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시간표)
12/5 23:00 남부터미널 출발
12/6 03:00 고성터미널 도착
04:10 배치고개 출발
05:28 탕근재 (367) 3.25km
06;10 새터재
07;00 필두산(420)
07:40 담티재 4.2km
08:05 용암산(399.5)
08:30 (식사후 출발)
08:52 남성치
09;34 벌밭들(풀국새산)
10:20 가나무봉(528)
10:45 깃대봉 (520.6)
11:50 발산재 7.25km
12:50 (식사후 출발)
13:30 외곡고개 3.0km
15:20 큰정고개
15:44 527봉 (오봉산 갈림봉)
16:00 522.9봉 4.2km
16:20 오곡재 1.5km
12시간 10분 23.4km
12/7 05:30 오곡재 출발
06:20 651봉 미봉산 갈림봉
06:40 미산령 2.0km
07:05 743.5봉(수미산)
07:45 여항산(갓대미산)(770) 1.75km
08:30 소무덤봉
09:25 서북산(738.5) 3.8km
09:45 (휴식후 출발)
11:07 대부산(649.2) 3.5km
12:15 한치 2.1km
13:10 (식사후 출발)
14:54 광려산 (752) 2.4km
16:00 대산 (608) 2.6km
17:30 쌀재 2.8km
18:00 (만날재) (3.5km)
12 시간 30분 24.45km
(구만면 당항포의 새벽)
(12/5 23;00) 남부터미널에서 통영으로 향하는 버스에 예상외로 많은 손님으로 가득찬다. 주말을 이용하여 고향을 찾는 젊은이들이 유난히도
싱싱해 보이고, 꿈많은 세월 속에서 이즈음 맞는 차가운 서울의 세파를 잘 견뎌내고 먼 훗날 따뜻한 고향으로 금의환향하길 빈다..이제 사회
에 첫발들을 내 딛는 내 자식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앞날에 부디 공정하고 바른 사회가 이루어져 옳은 삶이 행복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대전-통영 고속도로를 달리던 낙남길도 이젠 마산으로 넘어 가면 당분간 마지막인가..사천읍을 지난 버스가 낯익은 33번 국도를 달려 고성
터미널에 중간 기착하여 산꾼을 부린다.(12/6 03:00) 지난 구간에 머물렀던 시내방향으로 이동하여, 택시기사 대기실에서 떡국을 끓여 먹으
며 새벽 산행을 준비한다. 이른 새벽의 나그네들에게 따뜻한 안식처를 제공해 준 삼우택시에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필두산 일출)
(12/6 04:10) 마암면을 지나 고갯길 정상에 올라서니 어둠 속의 배치재에서 시작될 정맥길이 별밭으로 뒤덮히며 올해 첫 추위라고는 하지만
견딜만하다. 좋은 날씨에 바람만 잦아들길 바라며 오른쪽 절개지를 올라 밤나무 단지 작은 봉우리를 넘는다.동으로 향하던 맥길이 잠시 왼쪽
으로 꺾이며 밤나무 단지 북쪽 내림길을 만나면서 길도 희미하고 밤길 리본 찾기가 만만치 않다. 단지 안부를 지나 숲 속 오르막길을 조심스
레 살펴 오르니 두세개의 작은 봉우리들을 오르내리며 밤나무단지와 대나무 숲을 거치면서 동쪽 매봉산 갈림길까지 길게 이어진다. 과수원
경계선을 따라 내려 어둠속의 신고개 포장길에 내려선다. 별이 총총하니 좋은 날씨에 바람마저 잦아드니 추위 걱정은 덜하다.(04:58)
(벌밭들 아침)
신고개 임도 축대를 올라서니 겨울철 탕근재 입산통제 팻말이 어둠속에 빛난다. 화기 조심하겠읍니다..잡목과 억새를 헤치며 어둠속을 30분
남짓 올라치니 제법 땀이나며 탕근재 산고개를 넘는다. 아무래도 구만면에서 자구실마을로 넘는 고갯길인 모양이다.(05:28) 왼쪽 내리막길의
벌목가지들이 성가시다.이어지는 봉광산(386) 표지판을 가볍게 넘고 오른쪽 내림길을 길게 거쳐 새터재 포장길에 내려서기 직전에 가족묘지
입구 팻말을 지난다.(06:10) 아직은 어둠속에서 별빛만 따른다. 50여년전 한 여름밤에도 이렇게 맑은 별밤 아래서 고갯길을 넘나들던 우리네
농부들이 대체 무슨 까닭도 모를 살육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고 오른쪽 왼쪽을 번갈아 찔리며 숨을 죽여야 했던가..
(적석산 전경)
어둠속에서도 조금씩 여명을 느끼며 구만면의 새벽 하늘을 잠시 따라 오르던 길이 왼쪽 급경사 사면을 지그재그로 오르면서 뭔가 알바길로
들어서는 느낌이다. 랜턴불빛에 지도를 펼쳐보니 필두산 능선 오름길이 서쪽 개천면쪽으로 치우치면서 급한 경사길을 왼쪽사면을 타고 오른
다. 29여분의 된비알을 코를 박듯이 올라선 마루금에서 오른쪽 북쪽으로 방향을 잡으니 부드러운 능선길이 이어진다. 낮은 전위봉을 거쳐 돌
탑 쌓인 필두산 정상에 올라선다.(07:00) 랜턴과 겉옷을 벗고 마루금에서 조금 벗어난 전망바위에서 구만면과 당항포의 넓고 평온한 새벽을
가슴에 담는다. 적석산-범바위산으로 둘러 쌓인 분지를 이루고 숱한 전설들을 간직한 구만면이 현대사의 아픔을 외면한 채 잠들어 있다.
(적석산 구름다리)
필두산 정상으로 되돌아 나와 왼쪽 진달래 숲길을 따라 급한 비탈길을 길게 내려 밟는다.잘 꾸며진 어느 처사의 묘역에서 일출을 담고 통신
시설을 거쳐 개천면/구만면을 잇는 담티재에 내려선다.(07:39) 아침식사를 위해 왼쪽 목장집을 두리번 거리지만 아침 찬 바람에 아직도 깊은
잠에 들었는지 인기척이 없다.좀 더 진행하여 어디 양달진 곳이 나타날때 까지 진행하기로 하고 도로 건너 용암산을 향해 오름길을 밟는다.
동쪽으로 방향을 잡으며 된비알 오르막에서 점점 허기를 느낀다.긴 사면길을 올라 암릉지대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용암산(너럭바위산)이
란 이름에 어울릴 바위전망대들을 거친 후에야 삼각점이 있는 정상을 넘어 선다.(08:06) 내림길 철탑 아래서 잠시 바람이 잦아지는 길목에 자
리를 펴고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며 추위를 달랜다.(25분 휴식)
(가나무봉에서 바라본 괭이바다)
용암산 정상 아래에서 식사와 휴식을 끝내고 잠시 내림길을 밟아 고개 안부를 지나고 338봉을 지나면서 왼쪽 내림길을 따라 잘 가꾸어진 어
느 처사의 묘역을 지난다. 진달래 숲길을 거쳐 남성치(화림리 선동마을 입구) 포장도로를 건너(08:52) 넓은 공터에 올라선다. 따뜻하고 양지
바른 이 곳에서 아침을 먹을 걸..묘역들을 따라 오르며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작은 능선에 올라선 후 긴 된비알을 10여분 헉헉 거리니 그물
쳐 진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 풀국새산(벌밭들) 정상을 넘는다.'사람과 산'지도에 벌밭들이란 이름을 적었으나, 진전면에 문의하니 풀국새산
이 공식명칭이란다. 참 좋은 이름이다. '콩쥐팥쥐'에 나오는 '풀국새'의 이름을 따온 것이나, 어느 밤길의 별밭이라도 보았듯이' 벌밭들'이나
다 낭만적이고 아름답다. 단지 무성한 잡목으로 조망이 별로라고 생각하며 몇 걸음 나아가니..넓은 암반의 조망처가 나타나며 오른쪽 적석산
이 한눈에 들어오고, 좌우 마을들이 환히 내려다 보이며 멀리 마산 앞바다가 반긴다.(09:35)
(깃대봉에서)
풀국새산에서 내림길은 잡목과 진달래 숲길로 이어지며 매우 가파르다.긴 내림길과 밤나무 단지를 거쳐 선동고개 임도에 내려선다.(10:08)
이곳에서 임도를 따라 음나무재를 넘어 적석산으로 이어지는 모양이다. 오른쪽묘역 뒤로 이어지는 긴 오르막 길을 밟아 봉우리를 올라서니
전망대 바위에서 적석산 구름다리를 담고 멀리 마산 괭이바다를 조망해 본다. 이어지는 오름길을 따라 528봉 가나무봉에 올라서니 잘못 된
깃대봉(520.6) 표석이 놓여 있다. 오른쪽 발 아래 사찰이 보이는 일암리 대방마을이 눈여겨 보아진다. 50여년 전 적치하의 여름에 전직 대통
령의 장인이 10여명의 양민을 인민재판의 이름으로 보복을 했다는 일로 알려진 곳이다. 불과 며칠전의 보도연맹 사건에 대한 보복이었을까..
결코 양민이 무법의 천지에서 재판없이 사라질 수는 없다는 민주주의의 광복을 맞이한지 불과 5년 남짓, 이 땅의 여름날엔 무슨 야만의 역사
가 펼쳐지고 있었던가..오른쪽 대방마을 내림길을 버리고 정맥은 왼쪽 암릉지대로 길게 내려 선다.(10:25)
(발산재 내림길에서 바라 본 여항산-서북산 능선)
계속 이어지는 암릉 전망대에서 동북쪽 여항산-서북산 능선을 조망하며 내일을 기약한다. 고도차가 없는 암릉길을 거쳐 깃대봉 삼거리 넓은
바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10:45) 오른쪽 깃대봉을 거쳐 곧장 내려가면 수발사 내림길로 알바다. 되돌아 내리는 왼쪽 내림길에서 다시 두
어번의 전망대 바위가 발길을 멈추게하고,만수산 갈림길 삼거리에서 오른쪽 내림길을 밟는다. 이제부터 固城 외로운 땅을 벗어나 진주/마산
의 경계를 이어간다. 고성 땅을 지키는 큰 독수리 한마리가 배웅을 하며 길게 만수산을 넘는구나..편한 능선 내림길을 이어가며 암반 전망대
에서 진전면 양촌마을을 내려다 본다. 요즈음 온천으로 한 몫 본다는 저 마을에도 한 때는 윗동네 아랫동네를 가르는 38선이 있어 인민자치대
피해자와 보도연맹 피해자 가족들이 서로 말문을 닫았을터..이 땅의 곳곳에 자릴잡은 그놈의 38선은 동서로 남북으로, 마을 허리마다 전쟁의
상흔으로 남았으니 오늘 20세기의 하늘 아래에서는 과연 말끔이 잊혀졌을까..높은 벼슬을 지낸 큰 묘소를 지나,(11:30) 발산재 국도가 넓혀지
며 절개지가 크고 높게 생기는 바람에 졸지에 정맥 하산길이 되어버린 장흥 고씨 선영터 포장길을 따라 내려 국도 지하통로를 건너고 발산재
옛길 휴게소 외딴집 마당에서 점심상을 차린다.(11:50-12:50)
(답답한 장벽-오곡재로 가는 길)
발산재 옛길 외딴집 앞마당에서 주인 아주머니의 후한 배려로 긴 휴식과 함께 점심식사를 따뜻하게 마치고 오른쪽 공중화장실 뒷켠으로 이어
지는 마루금을 찾아 오른다.묘역들과 벌목 가지들을 헤치며 오름길을 올라 잡목 봉우리를 넘어서고,편안한 고도를 유지하며 잡목능선길을 계
속 이어 간다.40여분 후에야 오른쪽 마을에서 이어져 올라오는 임도와 나란히 걸어가며 눈길이 지루한 능선을 벗어나 임도에 자주 머문다. 외
곡고개를 지나고 삼거리 오른쪽으로 방향을 잘 찾아가며 잡목 봉우리들을 서너번 길게 이어서 넘는다. 조망도 별로 없는 숲길에서 정맥 특유
의 좌우 동네들을 지도와 비교하며 지난 날의 아픔을 되새긴다.
50여년 전 그 해 여름 오른쪽 여양리로 이어지는 고사천 계곡길을 따라 올라 온 트럭이 둔덕 마을에 도착한 후 200여명의 보도연맹 가입원을
묶은 채 내려 놓고 무심한 총성으로 생명을 멈추게 하였으니, 그 이웃들을 동굴 속에 묻어야 했던 그날의 이 동네 젊은이가 아직도 한 맺힌 무
서움을 잊지 못한 채 이 원망스런 고향을 지키고 살아 왔던가..2002년 옥방마을 뒷산에서 태풍 루사가 파헤친 52년의 恨을 지켜 보고 증언을
해야했던 고령의 농부는 무슨 냉철한 철학을 바랬을까..당신들 정치꾼들,지식인들이 그렇게도 강조하고 필요로했던 이성의 냉철함이 또 얼마
나 많은 양민들의 순진 무구한 감정의 가슴들을 짓누르고 있는지를 똑똑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큰정고개에서 바라본 진주 이반성면)
큰 특징 없는 잡목 숲길을 고도차가 크지 않은 오르내림으로 두세개의 봉우리를 더 넘어서고, 큰 묘역을 지나 봉우리 좌우 사면길을 걸으며
조금씩 고도를 높혀 가더니 오봉산 갈림봉이 우뚝 솟아 마주하는 큰정고개 삼거리에서 잠시 숨을 돌린다.(15:20) 이어지는 암릉 오르막을 잠
시 힘겹게 올라 선 후 오봉산 갈림봉까지 긴 오름으로 모처럼 땀이 배인다.삼거리 표지목에 올라서서 군북택시에 연락을 취하고 오른쪽 오곡
재 내림길로 향한다.(15;45) 금새 닿을 것 같던 오곡재는 522.9봉 급한 오름길과 급경사 내림길을 다시 한 번 강요하고 작은 동산으로 마무리
운동까지 착실하게 준비한 후에야 임도에 발을 닿게 한다.(16:20) 오실(娛室)골 마을에서 재를 넘던 최치원이 보았던 까마귀(烏谷)는 보이질
않고 겨울 철새가 되었다는 독수리 한마리 큰 날개짓으로 스산한 겨울 하늘에 맴을 돈다.(비실재)
(오곡재)
오곡재에서 하루를 접으며 진전면 양촌온천에서의 숙박도 생각했다가,택시가 올라 올 수 있는 도로정비가 잘 되어 있다는 함안군 관광과 직
원의 엉터리 정보에 따라 군북면 택시를 불렀으나 포장도로는 보이질 않고 잠시 엉뚱한 왼쪽 임도(간간히 시멘트 포장길이 반복)로 택시를
찾아 내리는 바람에 피곤한 발품을 20여분 더 팔게 된다. 참고로 오곡재에서 군북면쪽 내림길은 고개 삼거리에서 오른쪽 비포장 산판길을 따
라 10분 남짓 걸어 내리면 포장공사가 진행중인 넓은 도로에 닿아 택시를 이용할 수 있다. 아무튼 70년대 느낌의 군북역 앞에서 삼겹살 생고
기 맛에 반해 이 곳으로의 선택에 아쉬움을 접는다.대부분의 시골 면소재지에 공장일을 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그나마 상권을 유지하는 원
동력이라니 이 땅의 농촌 정책은 오직 공장부지로의 전환이 당면한 상책이 되었구나...내일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든다.
(함안면의 새벽)
(12/07 03:30) 오늘의 긴 일정을 고려하여 일찍 잠에서 깨어 전날 밤 식당에서 미리 준비한 밥으로 아침요기를 여관 방에서 넉넉하게 채운다.
미리 약속한 택시회사에 전화를 했지만 24시간 대기한다던 당직자는 감감 무소식이다. 새벽의 함안 군북면을 뒤져 힘겹게 발견한 개인택시
사무실에서 잠든 기사를 깨워 오곡재로 향한다. 사촌리를 거쳐 잠에 빠진 오곡리 산길을 달려 오르는 택시가 힘겹게 오곡재 마루금에 산객을
내려준다. 옛 아라가야의 수도였던 함안 땅의 고집스런 역사를 맘 속으로 느끼며 하룻밤을 지낸 나그네들은 또 언제 다시 찾아 볼 수 있을지
기약없는 고갯길을 아쉬어 한다.훗날 마산으로 뚫릴 큰 고갯길을 자동차로 넘을 수 있으리라 상상하며 ,낙남의 진수이자 가장 험하고 긴 구간
을 향하여 첫발을 올려 놓는다.(05:30)
(여항산 일출)
계속되는 오르막 밤길이 그런대로 편한 걸음으로 한 봉우리를 넘어서고, 오른쪽 큰 굴로 내려가는 갈림길을 지난 후 부터 연이어 100여미터
고도를 높이며 20여분 코를 땅에 박을듯이 급한 된비알을 마주한다. 간간히 만나는 암릉마저 쌓인 낙엽으로 미끄럼을 타니 랜턴을 조심스레
비추며 속도를 늦춘다. 557봉을 넘어 선 후(06:00) 연이어 고만 고만한 작은 봉우리를 두어번 넘어간다.앞에 보이는 미산봉(651,전투봉)이 우
뚝하다. 암릉의 급한 비탈을 20분 남짓 힘겹게 올라 선 미봉산 갈림길에서 억새 밭을 이루는 내림길을 오른쪽으로 타고 내려 미산령 넓은 공
터에 도착한다.(06:40) 지난 날의 아픔들을 잊은듯이 아직은 어둠속에 잠긴 여양리 마을들을 훔쳐보고, 북쪽 가야읍내에서 오르는 화려한 불
빛을 마주하며 포장길을 넘어 여항산을 향해 급한 암릉을 타기 시작한다.
(나아갈 서북산으로 아침이 찾아오고)
(여항산 암릉에서 일출을)
미산령을 출발한지 20여분 암릉 급경사길을 조심스레 밟아 오르며 조금씩 밝아 오는 여명에 한결 등로가 위험에서 벗어나고, 처음 만나는 바
위전망대에서 멀리 남쪽으로 이어지는 서북산 능선이 새벽을 여는 모습도 지켜본다.이어지는 돌탑 쌓인 능선 길을 따라 743.5봉(수미산)에
올라 잠시 휴식을 취하며 능선 양쪽의 마을들을 조망한다.(07:05) 여양리 저수지와 여항면 저수지가 새벽을 맞이 할 준비를 하고 있다. 큰 고
도차 없이 오르내리는 암릉길이 돌탑봉을 지나고 배능재에 내려선다.다시 10분 남짓 잡목을 헤치며 올라 바위전망대를 지나고 헬기장에서 바
라보는 여항산 오름길 병풍바위 암릉길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로프가 설치 된 우회길이 있지만..다행히 떠오르는 햇살에 발디딤이 안전하게
확보되어 직접 칼날 암릉길을 타고 여항산 정상에 다다른다.(07:45) 그 황홀한 일출 속에서 맞는 기쁨은..바로 이 순간을 위해 지리산 영신봉
을 출발하여 가시잡목 길을 헤쳐왔나보다..
(여항산 정상 암릉길)
艅航山...南高北低의 함안 땅 지형이 서울 임금에게 해가 될까봐..배를 타고 넘을 만큼 낮춰줬지만..걸어 넘는 발길은 한없이 힘들고나..차라
리 어느 촌부의 작명데로 싸리봉이 나았을까..어쩌다 이 땅의 마지막 동족의 전장터가 되어 전투봉을 마주하며 수없이 많은 젊은이들의 피로
물들인 피바위가 되었는고..게다가 죄없는 미군들은 태평양 건너 이국 땅에서 무엇을 지키려고 그렇게도 죽음을 무릅써야 했던가.,갓대미산
(갓뎀)의 이름을 남겨놓을 때 까지 그들이 지켜야 했던 이 고지에서 바라보는 산허리는 사방팔방 좌우도 없이 광활한 역사를 묻은 채 침묵만
이 흐른다. 훗날 이 땅의 통일된 조국 하늘 아래서 바라보는 그날엔 먼 지난날의 사상에의한 부질없는 다툼들이 발전의 시간으로 기록될까..
인류 역사의 가장 그릇된 반성의 시간으로 남을까..
(여항산 정상에서)
(칼등고개 암봉을 내려서고)
새벽의 추위가 엄습하여 정상에서 오래 지체하질 못하고 암릉 내림길을 조심스레 밟아 내려 미산령에서 오르는 우회등산로 길에 내려선다.
서북산이 멀리 보이는 암릉길을 오르내리며 로프가 설치된 급경사 암봉을 통과한다. 마주하는 암봉은 얼마전 추락사고로 인하여 위험 우회
표지판을 설치하고 우회로를 열어 놓았지만 일단 올라서 보니 굵은 로프가 새로 설치되어 무사히 절벽을 2단으로 타고 내린다.(08:14)
이어지는 편안한 능선길을 오랜만에 여유롭게 걸으며 봉우리 왼쪽 사면을 돌아 넘고 668봉(소무덤봉) 왼쪽 사면을 거쳐 헬기장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08;30)
(건너편 대부산 능선너머로 멀리 광려산이)
헬기장을 넘어서서 전망바위에서 오른쪽 인성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길들이 우람하게 조망되고, 편한 걸음으로 718봉을 이어 넘는다. 서북산
과 왼쪽 대부산, 그리고 오늘의 마지막 광려산이 까마득히 먼 곳에서 산객을 기다리며 손짓한다. 여항면 별천계곡을 내려다 보며 왼쪽으로
90도 꺾어 내리며 암릉지대를 거친다. 지도에 표시된 706봉에 올라 대원들을 만나 다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약간 허기가 지는듯하지만 서북
산에서 간식을 하기로 하고 오른쪽 내리막길을 이어간다. 조금씩 무릎에 이상을 느끼며 전날의 페이스 조절에 무리를 느낀다. 아직도 긴 내리
막이 두세번 남았는데...몇년전 백두대간 시작할때 즈음 동엽령-물한계곡 내림길의 악몽이 되살아 난다. 하지만 그 때 이후에 구입하여 한번
도 써보지 못한 무릎보호대가 배낭속을 늘 차지하면서도 왜 떠오르질 않는걸까..
(함안 북쪽이 낮아지는 남고북저형 산줄기)
쉬엄쉬엄 걸음으로별천 갈림길 이정표를 지나고 긴 오르막을 거쳐 소나무가 있는 봉우리를 넘어서니 서북산 정상으로 오르는 편안한 마루금
이 길게 누워 있다. 10분 남짓 더 오름길을 거쳐 마침내 서북산 정상 헬기장에 올라선다.(09:25) 아침의 찬바람이 정상을 맴도니 제법 쌀쌀함
을 느끼며 따뜻한 커피와 빵으로 허기를 메꾸고 긴 휴식을 취하며 좌우사방의 풍광에 도취한다.(20분) 남쪽 괭이바다의 슬픈 이야기를 떠올
리며 마산과 거제 앞바다를 떠돌던 영혼들을 위해 묵념한다. 1500여명의 생명을 수장할 수 있었던 그러한 잔인함은 대체 어떤 이데올로기의
냉철함으로 설명되어질 수 있을까..그것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방책이 될 수 있었을까..전쟁이 끝나고 5년 후 어느 봄날에 마산 앞바
다에서 떠오른 고 김주열군의 분노의 주검은 그러한 역사의 사실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일까..보수의 땅이라는 경남 서부에서 민노당이 살
아 남을 수 있다는 오늘의 현실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일까...
(서북산 정상)
서북산 정상 한켠을 차지하는 전적비의 작은 정성에 같이 합장하고 뒷면에 새겨진 작은 글귀가 애잔하다. 멀리 태평양 너머 이국의 땅에서 전
사한 고 티몬드 대위의 아들이 미군 사령관이 되어 찾은 이곳에 망자들의 영혼을 달래는 표석하나 남겼으니 부디 저승에서나마 평화로운 잠
을 누릴 수 있기를..역사는 반복한다고 했던가..아니다, 이러한 비극의 역사는 다시는 반복할 수 없도록 인류의 가슴이 열리기를..전쟁 초기에
보도연맹 경남도 이사장이었던 도경 사찰과장은 전쟁후 국회의원이 되었고..또 다시 4월 혁명의 시기에 본인도 아닌 그 가족이, 법정이 아닌
백주대낮에 인민재판식의 수모를 당하는 광경을 목격한 어린시절의 내 눈속에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집단'이라는 악령이 자릴 잡았다.
전쟁이라는 무서운 터널을 통과해야만 했던 우리네 양민들, 어느 누구의 가슴에도 지워지질 않는 인간에 대한 회한의 정을 담고 있으리라..
(서북산에서 바라본 괭이바다)
서북산 정상에서 긴 휴식 후 봉화산 방향 이정표를 따라 왼쪽 내림길을 따라 내린다. 나아갈 대부산 능선이 아득하고 철쭉과 소나무 급경사
내리막에서 감재고개 임도에 내려설 때까지 40여분을 오른쪽 무릎에 다가오는 통증으로 속도를 내질 못한다. 대원들과 점점 멀어지는 기분이
다. 아직도 한치를 넘어서 나아 갈 구간이 많이 남았는데..버드내 내림길의 표지가 있는 임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마주하는 철탑 방향으
로 임도길을 따르다가 오르막을 만나니 훨씬 살만하다..계속 오름길만 있었으면.. 임도와 헤어져 철탑을 목표로 암릉지대를 급한 경사를 긁어
오르니 남쪽 평지산 갈림봉에 올라선다.(10:50) 대부산 표지판이 나무에 걸려 있으나, 아무래도 지도상의 삼각점이 있는 대부산은 좀 더 진행
해야 될 것 같다.왼쪽 봉화산 쪽으로 이어지는 편안한 낙엽 쌓인 능선길을 길게 걸어 올라 대부산 정상(649.2)에 도착한다.(11:07)
(서북산-무학산 방향)
대부산 정상을 넘어 이어지는 봉화산 갈림봉까지 5분여 걸음은 편안하다. 봉화산을 거쳐 여항면 청암마을로 이어지는 능선길을 버리고 오른
쪽 급경사면을 타고 내리며 한치로 향한다. 20여분을 계획한 내림길이 무릎통증으로 30분 넘게 살금거린다. 넓은 바위가 있는 봉곡마을 이정
표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마주하는 봉우리를 넘어서는데 오름길은 편하나 내림길이 영 시원찮다. 가까스로 한치고개 휴게소에 닿으니 맞
은편 식당에서 먼저 도착한 대원들이 시켜 놓은 매운탕을 즐기며 오후 산행을 준비한다. (12:15-13:10) 경기도 양평에서 시집 온 '한티곡식당'
(055-582-0446) 주인 아주머니의 후덕한 대접으로 산객은 즐겁다. 정맥꾼들의 민박도 가능하다하니 연속산행시에는 이곳에서 구간 설정도
고려해 볼만하다.
(광려산 전위봉)
점심식사와 긴 휴식으로 피로를 잊고 광려산 오름길을 향해 오른쪽 등로 입구를 찾아 오른다.(13:10) 묘역들을 지나 숲속 오르막 길에 들어
서니 이어지는 급경사 오르막에 코가 닿는다.소걸음으로 30여분을 오른 뒤 하산길의 드문 등산객에게 묻는다."다 와 갑니껴.." "아이구 이제
시작이라예..' 다리에 힘이 쭉 빠진다. 다행히 오름길이라 무릎통증이 없다. 이 후 화개지맥(북쪽 상투봉,투구봉 방향)이 갈라지는 광려산 삿
갓봉 아래 능선길에 오르기까지는 아무 생각없이 코 앞의 바위들을 긁어 오르다 보니 1시간이 훨씬 넘었다.(14:25) 안내판이 있는 능선 삼거
리에서 오른쪽 암릉을 타고 올라 광려산 삿갓봉(720.1서북봉)에 올라선다.(14:35) 잠시 휴식을 취하며 물 한모금 마신다.좌우 조망이 매우 좋
고 이제부터 함안 경계선을 벗어나 마산땅을 내서읍/진북면 경계선을 따라 동진한다. 오늘의 마지막 큰산인 대산(大山)이 멀어보인다.
(광려산 내림길 날등)
광려산 삿갓봉을 지나 편안한 능선길을 따르며 암릉 조망대에서 오른쪽 진동 앞바다를 조망하면서 동쪽으로 고도를 서서히 높혀 나가니 다시
'광려산정상'이라는 팻말을 세워 놓은 752봉에 올라선다.(14:54) 아무래도 높이는 720으로 적은 것을 보아 지도상의 삿갓봉을 주봉으로 기록
함이 타당하고, 이곳이 가장 높다는 뜻에서 잘못 세운것 같다. 조금씩 고도를 낮추며 암봉을 넘어서고, 급한 내리막 경사를 거치면서 험한 암
봉 을 왼쪽 사면으로 두어번 떨어져 내린다. 내림길의 무릎통증이 재발할까 두려워 속도를 많이 늦춘다. 암릉을 조심스레 타고 내려 시루봉
갈림길 삼거리를 지나면서 편안한 안부를 길게 거친 후, 진달래 숲 오름길을 거쳐 대산 오르기 전 직벽암릉에서 로프를 잡는다. 괭이바다가
한눈에 들어 온다.(16:00) '大山'이라는 정상석에 대하여 '代山'이 맞지 않나 하는 설도 있으나, 代山이란 함안땅의 여항산에 대하여 북쪽 낮
은 지형을 山으로 올려세운 개념이니 실제 이 곳의 큰 봉우리는 大山으로해도 손색이 없다. 무학산을 조망하고 먼저와서 기다리고 있던 대원
들과 합류하여 오른쪽 바람재 내림길을 향한다.
(대산에서 바라 본 진해만 괭이바다)
바로 아래헬기장에는 '匡山먼등'이라는 작은 정상석이 자릴 잡았다.왼쪽 내림길에서 암릉길은 우회하여 내리고,큰 책상처럼 넓은 바위들이
군데군데 있는 급경사 내리막길을 조심스럽게 디디면서 갈대숲이 꽤 멋드러진 윗바람재를 지나고 편한 오르막으로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넓
은 정상(569봉)에 다다라 배낭을 내리고 휴식을 취한다.(16:30) 마산 앞바다가 발 아래로 보이고 마창대교를 배경 삼아 한컷을 남긴다. 이어
지는 왼쪽 철쭉길 급한 내림길을 길게 내려 오면서 역시 무릎 통증이 시작되어 매우 힘겹다. 20여분의 긴 내림길을 힘겹게 거쳐 바람재에 내
려서니 마주하는 마지막 봉우리가 매우 힘겹게 느껴진다. 바로 옆으로 지나는 산판도로가 보여 마산택시에 전화를 했으나, 바람재나 쌀재를
아는 택시는 하나도 없다. 차라리 시골 택시가 이런 고갯길엔 익숙할 것이다.(07:00) 잠시 휴식 후 마지막 고개를 향해 오른다.
(윗바람재에서 마산항을 뒤로하고)
점점 어두워지는 산길에서 내려다보는 쌀재터널 큰 도로에는 벌써 차량들의 불빛이 밝게 보인다. 낙남정맥으로 인해 분지처럼 남아 있던 내
서읍이 터널로 연결되어 서마산과 창원-김해로 바로 연결되니 엄청난 발전이다. 마지막 447봉을 넘어서고 급한 내리막 길은 사설 농장에 의
해 정맥길을 막아 놓아 억지로 퇴비장 철망을 넘어서서 쌀재 옛길 포장도로에 내려선다.(17:30) 다음 구간의 대곡산 들머리를 확인하려고 살
펴보니 '임마농장'이라는 사설 농장이 마루금을 차지하고 왼쪽으로 친절하게도? 등산로를 개설해 놓았다. 대간 정맥 마루금의 기본도 모르면
서 자연환경운동이니 문학이니, 노동농민운동을 떠벌리는 한심한 집단이 아니길 진심으로 바란다. 이 맥길은 숭고한 영혼들이 걸어다닐 길이
요, 이 땅의 한 많은 양민들이 백두산에서 부터 이어져 오는 기와 혈을 이어 받을 길이다. 너희들 무식한 소수들이 철망치고 점거하고 함부로
길을 돌려 놓을 만큼 그러한 길이 아니다. 대운하를 반대하는 당신들이 어떻게 맥길은 함부로 끊으려드는가..아서라 후손이 다칠까 겁나지 않
은가..찾아 오르지 못하는 택시를 찾아 쌀재에서 만날고개로 이어지는 포장도로를 아픈 다리를 끌며 밤길을 더듬는다.(18:00)
(만날고개 하산길)
만날고개 달 뜨거든 그리움의 피리 불리라
만날고개 달 뜨거든 비단고요 밟고 오시라
달무리로 넘치는 그리움 영원 속에 울리는 그리움
기약없이 떠난 님 달빛처럼 돌아오시라
만날고개 달 뜨거든 그리움의 손짓하리라
만날고개 달 뜨거든 은빛 파도 타고 오시라
은하수로 흐르는 그리움 영원 속에 사무친 그리움
송별없이 떠난 님 별빛처럼 돌아오시라
마산 오동동의 미더덕찜으로 이틀간의 피로를 풀었으나, 옛날 내 어머님의 그 맛은 아니더라..많이도 변하고 점차 사그라지는 오동동의 옛정
을 그리워하며 서울로 향하는 심야버스에서 잊었던 옛 추억을 꿈속에서 만난다.
12/15 道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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