 시작하는구나..

 

호남고속도로를 달려 광주 요금소를 지난 버스가 빗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오른쪽 빛고을 새벽을 보여주

며 창평 톨게이트를 벗어나 곡성으로 넘어가는 산길을 올라 방아재 꼭대기에 닻을 내린다. 요란하던 장

마비가 산행 준비를 하는 동안 잠시 가늘어 진다. 어차피 무성한 녹음이 빗물로 목욕하고 있을테니..그

속에 안길려면 다소 덥기야 하겠지만 장시간의 습기와 체온 관리를 위해 우의를 단단히 입을 수 밖에..

신발은 아예 젖기로 하고, 어차피 온종일 젖을 각오로 배낭 속의 여유분 옷들과 식수를 꺼내고 무게를

줄인다.(03:50) 오직 비에 젖는 시간을 단축할 수 밖에..

  (방아재 들머리의 고난들..)

(04:05) 방아재 남쪽 들머리의 길게 자란 풀섶을 헤치고, 금새 젖어드는 바짓자락을 차갑게 느끼며 능선

왼쪽 오르막을 10여분 올라서니 곡성 쪽 요양병원의 불빛이 화려하다. 잠 못드는 삶들이 또 이 새벽을

앓고 있겠지..꽤 잘 단장된 묘가 밤비에 젖고 있구나. 이어지는 편한 오름길을 흠씬 젖어드는 풀섶을 즐

기며 발길을 서둔다. 제법 큰 묘가 정상을 차지한 봉우리에서 무심코 오른쪽  싸리가지 숲을 헤치고 내려

서다 보니 어쩐지 느낌이 이상하다. 미리 숙지한 지도상의 꿈틀거림과 반대로 내려서고 있는 것 같다.

빗속에서 지도를 꺼내 확인하는 것이 잠시 귀찮았던 댓가로 10여분 알바를 치르고 도로 올라선다.

 

정상에서 왼쪽 급경사 내림길을 찾아 10여분 힘겹게 미끌어져 내리니 청운재 임도에 내려선다.(04:40)

임도를 따라 왼쪽으로 이동하며 후미대원들을 기다려 오른쪽 만덕산 오름길 절개지에 발을 길게 뻗는다.

비에 젖은 절개지에 미끄럼을 타면서 힘겹게 올라선 후 이어지는 급경사 오르막에 코를 박는다. 젖은 솔

잎과 풀내음이 향기롭다. 짙어가는 여름의 맑은 새벽은 이렇게 축축한 호흡 속에서 가쁜 숨으로 地氣를

들이마신다. 헤드랜턴 불빛에 반짝이는 어둠 속의 된 오름을 20 여분 기다시피 긁어 오르니 작은 봉우리

왼쪽 사면 공터에 올라서서 잠시 숨을 고른다. 땀에 젖은 우의를 벗고 새벽을 맞으며 비에 젖는 랜턴을

미리 벗는다.(05:05) 사위는 온통 운무 속에서 보이질 않으나 아침은 변함없이 다가오고 있는 모양이다.

 

작은 봉우리 왼쪽으로 난 편한 길을 따라 헬기장을 지나고 삼거리에서 정맥길을 벗어난  오른쪽 만덕산

정상(575)을 잠시 들런다. 어차피 조망은 좋질 않겠으나, 숱한 전란에도 휩싸이질 않았다는 만덕산 아래

대덕면의 덕을 살피려 했지만 짙은 비구름으로 여의치 않고 멀리 창평쪽 아침만 잠시 개인다.(05:20)

동쪽의 지리산은 구름으로 가려지고, 할매바위 마저 찾기가 여의칠 않다. 바로 돌아 나와서 오른쪽 남행

길을 접어든다.

 (대덕면 만덕산 서쪽, 창평면 마을들이..)

편한 길을 10분 남짓 걸어 신선바위 전망대에서 창평들과 멀리 무등산을 향해 서 본다. 비구름이 넘나들

며 쉽사리 그 자태를 보여주질 않는 남쪽이다. 古下 宋鎭禹,街人 金炳魯, 仁村 金性洙..기라성 같은 현대

사의 인걸들을 배출한 창평 땅..고경명의 아들 고인후 이래로 장흥 고씨의 융성을 창평 高氏로 부를 만큼

뛰어난 인재를 키워 온 땅이 오늘은 빗줄기 속에서 아직도 조용하구나..오른쪽 배뫼(舟山) 위로 구름이

걷히운다.공자의 尼丘山에서 빌어 왔다던가..昌平 고을은 공자 태어난 산동성에 있는  마을 이름이기도

하다. 아무튼 그 이름짓기도 이왕이면 정성들일 일이다.

 

전망대에서 편한 능선을 걸어 나가니 '신선바위' 이정표를 만나고, 아무래도 지도상의 '상여바위'나, 속

칭 '범바위'가 어울리는 커다란 넓적 바위가 어두운 새벽의 빗속에서 웅크리고 앉아 있다. 점점 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한다. 제발 오전 나절만 좀 봐 주기를..진행 길을 서두른다. 편한 능선을 내려가면서 조금

씩 고도를 낮춘다.작은 봉우리와 안부를 건너 오르니 봉우리 왼쪽 사면으로 길이 뚜렷한데 아무래도 봉

우리 정상이 궁금하다. 522봉 갈림길, 물통구리 전망대 정도로 짐작은 가나, 흐린 날씨에 조망이 없으니

확인할 길이 없다. 정상에서 왼쪽으로 직각으로 틀어 내리니 우회로와 만나서 내리막을 밟는다.

 

 (비내리는 신선바위 절벽에 서서..)

내림길을 밟은 후 작은 고갯길을 지나 잡목 숲을 헤치고 올라서니 작은 봉우리에 돌담 같은 축성의 흔적

이 남아 있다. 그 연유는 전혀 짐작이 가질 않지만, 일반적인 성곽의 형태와는 전혀 용도나 생김새가 다

르다. 돌담 넘어 왼쪽으로 돌아 내리니 잠시 임도를 건너고,(06:00) 벌목지대와 두세군데의 묘를 지나며

작은 봉우리를 넘어 지도상의 비포장 임도(청운동/입석리)에 내려선다. 왼쪽 청운동 쪽으로 길을 잠시 

따르다가 건너 숲 속으로 접어든다. 소나무 숲길이 빗 속에서 매우 편안하다. 양탄자를 밟는 기분으로

10여분을 흥얼거리니 호남정맥 중간지점 231km 푯말 앞에 선다.(06:20)

 

금남호남정맥을 합하여 영취산-백운산 462km의 한 가운데 점이다. 유난히 꾸불거리는 맥길을 따르며,

그 한 많은 질곡의 땅을 굽이치는 호남정맥 마루금...숱한 골을 가르며 바삐 달려온 지난 넉달이 길어 보

인다. 적은 인원으로 여러가지로 어려운 여건을 극복해 나가는 정맥 마루금 밟기도 이젠 그 중간점을 넘

어서서 점점 남은 거리가 짧아진다고 생각하니, 올 한해가 끝나는 날 외망나루 여수 앞 바다에  잠겨 질

이 맥길의 끝이 벌써 보인다. 그 날..회한의 막걸리 한 사발에 또 나는 어떤 기쁨을 맛볼 것인가..

점점 굵어지는 빗줄기가 갈 길을 보챈다. 이 쯤에서 아침상을 펼쳤으면 좋으련만.. 

 (아! ,호남정맥 길..벌써 반을 지나는 구나..)

평탄한 소나무 숲 속을 이어 나간다. 갈림길 왼쪽 능선을 걸어 내려 임도를 지난다.(용대리/입석리)

10여분 약간의 오르막을 가볍게 워밍업하고 오르니 수양산 갈림길 능선에 올라선다.(06:40) 왼쪽 수양산

이 지척이나 어차피 빗 속 구름이 온통 가린 곳에서 조망도 없을테니, 화순 땅 넓은 벌 구경은 다음으로

미루고, 오른쪽 내림길을 90도 직각으로 돌아 내린다. 마을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등로가 넓어지고, 편한

내림길을 밟는다. 솔 숲과 묘지를 지나 농로를 타고 입석 고개 마루에 내려 선다.(07:00 입석리/운암리)

 

마루금 농로 오른쪽으로 농장을 가꾸고 있는 컨테이너 농막으로 비를 피해 아침 상을 펼치려 한다. 곁에

있는 비닐 하우스 창고로 들어가니 호텔이나 다름 없다. 빗줄기야 세어지든 말든 느긋한 식사 시간이 이

리도 즐거울 수야..농장 입구의 화려한 수국 꽃봉우리가 빗 속에서 더욱 맑아 보인다. 범죄 없는 마을이

라 했던가..이리도 편하고 풍성한 고갯 마루에서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범죄란 본시 어울리지 않는 법..

비에 젖은 비석과 당산나무가 한가롭다. 어디 선돌(立石)을 볼 수 있을까 둘러 봐도 눈에 띄질 않는구나.

 

 (입석리의 아침)

(07:40) 아침 식사 후 포장도로를 건너 시멘트 포장 농로를 잠시 따르다가, 오른 쪽 논길을 지나 잡목 숲

오름 길을 헤쳐 나간다. 묘터를 지나고 잡목과 산죽이 이어지는 작은 봉우리를 넘어서니, 선돌 마을에서

이어지는 포장도로가 왼쪽으로 따라 오르고 있다. 왼편 선돌재 너머 목장으로 연결되는 모양이다. 이어

지는 심한 잡목 숲길을 급경사로 지쳐 오른다. 오른쪽으로 잠시 돌아 오르니 삼각점과 통신탑 비슷한 무

인 감시탑이 설치된 채 풀섶으로 뒤덮힌 좁은 국수봉(557.6) 정상에 올라선다. 빗줄기는 조금 가늘어진

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후미를 기다리고 북쪽으로 향하는 마루금을 확인한다.(08:10)

 

대덕면과 창평면 경계선을 따라 마루금은 북쪽으로 향한다. 잡목이 우거진 숲길을 따르다, 봉우리 오른

쪽 사면 급경사 내림길로 내려선다. 오른쪽 봉우리를 진짜 국수봉이라 주장하는 이도 있으나, 별 의미는

없는 것 같다. 인동 張氏 世葬阡(세대묘역)을 지나  좌우 염소 목장을 보호하는 철조망을 따라 내리니,

비포장 임도를 만나고 오른쪽 오름길로 이어지는 묵은 임도를 따라 한참을 편히 오른다. 길섶에 들꽃이

갖가지로 피어 있으나 카메라를 꺼내기엔 빗물이 성가시고..길가에 지천으로 늘어진 복분자 열매를 따

먹으며 발길을 지체한다. (08:40)  

 (월봉산을 바라보며)

북쪽 월봉산 능선으로 이어지는 468.3봉 앞 절개지 공터에서 왼쪽으로 철조망 출입문을 통과한다. 도대

체 농장에서 벗어나는건지 농장 안으로 들어가는 건지 구분이 되질 않는다. 그냥 경계일 뿐이다. 그렇다.

우리 인간의 삶 속에서 무수히 건너다니는 경계의 의미는 무엇인가..들고 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

인가..안과 밖이 구분되질 않는 무의미한 공간을 인간이 만든 좁쌀같은 철학으로 규정짓기엔 너무나 광

활한 우주이련가..내 걸어가는 이 마루금도 오른쪽 왼쪽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인가..하물며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인간들의 작은 머리 속에서 나온 이데올로기를 두고 오른쪽 왼쪽을 따지려 하니 그 또한

무슨 해답이 있을 것이고 무슨 영원한 진리의 가치가 있을 것인가..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468봉 전망대에 올라 구름 속의 월봉산을 바라본다.저 아래 상월정 마루에 앉아

漢詩를 배우고 이 땅의 인재로 커나갈 많은 꿈들이 깃들어 있을 창평 뜰이 눈 밑에 펼쳐질 텐데..차라리

발 아래 구름이 새로 개발된 골프장을 가린 채, 어데서 구슬픈 두견새 소리 실어 오르니 나그네 발길이

또 다시 그 시절 아프고 쓰리던 옛날로 돌아드는구나..소나무 가지를 부여 잡으며 미끄러운 경사길을

남으로 지쳐 내린다.(09:00) 

 (나아갈 남쪽 길엔 비구름만 가득하고..)

월봉산 조망처를 지나 급경사 미끄러운 길을 왼쪽으로 내려오니 농장 축사와 저수지가 흉물스레 보이는

농장의 철조망을 따라 오르 내린다. 이후 20여분이 넘도록 바위 전망대 봉우리까지 이어지는 목장 철조

망엔 새로이 설치한 가시 철망이 녹이 슬지도 않아 행여 우의라도 걸려 찢어질까 염려 스럽다. 오른쪽 전

망대 바위에서 좌우를 살피지만 남쪽으로 이어지는 오늘의 마루금이 잔뜩 비구름을 머리 위에 덮어쓴 채

로 멀리 무등산은 자취를 감추었다.(09:25)

 

계속 지루한 오르내림으로 서너개의 작은 봉우리를 넘어서고 활공장 전망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여전히 빗줄기는 멈출 기세가 아니다. 이제 1/3정도의 구간을 남겨 놓고 조금씩 피로가 나타난다. 식사

때를 제외하고는 어디서 앉아 쉴 틈이 없다보니 물에 젖어 부푼 몸들이 천근 무게를 느낄만도 하다.다시

금 이어지는 내리막 길이 꽤 넓고 완만하니 천천히 걸으면서 휴식을 도모한다. 노가리재 내리막 직전에

새로 만든 넓은 활공장과 헬기장을 만나고 내려서니, 측백나무 묘목이  넓은 농로처럼 이루어진 마루금

길 가운데에 지그재그로 심겨져 있다. 산길 복원을 도모하는 뜻은 좋지만 대체 어떤 지혜로움의 발상인

지..속성나무인 향나무 그루터기가 대간 마루금을 지그재그로 얼마후 뒤덮으면..다시 생겨날 옆길이 얼

마나 많은 엉뚱한 형태로 이루어 질 것인지..노가리재 편도 포장길에 내려선다.(10:00 유천리/외동리)

 

 (인적 없는 산길에 천둥은 요란해도...)

노가리재..일상의 느낌은 노가리(명태)알 처럼 말 많은 장꾼들의 휴식처인지도..화순과 창평장을 오가는

고갯 길에서 늘어 놓을 자랑거리와 인간사 궁금함이 젖은 포도 위를 뒹굴어 넘는다. 사향노루(鹿) 녹아리

가 넘나들기엔 너무 얕은 고갯길 처럼 느껴진다. 두사람의 대원을 결국 외동리로 탈출을 시키고 도로 건

너 절개지 오르막을 지쳐 오른다. 송전 철탑을 바라보며 오른쪽 급경사를 안간힘을 써 올라 간다. 어딘가

비를 가릴데만 있으면 잠시 쉬면서 이슬이라도 한 모금 했으면..젖은 바지는 감겨 들고..

 

작은 봉우리를 두어번 지나 묘가 있는 정상에서 왼쪽으로 크게 방향을 바꾸어 한 고개를 더 넘으니 삼각

점이 있는 429.4 봉을 지난다. 소나무 숲길에서 비를 맞으면서 휴식을 취하는 대원들을 뒤로 하고 조금

더 나아가면 비가 멎거나 바위 밑이라도 있을까 먼저 길을 재촉한다. 아무런 조망도 없는 비구름 속을

홀로 걷는 기분이 그런대로 괜찮다.오르내림 끝에 해남터 갈림길에 다다른다.(10:45) 길 손을 위한 싯귀

가 친절하고 다정스러워 빗 속에서나마 잠시 한 수 읽어 본다. 예술적인 산길이로고...

          위험한 돌길을 더위잡아 오르며(石逕攀危)

                                                                  하서 김 인 후

(원문)                                         (현대역)

一逕連三益                   하나의 돌길에도 삼익우가 연이었고,

攀閒不見危                   오르는 데 익숙해서 위험은 없어

塵蹤元自絶                   속세의 발걸음 스스로 끊고 나니

笞色踐還滋                   이끼 빛깔은 밟을수록 더더욱 풍선해.

(어휘의 이해) * 석경(石逕) : 돌이 많은 좁은 길    * 반위(攀危) : 위험한 좁은 길을 더위잡아 오름

                     * 삼익(三益) : 매 梅, 죽 竹, 石의 세가지 * 진종(塵蹤) : 속세의 발자취

  

 (장대 빗 속의 마지막 사진을 담고...)

梅는 없으나 石,竹은 실컷 접하며 속세의 발걸음을 끊은 듯이 날아 올라 장원봉 갈림길 최고봉(493)에 단

숨에 올라서니 빗줄기는 이제 본격적인 폭우로 변하면서 천둥 소리마저 요란하다. 지은 죄가 하도 많아

홀로 산길이 다소 무섭기도 하건마는..조그만 돌탑 위에 작은 돌 하나 얹으며 무사를 빌어 본다.(10:50)

작은 오르내림으로 두어개의 봉우리를 넘어서 삿갓봉 이정표 갈림길에 올라선다. 아마 까치봉(423.3)

갈림길이겠지..(11:00) 마치 U턴 하듯이 왼쪽으로 다시 꺾여지는 편한 능선 길을 오르 내리며 아예 폭우

로 돌변하는 빗 속에서 이젠 카메라도 포기하고 빨리 유둔재로 뛰어 내리는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그 해 5월의 무등산 언저리는 그렇게 맑고 화려한 날씨였는데..5.16 기념식(?)을 5년만에 복학 기념식으

로 대체하며 영등포역 앞에 모였던 관악산 부근의 젊음들은 양화대교를 비 맞으며 건너고 있었다. 며칠

후 나주에서 만나기로 했던 K군을 찾아 나선 기찻길이 장성에서 막히고 어떻게 남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마지막 내려선 곳이 화순 땅이었던가..맑은 저녁 하늘에 울려 퍼지는 그날의 총소리에 무서워 진주

로 발길을 돌려야 했던 비겁한 기억들이 검은 비 되어 무등산을 가로 막고 있구나..어느 새 작은 봉우리

를 서너개 정신없이 넘었나..유둔재 5.520m..비에 젖은 이정표가 반갑다.(11:25) 무등산이 가까워 온다.

 

이어지는 편한 능선 길을 쉼없이 발길을 재촉하여 서너개의 야산 같은 봉우리를 흥얼거리며 고개 넘는

다. 지도상의 새목이재인 듯한 안부 고갯길을 지나지만 좌우 하산길이 지도처럼 그리 뚜렷하지도 않고,

비 안개 속에서 좌우 시야가 가려져 있으니 확인할 길도 없구나. (11;50) 다시 꽤 큰 봉우리를 천천히

올라서며 봉우리 왼쪽 사면을 타고 오르니 풀섶에 삼각점이 살짝 보인다. 어느새 456.5봉이다.(12:05)

이제 바로 아래 어산이재를 넘어서면 한 고개 남았구나..어디선가 자동차 소리마저 들려 온다.아마도

오른쪽 남면 도로가 가까운 탓이겠지.. 

 (갈길은 먼데..빗줄기는 더 세지고...)

 번호로 매겨진 유둔재까지의 이정표가 매우 친절하다. 다만 거리감은 좀 다른 것 같다. 어산이재를 지나

비스듬한 사면 길을 오르며 작은 오르내림을 두어번 거친 후 삼거리 내리막 길에서 오른쪽으로 크게 돌

아 내린다.잘 단장된 가족묘를 지나고 대나무 숲 길을 따라 넓게 조성된 수레길을 길게 지난다. 유둔재

고갯 길 포장도로에 빗소리만 요란하다. 옷을 벗고 빗물에 온 몸을 맡기며 땀을 씻는다.(12:45)

 

후미를 기다려 창평으로 향하는 길목에 소쇄원과 식영정을 살피려 하나 장대비 속에서 지친 몸을 씻지도

못한 탓에 다음 구간 무등산 이후로 일정을 미루고 창평 곰탕 집으로 직행한다. 식영정 아래 紫薇灘 개울

을 삼킨 광주호는 별뫼(星山)에서 흐른 물 답지 않게 탁류로 변한 채, 배롱나무 꽃잎은 보이질 않고 洛水

지는 물보라만 산 나그네 짙은 회한처럼 지설뫼를 감아 돈다...

 

7/2 道然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