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시간표)
9/6 23;30 신도림 출발
24:00 양재역
9/7 02:30 봉곡리고개(21번도로)
03;20 산행시작
04:50 방아다리고개 1.7km
05:50 협진주유소(583도로) 1.7km
07:00 쌍봉초교 4.2km
08:15 식사후 출발(1시간15분 휴식)
09:40 윗두리실(대정리고개)
10:10 아랫대실(대야리고개) 6.2km
11:25 망이산(45분 휴식)
12:10 휴식후 출발
12:50 차현고개 5.6km
9시간 30분 19.4km
(583도로변)
(9/6 23:30) 신도림을 떠나는 정맥길에 오늘은 작은 승합차에 8명 정원을 다 채운다. 오랜만에 경부-영동을 거쳐 양지I.C에서 17번을 타고
안성으로 향한다.일죽을 지나 삼성면에서 택시를 타려 했으나 전화도 받질 않는 택시 회사가 한심스럽다. 상상했던 시골 면소재지가 아니라
어느 공장 신개발지의 어수선한 고함 소리만 난무한다.(9/7 02:00) 부디 맥길 아래 양반촌의 정감을 간직하고 백운산 아래 운곡서원의 품위를
손상시키질 않도록 바랄 뿐이다. 다시 차를 몰아 금왕을 지나고 오늘 구간의 들머리인 봉곡리 고갯마루 식당 앞뜰에 차를 세운다.(02:40)
랜턴 불빛을 벗삼아 라면으로 즐기는 야참이 항상 즐겁다. 이제 당분간 즐거운 무박 산행도 마지막인가..
(금왕읍의 새벽)
(03:20) 21번 도로를 건너 서쪽 과수원 왼쪽으로 이어지는 풀섶길 속에서 들머리를 확인한다. 절개지 언덕 위 넓은 묘지에서 오늘의 행장을
다시 꾸리고 ,예상되는 잡목 숲을 헤쳐나갈 각오와 함께 사진 기록을 남긴다. 10분 남짓 동안 철조망을 따라 오르내리면서 어둠속의 야산을
헤쳐나간다. 생각보다 가시잡목은 심하질 않다. 맥길 치고는 시군 경계도 차지하질 못한 채 금왕읍 내에서 오늘 하루 대부분을 동네 마을 답
사로 이어가야 할 처지니, 날 밝으면 마루금의 좌우 동네에서 어떤 차이를 느낄 수 있을까..구계촌 입구도로를 건너고 철조망을 거치면서
176봉을 넘어서니 공장들이 있는 도로에 내려선다. 왼쪽으로 조금 이동하여 길 건너 밭 가장자리를 타고 잡목 숲을 오르고,목장 펜스 오른쪽
능선을 따라 오룡골 고개에 내려선다.(04:00) 잠시 선채로 목을 추기며 숨을 고른다.
(내송리)
오룡골 포장길을 건너 짧은 급경사를 딛고 언덕 위에 올라서니 큰 무덤 뒤로 능선길이 보인다.다시금 왼쪽 사면에는 염소목장 냄새가 뒤따르
고 가시덤불을 헤치고 앞이 트이는 언덕에서 멀리 농공단지의 불빛을 마주한다.그리 훤히 밝지 않음이 오늘날의 우리 경제를 보는 것 같아 쓸
쓸하다.왼쪽 공장 지붕을 밟는 듯한 능선 길이 잡목 숲으로 이어지고 잠시 후 포장길에 내려서서 왼쪽으로 도로를 따라 운동시설이 있는 한마
음 탑 공원 아래에서 잠시 배낭을 내린다.(04:15) 아직은 어둠 속에서 無極의 평온함을 간직한 채 좌우마저도 분간이 되질 않는 칠흑의 새벽
이다.
(쌍봉리)
체육공원 벤치에 앉아 오른쪽 금왕읍을 바라보지만 새벽이 희미하다. 아무런 편가름이 없던 太極(無極)의 이 땅 위에 뉘라서 선을 긋고 슬픈
역사를 남겼던가..삼형제 저수지(용계,무극,금석)에서 흘러내린 응천 물길따라 청미천에서 뛰놀던 여주 이천 소년들이 그 해 여름에 의용군
의 이름으로 하룻밤을 지새며 넘어온 저 감우재 고갯마루에서 적 아닌 적이 되어 국군의 전승기념탑 아래 원혼을 가둔 채 아직도 발치의 고향
땅을 그리워 하고 있을까...부디 금남길 백령성 육백고지에서 처럼 피아를 구분짓지 않는 동족의 비극을 기억하고,불쌍하게 희생당한 원혼들
을 함께 달래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기를 바래본다. 공원 길을 따라 4차선 큰 길(82번도로)로 나서니 근래 몇번 다닌 길이라 눈에 익다.(04:20)
(인삼밭)
도로 건너 마주하는 작은 봉우리를 생략하고 큰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진행하여 목우촌 앞 횡단보도에서 길을 건넌다. 금왕산업단지 입간판
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야 할길을 큰도로 따라 직진하여 10여분 알바 후에 돌아 온다. 밤길에 그 정도는 양호하다고 위로하면서..산업단지로 향
하는 신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방향을 잡고 걸어서 513번 도로를 만나고 다시 횡단보도를 건너 왼쪽 주유소를 지난다. 방아다리 고개를 넘어
서니 산업단지 입구를 만난다.(04:50) 도대체 산업단지로 떨어지는 빗물이 양쪽으로 흐르는 이유를 알고나 있을까..개발이야 필요에 따라 할
수도 있겠지만, 이 땅의 영혼의 소통로인 정맥 마루금의 의미를 깨닫고 표지석이라도 세울 수는 없을까..
(쌍봉1리 고갯마루)
금왕산업단지에서 어둠 속의 표지판을 대충 보고 무심코 오른쪽 단지 안으로 들어 갔다가 5분 정도 허비하고 되돌아 나온다. 다시 513번도로
를 따라 한솔신약 표지가 있는 곳까지 좀 더 직진하여 오른쪽 골목길로 들어선다. 오른쪽 큰 공장을 지나면서 삼거리에서 공장 펜스를 따라
북쪽으로 이어지는 긴 포장길을 따른다. 포장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희미한 어둠을 가르고 왼쪽으로 이어지는 풀섶으로 덮힌 농로를 놓치고
알바의 공포에 쌓여 삼거리까지 두어번 왕복을 하며 어둠속을 헤멘다.(05:20) 가까스로 왼쪽 야산으로 이어지는 농로를 따라 꽤 길게 잡목 숲
을 지난다. 결국 30분 남짓 걸려 583번 도로 협진 주유소 터에 도착한다. 고속도로 공사로 이미 주유소는 사라졌다.(05:50) 점점 날이 밝아옴
을 느끼며 한잔 막걸리로 갈증을 달랜다.
(쌍봉초교 정자)
군부대가 차지하고 있는 내송리 능선길은 어차피 마루금을 벗어나 북쪽 계곡을 건너야 하므로 생략하기로 하고 마루금 남쪽 583번 도로를 따
라 군부대 정문이 있는 쌍봉2리 정류소까지 도보행군?을 즐긴다. 가을을 맞는 마을들의 아침이 풍요롭다.20분 남짓 걸음으로 1시간을 벌고
부대앞 정문에서 쌍봉리 마을로 들어선다.(06:18) 포장길 목우촌 사료용 계사 앞에서 내송리를 넘어오는 마루금을 만나고, 더 진행하여 왼쪽
야산으로 진행되는 쌍봉리 마을 뒷산을 넘어간다. 아침을 거두는 농촌을 함께 걸으며 일찍 밭갈이에 나서는 촌로들의 정겨운 길 안내를 받는
다. 방죽 너머 우등산(262.4) 자락에 '애기업은 바위,의 전설처럼 어느 착한 며느리가 아침상을 준비하는가..불지피는 냄새가 난다. 아무래도
143.3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을 찾아 오르자면 아침 잠을 설치는 개짖는 소리에 마을이 시끄러워 질것 같다. 그냥 마을 안 도로를 따라 583번
도로를 다시 만나는 쌍봉1리 건널목으로 향한다. 코니 아일랜드 공장 앞을 지나 큰도로 남쪽으로 이어지는 쌍봉1리 마을회관 길을 지나고 쌍
봉초교 교정에서 아침을 차린다.(07:00)
(쌍봉초교 뒷길)
군부대 뒷산을 생략한 탓에 시간적인 여유를 느끼며 쌍봉학교 교정 한켠에 꾸며 놓은 정자에 앉아서 거한 아침회식을 즐긴다. 시골 학교들이
면단위로 통합될 만큼 학생수가 없어지는 오늘날 이 학교는 주변 공장지대 외지인 덕분에 120여명의 학생수를 유지하고 있다고 하니 다행이
다. 다만 이렇게 아름다운 미호천 발원의 마을에 기름냄새가 배어들지만 말았으면..40년전 가야산 기슭의 시골 학교 운동장도 저 만큼 크기였
으련만..이 땅을 떠나던 이른 아침에 학교 운동장 전체에 빗질 자욱을 남기며 영혼을 심어시던 그 분의 모습이 저렇게 고운 햇살과 함께 운동
장을 가로지른다..일주일 후 추석날 차례상에서 뵈올 그 님의 얼굴이 떠나질 않으며 이슬이잔을 놓질 못하는구나..이제는 그 님의 자취들이
스며든 서부 경남의 작은 초등학교들이 대부분 사라졌으니..조만간 걸어갈 낙남정맥 길에서 회상으로나마 함께 할 수 있기를...
(내곡리)
(08;15) 긴 휴식을 끝내고 환한 아침햇살을 받으며 쌍봉초교 뒷길로 이어지는 포장길 마루금을 이어간다. 여지 없이 생겨나는 화려한 묘역들
을 바라보면서 맥길 명당처임을 다시금 느낀다. 제넘어 사창리 麗興閔氏묘 처럼 부디 좋은 후손들을 길이 보살피고 이 땅에 평화로움을 지켜
주시길..긴 포장길 끝에서 583번 도로를 다시 만난다. 도로로 인하여 섬처럼 잘려 있는 이름하여 높은봉은 바라보기만 하면서 스친다.왼쪽으
로 이동하여 내곡리 기술교육원 길을 따라 마루금을 찾아 오른다.(08:35) 도로끝에서 언덕을 넘어 왼쪽 인삼밭 농로를 타고 식품공장 삼거리
를 지난다. 많은 정맥꾼들에게 알려진 '두콩식품' 정겨운 이름은 '태정푸드'라는 국적불명의 팻말로 바뀐 채 밭자락에서 부끄럼을 탄다.오른
쪽 포장길을 지나고 공장들과 농로들을 거쳐 왼쪽 583번 도로에 또 다시 내려선다.이젠 마지막인가..(09:00)
(사창리)
큰도로를 따라 삼성면 쪽으로 2-3분 이동하여 '태진플라텍'으로 간판이 바뀐 공장 맞은 편 대정리 수레길을 따른다. 멀리 망이산이 반긴다.언
덕을 넘어 수레길이 포장길 3거리를 만나 오른쪽으로 잠시 방향을 튼 후 대정리 넓은 인삼밭과 고구마밭을 가로지르며 윗두리실 고개까지 아
름다운 전원을 감상하며 수만평에 걸쳐 농원을 가꾸는 부농을 느낀다. 아마도 맥길 마루금을 따르면서 이리도 광활하고 골이 없는 구릉지는
보기 힘들듯 싶다. 제발 이곳 만이라도 무덤들로 채워지지 않았으면..인조목재 공장 옆 농로에서 잠시 배낭을 내리고 휴식을 취한다.(09:20)
이어지는 농로를 지나 대정리 고개 윗두리실 마을 지방도에 내려서니 사슴농장에서 피어 나는 냄새가 진하게 느껴진다. (09:40)
(대정리)
대정리 포장도로를 건너 사슴농장과 작은 공장이 들어 선 윗두리실 마을 길을 따라 10분 남짓 언덕길을 걸어 오른다. 큰 공장을 지나 여러갈
래로 나눠지는 길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마주하는 직진길은 망월사로 가는 길이다. 多紅山 아래 단풍은 아직 이르건만, 비구니 晴空스
님의 교언을 떠올리며 스님들도 못된 짓을 하면 열반에 들지 못하고 뱀이 된다고...훗날 이 땅에 뱀이 많아질까 두려운 오늘날이 안타깝다..
농로를 벗어나 오른쪽 얕은 산머리를 올라서니 묘역 뒤로 이어지는 정맥길이 가시덤불로 덮혀 있다.그리 경사가 심하지 않은 오르내림을 반
복하며 잡목 숲을 헤쳐 내리니 승순 농장 옆을 거쳐 아랫대실 마을이 있는 대야리 고개 차도에 내려선다.(10:10)
(대야리 단풍나무 조림지)
대야리 고개 차도를 건너 왼쪽으로 이어지는 절개지를 올라서니 벗나무,단풍나무 조림지들을 거친다. 윗대실 마을 지붕을 내려다 보며 왼쪽
농장 철조망을 지나고 가시덤불과 잡목이 시야를 가리는 능선으로 올라서면서 망이산을 가까이서 조망한다. 이제 이렇게 성가신 잡목들도 추
석지나고 찬바람이 실려오면 또 한 계절을 받아들이며 제 몸을 털어내고 다소곳한 겨우살이를 준비하겠지..무릇 미물이나 짐승들도 제 수명
을 다하고 천수를 마감할 즈음엔 일체 식음과 받아들임을 거부하며 스스로의 남은 생명력을 다 털고 멀리 떠날 준비를 할 줄 아는데..어찌하
여 영장이라는 인간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비울줄을 모르고 채우려 드는 것일까..하물며 종교와 율법을 운운하는 성직자나 스님들까지도..
벌목지대와 가시덤불 능선길을 벗어나니 오늘 산행의 첫 된오름길을 맛보며 오른쪽 급한 경사면을 타고 음성군/이천시 도경계 능선 삼거리
에 올라서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10:40) 길고 긴 陰城(仍忽,雪城,仍斤內)땅을 드디어 벗어나는가..
(망이산)
왼쪽 대야리산 능선을 타고 오르기 직전에 잠시 내림길을 밟고 안부를 지난 후 370봉까지 또 다시 급경사를 이룬다.20분 남짓 힘겨운 걸음으
로 왼쪽 동리 마을로 내림길이 갈라지는 봉우리에 올랐으나 선답자들이 앉아서 쉬었다는 통나무 간이의자는 사라졌다.오른쪽으로 편안한 오
름길을 길게 이어나가 397봉을 넘어서니 마지막 망이산성을 향한 된비알이 또 다시 버틴다.(11:05) 안간힘을 다하면서 오늘 구간의 고도 높이
기를 한꺼번에 시험받는다. 望夷山城 남문터에 올라서서 축성과 유물에 관한 긴 설명을 읽어 본다.(11:22) 망이산(馬耳山)의 경계점이 신라/
고구려의 적대적 역사는 그렇다치고, 조선시대 아랫마을 동리 출신의 이이첨이 인조반정 때 기지로 삼았고, 임진년 왜구들의 기지로 쓰여 북
쪽 일죽 조기산의 아군들을 대적하는 진지로 쓰였다니 참 아이러니다..
(대야리)
남문터를 지나 2-3분 오름길을 밟으니 멋드러진 소나무 한그루가 맥길 나그네들에게 그늘을 선사하고 봉수대터를 확인하며 망이산(472.5)
정상에서 배낭을 내린다.(11:25) 남으로 미호천을 발원하여 충북의 비옥한 구릉에 젖줄을 물리면서 행복도시를 거쳐 금강 합수점에 이르기까
지 숱한 사연을 간직하는 마을 소류지들이 오늘날 서울 근교의 낚시터로 각광을 받으니, 햇살 속에 반짝이는 양덕 저수지의 풍요로움을 함께
느낀다. 동이아울산 아래 골프장이 자리하고 남으로 백운산을 뻗어 儒家의 白雲山과 佛家의 瑞雲山으로 사랑 받으니, 운곡서원과 고심사가
함께 자릴 잡았다. 차량을 회수할 선두대장팀을 먼저 하산시키고 긴 휴식을 취하며 한남금북의 마지막 자락을 남겨 둔채 지나온 음성땅 자락
을 조망한다.(-12:10)
(양덕리)
內城(土城)과 外城(石城)으로 축조된 古城의 두터움은 긴 세월의 하많은 역사에 묻힌 채 이제 250m남짓 남았다고는 하나 선사 이후의 많은
유적들이 발굴되고 있다니 잘 보존해야 될 일이다. 중부고속도로를 발 아래 차현고개로 지나가게 했음이 참 다행으로 여겨진다. 이곳 봉수대
터는 直烽(동래-영동-음성 가섭산)과 間烽(남해금산-영동- 진천 소을산)을 함께 목멱산(서울 남산)으로 전하는 요충지이다. 조선 말기까지
긴요하게 쓰였다니, 이곳 음성 땅이 서울로 향하는 중심지임에는 틀림이 없다. 저 비옥한 농토를 가꾸던 농민들의 소박한 바램마저 한양 땅으
로 전달이 되었으면 더욱 좋으련만..이제 저 곡류를 따라 큰 강 이루는 곳에 생겨 날 行複都市에서 서민들의 幸福을 가꿀 수 있기를..
(쉼터)
긴 휴식 후 마이산 표지석에서 기념을 남기고 능선 내림길을 잘 살펴 헬기장을 지나고 북봉 표지석 제단에서 다시 기념을 남긴다.(12:20) 왼
쪽으로 방향을 잡아 내리면서 급히 고도를 낮춘다.10여분 후에 쉼터 의자를 지나고 다시 급경사를 거친 후 작은 봉우리를 두어개 오르내린다.
숲 속의 낡은 벤치가 방치된 채로 등산객들의 주등로는 아닌듯 싶다.오른쪽 매산사 오름길과 남쪽 양덕리 오름길이 주민들의 익숙한 등산로
로 애용되고 있는 모양이다. 편안한 등로를 거쳐 화봉육교가 걸쳐 있는 수레티(車峴) 고개에 내려선다.(12:50)
훈요십조의 車峴과 公州江이 바로 이 고개와 금강의 옛이름으로 해석하여, 칠장사 부근에서 자란 궁예의 후손들과 고려 왕건에 위협적인 존
재였던 충주 땅 도호들을 견제하라는 가르침으로 주장하는 설도 있다. 옛 지도상의 車峴이 정밀하질 못한 탓에 생극면의 수레의산 부근으로
해석 될지라도 충분히 이해는 될 만하다. 단지 저렇게 씽씽 달리는 고속도로 위의 흐름들이 이 땅 구석구석을 통하는 시대에 다 부질없는 구
시대의 동네 싸움에 불과한 글귀들이다..
(화봉육교)
9/10 道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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